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
수상내역/미디어추천
작가정보

저자 오가와 요코(小川洋子)는 1962년에 태어났다. 와세다 대학 제1문학부 문예과를 졸업하고, 1988년 『상처 입은 호랑나비』로 가이엔 신인문학상을 거머쥐며 일본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1991년에는 「임신 캘린더」로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고, 2003년에는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제55회 요미우리 문학상 소설상, 제1회 서점대상 등을 수상하며 일본의 대표적인 여류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2004년에는 『브라흐만의 매장』으로 이즈미 교카 문학상을, 2006년에는 『미나의 행진』으로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을 수상하였다. 『약지의 표본』, 『침묵박물관』, 『호텔 아이리스』가 프랑스에서,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 일본에서 영화로 제작되었다. 이 외에 『완벽한 병실』 『식지 않은 홍차』 『슈거 타임』 『안네 프랑크의 기억』 『호텔 아이리스』 『얼어붙은 향기』 『우연한 축복』 『귀부인 A의 소생』 등의 작품이 있다.
저자 권영주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옮긴 책으로 『삼월은 붉은 구렁을』 『흑과 다의 환상』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 『유지니아』 『코끼리와 귀울음』 『한낮의 달을 쫓다』 『자전거 소년기』 『앨리스의 미궁호텔』 『아시야 가의 전설』 『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오! 파더』 등이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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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할아버지는 집 1층에 작업장을 두고 망가진 가구를 수선하는 일을 주로 했다. 신품을 만드는 쪽이 더 보람도 있을 테고 기분도 좋을 텐데 왜 낡은 가구만 상대하는지, 소년은 늘 이상하게 생각하곤 했다.
“신품은 너무 위세가 좋으니 말이다.”
할아버지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좀 힘 빠진 녀석을 더 신경 써줘야 하는 거다.”
소년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일을 방해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15쪽
소년은 할머니에게 어째서 입술을 떼었느냐고 물은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그야 숨을 못 쉬니 그렇지.”
할머니의 대답은 어디까지나 현실적이었다.
“숨은 코로도 쉴 수 있잖아요.”
“그럼 젖은 어떻게 빨 거냐?”
“그럼 하느님은 왜 나를 젖도 빨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드신 거예요?”
할머니는 바느질을 중단하고 앞치마 끝에 늘어뜨린 행주를 뭉쳤다가 폈다 하며 시간을 벌었다.
“하느님도 가끔은 허둥댈 때가 있단다.”
손안에서 다양하게 형태를 달리하는 행주를 보며 할머니는 말했다.
“다른 데 특별히 신경을 써주시느라, 그래서 마지막에 입술을 뗄 시간이 없었던 게 아닐까.”
“다른 데라뇨?”
“그건 할미도 모르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말이다. 눈인지, 귀인지, 목인지, 좌우지간 어딘가에 보통 사람한테는 없는 특별한 장치를 해주신 게야. 그래, 그거다. 틀림없어.” - 28~29쪽
소년은 한평생 그 일요일에 있었던 일을 거듭 돌이켜 생각해보게 된다. 그 밖의 추억과는 별도로 특별한 작은 상자에 넣어두고는, 몇 번이고 상자를 열어 살며시 보듬게 된다. 체스에게 배신당했다고 느낄 만큼 상처를 입었을 때, 마스터의 추억에 잠겨 눈물을 글썽이고 말았을 때, 그 포근한 겨울 햇살에 싸인 회송 버스에서 두었던 게임을 생각하며 마스터가 가르쳐준 체스의 기쁨에서 구원을 발견하게 된다. - 66쪽
폰을 끌어안고 빛의 띠에 몸을 맡겼을 때, 소년은 지금껏 맛본 적이 없는 기묘한 감촉을 느꼈다. 소년은 백화점 옥상에서,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수면은 저 멀리 위에 있고, 바닥은 너무나도 깊고, 물은 차가운데도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무섭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몸 어디에도 괜한 힘이 들어 있지 않았다. 아아, 나는 입술이 됐구나. 소년은 깨달았다. 의사가 쓸데없이 손을 대기 이전의, 서로 포옹하듯 딱 붙어 떨어지지 않는, 하느님이 만들어주신 상태의 입술로 바다 속을 여행하고 있었다. 더욱이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인디라와 미라도 같이 있었다. 인디라는 코를 휘휘 젓고 귀를 펄럭이며 소년의 주위를 헤엄치고 있었다. 물론 족쇄는 차지 않았다. 네 다리는 옥상의 콘크리트 바닥을 차고 날아올라 자유롭게 움직였다. 헤엄친다기보다 마치 환희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그리고 미라는 폰이 토해낸 공기 방울에 들어가 인디라가 일으키는 해류를 타고 떠다녔다. - 69~70쪽
“체스는 머리가 좋고 나쁜 것만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게 아니란다.”
“운도 필요하단 뜻이에요?”
“아니. 운은 상관없다. 운이 좋았던 것 같은 시합이라도, 하늘에서 우연히 떨어진 게 아니라 본인이 자기 힘으로 이끌어낸 거야. 체스판에는 말을 만지는 사람의 인격이 고스란히 드러나거든.”
마스터는 선언문을 낭독하는 듯한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철학, 정서, 교양, 품성, 자아, 욕망, 기억, 미래, 좌우지간 전부다. 감출 수가 없어. 체스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암시하는 거울인 거다.” - 80쪽
“진심으로 잘 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도, 상대방이 실수를 했을 때도 아니거든요. 상대편 말의 힘이 이쪽 진영까지 메아리쳐서 제 말의 힘이랑 공명할 때예요. 그러면, 말들이 제가 상상도 못 해본 음색의 소리를 내요. 그 음색을 듣고 있노라면 아아, 지금 체스판에서 올바른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그런 기분이 들어요. - 105쪽
“내 친구는 모두 아무 데도 가지 않는 사람들뿐이었거든. (……) 자기가 원한 것도 아닌데 다들 정신이 들어보니까 그렇게 돼 있었어. 그렇지만 아무도 빠져나가려고 버둥대지 않았어. 불평도 하지 않았고. 그런가, 나한테 주어진 곳은 여기인가, 하고 말없이 받아들이곤 거기에 몸을 두었어.”
- 183~184쪽
출판사 서평
“서두르지 마라, 꼬마야.”
마스터의 한마디는 일평생 소년의 등대가 되었다.
스스로 성장을 멈추고, 좁고 어두운 인형 안에 머물며
심원한 체스의 바다를 여행한 한 소년의 이야기
시의 언어로 새긴 그 숭고하고 아름다운 궤적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감동 소설!
따뜻하고 잔혹하며, 애절하고 감미로운 오가와 요코 최고 걸작
일본의 대표적 여성 작가 오가와 요코의 장편소설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열한 살 몸으로 성장을 멈춘 채 인형 안에서 체스를 두며 기적과도 같은 아름다운 기보(棋譜)를 남긴 한 소년의 이야기다. 세상에서 가장 좁고 어두운 곳에 몸을 두었으나 누구보다도 자유롭게 너른 체스의 바다를 유영했던 그의 투명하고 아름다운 삶이 오가와 요코 특유의 섬세하고 기품 있는 문체로 그려진다.
이 작품은 작가의 최고 걸작이라는 평을 받으며 독자와 문단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2009년 서점대상 후보작이었고, 책 관련 잡지 《다빈치》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체스의 무한한 우주를 여행하기 위해 성장을 멈춘 한 소년의 아름다운 궤적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서 메마른 수식이 전하는 따뜻한 감동을 그려냈던 오가와 요코가 이번에 소재로 삼은 것은 체스다.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에서는 심원한 체스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마음과 마음의 소통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주인공 소년은 아래위 입술이 붙은 채로 태어났다. 절개수술로 입술을 벌리긴 했지만, 정강이 피부를 떼어 이식한 탓에 입술에 솜털이 자란다. 고독한 소년은 벽의 틈에 끼여 빠져나올 수 없게 된 소녀 미라와 너무 커지는 바람에 백화점 옥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생애를 마친 코끼리 인디라를 친구 삼아 지낸다. 자신에게 체스를 가르쳐준 마스터조차 거구로 인해 죽자, 소년은 ‘커지는 것은 비극’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고, 스스로의 의사로 열한 살 몸에서 성장을 멈춘다. 그 후, 러시아의 전설적인 체스 기사 알렉산드르 알레힌을 본떠 만든 자동 체스 인형 ‘리틀 알레힌’ 안에 들어가 지고(至高)의 대전을 펼친다.
소년은 모습을 보일 수도 없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체스판 밑에서 체스를 두면서도 어떤 상대를 만나든 시처럼 아름다운 기보(棋譜)를 남긴다. 소년에게 체스는 그때그때 체스판 위에서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시’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상대를 이기는 최강의 체스보다는 최선의 체스를 둔다. 체스판 아래서는 10의 23제곱의 경우수, 우주를 구성하는 입자의 수보다 많은 그 경우수 가운데 최선이 될 단 한 수를 선택하기 위한 사고(思考)의 바다가 펼쳐진다.
한계가 있는 삶을 넘어 ‘전설’로서 사람들의 기억에 살아남다
소년은 스스로 닫힌 공간에 틀어박힌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가능한 한 무(無)의 상태로 둔 채, 대전 상대에게, 그리고 세상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상대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식으로 상대의 킹을 향해 체스 말을 옮긴다. 소년은 ‘자기’라는 작고 하찮은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체스의 우주를 자유로이 여행한다. 그리고 결국 그 우주에서 ‘비숍의 기적’이라는 기보만을 남긴 채 생을 마감한다.
체스판에는 말을 움직이는 사람의 인격이 그대로 나타난다. 철학, 정서, 교양, 품성, 자아, 욕망, 기억, 미래. 체스판은 그래서 그 인물이 걸어온 길을 반영한다. 그런 만큼 체스는 인간이 살아가는 의미와도 연결된다. 한 걸음 잘못 디디면 돌이킬 수 없게 되거나 소중한 이를 희생시키는 불상사도 생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코 뒤로 물러설 수 없는 폰과 같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게임 끝에는 단 한 장의 기보만이 남게 된다.
그렇기에 소년의 삶이, 그가 체스판 위에 새기는 시가 더욱 아름답고 숭고하게 생각되는 것이다. 소년의 삶은 독자를 ‘내 지나간 인생의 기보는 어떤 모양을 그리고 있을까?’라는 물음으로 이끄는 동시에, 자신의 나약함을 마주하고 낙담하는 사람에게 ‘힘껏 열심히 사는 것은 무의미하지 않다’라는 따뜻한 성원을 보내준다.
풍요로운 이미지가 엮어내는 정밀(靜謐)한 멜로디
읽을 때마다 몇 번이고 완전히 매료되는 신비한 세계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는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가 없는 독특한 세계를 섬세한 터치로 그려온 오가와 요코의 작품 세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작품이다. 원무(元舞)를 추고 활주하고 도약하는 체스판 말들. 그 움직임이 자아내는 음표와 시구가 마치 눈앞에서 펼쳐지듯 섬세하고 생생하게 묘사된다. 또 체스판을 사이에 두고 위와 아래에서 펼쳐지는 대전 상대와 소년과의 우정, 신뢰, 존경, 사랑이 아름답고 따뜻하게, 그리고 때로는 애절하게 그려진다. 특히 체스판이라는 유한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체스라는 무한한 세계와의 대비감은 작품에 판타지적 요소와 매력을 더해준다.
오가와 요코는 일본에서도 베테랑 작가로 손꼽힌다. 그녀가 발표하는 작품마다 미디어를 비롯해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나타내고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그녀의 작품 기저에 흐르는 것은 ‘아름다움’인데, 악의를 드러내는 소설조차도 아름답고 투명하다는 특징이 있다. 과장된 클라이맥스나 고비도 없고 등장인물이나 풍경, 도구 등 모든 것이 눈에 띄거나 강렬한 인상을 주기보다는 차라리 억제되어 있다. 그럼에도 책을 읽고 난 감동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으며,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읽는 순간마다 완전히 다시 매료되는 신기한 감각을 느끼게 된다.
<책속으로 추가>
“체스판은 위대해요. 그냥 평평한 나무판자에 가로세로로 줄을 그었을 뿐인데도 우리가 어떤 탈것으로도 도달할 수 없는 우주를 감추고 있어요.”
리틀 알레힌은 입술을 다문 채 눈을 내리깔았다.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체스를 두는 사람은 공연한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자기 스타일을 구축하고, 자기 인생관을 표현하고, 자기 능력을 자랑하고, 자기를 멋지게 보이려는 그런 건 전부 허사입니다.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자기보다 체스의 우주가 훨씬 광대하니까요. 자기 같은 하찮은 것에 구애되면 진정한 체스는 둘 수 없어요. 자기 자신으로부터 해방돼서 이기고 싶다는 마음조차도 초월하고 체스의 우주를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요.” - 262쪽
기본정보
ISBN | 9788972755623 | ||
---|---|---|---|
발행(출시)일자 | 2011년 11월 07일 | ||
쪽수 | 372쪽 | ||
크기 |
148 * 210
mm
|
||
총권수 | 1권 | ||
원서(번역서)명/저자명 | 猫を抱いて象と泳ぐ./小川洋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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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옥상에서 자라 너무나 커져버려 더이상 땅으로 내려올 수 없게 되어버린 코끼리 인디라를, 소년은 사랑한다. 혹은 집과 집 사이의 너무나 작은 틈에 끼어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믿을 수 없는 어느 소녀의 이야기를, 소년은 정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소녀 미라와 인디라가 그의 친구들이다. 태어날 때부터 입술이 붙어있어 의술의 힘을 빌어 자신의 정강이 피부를 떼어내 입술에 새로운 피부를 이식할 수밖에 없었던 그로서는 처음부터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이들을 자연스레 자신의 것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만나게 된 회송 버스의 마스터.
"서두르지 마라, 꼬마야. 그 말과 목소리 톤은 일평생 소년의 경구가 되고 등대가 되고 지주가 될 운명이었다."...34p
"소년은 너무나도 작고 빛이 희미해, 본인도 그 빛이 자신의 어디에 존재하는지 아직 알지 못했다. 남자는 체스라는 바다에 소년을 풀어놓고, 그가 스스로 발하는 빛만을 의지해 그 어떤 깊은 해구나 차가운 해류에도 겁먹지 않고 그 무엇과도 비할 길 없는 궤적을 그릴 수 있게 인도했다."...44p
처음부터 닫혀있었던 입은, 소년에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소년이 체스를 만나게 되었을 때, 말의 움직임과 상대편의 반응에 따라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여러가지 길이 보였을 때 느꼈을 환희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소설을 읽다보면 울컥, 슬픔이 밀려온다. 어딘가에 갇혀 움직일 수 없는 이들을 소중히 여긴 소년이 리틀 알레힌을 선택했을 때, 더 나은 길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어쩌면 스스로 침잠하고 스스로 성장을 멈춘 그이기에 리틀 알레힌의 자리야말로 소년의 자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자리였다는 듯이.
체스를 모르는 것이 많이 아쉬웠다. 소년이 창조해 낸 수많은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때로 누군가에게 말하고 행동하며 내가 아님을 인식했을 때 느껴지는 당황스러움을 알고있기에 나는 정말로 나 자신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입술이 붙어서 태어난 소년은 정강이 피부를 이식하여 두툼한 입술에 난 연한 털을 가지고 자라게 된다. 7살이 된 소년은 가끔 할머니, 동생과 백화점 나들이를 가는데 거기서 소년은 늘 덩치가 너무 커져서 백화점 옥상에서 내려갈 수 없게된 코끼리 '인디라'를 애도하기도 하고 잠들기 전, 아이들 사이에 전해지는 벽에 끼여서 나올 수 없게 된 가상의 소녀 미라와 장롱을 개조해 만든 침대에서 대화한다. 그리고 우연히 학교 수영장에서 근처의 버스 회사에 다니는 운전사의 죽음을 발견하게 되고 그걸 계기로 버스 회사 독신자 기숙사의 관리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마스터'와 그의 애완용 고양이인 '폰'을 만난다.
체스 입문(마스터) - 퍼시픽 해저 체스 클럽(체스 인형 리틀 알레힌 제작,인형 VS 인간, 인간 체스) - 에튀드(노인요양시설)
이야기는 크게 위와 같은데 즉 마스터를 통해 체스에 입문하게되고 소년은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서랄지 11살인 몸에서 더 자라지 않은 채 '리틀 알레힌'이란 체스 인형을 만들어 준 체스 클럽에서 일하게 된다.
허나 난폭한 손님에 의해 인형이 망가지고 이로 인해 인간을 말로 사용하는 '인간 체스'라는 걸 하게된 소년은 자신이 미라라고 생각한 소녀를 체스판의 말로 사용하게 되어 벌어진 사건으로 몹시 심한 환멸과 죄책감을 느끼고 소중한 사람의 죽음까지 겪으면서 인형을 만드는데 도움을 준 '노파 영양'이 귀뜸해준 에튀드로 가게 된다.
그리고 인형 안의 작디 작은 공간만이 마치 자신이 진정 있을 곳이라는 듯이 소년은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체스를 둘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들어가 노인들이 체스를 두러 오길 기다린다. 또한 소년은 거기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체스를 두게 된다.
이처럼 체스판 아래에서만 체스를 둘 수 있는 반하의 시인, 리틀 알레힌의 이야기를 저자는 특유의 잔잔하면서도 세밀한 시선으로 담담히 그려내고 있는데 러시아의 체스 선수, '알렉산드르 알레힌'이라는 실제 인물을 등장시켜 한층 현실감을 높이면서도 결코 비정한 현실을 가미한 판타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나오는 인물들 중 마스터는 소년이 애도하는 코끼리 '인디라'의 현신과도 같고 그의 고양이 폰은 체스의 '폰'과도 같으며, 벽에 끼인 소녀는 체스 클럽에서 자신을 도와주고 비둘기를 항상 데리고 다니는 '미라'로 등장한다. 그리고 에튀드에선 가방을 든 노인이 나오는데 어딘지 모르게 그의 전작,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박사'를 연상케하는 인물이었다.
만약 전작인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먼저 읽지 않았더라면-지금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이해하기가 무척 어려웠을 것 같다. 그렇더라도 어째서...?란 의문은 지금도 계속 떠오른다. 이런 의문과 함께 기억에 남는 마스터의 말이 있다.
[ 잘 생각하는 거야. 포기하지 말고, 끈기있게, 이제 틀렸다 싶은 데서부터 더 열심히 생각하는 게 중요하단다. 우연은 절대로 편들어주지 않아. 생각하는 걸 그만두면 그게 곧 지는 거다. 자,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렴.]
읽는 동안 추억 꾸러미에서 어릴 때 주로 가지고 놀았던 플라스틱 체스, 휴대용 자석 장기, 트럼프, 윷놀이 등 갖가지 추억들이 봇물 터지듯 터져나왔다.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갑자기 체스가 하고 싶어졌다. 이런 추억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비록 냉혹하고 비정한 현실에 문득 고개를 돌리고 싶더라도 말이다.
체스챔피언인 알렉산드르 알레힌의 이름을 따 리틀 알레힌으로 불린 작은 소년의 슬픈이야기. 태어날때부터 입술이 붙어 있었던 아이. 그래서 말하는 것보다는 듣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을지도 모르는 아이. 또한 그래서인지 체스를 배우고 둠에 있어서도 강함으로 이기기보다는 서로의 이해와 배려를 통해 아름다운 그림(기보) 그리기를 추구한 아이. 다른 사람들앞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보다 체스판 밑에서, 인형안에서 보이지 않고, 보지 않으면서 드러내고 보는 사람들보다 훨씬 아름다운 체스를 그린 아이의 이야기.
너무 커져버려 백화점 옥상에서 내려올 수 없게 되어 옥상에서 죽은 코끼리 인디라와 너무 살이쪄 결국 살던 버스에서 죽어간 마스터, 몸이 부어가면서 죽어간 할머니를 보며 더 이상 커지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스스로 성장하는 것을 거부하고 체스를 통해서만 행복을 느끼는 아이. 고양이 폰을 안고 코끼리 인디라와 함께 체스라는 바다를 여행하는 것으로 행복해하는 아이. 그러나 사랑하는 이(미라)를 그리워하지만 결국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아이의 이야기.
하지만 그는 불행하지만은 않았다. 그를 사랑하며 지켜봐준 가족이 있었고, 그에게 체스와 기다림, 배려를 가르쳐준 마스터가 있었고, 또한 그를 사랑한 미라, 그리고 그의 상상속에서 항상 함께한 코끼리 인디라와 고양이 폰이 있어서.
왠지 모르는 인간의 묘한 슬픈 감성을 자극하는 이야기이며, 직감적으로 슬픈 결말이 예상되어지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게 하는 슬픈이야기.
“최강의 수가 최선이란 법은 없다.”
“서두르지 마라 꼬마야”
“왜 하나님은 나를 젖도 빨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드신 거예요?”
“하나님도 가끔은 허둥댈 때가 있단다.“
“다른데 특별히 신경을 써주시느라, 그래서 마지막에 입수을 뗄 시간이 없었던게 아닐까?”
“하지만 아무데도 특별한 장치가 없는데요.”
“그걸 찾아내서 살리는 건 하느님이 아니라 너란다. 하느님의 생각을 나타낼 수 있는 건 인간이거든.”
'평생 다리에 족쇄를 살고 죽음을 맞이한다.'
이 비극을 가슴속에 깊이 새긴 한 소년의 이야기이다.
이 소년은 태어날 때부터 두 입술이 딱 붙어 태어난 아이로 태어나자 마자 굳건히 닫혀있던 입술을 가르는 수술을 해야했던 나름 신체적 장애를 가진 인물이다. 운명적으로 소년은 너무 뚱뚱해져 버스안에서만 살게된 체스를 사랑하는 마스터를 만나게 된다. 마스터는 소년의 재능을 알아채고 소년에게 체스를 가르쳐준다. 마스터가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게되자 소년은 코끼리가 커져 옥상에서만 살아야했던 것과 같이 뚱뚱해져 버스에서 나오기 힘들었던 마스터를 생각하며 커지는 것을 비극이라 여긴다.
또 건물 사이에 갖힌 '미라'란 소녀의 소녀의 이야기.
이 세가지는 소년이 더이상 커지지 않는 것에 많은 영향을 준다.
소년은 인형안에 들어가 체스를 두는 일을 하게된다. 그곳에서 미라를 만난다.
소년이 인형안에서 체스를 두고 미라는 기록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행복했던 순간은 인간체스를 통해 허물어진다.
소년은 체스를 사랑하는 노인들이 생활하는 시설로 간다.
그곳에서도 소년은 행복하게 체스를 둔다.
소년은 옥상의코끼리 인디라와 마스터, 미라와 비둘기와 모두 함께 체스의 바다를 헤엄치는 경이로운 경험을 한다.
이 책은 '리틀 알레인'의 삶을 모두 담고 있다.
책속에서 체스란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알 수 있고 체스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열정을 엿볼 수 있다.
이기는 것이 다가 아니라 그 과정이 소중한 것임을 느끼게 한다.
주인공 소년의 이야기보다 체스 이야기가 더 중심이 되어버린 내용이 그다지 시선을 사로잡지 못한 듯 하다.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는 훗날 리틀 알레힌이라 불리는 소년의 일곱 살 무렵부터 시작된다.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자기만의 세계를 또렷하게 구축하고 있는 소년은 백화점 개업 기념으로 인도에서 찾아왔지만, 너무 커져버린 탓에 동물원에 가지 못하고 결국 백화점 옥상에서 죽은 코끼리 인디라와 소년의 집과 옆집 벽과의 틈새에 들어간 여자애가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 속 미라에 집착한다.
소년은 동생이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부모가 이혼해 어머니가 형제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왔으나 어머니가 2년 전에 뇌출혈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소년은 윗이술과 아랫입술이 붙은 입술 기형으로 태어났고, 수술로 입술을 떼어낸 뒤, 벗겨진 속살은 아기의 정강이 피부를 떼어 이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강이에서 이식된 탓에 소년의 입술에는 솜털이 나 있었고, 그런 이유로 소년은 말이 없었다.
이런 소년이 말수가 많아질 때가 있는데 바로 거실 난로 옆에 있는 장롱을 개조한 침대에서 잠을 자기전이었다. 벽과 벽 사이에 끼여 나올 수 없게 된 소녀 '미라'에게 인사를 건넸고 인디라 이야기를 했으며,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느님은 왜 나를 젖도 빨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드신 거예요?"
"하느님도 가끔은 허둥댈 때가 있단다. 다른 데 특별히 신경을 써주시느라, 그래서 마지막에 입술을 뗄 시간이 없었던 게 아닐까."
"다른 데라뇨?"
"그건 할미도 모르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말이다. 눈인지, 귀인지, 목인지, 좌우지간 어딘가에 보통 사람한테는 없는 특별한 장치를 해주신 게야. 그래, 그거다. 틀림없어." (본문28p)
어느 날 소년은 폐차된 버스에서 사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처음 체스를 접하게 된다.
"그래, 체스. 나무로 만든 왕을 쓰러뜨리는 게임이지. 8X8 모눈의 바다, 장구벌레가 물을 마시고 코끼리가 벽을 감는 바다에 잠수하는 모험이란다." (본문 42p)
소년은 인디라를 떠올렸고, 곧 체스에 빠지게 되었으며 폐차된 버스의 남자, 마스터를 통해서 체스를 배우게 된다. 소년은 체스판에 있으면 비행기 같은 걸 탈 때보다 훨씬, 훨씬 먼데까지 여행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소년은 마스터의 침착한 목소리 덕분에 실수를 겁내지 않게 되었고, 마스터의 "서두르지 마라, 꼬마야" (본문 57p)라는 격려로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생각하게 되었다.
체스에서 어려운 국면을 맞이하면 소년은 마스터의 고양이 '폰'을 안고 테이블 체스판 밑으로 기어들어가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버스에 드나들기 시작한 지 4년이 지난 후에 처음으로 마스터를 이기게 되었다.
너무나 뚱뚱했던 마스터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되자, 소년은 크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키가 크고, 어깨가 넓어지고, 신발이 작아지는 변화의 예감이 그를 공포의 늪으로 끌어들였고, 그는 하루 중 대부분을 테이블 체스판 밑에서 웅크리고 보냈으며 더 자라지 않았다.
'커지는 것은 비극이다.'
리틀 알레힌은 이 한 줄을 가슴속 깊이 새겼다. 그것은 언제까지고 곪아 나을 줄 모르는 상처요, 또 동시에 그의 생애를 관통하는 광맥이었다. (본문 127p)
소년이 다시 체스 실력을 발휘하게 된 곳은 퍼시픽 호텔 지하 '해저 체스 클럽'이었는데, '리틀 알레힌' 인형 속에 들어가 상대방과 체스를 두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소년은 자신이 연상했던 '미라'와 닮은 소녀를 만나 우정을 쌓기도 했으며, 어른들의 어두운 면을 보기도 한다.
나는 체스를 잘 모른다. 허나 저자가 상처 많은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체스판에 놓아둔 것을 볼 때, 체스판의 말이 가지고 있는 역할을 통해서 심연의 바다를 헤쳐갈 수 있는 용기를 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체스판의 말 중 '폰'은 눈앞에 있는 상대편 말을 잡을 수 없고, 자기 혼자선 메이트도 못하는 가치가 낮은 말이다. 그러나 '폰'은 우리가 세상을 향해 한발 두발 나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절대 후퇴하는 않는다.
"한 발짝, 한 발짝 전진하거든. 후퇴는 안하고. 어린애가 성장하는 거랑 마찬가지야." (본문 51p)
책을 읽는 동안 비숍처럼 고독한 소년이 폰처럼 한발 한발 나아가 성장하기를 바랬다. 심연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지 않고, 세상으로 나오기를 바랬다. 마스터를 만나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던 소년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되는가보다 했지만, 작가가 마스터를 너무 허무하게 죽임으로해서 소년은 다시 세상과 단절되었다.
자라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많은 일을 겪게 된다. 체스판의 말처럼 쓰러지기도 하고, 잡아먹히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곳은 심연의 바다가 아니라 바다가 아닌 육지, 사람들이 존재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소년이 비숍을 좋아하는 것을 통해 소년을 너무도 고독한 존재로 몰아가고 있지만, 나는 소년이 마스터가 좋아하는 폰처럼 세상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길 바랬다. 바록 소년은 '리틀 알레힌'으로 세상에 남겨졌지만, 그 과정이 너무도 허무할 따름이다. 성장을 두려워한 소년, 인생이 묻어나는 체스, 두 조합이 조금은 부자연스러웠던 느낌이다. 지나치게 잔잔한, 그래서 오히려 감동을 느끼지 못했던 너무도 아쉬운 작품이다.
성장소설책이라고 여겼다. 부족한 아이가 체스를 통해 성장하는 성정소설이라고 여겨던내 생각은 틀리고 말았다.마치 세드무비와 같은 흐름으로....점차 소년은 체스를 통해 성장해가지만...그건 체스만의 세상이라는 한정 짓어져...소년를 더욱 애틋하게 하는것 같다.
옮긴이의 글을 읽고..다시 되새기면 성장소설이 아닌 그냥 세드 무비와 같고...애틋한 소년을 통해 삶의 다시 비쳐 보는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 전에 출간된 이 책,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를 발견하고 또 다시 고민에 빠졌다. 체스엔 문외한인 내가 작품을 제대로 이해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자꾸 눈길이 가면서도 주저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수학 공포증을 물리쳐 주었던 예전 기억을 되살리며 이 책을 통해서도 기억에 남을만 한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을 품었다.
다 읽고 난 지금, 꽤 특이하고 독특한 작품이었단 생각이 든다. 주인공부터가 기억에서 절대 잊히지 않을 듯한 외모를 지니고 있다. 태어났을 당시 받은 수술 후유증으로 입술의 이식 받은 피부에서는 굵고 억센 정강이 털이 자라나 있고 키는 11살 당시 그대로인 것이다. 그리고 백화점 옥상에서 평생을 살다간 코끼리 인디라,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벽에 들어갔다가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괴담으로 아이들 사이에 회자되었던 소녀 미라, 200kg이 넘는 거구로 폐기된 버스 안에서 생활하는 스승과 그의 고양이 폰. 주인공의 친구들도 모두 꽤나 인상 깊이 남을 독특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남들과 다른 외모 때문에 가족 외의 타인과 융화되지 못하고 자신만의 공상 속에서만 살아가던 주인공 소년은 '체스'의 매력에 빠져든다. 그러던 중 거대했던 스승의 죽음으로 '커지는 것은 비극'이란 신념을 갖게 된다. 체스가 그의 일상이 되고 인생이 되면서 그 안에 있는 공상 또한 점점 커져간다. 주인공이 가진 공상에 대한 묘사가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체스'란 현실적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마치 꿈 속을 헤메는 듯한 몽환적 분위기가 흐른다. 한편 체스를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이용하고 더렵히는 사람들을 등장시킴으로써 돌연 현실로 되돌려 놓기도 한다.
특이한 외모에 뛰어난 능력을 지녔던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 체스의 바다에 깊이 빠져 자신이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즐거이 헤엄쳤던 그의 인생은 스스로 만족스럽고 행복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서 왜 이리 씁쓸하고 안타까운지 모르겠다. 자신이 가진 독특하고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깊은 어둠 속에서만 웅크리고 있었던 그의 모습이 내 눈에는 아직도 쓸쓸하게 비친다.
처음에 체스에 대한 지식이 없다고 걱정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문제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역시 체스를 미리 한 번이라도 해봤더라면 좀 더 이 작품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주인공에게 깊이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기묘하고도 독특했던 수많은 이미지들은 오래도록 마음 속에 남을 것 같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아름다운 활동… 이것은 다른 사람의 몫이 아니라 자신만의 몫이다.
주인공은 태어나면서 얻은 장애를 체스를 통해 극복하고, 이야기한다. 추억, 아름다움, 고통 등의 감정을 체스로 공유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자신이 현재 어디서 있는지 궁금하거나 내 생활이 행복한지 의심스러운 사람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