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분의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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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렇게 무표정인가?’
〈일인분의 외로움〉은 그러한 의문을 향해, 그런 의문을 품는 사람들을 향해,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는 심심한 위로를 건넨다. 누구에게나 나름의 외로움은 있고, 자신에게 기본값으로 주어진 그 일인분의 외로움을 잘 다스리는 방법밖엔 없는 거라고. 그러니 우리 모두 무력감에 짓눌리지 말고 잘 살아보자고.
이 책은 작가 오휘명의 꾸준한 기록들을 엮은 결과물이다. 일상 속에서 마음의 숙제처럼 쓴 글들, 그리고 갑자기 치민 감정에 의해 쓴 글들로 뭉쳐낸 텍스트의 덩어리라고 볼 수도 있겠다. 어떤 하루는 지루했던 와중에 크고 작은 설렘이 있어 글을 썼고 다른 어떤 하루는 술이나 커피에 취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글을 썼다. 그리고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은, 설령 아무 걱정 없는 날에 쓴 글을 읽었을 때에도,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느낌을 받았다는 말을 건네왔다. 그러니까 이건 어느 외로운 사람의 어쩌면 지나치게 개인적일 수도 있는 기록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작은 조각들이 다른 외로운 이들에게 그만큼 내밀한 위로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책 속의 말마따나, 먼 곳에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기를, 그리하여 따로 또 같이 차를 한잔하기를, 각자의 세계가 무력감과 외로움에 짓눌리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작가정보
목차
- 1부 표정 없는 사람들
표정 없는 사람들
집이 되는 일
됐어요
다정이 어렵다
좀 그래요
2019.10.16.
당신만의 당당함
짝사랑
사랑인 줄 알아요
사람을 좋아하는 일
정릉으로
장소를 잃었다
서울, 서울
만나요
엔딩
길을 고를 권리
마음이 하는 소리에 집중하는 방법
이상형
촌스러운 사람
이별의 단상들
버튼
연애보다 어려운
저온 조리
있기는 있다
파리 한의원
2부 여름다웠던
그때 우리만의 화학시간
턴테이블
슈가 프리
Stay home
누군가의 기억
레시피
틈
생일 선물
여름다웠던
내년에야 보겠네
멀어진
정말이지 멀어진
밥
밤에 먹는 밥
청소
치유
Love wins
파도에 관해
똥개
우리 아가
겨울, 겨울
시클라멘
나이
3부 캘리포니아와 겨울날의 중간
희미한 빛
어떤 봄
처방전
잔의 경계
내가 공간이라면
알았어 알았어
배웅과 마중 사이
외로운 날이면 하천 쪽으로 걸었다
안부
나의 불확실성들
영원의 상자
이중성
상상
없는 노래
못 보는 얼굴
손
몇 살 차이
스물여섯 영심이
꿈
사람이라는 가구
싫어 싫어
터널
캘리포니아와 겨울날의 중간
책 속으로
이쯤 되면 나는 취향적으로나 체질적으로나 안정적인 것보단 한정적인 것, 한결같은 것보단 물결 같은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된다. 보편적인 집이 아니라 캠핑카나 텐트, 예술가의 작업실 같은 사람이라서, 머무는 사람에게 안정적인 바람막이나 쉼터가 되어 주지 못할 때가 종종 있는 사람. 무언가가 한두 가지 결여되어 있어 불편함을 줄 수도 있는 사람.
-11~17쪽, 〈집이 되는 일〉
길을 다니다 고양이와 강아지의 뒷모습에 녹아내리다가도 그들이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다보면, 그 눈빛에 나는 왠지 모르게 미안하고 서글픈 마음이 들어 그들을 쓰다듬어 주지 못했다. 꽤 자주 가족들 생각에 슬퍼하면서 정작 그들 앞에선 아무런 표정을 짓지도 아무런 말을 건네지도 못했다. 적당한 거리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대충 살랑살랑 웃으면서도 그들이 어느 정도 이상으로 가까이 다가오면 크게 당황하여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를 몰랐다. 프로그래밍되지 않은 변수 때문에 오작동을 일으키는 기계처럼, 나는 다정의 방법을 몰라 실수했고, 난처해했고, 자주 사람을 떠나보냈다.
-19~24쪽, 〈다정이 어렵다〉
사랑은 어렵다, 라는, 짧은 메모를 언젠가 이미 적어뒀던 적이 있지만, 정말이지 사랑은 어렵기도 하다. 요즘 들어 더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마침 딱 괜찮은 시기에 나를 마음에 들어 하고, 마음이나 물질, 그리고 시간적인 여유가 적당할 확률, 게다가 어느 한쪽이 용기를 내어 그 가능성을 매듭지을 확률은 정말이지 현저히 낮다. 복권 당첨보다 힘들겠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지만, 못해도 라디오 경품 추첨에 뽑히는 것보다는 확실히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런 확률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체질 같은 것들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를테면 모든 게 다 순조로웠는데 갑자기 마음에서 소용돌이치는 걱정 아닌 걱정 같은 것. 만약 이 사람과 만나고 나서 서로가 서로에게 숨겨왔던 부분들 때문에 실망하면 어떡하지? 어차피 언젠가는 헤어질 관계인데 만나는 게 정말로 맞나? 뭐 그런 속 터지는 겁들.
-89~91쪽, 〈연애보다 어려운〉
회현역 근처의 김밥천국과 교동짬뽕에서 혼자 또는 함께,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혹은 떠들며 밥을 먹는 사람들을 보는 일은 내게 묘한 위로를 준다. 이 시간에 깨어 있는 사람이 나 말고도 더 있구나 하는.
-148쪽, 〈밤에 먹는 밥〉
어쩌면 나는 그러한 적당함을 좋아하는 걸까. 살아갈 때 노래할 때 사랑할 때 그랬듯, 모든 것을 다 내던지는 쪽보단 적당한 쪽이 좋아 이렇게 문을 닫아두는 걸까. 대놓고 희고 밝고 화려한 옷은 어쩐지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아, 늘 어둡거나 검은 옷만 입었다. 시끄럽고 번쩍거리는 곳보단 조용하고 밋밋한 곳에 머물고 싶었다. 다 가지려는 사람보단 하나라도 나누려는 사람이 좋아, 그와 함께 평생 선물이건 술잔이건 입술이건 사랑이건 나누고만 싶었다. 낮에는 앞서 말한 나도 어쩔 수 없었다는 듯 들어앉아 있는 빛에 기대어, 밤에는 낮은 조도의 스탠드나 촛불 하나에 기대어 빵과 위스키를 함께하고 사람이 죽지 않는 영화나 악기가 많지 않은 음악을 즐기고 싶었다.
-192-195쪽, 〈희미한 빛〉
잘 지내렴. 겨울과 닮았다고 해서 너무 춥게만 지내지 말고. 어두운 것만 두르고 다니던 내가 네 옆에서 울기만 했던 건 아니었듯이, 어떤 대륙의 봄과는 가까워지길. 안녕.
-196~200쪽, 〈어떤 봄〉
충분이라는 낱말을 뜻을 깨우친다.
모자람이 없이 넉넉하다는 뜻이란다.
모두에게 꽉 차기보단 한 사람에게 넉넉해지길.
넌 최고야보단 넌 내 최고야를.
그렇게 살아야지. 충분해지길 원한다.
-202~206쪽, 〈잔의 경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떤 나무에는 알 수 없는 솜털 꽃봉오리가 맺혀 있었고 보도블록 옆에는 이미 아주 조그만 들꽃이 피어 있었다. 다음 달에는 누구에게라도 전화를 걸어 우리 다음 주에 벚꽃 보러 가요 눈병에 걸렸어도 보러 가 줘요, 다소간 철없이 졸라보기도 할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220~222쪽, 〈외로운 날이면 하천 쪽으로 걸었다〉
출판사 서평
보통 어두운 감정들은 밤에 몰려오는 경우가 많다. 작가는 어느 날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문득 삶이란 굉장히 공허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만 이렇게 밥도 못 먹고 일하는 걸까. 나만 이렇게 미래의 내 모습을 떠올리면 불안할까. 누군가에게 연락은 하고 싶지만 딱히 전화를 걸 사람도 없구나. 나만 이렇게 혼자 외롭게 지내는 걸까. 그리고 그런 생각들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관찰과 생각을 통해 얻어낸 나름의 답은 이랬다. 사람들에게는 무엇을 해도 해소되지 않는 각자만의 외로움이 있는 거라고. 세탁물도 원하는 양만큼, 구독하듯 맡기고 글도 구독해서 받아보고, 심지어 매일 한 송이씩 꽃도 받아보는 일인분의 사회에서, ‘외로움’ 또한 일인분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거라고.
작가는 이번 책을 통해 그런 것들을 말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몸서리치게 외로운 어느 날, 나만 이런 걸까 싶을 때, 여기 당신과 같은 사람이 한명 더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었다고. 우린 모두 다 일인분의 외로움을 안고 살아간다고.
그 외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외로움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기본값으로 존재하는 그 감정을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외로움을 잘 다스리고 외로움과 함께 ‘잘’ 살아가는 것. 그리하여 무력감에 짓눌리지 않고 외로운 날은 외로운 대로, 즐거운 날은 즐거운 대로 살아가는 것.
기본정보
ISBN | 9791197087509 |
---|---|
발행(출시)일자 | 2020년 08월 24일 (1쇄 2020년 08월 03일) |
쪽수 | 290쪽 |
크기 |
123 * 188
* 21
mm
/ 359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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