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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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지난 2년 동안 강요되는 화해, 괄호 안의 불의, 침묵하지 않는 피해자에 대한 거부감에 맞서온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불편함의 변증법이 작동되기를 바라며 단단한 글들을 쓰고자 노력했고, 그 중 42편을 선별해 다듬고 각각의 글마다 후기를 덧붙였다. 저자는 찜찜함 없이 정말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마음 편하게 웃을 수 있으려면, 더 많은 이들이 더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명확한 태도와 따끔한 이야기를 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민감하고 성실하고 단호한 싸움의 기록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작가정보
목차
- 프롤로그
1. 그 이퀄리즘은 틀렸다
페미니스트 선언은 실천이다 | 백래시Backlash로서의 여성혐오와 괄호 안의 불의 | <며느라기>, 명절 연휴엔 모두들 이 만화를 함께 읽어봅시다 | 영혼도 웃음도 남기지 않은 시사 풍자 개그맨 황현희의 퇴행 | 유아인은 어쩌다 | ‘마녀사냥’이라는 레토릭 | 명예남성과 개념녀의 문제 그리고 남성 페미니스트의 오만 | <피의 연대기>, 이토록 질기고 귀한 연대 | 아이린에 분노하는 한국 남성이란 부족 | 수지의 용기 그리고 변명 뒤에 숨은 남자들 | 그 남자들은 페미니스트 시장 후보 벽보에 왜 그렇게 분노했을까 | 지하철 페미니즘 광고는 시민의 권리다 | 탈코르셋 시대의 비슷한 듯 전혀 다른 두 작품, <여신강림>과 <화장 지워주는 남자> | 한국 남성들의 반발 속에서 《82년생 김지영》은 어떻게 밀리언셀러가 됐을까 | 여자 친구 불법 촬영 인증과 20대 남성들의 상실감 타령
2. 가짜 논의와 공론장의 적들
‘지식 셀럽’과 방송의 위험한 공모 | 그건 정말 사표였을까 | 언론의 1일 1이택광에 대하여 | 페미니즘 공부는 셀프라는 말에 대해 | 슈뢰딩거의 탁현민 | 불편함의 변증법, 프로불편러가 상대도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 | <까칠남녀>와 정영진, 잘못된 조합 | 《디스패치》 ‘팩트주의’의 저널리즘적 맹점 | <까칠남녀> 은하선의 하차와 교육방송 EBS의 자기 부정 | 폭로의 정치학에 대하여 | 윤서인 만화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강신주, 채사장, 그리고 상식의 문제들 | 황교익의 독선과 포퓰리즘 인문학의 한계 | TV 토론 프로그램은 어떻게 가짜 논의에 오염되는가
3.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기
<개콘> ‘대통형’,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고 | <아빠본색>과 <인생술집>, 솔직함은 면죄부가 아니다 | 홍상수의 한심한 남자들 | 우리에게는 유바비처럼 스위트한 남자 롤 모델이 필요하다 | 퇴행하는 TV 예능 세상에서 기획자 송은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 <나의 아저씨>, 모두를 위한 지옥에도 불평등은 있다 | <안녕하세요>, 폐지가 답이다 | 소니코리아여, 플스4는 당신들 광고보다 더 위대하다 | 장애인 차별에 공모한 MBC 예능 투톱, <나 혼자 산다>와 <전지적 참견시점> | 백종원이라는 알파메일Alpha Male과 징벌 서사의 정당화 | <계룡선녀전>과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 웹툰 원작 드라마에 한국 남자 패치가 붙으면 | <언더 더 씨> 논란과 애도의 윤리 | ‘과도한 PC함’이라는 허수아비
책 속으로
좋은 글은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수 있을까. 모르겠다. 좋은 글을 써보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믿음이 있다면, 글쓰기의 실천적 힘은 독립적으로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공적 논의의 맥락 위에서만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논의가 질적으로 풍부해지고 치열해질수록, 세계에 대한 유의미한 쟁점들이 가시화되며 합의를 위한 공통의 토대가 조금씩 만들어진다. 세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공론장 안에서 충분히 성숙해가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획기적인 발상 역시 등장할 수 있다. 그 배경에는 천재적이진 않지만 성실한 글쓰기와 논의를 멈추지 않는 이들이 있다. 나는 그곳의 일원이고 싶다. _9쪽
나는 이것들을 괄호 안의 불의라 말하고 싶다. 만약 그동안 인터넷을 중심으로 화력을 쌓은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한 어떤 반동으로서의 안티 페미니즘과 여성혐오가 있었다면, 그것은 없던 여혐이 생겨난 게 아니라 괄호 안의 불의가 드러난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질문할 것은 ‘이 괄호 안의 불의가 드러난 것이 실제로 이 세상 불의의 총량을 늘렸느냐는 점’이다. 물론 그렇게 보기 어렵다. 바로 그 괄호 안에 이미 불의가 은폐되어 있기 때문이다. _26쪽
무언가에 대해 혐오 표현 혹은 비하 표현이라는 것을 지적하거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고 지적하는 것이 일종의 문화적 매카시즘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꾸준히 존재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소환되는 비유가 문화혁명, 마녀사냥 그리고 공안정국의 검열 등등이다. 하지만 실제로 마녀사냥과 문화혁명, 검열이 증명하는 것이 있다면, 정말로 그런 비극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떤 발언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민감함이 아니라 그 불편함을 근거로 누군가를 문자 그대로 침묵시키거나 제거할 수 있는 권력이란 점이다. _50쪽
사실 나는 남성들이 젠더 이슈에 둔감하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들이 정말로 둔하다면 오히려 페미니즘 운동을 보면서도 콧방귀를 뀌며 자신들의 천년 왕국을 그리고 있으리라. 하지만 그들은 젠더 이슈가 권력의 문제라는 것을 체화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 권력에 대한 도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국 남성들이 여성혐오를 유희로 즐길 자유, 불법 촬영물을 즐길 자유, 일상적 성희롱을 할 자유를 지키기 위해 백래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은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도덕적 당위가 아닌 젠더 권력 때문이란 것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국 남성들에 대한 도덕적 설득 혹은 설복도 중요하지만, 우선 본인에게만 좋던 과거는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체념시키는 것이 먼저다. 그들이 버티는 건, 단순히 본인들의 주장이 옳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본인들이 주장하는 게 옳은 것이 될 수 있던 시대를 살아와서다. _78쪽
하여 저 슈뢰딩거의 상자를 열어보지 않더라도 탁현민이 반성했으리라 추론할 이유는 딱히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탁현민이 여전히 청와대 주변에 있다는 건, 사실 그가 제대로 된 반성 없이 의뭉스러운 형태로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슈뢰딩거의 상자가 사실 청와대 자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_137쪽
결국 조덕제는 3심에서도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디스패치》는 1년이 지난 2018년 11월 16일, 해당 기사들을 삭제하고 장문의 사과
문을 올렸다. 하지만 그 1년 동안 수많은 남성들과 조덕제 측은 《디스패치》의 기사를 근거 삼아 피해자를 공격했고, 무책임한 언론들 역시 “《디스패치》에 따르면”이라는 말과 함께 그들의 주장을 실어 날랐다. 과연 그들 중 사과하거나 반성한 이들이 있을까. 그럴 양심이 없다면, 《디스패치》의 사과문을 보고 입이라도 다물었으면 좋겠다. _155쪽
2018년 하반기부터 ‘가짜 뉴스’라는 개념이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지만,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명백한 팩트 오류인 ‘가짜 뉴스’보다 의견이란 말로 별의별 주장이 다 의미 있는 것처럼 통용되는 ‘가짜 논의’가 더 큰 문제처럼 느껴진다. 오류를 잡아내기 더 어렵다는 점에서 그렇다. _194쪽
한국 사회에서 기괴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는 미덕은 솔직함과 진정성인 것 같다.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 자기 나름대로 좋은 의도를 갖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그대로 결과적인 선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평가는 상대방과의 상호 주관적인 소통의 영역에서 결정되는 것이지 자기만족적인 좋은 의도로부터 도출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고려해보는 역지사지 능력이야말로 인간의 고도화된 지성과 도덕성의 근간이다. 역지사지를 결여한 채 솔직하게 말하겠다는 건 그냥 최소한의 필터링 장치를 떼고 아무렇게나 말하겠다는 뜻일 뿐이다. 혹시라도 그런 사람을 마주칠까봐 겁나는데, 왜 그걸 TV에서까지 봐야 하는 걸까. _207쪽
하지만 이와 같은 송은이의 활약에 감탄만을 더하는 건 반쪽짜리 분석일 것이다. 정말 중요한 건, 왜 이토록 뛰어난 능력을 지닌 방송인이 수많은 우회로를 거쳐야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그에 반해 수많은 남성 예능인들이 물의를 일으키거나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서도 쉽게 지상파 예능에 들어오는 것을 떠올린다면, 그동안 송은이가 겪어야 했던 우회의 시간은 한 개인의 성공 모델로서 상찬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방송계가 반성해야 할 사례로도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_232쪽
실패한 애도로서의 〈언더 더 씨〉가 조금도 흥미롭거나 풍성한 텍스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분위기를 드러내는 건 이 지점이다. 조금 거칠게 도식화하자면, 여기엔 침묵에 대한 선호, 결코 공격적인 요구로 구체화되지 않는 조용함에 대한 선호가 있다. 침묵하는 대상에 대해선 미안함을 안고 살 수 있지만,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 대해선 순수성을 의심한다. 〈언더 더 씨〉와 강동수 작가가 각각의 대화 상대를 대하는 방식을 비교해보자. 자신의 목소리를 기꺼이 내어주는 의존적인 약자만이 우호적인 소통의 대상이 된다. 작가가 작품에서 또 작품 바깥에서 한 시대의 어른으로서 말하는 세월호와 어린 희생자에 대한 부채의식은 그래서 기만적이다. 왜 우리는 살아있었다면 20대 초반의 동시대 여성으로서 목소리를 냈을 세월호 희생자와 살아서 목소리를 내는 동시대 여성을 연결하지 못하는가. 그 둘을 연결할 수 있는 것이야 말로 문학적 상상력 아닌가. 기껏해야 자두와 젖가슴이나 연결하면서 생기발랄한 학생의 육체적 젊음만을 아쉬워하는 것 어디에 전복적 상상력이 있고 윤리가 있는가. _280쪽
과도한 PC함은 위험할 수 있는가? 물론이다. 무엇이든 과도하면 위험하다. 물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마시면 건강에 좋지 않다. 이것은 원론적으론 ‘옳은’ 이야기다. 중요한 건 ‘원론적으로 옳은’ 이야기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안에서 화용론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칼로리 섭취가 과도하면 위험하다. 이 말을 기아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게 의미가 있는가. 자유와 방종을 구분하지 못하면 위험하다. 이 말을 독재 국가에 사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게 도움이 될까. 의미론적으로 옳은 말이라 해도 각각의 화용론적인 맥락 안에선 쓸모없거나 더 나아가 자칫 잘못된 구조를 용인해주는 말이 될 수 있다.
출판사 서평
대중문화와 한국사회를 아우르는 ‘괄호 안의 불의’에 대한
민감하고 성실하고 단호한 싸움의 기록
촛불로부터 지금까지의 2~3년이라는 시간은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되기 시작했다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뜻이 아니라, 불의로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괄호 안의’ 기본 값이 사실은 힘으로 유지되는 모순투성이의 것이었고 이제는 이를 더 이상 외면하고 넘어갈 수 없는 ‘불편한’ 것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은폐된 거짓 평화의 시대는 저물고 첨예한 싸움의 시대가 시작됐다. 이는 협소하게 이해된 정치라는 그릇에는 온전히 담을 수 없다. 삶의 양식과 사회의 근본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이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은 바로 ‘대중문화’다.
전작 《프로불편러 일기》(2016)를 통해 세상에 무시해도 되는 불편함이란 없으며 공론장에서의 정당한 논의를 통해 사회와 문화의 진보를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대중문화 전문 기자, 마감 노동자 위근우가 촛불 이후의 대중문화와 한국 사회를 주제로 한 글들을 모아 책으로 펴냈다. 페미니즘, 공론장, 대중문화를 주로 다룬 실천적인 글들이다. 그는 지난 2년 동안 ‘강요되는 화해’, ‘괄호 안의 불의’, ‘침묵하지 않는 피해자에 대한 거부감’에 특히 맞섰다. 잘못된 것으로 판단한 것들에 대해 선명하게 입장을 제출하고, 실명 비판(또는 지지)했다. 논쟁에 뛰어들어 지금까지의 통념의 관성에서 보자면 “거슬리는” 언어를 세상에 던졌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불편함의 변증법이 작동되기를 바라며 단단한 글들을 쓰고자 노력했고, 그 중 42편을 선별해 다듬고 각각의 글마다 후기를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벌써 “과도한 PC함”에 대한 피로를 말한다. 솔직해지자. 지금 한국 사회와 대중문화가 그런 걱정을 할 정도로 민주적인가? 이전보다 조금 더 나아졌다는 핑계를 앞세우며 진정한 변화에 대한 요구에는 모르쇠하고 회피하거나, 더 나아가 사소한 기득권을 지키고자 변화를 억압하고 기존의 문제들을 묵인하는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치열한 사회적 공론을 통해 옳고 그름을 판별하고, 잘못된 것과는 결별하려는 투쟁 없이 획기적인 변화는 기대할 수 없다. 찜찜함 없이 정말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마음 편하게 웃을 수 있으려면, 더 많은 이들이 더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불편함을 참고 넘기지 않고 선을 긋고 싸운 민감한 젊은 마감 노동자의 기록을 독자들에게 권하는 이유다.
강요된 화해, 그 이퀄리즘은 틀렸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을 과격하다고 말하며 각광받았던 ‘이퀄리즘’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실상 나무위키를 통해 날조된 이 개념은, 그러나 “싸우지 말고 지내요” 같은 정서에 기대어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억압과 차별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에서 왜 싸움(Fight)을 평화(Peace)로 대체하자는 논리가 힘을 얻는가? 기울어진 기본 틀을 의심하지 않는 평화는 억압의 다른 이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의 ‘기본 값’을 긍정하는 힘을 가진 이들은 큰 변화에 대한 거부를 평화로 간주한다. 이미 괄호 속에 전제된 불평등과 불합리가 균열과 충돌에 민감하게 반응할 때 이를 체제 내부로 흡수하고자 한다. 힘을 가진 이들이 질서를 짜고 만들면서 이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페미나치’(확장하면 ‘강성노조’)의 프레임을 씌우고 ‘순종적인 희생자’만을 인정한다. 안티-페미니즘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은, 사실 한국사회의 여러 제반 문제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흔히 이를 ‘도덕’과 ‘교양’의 영역에서 이해한다.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더 정확하게는 ‘이해관계’ 문제다. 그렇기에 강요된 화해는 누군가에 대한 폭력과 같다. 페미니즘 반대자들은 젠더 이슈에 둔감한가?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젠더 권력에 대해 몸으로 체화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형태로 본능적으로 반발한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는 것이다. 최근 이슈가 된 ‘20대 남성’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짐짓 그들과 자신을 분리하고 있겠지만, 긴 시간 청와대 비서관으로 일하면서 수많은 자신의 과거 문제 발언에 대한 비판 논쟁에 고소로 대응했던 사람, 세월호 희생자 추모 소설에 성적 대상화가 명백한 표현을 쓰고도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격분했던 사람 등도 문제가 큰 것은 마찬가지다. 기본 값이 틀린 사회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잘못된 상황 자체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다. 전략과 전술을 훈수 두는 이들에게 특히 선행되어야 할 일이다. ‘그럴 수도 있지’,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안이한 생각은 변화를 늦추고 피해자를 양산한다. 명확한 태도와 따끔한 이야기를 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공론장을 파괴하는 아무 말 카오스
명확한 근거를 가진 공론장에서의 논쟁을 통해 사회가 진보하는 것은 이상적이지만, 자주 여러 장애물에 봉착한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그러한 상황을 조장하는 것은 단연 ‘지식 셀럽’과 ‘방송’ 매체다. 사실에 근거하고 치밀하게 구성된 논리보다는 예능 프로그램 등을 통해 획득한 명망을 통해 권위가 부여되고 이것이 순환되면서 어느새 근거를 알 수 없는 권력이 형성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극적인 ‘썰’, ‘과잉’ 서사, 시도 때도 없는 ‘직관’이 등장한다. 검증 없이 계속 제기되고 순환되는 지식 상품은 어느 순간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카오스로 공론장을 전락시킨다. 가짜 뉴스보다 어쩌면 더욱 경계해야 할 ‘가짜 논의’가 태어난다. ‘차별금지법 반대를 금지하는 것이 차별이다’, ‘여성혐오 텍스트를 공부하지 않는 것은 살균된 문화 디스토피아를 부를 수도 있다’ 같은 류의, 논의의 민주적 기본 틀을 붕괴시키는 논리를 허용하게 되는 것이다. 틀린 것을 다른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이러한 논의 구조 역시 교묘하게 숨어든 ‘괄호 안의 불의’다. 그래서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것임을 명백히 밝히고 논박해야만 공론장을 지킬 수 있다.
그냥 넘어가지 말고, 헛소리에는 딱 그만큼의 대우를!
전작 《프로불편러 일기》의 첫 번째 글 <일베, 새 시대의 야만>에서부터 신간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의 마지막 글 <‘과도한 PC함’이라는 허수아비>까지 저자의 글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린 헛소리에는 딱 그만큼의 대우”가 필요하며, 사회적 공론 과정을 통해 가장 덜 폭력적이면서도 합리적인 비판과 규제(혐오 표현 금지, 차별금지법 제정 등)를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만 안 그러면 된다’는 식의 태도로는 공적 영역의 문제들을 바로잡을 수 없다. 권력자가 아닌 만인의 자유를 위해 법 제도가 존재해야 하며, 그 바탕이 되는 시민적 합의를 위해 민주적 의사소통 공론장을 만드는 것이 지식인, 비평가가 사회적 분업 속에서 갖는 역할이다. 그래서 이 책은 성실한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역할에 충실했던 젊은 비정규 마감 노동자의 분투기이기도 하다.
기본정보
ISBN | 9788959406975 |
---|---|
발행(출시)일자 | 2019년 05월 20일 |
쪽수 | 288쪽 |
크기 |
138 * 210
* 24
mm
/ 384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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