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한 보통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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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작가정보
청아한 문체와 세련된 감성 화법으로 사랑받는 에쿠니 가오리는 미국 델라웨어 대학을 졸업하고 1989년 『409 래드클리프』로 페미나상을 수상했다. 동화적 작품에서 연애소설, 에세이까지 폭넓은 집필 활동을 해나가면서 언제나 참신한 감각과 세련미를 겸비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1992)으로 무라사키시키부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나의 작은 새』(1998)로 로보우노이시 문학상을 받았고, 그 외 저서로 『수박 향기』, 『잡동사니』, 『우는 어른』 등이 있다.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와 『반짝반짝 빛나는』,『호텔 선인장』,『낙하하는 저녁』,『울 준비는 되어 있다』,『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도쿄 타워』,『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홀리 가든』,『장미 비파 레몬』,『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좌안 1· 2』,『제비꽃 설탕 절임』, 『빨간 장화』, 『달콤한 작은 거짓말』 등으로 이미 한국 독자들을 사로잡은 바 있는 에쿠니 가오리는 일본 문학 최고의 감성 작가로서, 요시모토 바나나, 야마다 에이미와 함께 일본 3대 여류 작가로 불린다.
역자 김난주는 경희대학교에서 우리 문학을 공부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문학을 공부하였다. 현재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역서로는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반짝반짝 빛나는』, 『낙하하는 저녁』, 『울 준비는 되어 있다』,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웨하스 의자』,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홀리 가든』, 『차가운 밤에』, 『장미 비파 레몬』,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좌안 1·2』, 『제비꽃 설탕 절임』 등 다수가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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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비 오는 날은 쓸쓸하다.
왜인지는 모른다. 아니, 나는 그것이 진짜 쓸쓸함인지조차 잘 모른다.
처음 시작은 막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였다. 수업 중이었다. 내 자리에서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심장이 뚝 떨어져나간 듯한 느낌, 아랫도리가 텅 빈 것처럼 허전하고, 한없이 허무한 느낌.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표현은 ‘싸했다’였다.
비 오는 날이면 찾아오는 그 망막하고 미묘한 감각은 마음의 움직임이라기보다 신체적인 무엇―두 허벅지에 힘을 꽉 주지 않을 수 없는―이어서 나는 더욱 불안했다. 그 증상은 몇 년이나 계속되었다.
아빠 의견은 이렇다. 소요 언니는 이미 ‘법적으로 쓰게 집안의 사람’이니 쓰게 집안사람이 미야자카의 집에서 자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아빠에게는 언제나 사리에 맞고 맞지 않고가 상당히 중요하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법적으로 미야자카 집안으로 돌아오는 것이라면, 그러고 싶을 때 서슴없이 돌아오면 된다’는 얘기가 된다.
엄마 의견은 다르다. 엄마는 ‘마음이 있는 곳’이 중요하단다. 소요 언니의 마음이 쓰게 씨에게 있는 이상 ‘365일 언제나 그곳으로 돌아가야 마땅’하단다.
“그러니까 만의 하나.”
언젠가 엄마는 소요 언니에게 대놓고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만의 하나 네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 갔다면, 그 때는 거리끼지 말고 그 사람 품으로 가거라.”
“태풍 캠프 같네.”
나는 사탕을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태풍 캠프는 우리가 좋아하는 놀이 중 하나다. 태풍―또는 큰 비가 쏟아지거나 바람이 몹시 불거나 지진이 나거나 정전이 되었을 때―이 왔을 때, 모두들 책상 밑에 비집고 들어가 캠프(흉내)를 하는 것이다. 라디오를 듣고 봉지에 든 과자를 먹고, 손전등 불빛에 책을 읽는다. 우리는 그런 평소와는 다른 사건을 무척 좋아했다.
우리는 독서 놀이를 중단하고, 고개를 들어 말했다. 독서 놀이란, 간단히 말하면 그저 책을 읽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놀이’를 좋아하니까, 대부분의 일을 ‘놀이’라 여기기로 한다. 그러면 사정이 전혀 달라진다. 예를 들어, 각자 책을 읽는 경우에도 처음부터 “독서 놀이하자.”하고 읽기 시작하면 다 같이 노는 느낌이 든다. 책을 읽는 내내 그렇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점이다.
그 순간이었다.
리쓰가 후카마치 나오토 몫의 그레이프 젤리를 보자마자 몸을 앞으로 쑥 내밀고는 집게손가락으로 투명한 포도색 젤리를 콕콕 찔렀다. 누구보다 리쓰 자신이 가장 놀랐으리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정말 예상치 못했을 만큼 크고 시원스럽고 옛날식으로 단단하고 탄력 있어 보이는 젤리였다.
“……리쓰?”
나는 동생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가족 아닌 사람 앞에서 그렇게 행동하는 리쓰를 처음 본다.
“맛있겠는데.”
속으로는 놀랐을 후카마치 나오토가 그렇게 말하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스푼을 들었다.
나와 리쓰는 침묵했다. 매너나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 비밀을 엿보인 듯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때로 인생에 대해 생각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시간에 대해, 그 동안에 생기는 일과 생기지 않는 일에 대해, 갈 장소와 가지 않을 장소에 대해, 그리고 지금 있는 장소에 대해.
대개는 낮에 인생을 생각한다. 그것도 아주 날씨가 좋은 낮. 싸늘한 부엌에서. 전철 안에서. 교실에서. 아빠를 따라간 탓에 혼자서만 심심한 책방에서. 그런 때, 내게 인생은 비스코에 그려진 오동통한 남자애의 발그레한 얼굴처럼 미지의 세계이며 친근한 것이었다. 내 인생. 아빠 것도 엄마 것도 언니들 것도 아닌, 나만의 인생.
출판사 서평
소설의 소재로 ‘가족’이란 복잡기괴한 숲만큼이나 매력적이다.
2010년 『빨간 장화』, 『달콤한 작은 거짓말』로 결혼과 사랑이라는 쓸쓸한 진실에 대한 고찰을 섬세하고 감각적인 언어로 표현했던 에쿠니 가오리가 이번에는 조금 색다른 주제로 우리 곁을 찾아왔다.
『소란한 보통날』(원제: 싱크대 아래 뼈)은 아빠와 엄마, 딸 셋과 아들 하나로 구성된, 언뜻 보기엔 평범하지만 조금 특이해 보이기도 하는 미야자카가(家)의 일상을 담은 유쾌하고도 따뜻한 가족 소설이다.
가족들의 얼굴이 다 보이지 않는다며 카운터 자리를 꺼려하는 아빠, 나이가 들어도 소녀의 감성을 가지고 있는 엄마, 아기를 가진 걸 알면서도 이혼한 큰딸, 다른 여자의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고 싶다는 둘째딸,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집에서 놀고 있는 셋째딸, 학교에서 정학을 당한 막내아들 모두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일상의 무미건조한 풍경들 속에서 빚어내는 등장인물 각자의 비일상이 이루어나가는 따뜻한 소설 『소란한 보통날』을 지금 만나보자.
# “타인의 집 안을 들여다보면 재미나다.”
모든 가정들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 어떤 가정의 일상이 다른 가정에서는 일상이 아니기도 하다. 미야자카가의 가족행사가 당사자들에게는 그저 평범한 일인지 몰라도 다른 이들의 눈에는 예사롭지 않게 보일 수 있으며, 반대로―주인공 고토코의 말을 빌리자면 “남의 집 아이들이란 참 신기하다.”처럼―미야자카 집안사람들의 눈에는 다른 가정이 특이하게 보일 수도 있다.
어느 가정이나 일상생활에서 몸에 배어 자연스럽게 지키는 암묵적인 룰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고토코네 가족이 유난히 더 특이해 보이는 이유는 여러 규칙들을 가족 모두가 명시해놓고 철저히 지킨다는 점, 또한 그 규칙들이 매우 구체적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사는 날은 매해 12월 첫째 토요일로 정해놓았다든지, 매해 1월 2일에는 가족들이 모두 모여 새해맞이 글쓰기를 한다든지, 고등학교 때까지 아침에는 항상 정해진 메뉴를 먹어야 한다든지, 스무 살이 넘으면 생일 선물을 꼭 돈으로 받는다든지, 가족 중 입학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전날 항상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찍는데, 이때 유치원 입학은 제외라든지 하는 자질구레하고도 별난 룰들을 지키면서 이들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켜나간다. 그리고 이런 반복되는 비일상적인 이벤트들은 일상 속에서 등장인물 각각의 스토리와 얽혀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에쿠니 가오리는 너그럽고 부드러운 눈길로 한 사람 한 사람의 향기를 빚어낸다. 가볍고 유쾌하고 잔잔하게 이야기를 전개해나가지만 그 농도는 결코 옅지 않다.
전체적으로는 미야자카 집안 구성원들의 이야기지만 셋째딸 고토코의 시점에서 소설이 진행된다. 에쿠니 가오리는 주인공 안에 든 평온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따라 스토리를 만들어간다. 주인공 고토코 자신이 여태까지 선택해온 것, 발견해왔던 것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조그맣고 사소한 마음의 흔적들과 얘기하면서 가족들의 이야기와 연결시킨다. 별건 아니지만 왠지 타인에게 들켜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 똑같은 생활방식 속에서 자라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몇 년이나 한 집에서 생활했던 날들의 비밀스런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읽다 보면 마치 타인의 집을 몰래 들여다보고 있다는 착각이 드는 『소란한 보통날』을 통해 독자들은 어느새 먼 날의 희미한 기억을 떠올리게 되고, 잊고 있었던 나 자신과 가족에 대한 추억을 환기시키게 될 것이다.
# “가족이 다시 모였다는 것은 순수한 기쁨이며 행복한 온기 같은 것.”
주인공이 밤에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사방이 깜깜하지만 멀리서부터 어렴풋이 집이 보이기 시작하고 현관과 계단 창문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놓인다. 반대쪽에 있어서 보이진 않지만 동생의 방도 환할 것이며 부모님이 있는 안방에도 아직 불이 켜져 있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밤중에 깨서 화장실에 갈 때 서재에 불이 켜져 있으면 안심이 되고, 언니가 이혼을 하고 돌아왔음에도 그저 언니가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에 축하 파티를 열고 가족 전부가 모였다는 것에 모두 순수하게 기뻐하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엄마나 아빠, 형제자매의 모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족, 혹은 나 자신의 가족과 비슷한 모습일 수도, 전혀 다른 모습일 수도 있지만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행복, 돌아갈 수 있는 곳의 존재에서 느껴지는 안도감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 설명 없이 이혼을 하고, 다른 여자의 아이를 입양한다고 해도, 대학을 가지 않아도, 정학을 당하더라도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곳, 내 마음이 있는 바로 그 장소, 집.
사람들은 저마다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사랑받고 상처받는가 하면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나쁜 일이나 좋은 일, 고통스럽거나 즐거운 일, 서글프거나 후련한 일도 모두 안에 품고서 일상이라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이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이유를 주는 건 바로 가족이 아닐까.
줄거리
미야자카가(家)에는 아빠, 엄마, 큰딸 소요, 둘째딸 시마코, 셋째딸 고토코 그리고 막내아들 리쓰 이렇게 6식구가 살고 있다. 설날이나 생일 등 거의 매달 있는 가족 행사에는 모든 가족들이 꼬박꼬박 모일 정도로 유난히 화목한 집안이라는 것 외에는 겉으로 보기에는 특이할 것 없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다. 귀가하기 전에 항상 미리 전화를 거는 아빠 그리고 그 전화를 받은 후면 항상 화장을 지우고 아빠를 맞이하는 엄마와 과자나 케이크를 굽는 것을 좋아하는 여성스러운 큰딸, 월급날이면 꼭 가족들의 선물을 사오는 둘째딸, 남자 친구와 손을 잡고 밥을 먹기 위해 왼손 사용법을 연습하는 셋째딸, 조립식 여자 인형 만들기 같은 섬세한 것을 좋아하는 막내아들이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둘째 언니 시마코가 가족들이 모두 모인 저녁식사 자리에 소중한 사람을 데려오겠다고 가족들에게 선언하고, 가족들은 시마코가 남자 친구를 데리고 올 거라며 기대한다. 하지만 막상 나타난 손님은 시마코가 다니는 회사의 여직원이었고, 시마코는 그 여자가 임신을 했으며 자신이 그 아이를 입양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시집가서 잘 사는 줄로만 알았던 큰언니 소요가 갑자기 여행 가방을 싸들고 친정으로 돌아오는데…….
기본정보
ISBN | 9788973816484 | ||
---|---|---|---|
발행(출시)일자 | 2011년 04월 11일 | ||
쪽수 | 280쪽 | ||
크기 |
131 * 187
* 20
mm
/ 452 g
|
||
총권수 | 1권 | ||
원서명/저자명 | 流しのしたの骨/江?, 香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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