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테의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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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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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글)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저자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ㆍ1875~1926)는 삶의 내면을 깊이 응시해 존재의 본질을 밝히는 20세기 최고의 작가. 본명은 르네 카를 빌헬름 요한 요제프 마리아 릴케로 1875년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릴케가 태어나기 전 죽은 딸을 잊지 못해 일곱 살까지 그에게 여자아이의 옷을 입혀 길렀다. 1886년 아버지의 권유로 육군 유년 실과 학교에 입학하고, 이어서 육군 고등 실과 학교에 진학했으나 자신과 맞지 않는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1891년에 그만두었다. 릴케는 암울했던 이 시기에 폭발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고, 1894년 첫 시집 『인생과 노래』를 출간했다. 이후 프라하, 뮌헨, 베를린 대학에서 예술사와 문학사, 미학, 철학 등을 공부하며 시집 『가신봉제』(1895), 『꿈의 왕관을 쓰고』(1896)를 발표하는 등 다양한 시작 활동을 했다. 1897년 그는 운명의 여인 루 살로메를 만난다. 그녀와 지내는 동안 릴케는 르네라는 이름을 라이너로 바꾸고, 필체도 부드럽고 고른 모양으로 고쳤다. 1899년 첫 러시아 여행을 필두로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다양한 나라를 여행했으며, 당시 받은 인상들을 바탕으로 『시도집』을 써냈다. 1901년 로댕을 방문해 그의 전기를 집필했으며, 폴 발레리와 앙드레 지드의 작품들을 번역하는 한편, 『형상 시집』, 『신시집』 등 자신의 작품도 꾸준히 발표했다. 1922년 대작 『두이노의 비가』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를 완성한 후 건강 악화로 발몽 요양원에 머물던 중 백혈병 진단을 받고 1926년에 세상을 떠났다.
번역 안문영
역자 안문영은 서강대학교와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독일 본 대학교에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후기 시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4년부터 충남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대 독일 시와 번역 이론, 그리고 릴케와 괴테의 작품에 나타난 동양적 요소 등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괴테, 릴케, 첼란, 구체시, 문학 용어 번역에 관한 논문을 다수 발표했으며,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릴케의 편지』, 『보릅스베데의 풍경화가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서동 시집』, 제니 에르펜베크의 『늙은 아이 이야기』, 로버트 슈나이더의 『오르가니스트』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목차
- 말테의 수기
역자 해설: 고독과 고난을 숙명처럼 짊어진 사람들에 대한 기록
라이너 마리아 릴케 연보
책 속으로
예컨대 나는 많은 얼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한 번도 의식해 본 적이 없다. 사람들도 많지만, 얼굴들은 더 많다. 누구나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얼굴을 몇 년씩이나 쓰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 얼굴은 써서 닳고, 더러워지고, 주름이 잡히고, 여행 중에 끼고 다닌 장갑처럼 늘어나기도 한다. 그들은 검소하고 단순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얼굴을 바꿀 줄도 모르고, 씻을 줄도 모른다. 그들은 자기들이 지닌 얼굴이 충분히 좋다고 생각한다. 누가 그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반증해 보일 수 있을까? 이제 생기는 당연한 의문은 그들도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으니, 다른 얼굴은 무엇에다 쓸까 하는 것이다. 다른 얼굴들은 잘 보관해 둔다. 자식들이 그것들을 쓰게 될 테니까. 그렇지만 그 사람들의 개들이 그것을 쓰고 나가는 일도 생긴다. 그러지 말란 법이 있는가? 얼굴은 얼굴일 뿐인데.
본문 10~11면
내가 직접 봤거나, 들어서 아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 봐도 그것은 언제나 마찬가지다. 그들 모두 저 자신의 죽음을 지니고 있었다. 죽음을 마치 포로처럼 자신의 갑옷 안에 지니고 있던 남자들, 아주 늙어서 몸은 작아졌지만 무대처럼 엄청나게 큰 침대에 누워 온 가족과 하인들과 개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얌전히, 그러나 위엄 있게 저세상으로 떠난 여인들. 그리고 아이들, 아주 어린아이들까지도 예사로운 아이의 죽음이 아니라, 온 정신을 다해, 지난날의 그들이 지녔고 또한 미래의 그들이 품었을 법한 죽음을 맞이했다.
본문 21면
엄마가 내가 이런 사내아이가 아니라, 작은 계집아이이기를 바라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우리 기억 속에 떠올랐다. 나는 엄마의 그 소원을 어찌어찌 알아냈었다. 그래서 오후만 되면 때때로 엄마 방의 문을 두드릴 생각이 났던 것이다. 엄마가 누구냐고 물으면, 밖에서 「조피예요」라고 외치는 것이 행복했다. 그때 나는 조그만 내 목소리를 예쁘게 꾸미느라 목구멍 속이 간지러웠다. 그리고 내가 (그때 입던 계집애의 실내복 차림으로, 팔소매를 썩 걷어 올린 채) 방 안에 들어서면 나는 그냥 조피였다. 엄마의 꼬마 조피는 소꿉놀이에 몰두했고, 못된 말테가 다시 돌아오더라도 혼동이 생기지 말라고 엄마는 조피의 머리를 따주었다. 말테가 돌아오는 것은 결코 원치 않았다. 그가 떠나 있는 것이 엄마나 조피에게는 편안했다. 그리고 (조피가 언제나 똑같이 높은 목소리로 이어 나간) 그들의 대화는 대개 말테의 못된 짓을 일일이 들춰내고 거기에 대해서 비난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아아, 그래, 이 말테란 놈은」 하고 엄마는 한숨을 쉬곤 했다. 그리고 조피는, 마치 사내아이를 여럿 알고 있기라도 하듯, 일반적인 사내아이들의 못된 짓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었다.
본문 109면
사랑받는 사람들의 삶은 나쁘고 위험하다. 아아, 그들이 자신을 극복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사랑하는 사람의 주변은 안전하다. 아무도 그들을 수상히 여기지 않으며, 그들 자신은 배반할 능력이 없다. 그들에게서 비밀은 치유가 된다. 그들은 비밀을 밤꾀꼬리처럼 통째로 내지른다. 그 비밀은 나뉜 부분이 없다. 그들은 한 사람을 위해 하소연한다. 그러나 자연 전체가 그들과 동조한다. 그것은 하나의 영원한 존재를 위한 탄식이다. 그들은 잃어버린 사람을 뒤늦게 허둥지둥 따라간다. 그러나 벌써 첫걸음을 내딛자마자 그를 추월한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오직 신이 계실 뿐이다.
본문 257면
출판사 서평
절망과 고독을 숙명처럼 짊어진 사람들에 대한 기록
삶의 본질을 냉철하게 바라본 릴케의 유일한 장편소설
■ 국립중앙도서관 선정 청소년 권장도서 50선
■ 르몽드 선정 「20세기 최고의 책」
■ 피터 박스올 「죽기 전에 읽어야 할 1001권의 책」
■ 2008년 한국경제신문 조사 국내외 명문대생이 즐겨 읽는 고전
■ 2004년 「한국 문인이 선호하는 세계 명작 소설 100선」
■ 2003년 국립중앙도서관 선정 「고전 100선」
■ 1993년 서울대학교 선정 「동서 고전 200선」
■ 1966년 동아일보 선정 「한국 명사들의 추천 도서」
그래, 그러니까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이곳으로 온다.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여기서 모두 죽어 가지 싶다. -본문 중에서
작가 지망생인 스물여덟 살의 덴마크 청년 말테,
그는 화려한 문화의 중심지 파리에 오지만
오히려 곳곳에 가득한 죽음과 불안의 냄새를 맡는다.
지독한 가난과 소외, 죽음마저 규격화된 도시의 비정함.
그는 예민한 감성으로 대도시의 허상을 기록하는 한편,
자신의 내면으로 점점 깊이 침잠해 들어가,
실존의 마지막 보루를 지키는 철저한 고독을 깨달아 간다.
『말테의 수기』는 릴케가 로댕을 방문한 당시 파리에서 받았던 인상을 「말테」라는 젊은 시인의 눈을 통해 그려낸 작품이다. 그는 완결된 형식과 줄거리를 포기하고, 이 작품을 메모와 산문시, 편지, 회상, 철학적 성찰 등 다양한 형식을 지닌 71개 기록의 몽타주로 엮어 냈다. 화려한 문명의 이면을 지배하는 고독과 죽음, 공포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이 작품은 「수기(手技)」라는 새로운 형식과 산업 사회의 도시 문명을 비판하는 주제로 문단에 충격을 안기며 20세기 초 독일어로 발표된 최초의 현대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죽음과 불안의 도시 파리
『말테의 수기』 첫 부분에는 문화 예술의 도시 파리의 명성을 한마디로 부정하는 혹독한 악평이 들어 있다. 「여기서 모두 죽어 가지 싶다.」 말테가 파리에서 보고 듣는 것은 만개한 도시 문명의 화려함이 아니라, 주로 질병과 죽음으로 가득한 병원이고, 요오드포름과 감자튀김 냄새에 섞여 「불안의 냄새」를 풍기는 골목 아니면, 무너진 집터와 건물의 잔해 등 비참하고 우울한 장면들이다. 그리고 그가 만나는 사람들도 비틀거리며 힘겹게 발을 옮기는 임신부나 길을 가다가 쓰러지는 사람, 꽃양배추 수레를 끌고 가거나 수줍은 목소리로 신문을 팔고 있는 장님들, 식당에 앉은 채로 죽은 사람, 반신불수의 환자 등 정상적인 일상의 조건에서 이탈하거나 죽음에 가까운 모습들이다. 이런 인물 형상이나 모티프들은 여느 자연주의 문학 작품 못지않게 가차 없는 시선으로 묘사된다.
말테가 대도시 파리에서 겪는 실존의 불안은 「공장 생산 방식」과 같은 천편일률적인 장례 절차에서 결정적으로 나타난다. 개인이 「고유한 죽음」을 상실한 것에 대한 말테의 탄식은 「고유한 삶」을 상실한 것에 대한 탄식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말테가 파리에서 느끼는 죽음의 공포는 또한 획일화된 대중문화 속에서 개인이 지닌 고유한 삶의 의미를 상실할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것이다.
사랑받는 사람의 삶은 나쁘고 위험하다
말테는 평범한 사랑의 결합은 「고독의 증가」를 뜻할 뿐이라고 말하며, 「목적 없는 사랑」을 지향한다. 그에게 사랑은 능동적인 활동이며, 새로운 실존의 창조 행위이다. 그는 「사랑받는 사람의 삶은 나쁘고 위험하다」고 한다. 그것은 상대에게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받기」보다 「사랑하기」로 그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괴테에게 무수한 짝사랑의 편지를 보낸 베티나, 오빠에 대한 금지된 사랑 때문에 죽어서 눈물의 샘이 된 신화의 주인공 비블리스, 실연의 아픔을 불후의 명시로 남긴 이탈리아의 여성 시인 가스파라 스탐파 등 수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전설」을 열거한다. 사랑을 받기만 한 사람들의 미래가 텅 빈 자리로 남는 반면, 사랑하는 사람들의 미래는, 그것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일지라도, 그들의 능동적인 마음이 확보한 실존의 공간으로 가득 차게 된다는 것이다. 릴케는 원고 여백에 이렇게 적어 두었다.
사랑받음은 불타 버림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소진되지 않는 기름으로 빛을 낸다는 것이다.
사랑받음은 덧없음이요, 사랑함은 지속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32912110 | ||
---|---|---|---|
발행(출시)일자 | 2013년 04월 10일 | ||
쪽수 | 320쪽 | ||
크기 |
128 * 188
* 30
mm
/ 378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열린책들 세계문학
|
||
원서명/저자명 | (Die)Aufzeichnungen des Malte Laurids Brigge/Rainer Maria Rilk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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