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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세상 뒤편, 우리가 몰랐던 뒷이야기

2018.08.03

 
 
게임 세상 뒤편, 우리가 몰랐던 뒷이야기 
- 『피, , 픽셀』 서평
 
19 대선 온갖 구설수 속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 씨가 번도 얼굴을 보였던 ‘크런치’ 모드에 들어갔기 때문이라는 소식이 들리자 주변 게임 업계 사람들은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게 모두 너그러워졌다. 이것이 바로 정당정치를 넘어서는 노동계급의 공감과 이해, 연대의 모습이구나 무릎을 정도로 하나같이 ‘그럴 있다’고 했다. 크런치는 이를 악물고 하지 않으면 끝까지 없는 윗몸일으키기의 이름이자, 동시에 이빨을 가는 으드득 소리다. 또한 게임 메이커들의 피땀이기도 하다. 『피, , 픽셀』은 바로 픽셀과 사운드와 상호작용 속에서 피땀을 흘려온 게임 메이커들의 이야기다.
 
그림 1. '크런치' 찾으셨나요? (CC BY-SA 3.0 Everkinetic)
 
 
게임 하나를 만드는 데에는 엄청나게 종합적인 기술과 예술, 그리고 경제적 고려와 정치가 결합되게 마련이다. 게임은 소설과 같이 상상을 동원해야 하는 서사적 심상을 제공하는 장르가 아니다. 음악이나 회화와도 다르다. 하나의 감각을 자극하는 예술은 자극된 감각을 증폭시켜 공백을 메우는 것을 유도한다. 감각의 자극은 ‘제공’되며, 제공된 곳에서부터 상상된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은 향유자의 역할이다. 그러나 게임의 세계는 감각의 제공과 자유로운 향유라는 단순한 틀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게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호작용성이다. 유저가 , 하는 신호를 주기 전까지 게임은 결코 , 하는 감각을 제공하지 않는다. 바로 그것 때문에 게임의 제작 과정은 다른 ‘작품’보다 더욱 복잡해진다. 시나리오 라이터는 시나리오만 없고, 개발자는 개발만 수가 없다. 그런가 하면 제작자도 투자처를 따오는 것에만 집중할 없다. 함께 일하는 모두에게도 ‘상호작용’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 자의식 강한 창작자와 개발자의 케미스트리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할까? 창작자, 개발자, 제작자 역할까지 함께 해야 하는 1 개발자의 경우는 어떨까?
 
서문에 등장하는 개발자는 저자에게 “어떤 게임이든 완성한 자체가 기적이에요”라고 말한다. 게임 개발에서는 너무나 많은 요소가 유동적으로 작동하고, 각자의 역할을 맡은 팀원들은 하나가 것처럼 유동적인 상황에 적응해야 한다. 어쩌면 게임 개발이란 인간 유희가 기술적으로 진보할 있는 첨단에 있지만, 동시에 지극히 -진보적인 특성도 같이 공유하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그저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고개를 처박고 열중하는 대신에 타자와 똘똘 뭉쳐 공동체로서 풍진 세상과 맞서는 지나간 시대의 일들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셈이다. 그리고 세상으로 뛰쳐나가는 순간 공동체의 영역은 확장된다. 유저들을 ‘세계’에 초대할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처음으로 다루는 게임인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2015 출시. 2018 5월에 후속작이 출시되었다) ‘그리워하는 이들’을 위한 게임이다. 새롭고 놀라운 아이디어를 구현했다기보다는 지금껏 그리워했던 바로 순간을 다시 마주하게 해주는 추억 같은 게임이다. 마음속 깊숙이 담아두었던 바로 게임(아마도 대부분 <발더스 게이트>……) 현실로 다시 나타난 같은, 하이퀄리티로 재현된 게임이다. 이런 게임은 2005 이후로는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여기다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림 2.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게임 화면 (출처: 스팀 상점)
 
옛날 옛적 게임을 다시 한번 만들겠다는 계획에 돈을 척척 내주는 배급사를 찾기 어렵자, 제작사 옵시디언은 ‘그리워하는 이들’, ‘덕후’들에게 걸었다. 전략은 놀랍게도, 그리고 예상 가능하게도 대성공이었다. 옵시디언은 끊임없이 돈을 내준 덕후들과 소통하며 게임을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후원자들은 NPC 묘비명으로 게임 안에서 계속 함께 살아가게 되었다. 추억의 그래픽 속에서 한자리를 제대로 차지하게 것이다.
 
<언차티드 4>(2016 출시) 제작자들과 인터뷰에서는, 게임이라는 복합적 세계의 창작자들이 어떤 일을 겪는지 확연하게 드러난다. 절대자인 신이 여러 존재해서, 지금부터 세상을 만들기 시작하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벌어지는 일은 똑같을 것이다. 어떻게 생긴 것들이 세상 속에서 살아 있어야 하며, 그들이 어떤 배경 속에서 움직여야 하며, 어떤 소리들을 세계에 심어야 하며, 세상이 돌아가는 동력은 무엇인지를 각각 다른 신이 만든다고 하면 신들끼리 싸우고 어디 배기겠느냔 말이다. 고생스러운 세상 만들기, 그러니까 <언차티드 4> 만들기는 아트 디렉터 스트랠리와 스토리텔링 프로그래머 드러크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들은 만나자마자 프로젝트로서 무려 < 라스트 오브 어스> 만들어낸다.
 
안에는 이들이 다른 팀원들과 겪었으리라고 추정되는 갈등의 흔적도 수록되어 있다. 스크립트를 쓰던 이는 회사를 떠나버렸고, 책을 위한 인터뷰를 거부했다. 그러나 동시에 <언차티드 4> 세상에 나올 있었던 중요한 동력은 스트랠리와 드러크먼의 첨예한 결속이기도 했다. <언차티드 4> 액션들은 시원시원하다. 총기 연사는 훌륭하고, 차는 온갖 펜스를 뚫고 나간다. 훅은 싱그러운 소리와 함께 방에 적들을 처치한다. 게임 주인공인 네이트, 엘레나, 설리는 오랜 시간 동안 서로를 신뢰하기 위한 시간들을 보내왔다. 시원하게 총을 후려갈기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들이 함께 싸우고 있을 때도 신뢰들은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펼치며 게임 서사를 지탱해나가고 있다. 스트랠리와 드러크먼은 끊임없이 자신들을 네이트와 엘레나에 비교한다. 역시 세상의 황파를 함께 이겨낼 있는 동지뿐인 모양이다.
 
여러 신이 함께 세상을 만든다면 대판 싸울 뻔하다고 했지만, <스타듀 밸리>(2016 출시) 경우는 절대자인 유일신이 하나밖에 없다. 제작자 에릭 바론은 혼자서 사랑스러운 도트 게임의 모든 것을 만들었다. 그리고 에릭 바론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기 때문에 정말, 무척, 매우, 굉장히 고생스러운 수년간을 보냈다. 돈은 떨어지고, 동거인에게 아르바이트를 시켜가면서(!) 빈곤하게 <스타듀 밸리> 제작에 매달렸다. 게임 조자마트의 모리스가 그렇게 스타듀 밸리의 주민들에게 바가지를 씌워대는 어쩌면 이때의 경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림 3. <스타듀 밸리> 타이틀 화면 (출처: 스팀 상점)
 
혼자서 안에만 틀어박혀 사람도 만나지 않고 어릴 자신이 사랑했던 게임을 재현하는 게임 제작에만 열중하다가, 너무도 ‘복고적인’ 게임의 대성공 이후 일약 스타가 되어버린 청년의 이야기는 게임을 넘어서서도 흥미로운 성공스토리다. ‘록스타’가 같았던 ‘백만장자’의 시간들, 갑자기 에릭 바론과 계약을 하고 싶어서 달려드는 수많은 제작사들의 이야기는 마치 조자마트의 회원권을 살까 말까 고민하는 유저의 심정과도 비슷해 보였다. ‘현대사회에 지치진 않았느냐’는 할아버지의 말처럼, 그는 자신이 사랑하다 못해 <스타듀 밸리>라는 게임을 만들게 <하베스트 > 디렉터 와다 야스히로를 만난다. 이건 마치 동화 같은 이야기다. <스타듀 밸리> 그렇듯이.
 
김보영의 SF 소설 「스크립터」는 이제 이상 아무도 접속하지 않는 온라인 게임을 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접속하는 유저에 대한 이야기다. 유저와 접촉할 방법을 찾아서 이제 게임을 닫으려고 하니 접속을 끊어달라고 요청하러 들어갔던 게임사 사람은 생각지 못한 사이버스페이스를 발견한다. 버려진 온라인 공간 속에서 마찬가지로 방치되어 있으리라 여겨졌던 NPC들은 명의 유저가 나누어주는 애정을 토대로 인간처럼 성장하고 사고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저 정해진 코드를 따라가는 것이 전부여야 게임 세계는 유기체적으로 결합하고 분열하며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해나간다. 게임을 만든 이조차 짐작할 없는 풍경으로.
 
게임이란 가지 요소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캐릭터의 이야기와 표정, 움직임이 지나치는 모든 순간은 순간을 위해 매달린 수많은 사람들의 ‘피땀’이 서려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게임을 기억할 가지 요소로만 기억하지 않는다. 하나하나 픽셀을 찍은 같은 초록색 폰트를 보면, 얼굴이 불그죽죽한 가이브러쉬 스립우드가 떠오르고, 거기까지 생각하면 트로피컬한 단조의 신나는 오프닝 음악까지 떠오르며 어릴 만났던 하나의 세계가 총체적으로 떠오르고 마는 것이다. 게임의 기억이란 결코 단면적으로 존재할 수가 없다.
 
그림 4. <원숭이 섬의 비밀> 시리즈 주인공 가이브러쉬 스립우드 (출처: 위키백과)
 
 
사실 생의 경험이란 원래 단면적이지가 않다. 키스의 기억을 떠올린다고 해도 막상 입술의 촉감보다는 순간에 부는 바람의 온도가 떠오르는 것이 삶이 아니던가. 그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자르듯 나뉠 없는 중층적이고 다면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감각이란 하나의 경험만으로 제공되지 않는다. 마치 ‘게임’처럼, 그렇다. 아마도 기술은 끊임없이 진보할 것이며, 그러므로 게임은 중층적이고 다면적으로 세계를 창조할 것이다. 기술의 진보는 필연적으로 스토리와 그래픽의 형식과 내용을 바꾸어나갈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속에서 너티 독의 사장 에번 웰스는 “우리는 어떤 게임이든 크런치 모드를 거칩니다”라고 말한다. 단순히 게임 업계의 노동 강도 문제를 떠나, 시간을 쥐어짜서라도 완성도를 높이고 싶은 아티스트적 욕망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매일같이 피땀을 흘리며 어떻게든 생을 살아나간 유저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만날 있도록 해주는 것도 바로 ‘피땀’이다. 전원을 넣고 신호를 켰을 만나고 놀라운 세계의 뒷면을 살짝 열어보고 싶은 유저라면, 바로 이 책 속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피  <!HS>땀<!HE>  <!HS>픽셀<!HE> [컴퓨터/IT]   픽셀
제이슨 슈라이어 | 한빛미디어
2018.08.03
 
글: 이서영
소설가. 작품집으로 『다행히 졸업』(창비, 2016, 공저), 『악어의 맛』(온우주, 201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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