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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트로미노의 작대기가 세상에 내리꽂히기까지

2018.01.04


테트로미노의 작대기가 세상에 내리꽂히기까지


어릴 적 아버지는 종종 온 가족을 시골의 할머니 댁에 데려가곤 했다. 나의 친가는 경북 왜관의 집성촌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곳은 묵묵한 얼굴로 소가 걸어 다니다가 길 한복판에서 똥을 싸지르고,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온 동네 개들이 합심해서 짖어대는 시골 중에서도 쌩 시골이었다. 읍내에는 형광색 똥꼬치마를 입은 다방 ‘레지’들이 돌아다녔고, 우리가 오기만 하면 동네 어르신들이 죄다 몰려와서 뭔 말인지 알아듣기도 어려운 하이레벨의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뭐라 뭐라 잔소리를 하시곤 했다. 물론 뭔 말인지 몰랐기 때문에 그냥 고개만 조아리고 있었다.

아버지에게는 아마도 자신은 어쩔 수 없이 직장 때문에 도시에서 자식을 키우고 있지만, 자식들이 할머니와 친척들을 어색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아스팔트보다는 좀 더 자연을 벗 삼기 바라는 마음이 함께 공존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당하는 자식들 입장에서는 곤욕도 이런 곤욕이 없었다. 컴퓨터도 없고 게임보이도 없고 친구들도 없는 집에서 알아듣기 어려운 사투리에 둘러싸인 채 대체 무얼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삼 남매는 애꿎은 텔레비전 채널만 정신 나간 사람들처럼 번갈아가며 돌려댔다.

어쩌다 실수로 외부입력 버튼을 눌렀던 것은 그때였다. 할머니 집에 있던 텔레비전의 외부입력 기능에는 초등학교 4학년짜리 남매의 눈을 희번덕거리게 할 두 글자가 있었다. “게임”. 대체 어떤 대단한 게임이 있는지 기대하며 오빠와 나는 게임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세상에서 가장 단순해서 텔레비전 안에도 들어갈 수 있는 위대한 게임, 테트리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빠는 노골적으로 실망을 표현했다.

“아, 뭐야. 테트리스잖아.”

그림 1_ 아타리의 <테트리스> 게임 화면 / www.youtube.com


<이스>, <파이널 판타지>, <프린세스 메이커 2> 같은 게임에 익숙해져 있던 1996년도의 초등학생들에게 기껏 설레면서 들어온 게임이 테트리스라는 건 퍽 실망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나마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았으므로 우리는 테트리스를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희망은 아주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리모컨을 경쟁하며 싸워대기 시작했고, 어떻게든 텔레비전에 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우리는 잠도 자지 않고 테트리스에 열중했고, 할머니는 도시에서 온 손주들에게 난데없이 텔레비전을 빼앗긴 채 멀뚱멀뚱 위에서 떨어지는 이상한 모양의 네모 조각들을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방을 나가시곤 하셨다. 1996년도의 초등학생들에게 할머니의 채널 점유권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 지겹고 따분하던 시골에서 때로 우리는 냉이를 캐오라느니 쑥을 캐오라느니 하는 엄마의 요청에 끊임없이 맞닥뜨렸고, 힘겹게 텔레비전 앞에서 몸을 일으킨 후에도 밭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비치는 건 온통 네모난 조각들뿐이었다. 지루하던 시골은 마법처럼 네모난 조각들로 모습을 바꾸어갔다. 시골에 도착한 순간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우리 머릿속엔 온통 테트리스뿐이었다.

바로 이것이 ‘테트리스 이펙트’다.

그림 2_ 테트리스 효과 / https://lifehacker.com


책 『테트리스 이펙트』는 바로 우리 남매가 겪은 바로 그 상황을 의미한다. 우리의 의지가 허약해서만이 아니라 바로 ‘테트리스’라는 기술 그 자체에 우리가 중독에 빠진 그 원인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흥미로운 마법적 효과. 어떤 사람을 6주 동안 게임보이 전지를 사러 나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게임에 매달리게 하고, 중독적인 나머지 어떤 사람들에게는 PTSD의 충격을 순간적으로 줄여준다는 바로 그 게임. 게임의 룰은 지극히 단순하다. 위에서 떨어지는 테트로미노의 모양을 잘 맞춰서 가로줄을 꽉 채우면 펑, 하고 가로줄이 사라진다. 가로줄이 끊임없이 사라질 수 있다면 테트리스의 공간은 노력 여하에 따라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다. 물론 그 공간을 영원히 지속시켰다는 플레이어는 역사상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지만 말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허공에서 떨어지는 네모들을 짜 맞춰서 공간을 유지하는 동안 기껏 얻은 꿀 같은 방학이 소똥과 함께 사라져간다는 현실 인식 같은 건 아무 짝에도 중요치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세상에서 잠깐이라도 도망치고 싶을 때, 나는 테트리스를 내려받았다. 테트리스는 PC로 하건 스마트폰으로 하건 결코 많은 용량을 잡아먹지 않는다. 지극히 단순한 시스템, 간단한 조작방법. 그리고 내려받는 순간, 어떤 고통으로부터 마음을 순식간에 멀게 한다. 동시에 순식간에 시간을 잡아먹는다. 그러나 제목이 ‘테트리스 이펙트’라고 해서 이 책이 테트리스 효과에 대한 딱딱한 보고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 책은 오히려 아주 흥미로운 한 편의 어드벤처 소설에 가깝다. 주인공은 물론, 테트리스다.

그림 3_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형형색색의 테트로미노 / https://lifehacker.com


테트리스의 저작권을 사러 갔던 헨크 로저스, 테트리스의 아버지 파지트노프, 개발자에 대한 세간의 편견에 부응이라도 하듯 나이브한 파지트노프의 저작권 관념에서 테트리스를 구원한, 하지만 그래 봤자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사람들이라 여전히 저작권 문제에 어두웠던 러시아의 ELORG와 벨리코프, 닌텐도의 미국 진출을 대표하는 협상가 아라카와 미노루. 그 모든 사람이 테트리스를 둘러싸고 싸운다. 테트리스를 얻기 위해 장애물을 뛰어넘고, 악당이 되어 테트리스의 앞을 가로막고, 이해관계는 얽히고설킨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에 테트리스는 새롭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모든 거짓과 협잡 속에서도 테트로미노는 정직하게 아래로 떨어지며, 결국 테트리스는 승리해서 우리 모두의 손안에 들어온다. 테트리스라는 선명한 추억이 우리에게 도달하기까지의 모험을 이 책 안에서 새롭게 만날 수 있다.

1980년대, 미국과 구소련의 정치적 특수성은 ‘테트리스’라는 게임에 매우 독특한 방향으로 작동한다. 구소련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자본주의 체제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심지어 세계공용어라고 할 법한 컴퓨터에서조차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공통의 컴퓨터 언어를 다루고 있었지만 서로 ‘번역’을 해야 하는 하드웨어를 사용하고 있었고, 구소련 치하 러시아의 개발자들에게 이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심각한 문제였던 건 바로 테트리스의 ‘저작권’을 확보해야 했던 자본주의 체제의 장사꾼들이었다.
그림 4_ 모스크바 크렘린 이미지 / 『테트리스 이펙트』 본문 중에서


책의 첫 부분에서 마치 주인공처럼 등장하는 헨크 로저스가 소위 ‘너드’의 영혼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은 책을 읽어나가는 테트리스 팬에게 여러 가지 흥미를 자아낸다. 적당히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대신에 쓸모없지만 재미있는 것에 집착하는, 그 재미있는 것을 게임이나 컴퓨터에서 찾아내고야 마는 사람들.

책 속에서 테트리스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너무도 화려하게 드러낸다. 테트리스를 만난 모든 사람은 테트리스에 매료되고, 설령 매료되지 않은 자들이라고 할지언정 이 게임이 어떤 형태로 자신들에게 이득을 가져올 수 있을지를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바로 ‘자본’이다. 테트리스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은 채 테트리스에 골몰할 수 있고, 그런 전자마약은 마약과는 달리 어떤 위험도 감수하지 않고 압도적인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 화려한 그래픽도 없고, 촘촘한 스토리도 없이 그저 네모난 상자들이 떨어지는 것만으로 그런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어떤 자본가라도 당연하게 투자할 것이다.


그림 5_ 테트리스, 자본주의의 본질을 화려하게 드러내다 / https://capitalism.com


그러나 구공산권의 칙칙한 회색 하늘 아래에서 태어난 테트리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네온사인 아래에서 오히려 그 화려함을 무력화하는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어쩌면 테트리스라는 게임의 생김새 자체가 그런 아이러니를 이미 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1분만 플레이해보면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게임의 룰. 많은 투자가 필요 없고 복제하기도 쉬운 간단한 게임. 복잡하고 화려한 그래픽과 스토리가 있었더라면 이런 식으로 저작권 문제가 말도 안 되게 꼬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지적이고도 예술적인 산물을 저작권이라는 틀로 묶어서 판매한다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개념이 테트리스라는 단순함 때문에 독특해지고 만 게임에 이르러서는 아주 복합적인 상황에 부닥친다. 테트리스를 둘러싼 자본의 싸움과 테트리스의 모험 속에서 자본주의는 아주 몹쓸 악당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극히 아름다운 질서로도 보인다. 단 한 번도 테트리스에 대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아보지 못한 러시아가 뜻밖에도 자본주의 세계를 통해 그 보상을 받을 때, 파지트노프가 테트리스 컴퍼니를 차릴 때, 자본이라는 압도적인 힘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넉 줄짜리 길쭉하고 빨간 테트로미노처럼 독자의 마음을 쿵 하고 내리찍는다.

그렇기에 테트리스의 저작권 분쟁사는 마치 테트리스와도 같다. 자본이라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완전한 질서는 이미 그곳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돈을 내는 자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고, 자율경쟁은 자본주의의 명확한 규칙이다. 그러나 완전히 그 경쟁의 원칙을 지킬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공중에서 떨어지는 테트로미노를 영원히 맞출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듯이. 그 질서가 수호되지 않는 것이 명확하기에 로버트 스타인은 ELORG와 벨리노프를 속여넘기고 테트리스에 대한 독점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 그 독점은 파괴되었다. 테트리스가 세상에 나타나는 과정은 테트로미노를 영원히 쌓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이 세계의 한계를 끝없이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한계로 가득한 세상에서 도저하게 홀로 서 있는 것은 오직 테트리스뿐이다.

그림 6_테트리스에 영감을 준 블록 다섯 개짜리 펜토미노 퍼즐 /
『테트리스 이펙트』 본문 중에서


한동안 ‘보다 보면 고통스러워지는 영상’이라는 제목으로 돌아다니던 밈(meme) 영상이 있었다. 영상 속에서는 차분하게 위아래로 긋던 선이 갑자기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진다거나, 곱게 짜 올리던 크림이 망가지고, 잘 만들어놓은 도미노는 뚝 끊겨버리며, 똑바로 박혀 있던 점들이 엉망으로 찍힌다. 댓글에는 수많은 사람이 대체 왜 나를 이렇게 괴롭히냐며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질서 있는 것을 좋아한다. 질서 있게 놓인 것들은 대체로 인간의 삶에서 더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고, 무질서에서 질서를 찾아냄으로써 인류는 자신을 스스로 보존하고 발전시켜왔다. 그런 점에서 출발한다면 테트리스가 내재하고 있는 인간의 법칙이란 명료하다. 우리가 끊임없이 완전하게 질서 있기를 기대한다는 것, 우리의 시간이 종료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

세상 여기저기에는 수많은 여백과 빈틈이 존재한다. 여백과 빈틈이 없다면 인간은 살아가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여백과 빈틈만으로 가득하다면 마찬가지로 살아갈 수 없다. 테트리스는 우리의 삶이 그 빈틈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빈틈을 메워나가는 것이 삶의 첫 번째 원칙이라는 것을 간단한 방법으로 알려준다. 마치 테트리스 그 자신의 삶이 그렇게 태어난 것처럼.

이 서평을 쓰기 전에 가장 마지막으로 테트리스를 했던 때는 올해 여름, 평창으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더운 여름을 피해서 무료를 즐기러 간 휴가였다. 나는 평창에 사는 지인의 집에 누워서 온종일 테트리스를 했다. 아타리에서 나온 테트리스 때부터 익숙한 코로베이니키의 BGM을 들으면서 끝도 없는 테트로미노를 쌓았다. EA에서 나온 테트리스였다. 글을 쓰기에 앞서서 오랜만에 EA의 테트리스를 켜보았다. 저작권은 더 테트리스 컴퍼니에게 있었고, 게임 디자인은 알렉세이 파지트노프가 했다고 되어 있었다. 오리지널 로고 디자인은 로저 딘이 했다. 그리고 맨 앞에 또렷하게 1985~2017 Tetris Holding이 쓰여있었다.

33년 동안 Z 미노는 우리를 분노케 했고, I 미노는 세상 최고의 무기가 되어 우리의 아드레날린을 분출시켰다. 새로 나온 EA의 테트리스는 갤럭시니 탐험가니 하는 온갖 새로운 기능이 생겼지만, 그 긴 시간 동안 적어도 하나만은 변하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믿을 수 있다. 지금 이 글을 읽은 당신이 그 신비한 게임을 켠다면, 당신의 인생 어느 한 페이지가 순식간에 삭제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행복하게도 테트로미노의 가로줄이 다 채워지는 순간들과 함께.

테트리스 이펙트 [컴퓨터/IT]  테트리스 이펙트
댄 애커먼 | 한빛미디어
2018.01.11

I 글쓴이: 이서영 (소설가)  

작품집으로  『다행히 졸업』(창비, 2016, 공저), 『악어의 맛』(온우주, 201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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