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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은 세계여행
시공간 초월 전문 여행사 KYOBO AIRLINE에서 당신을 낯설고 신비한 여행지로 데려갈 전세기가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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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보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맥시코 만까지 여러분을 안전하게 모실 기장입니다.
현재 난기류로 인해 기체가 몹시 흔들리고 있습니다.

김교보님께서는 좌석벨트를 착…

기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체가 요동칩니다.
그 와중에 선반에서 떨어진 무언가를 맞고 김교보님은
잠깐 정신을 잃습니다.

김교보님은 타는 듯한 햇빛을 느끼며 눈을 뜹니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온통 망망대해,
김교보님은 흔들리는 배 위에 낡은 담요를 덮고 누워있습니다.

구름은 산더미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해안은 회색빛이 도는 푸른 언덕을 배경으로 한
초록색 선으로 보입니다.

김교보님 옆에 웬 할아버지가 낚시대를 들고 앉아있습니다.

"군함새가 큰 도움이 된단 말이야."

"만약 남들이 내가 큰 소리로 혼자 지껄이는 것을 들으면 아마 나더러 미쳤다고 하겠지. 하지만 나는 미치지 않았으니 상관없어."

노인은 노에 기댄 채 가볍게 흔들리고 있는 곳에서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때 노인의 낚시대가 요동칩니다.

"옳거니! 굉장한 놈이로군. 미끼를 비스듬히 입에 물고 도망치고 있어."

노인은 두 팔의 힘과 온몸의 무게를 실어 팔을 번갈아 내밀면서 낚시줄을 힘껏 당기고 또 당깁니다. 그때 낚시줄 끝으로 거대한 무언가가 튀어올랐습니다.

낚시줄 끝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배보다 큰, 집채만한 물고기입니다. 햇빛을 받은 고기는 번쩍번쩍 빛이 났고, 짙은 자주빛의 머리와 등, 옆구리의 연보랏빛 넓은 줄무늬가 햇살에 드러납니다.

"이 배보다 60센티미터도 넘게 길겠는걸."

고기는 큼직한 꼬리만을 움직이며 무척 조용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둥글게 맴돌면서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자, 이리 온 고기야."

고기는 다이빙 선수처럼 온몸을 물 위에 드러냈다가 유연하게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아버립니다. 김교보님은 할아버지를 도우려 일어났지만 물속으로 사라진 고기 때문에 배가 요동치는 바람에 균형을 잃고 갑판위로 쓰러져 정신을 잃습니다.

멀리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립니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눈은 뜬 김교보님의 눈앞에 비행기의 천장이 보입니다.

김교보님은 비행기 복도 위에 대자로 누워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몸을 일으키자 비행기 창문 너머로 망망대해가 펼쳐져있습니다.

"김교보님, 우리 비행기는 곧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김교보님의 손 안에는 책 한권이 놓여 있고 김교보님은
제목을 보고 미소를 짓습니다.

김교보님,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Kyobo Airline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 뒤 도착하실 알래스카에는
현재 눈 폭풍이 불고 있습니다.
체온 유지를 위해 좌석 밑의 담요를 사용해주세요.

김교보님은 담요를 꺼내기 위해
좌석 밑으로 허리를 숙입니다.
그 순간 비행기의 불이 갑자기 꺼졌습니다.

김교보님은 발에 닿는 보드라운 눈의 감촉에 펄쩍 뜁니다.
불이 환해지자 김교보님은 거대한 설원에 서 있습니다.

코에 닿는 바람은 몹시 차가운데
김교보님은 무언가 포근한 것으로 몸을 감싼 듯
추운 바람에도 따뜻하고 안전한 기분이 듭니다.

"아우, 아우우."

끝없이 펼쳐진 눈의 산 너머에서
늑대인지 개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의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김교보님은 그 소리에 응답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김교보님의 목에서 나온 것은
인간의 언어가 아닌 늑대의 울부짖음이었습니다.

김교보님이 당황해 아래를 내려다 보자
갈색과 흰색의 털로 덮인 뭉툭한 개의 발이 보입니다.

김교보님은 문득 김교보님이 그동안 맡지 못했던
공기의 미묘하고 다채로운 향기가 밀려오는 것을 느낍니다.

김교보님이 처음 느끼는 꼬리의 감각을
신기해 하며 한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을 때
덩치 큰 남자 한 명이 김교보님에게 다가옵니다.

"이봐 벅, 사냥 갈 준비됐어?"

남자를 보자마자 김교보님은 마음 안에서
따뜻하고 다정한 감정이 자라나는 것을 느낍니다.

김교보님과 남자는 나란히 설산을 뛰어갑니다.
새하얀 눈 위에 발자국을 찍으며 펄쩍펄쩍 뛸 때
김교보님의 마음엔 환희가 피어오릅니다.

"벅, 저기 토끼가 있어!"

눈이 쌓인 나무 아래 귀를 쫑긋 세운 토끼를 보자
김교보님은 무엇을 해야할지 단박에 알게 되었습니다.
토끼를 향해 김교보님은 뛰쳐나갑니다.

저희 Kyobo Airline은 김교보님을
목적지까지 안전히 모시겠습니다.

토끼를 잡아 챘다고 생각했는데
김교보님의 손에 있는 것은 폭신한 담요 뿐,
김교보님은 다시 비행기에 돌아와 있습니다.
좌석 밑, 담요가 있던 자리에 떨어져 있는 책 한권이 보입니다.

제목을 확인하고 김교보님은 아련한 기분이 듭니다.

김교보님, 안녕하십니까?
오늘 김교보님의 편안한 비행을 위해 Kyobo Airline 내에
총 3명의 승무원이 탑승하고 있습니다.

목적지인 영국으로 출발하기 앞서 기내에서는 영화를 상영할 예정입니다. 영화 상영을 위해 전등이 소등되오니 …

불이 꺼지고 작은 스크린에 영화의 타이틀이 떠오르고
김교보님은 깜빡 잠이 듭니다.

잠에서 깨었을 때, 김교보님은 꽤 오랜 시간 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어리둥절한 김교보님은 텔레스크린 안에서 빛나는 두 눈과 마주칩니다. 김교보님이 서있는 곳은 벽에 작은 구멍들로 가득한 사무실입니다.

태양의 위치가 바뀌자 건물의 수많은 창문에는
더 이상 햇빛이 비치지 않습니다.
창문이 마치 요새의 총구멍처럼 으스스하게 보입니다.

"찾았는데 바로 여기 있었군."

검은머리에 체구가 작은
툭 튀어나온 눈을 가진 남자가 김교보님에게 손을 내밉니다.

김교보님은 얼떨결에 그의 손을 잡습니다.
손바닥에 거친 종이의 감촉이 느껴집니다.

"먼저 떠나시오."

남자는 대답 없이 사무실을 빠져나가고
김교보님은 그가 남긴 쪽지를 열어봅니다.
“빅 브라더를 타도하자”
갑자기 김교보님의 뒤에서 금속성의 음성이 들립니다.

"너희는 죽은 사람이다."

뒤를 돌아보니 검은 제복을 입은 건장한 남자들이 가득합니다. 그들은 하나 같이 징 박은 구두를 신은 데다
손에 곤봉을 들고 있습니다.

"가자!"

김교보님이 끌려온 곳은 천장이 높고 하얗게 번들거리는
타일 벽으로 둘러싸인 창 없는 감방입니다.
갓을 씌운 램프가 방 안을 차갑게 비추는 가운데 통풍구 쪽에서 나지막이 웅웅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립니다.
그리고 벽 마다 하나씩,
네 대의 텔레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문이 열리고, 차갑게 생긴 젊은 장교가 감방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는 재빠른 손짓으로 김교보님을 가르키며
간수에게 말했습니다.

"101호실로 끌고가!"

김교보님은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납니다.

영화가 끝난 듯 스크린에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김교보님은 스크린을 끄기 위해
비행기 앞의 포켓에 손을 넣습니다.

리모컨이 있어야 할 자리에 책 한 권이 만져집니다.
제목을 확인하고 김교보님은 안심합니다.

김교보님, 안녕하십니까?
저희 Kyobo Airline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적지인 뉴욕에 도착하기 전 저희 비행기는 각종 칵테일을 포함한 음료와 식사를 제공해드리고 있습니다.
비행기의 뒤편에 있는 식당칸으로 이동해 식사를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김교보님은 일어나 비행기의 뒷편으로 걸어갑니다.
식당칸과 객실 사이에는 두꺼운 커튼이 쳐져있고 커튼 안에서 희미한 재즈 음악이 들립니다.

커튼을 열자 객실도 비행기도 온데간데 없고
수백미터의 야회용 천막과 갖가지 색깔의 전구로 장식된
거대한 정원이 등장했습니다.
뷔페 테이블에는 화려한 전채 요리와 양념을 해서 구운 햄,
알록달록한 샐러드, 밀가루를 발라 튀긴 돼지고기, 거무스름한 금빛으로 구운 칠면조 등이 즐비하게 차려져 있습니다.
중앙 홀에는 진짜 청동 레일로 장식한 바를 설치해 놓았고,
그 위에는 진과 각종 독주와 코디얼이 가득했습니다.

"김교보님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이웃에 산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개츠비씨의 파티죠. 벌써 술에 취했나요?"

"파티는 즐거우신가요?"

정원의 천막에서는 무도회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춤을 잘 추는 커플들이 구석에서 비틀거리면서도
우아하게 서로를 안고 춤을 추고 있습니다.
김교보님이 처음 왔을 때보다 흥겨워하는 소리는
한층 고조됩니다.
유명해보이는 테너 가수가 이탈리아어로 노래를 불렀고,
뒤이어 알토 가수가 재즈풍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김교보님은 낯이 익는군요. 혹시 전쟁 때 제3사단에 근무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개츠비입니다."

김교보님이 당황하자 남자가 사려 깊은 미소를 짓습니다.

"아시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주인 노릇을 제대로 못했군요."

김교보님은 그의 미소가 사려 깊은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영원히 변치 않을 듯한 확신을 내비치는, 평생 가도 네댓 번밖에는 만날 수 없는 보기 드문 미소였습니다.

"사실 김교보님께 어려운 부탁을 하나 드리려 합니다."

남자가 머뭇거리는 사이 집사가 급히 그에게 다가와 시카고에서 전화가 걸려왔다고 전합니다. 남자는 김교보님을 돌아보면서 고개를 살짝 숙이며 물러나려 합니다.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뵙지요."

김교보님이 부탁에 대해 다시 물어보자 남자가 곤란한 표정으로 김교보님에게 속삭입니다.

"내일 오후에 그 얘기를 듣게 될 겁니다. 김교보님의 여동생에 관한 이야기에요."

김교보님은 일어나 비행기의 뒷편으로 걸어갑니다.
식당칸과 객실 사이에는 두꺼운 커튼이 쳐져있고 커튼 안에서 희미한 재즈 음악이 들립니다.

"김교보님, 현재 시음하시는 칵테일은 체리 코디얼입니다. 더 자세한 설명을 원하시나요?"

김교보님은 비행기 객실에서 칵테일 잔을 들고
어리둥절하게 앉아있습니다.
파티도, 남자도, 한 여름밤의 꿈처럼 사라진 뒤입니다.

"뉴욕까지는 한참이 남았습니다. 가시는 동안 이 책을 읽어보세요."

승무원이 책을 내밀고 김교보님은 책의 제목을 보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직 귓가에 재즈 음악이 들리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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