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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6월 (JUNE) -중앙일보와 함께 매월 지식과 감동을 고루 갖춘 책을 엄선하여 추천합니다.

좋은 삶, 괜찮은 죽음을 위한 인생 가이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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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 주정뱅이

    안녕, 주정뱅이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제목과 작가 이름을 보는 순간, 드디어 올 게 왔다는 생각이 스치는 소설집이다. 책 말미 ‘작가의 말’에서 밝혀 놓았듯 저자 권여선(51)씨는 술자리라면 마다할 생각이 없는 소문난 애주가여서다. 가장 잘 아는 그래서 익숙한 얘기를 하겠다는 것일까.

기대 대로 소설집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에는 하나 같이 술 마시는 사람이나 술자리 풍경이 나온다. 맨 앞에 실린 단편 ‘봄밤’은 최소한으로 요약하면 알콜의존증이 지나쳐 요양원에 강제 구금되는 여자의 얘기다. 그 다음에 실린 ‘삼인행’은 이별 직전의 부부와 남자 동창, 세 친구가 1박 2일 동해안으로 여행을 떠나 술 마시고 싸우다 다시 술 마시는 이야기. ‘카메라’의 관희는 과도한 음주로 인해 필름 끊기는 현상이 거의 일상화된 듯한 인물이다.

소설집의 전체적인 색깔에 대해 생각을 다시 하게 되는 건 ‘이모’를 읽으면서다. 갓 결혼한 ‘나’는 쿨한 시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그보다 더 쿨한 시이모(시어머니의 언니) 병문안을 간다. 시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졸지에 가장 역할을 떠맡은 시이모는 평생 시할머니를 모셨고, 나의 시어머니를 포함해 동생들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그러느라 결혼도 하지 못하고 혼자 사는데도 신세 한탄을 하거나 누구를 원망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한데 덜컥 췌장암 진단을 받고 결국 세 달만에 세상을 뜬다.

물론 이 작품에도 술 마시는 장면은 나온다. 마지막에 시할머니를 뿌리치고 독립해 혼자 살게 된 시이모는 규칙적으로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일요일 밤이면 맛있는 안주를 만들어 소주를 한 병씩 마신다. 어쩌면 생애 최초, 최소한의 사치인 셈이다. 소설은 죽기 전 시이모가 내게 털어 놓은 얘기를 통해 그의 삶을 한 조각씩 복원한다.

그 조각들의 조합을 통해 드러나는 진실은 깔끔하고 합리적으로만 보였던 시이모가 실은 타인에게 끔찍한 해코지를 한 적이 있다는 것. 늘 빼았겼을 뿐 자기 걸 챙기는 데는 서툴렀던 시이모가 내면에 차곡차곡 분노를 쌓아 올리고 있었던 거다.

의식을 잃기 직전 시이모는 말한다. 그 고약한 행동 덕분에 자신이 살았다고. 그런데 그 고약함이 뭔지 모르겠다고. 인간은 결국 내가 고통받는 만큼 남에게 앙갚음해야 살 수 있는 존재일까. 아무런 잘못이 없는 타인에게 모진 짓을 한 더러운 존재라는 자의식, 그 자포자기식 독한 감정 같은 게 있어야 인생을 살 수 있는 걸까.

이런 묵직한 질문에 주목할 때 소설집 제목은 달리 보인다. 주정뱅이는 핑계일 뿐, 정작 소설에서 하고 싶었던 얘기는 우리의 민낯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진실의 순간들, 그 곤혹스러운 시간들을 당신은 어떻게 견뎌내 왔느냐는 질문일 거다. 안녕 주정뱅이가 아니라 잘들 살고 있느냐는 문안인 셈이다.

‘카메라’는 감당하기 벅찬 인생의 진실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쏘아 보는 강렬한 눈빛만으로 얼마든지 전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역광’과 맨 마지막에 실린 ‘층’은 마지막 반전을 통해 작품 전체가 살아나는 환상적 색채의 작품들. ‘실내화 한켤레’는 제목 대로, 읽고 나면 실내화의 이미지가 오롯이 남는다.

삶이 건조하다고 느껴질 때 다시 읽고 싶은 소설집이다.

-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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