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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12월 (DECEMBER) -중앙일보와 함께 매월 지식과 감동을 고루 갖춘 책을 엄선하여 추천합니다.

이달의책 (교보문고-중앙일보 공동 선정) - 취향저격 가을, 가슴을 설레게 하는 취향저격 에세이 3권 10% 특별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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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일이다. 친한 이스라엘 친구가 책 한 권에 빠져 읽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무슨 책인지 물어보았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란다. 유발 누구?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영국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예루살렘 히브리대 젊은 역사학 교수. 전 세계 몇 명 안 될 전문가나 관심 있어 할 『중세기 기사들의 특수부대 전략』이란 책을 냈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대중을 위한 ‘큰 역사책’ 한 권을 쓴 것이었다. 이스라엘에서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된 책. 친구 역시 단골로 가는 미장원 주인이 추천해 읽고 있다고 했다.

미장원 주인이 대학교수에게 추천할 만한 책. 궁금해졌다. 히브리어를 읽지 못하니 번역판을 구해야 했다. 아직 영문 버전은 없었고, 겨우 얼마 전 출간된 독일어 버전 전자책을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밤을 샜다. 이런 책은 처음이었다. 135억 년 전 빅뱅으로 시작해 인공지능으로 끝나는. 이것이 과연 역사책일까. 우리는 역사를 고대·중세기·르네상스·근대, 그리고 또 역시 동양·서양·중동 역사로 나누고 쪼개는 것에 적응해 버렸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와 135억 년 전 빅뱅 간에는 단 1초의 갭도 없었다. 모든 역사는 연결이고 인과관계다. 하지만 무조건 우주의 역사를 나열해 놓았다면 미장원 주인이 추천했을 리 없다.

하라리의 ‘큰 역사책’은 큰 질문 하나를 대답하려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무시무시한 육식동물을 피해 나무 위에 숨죽이고 있었던 인간. 우리는 어떻게 지구를 정복하게 된 것인가. 물론 기하급수적으로 커진 뇌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호모 사피엔스와 가장 가까운 친척인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사피엔스보다 더 건장하고, 더 큰 뇌를 가진 그들은 먼저 동아프리카를 떠나 유럽과 아시아를 개척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피엔스가 도착하자 그들은 멸종했다. 단순히 멸종한 것이 아니라 사피엔스에게 식량이 되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식인종의 후손인 것이다.

더 큰 뇌를 가졌다면, 적어도 사피엔스와 비슷한 수준의 지능을 가졌을 네안데르탈인들. 왜 그들은 사라지고 우리가 남은 걸까.

하라리는 사피엔스만 가지고 있는 ‘창조적 정신병’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삶의 목표는 세대간의 유전자 전파다. 적어도 진화적으로는 말이다. 나와 동일한 50%의 유전 형질을 가진 형제·부모·자식들. 그들과 음식을 나누고, 그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행동의 유일한 동력이 유전자라면, 우리는 여전히 몇 명 안 되는 가족과 친척으로 구성된 사회에 살고 있을 것이다. 아니, 이미 오래 전 우리보다 더 힘센 네안데르탈인들에게 먹혀버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연한 돌연변이 덕분이었을까. 사피엔스들은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시작했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기 시작했다. 원숭이에게 천둥은 단순한 천둥이지만, 사피엔스는 천둥을 내리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상상한다. 네안데르탈인에게 타인은 단순한 타인이지만, 사피엔스는 수백 만 명의 타인을 같은 민족, 같은 국가, 같은 종교라는 허상 아래 묶어 버린다. 보이지 않는 전통·종교·이데올로기 덕분에 사피엔스는 거대한 초집단을 만들었고, 여전히 보이는 것만을 믿기에 작은 집단에 살고 있던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킬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있는 사피엔스만의 ‘정신병’ 덕분에 우리는 피라미드를 짓고, 제국을 세우고, 증기기관차를 발명했다. 달에 사피엔스를 보냈고, 이제 우리의 상상력은 스스로 지능과 상상력을 가진 인공지능을 만들고 있다.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동물로 시작한 사피엔스는 서서히 자신의 상상에만 존재하던 신이 되고 있다고 하라리는 주장한다.

드디어 우리말로 번역된 『사피엔스』. 먹방과 헬조선과 여의도 정치를 인간의 모든 것이라고 착각할 수 있는 2015년 대한민국 국민에게 정말 강하게 추천하고 싶다.

- 김대식 KAIST 전기 및 전자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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