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걸을까 미얀 미얀 미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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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를 바꿀 지도 모른다”
잠들어 있던 내 공감능력을 깨워 ‘남들도 똑같이 기분 나쁠 텐데’라고 생각해보게끔 도와 준, 여행에서 마주친 모든 ‘남들’에게 감사한다. 그 ‘남들’이 아낌없이 베푸는 호의를 입으면서 비로소 ‘경제적으로 값싼’ 여행지를 ‘전체적으로 값싸게’ 취급하던 나의 태도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 ‘남들’과 교류하며 낯선 문화에 호기심을 품고 감탄하는 이면에 우월한 관찰자로서 대상을 응시하는 나의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만남들이 없었더라면 ‘쉬려고 여행 왔는데 피곤하게시리 ‘그런 데’까지 신경 써야 해?’ 하고 모든 걸 무감각하게 흘려보내고 말았을 테다.
‘그런가보다’하고 건성건성 넘어가거나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하며 쉬이 고개 돌릴 일에 어느 순간부터 왜 그런 거냐며 궁금해 하고 자꾸 참견하려 든다. 미얀마를 제대로 공부한 전문가도, 미얀마에 십 수 년 거주해 본 적도, 미얀마를 종단횡단하며 두루두루 살핀 사람도 아닌 주제에 감히 이 나라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보태보는 것도 결국 그 때문인 거 같다. “이젠 마냥 남 얘기 같지만은 않아져서”. 좋은 친구를 사귄 기분이다. 너를 알게 돼서 기뻐, 미얀마. 언젠가 우리 꼭 다시 만나.
작가정보
가능한 한 자주 여행을 떠난다. 낯선 세상과 부딪힐 때 받는 새로운 자극이 내 안의 뻔한 틀을 깨뜨려, 이전보다 조금은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여행서적 <그린란드 지구의 중심의 걷다>, 아동서적 <눈과 얼음의 도시 누크>, 학교 밖 청소년 인터뷰 모음집 <어디로든, 무엇이든>을 냈다. 가까운 시일 내 이루고 싶은 목표는 여행책 두 권 마저 쓰기, 먼 목표 중 하나는 겨울에 그린란드로 여행 가기이다.
목차
- 들어가는 말
‘동남아 아무데나’에서 ‘더 알고 싶은 나라’로, 미얀마
01 양곤 (Yangon)
심상치 않은 출발
여전히 펄떡이는 옛 수도
가볍고도 무거운 순환열차 여행
아는 만큼만 보는 현지영화 관람기
쉐다곤 파고다와 ‘불교 판타지아’
02 삐이 (Pyay)
여행은 사람으로 완성된다
죽음의 유네스코 라이딩 그리고 인디아나 존스
03 바간 (Bagan)
이토록 찬란하고 불편한
우리 일생에 단 한 번, ‘신쀼’
04 인레 호수 (Inle Lake)
트루먼쇼까지는 아니어서 다행이야
까렌족에서 로힝야족까지
비욘드 랭군, 애프터 히어로
05 만달레이 & 몽유와 (Mandalay & Monywa)
크고, 높고, 많고, 가난한 부처님들
나가는 말
너를 알게 돼서 기뻐, 미얀마
책 속으로
[에필로그 중에서]
‘동남아 아무데나’에서
‘더 알고 싶은 나라’로, 미안마
지긋지긋했다. 영하 20도 미친 겨울 날씨도, 아등바등 그 추위 뚫고 출퇴근해 악쓰며 일하는 것도. 다 지긋지긋해서 일 그만두자마자 따땃한 데로 잠깐 도망갔다 와야겠다고 맘먹었다. 근데 백수 되면 돈이 별로 없으니까 싼 데로 가야겠지? 아무래도 동남아가 쌀 텐데, 동남아 어디로 갈까? 거기까지 가서 한국 사람들이랑 바글바글 부대끼긴 싫은데 어느 나라가 좀 조용하려나?
그런 생각으로 대충 찾아보고 정한 목적지가 ‘미얀마’였다. 한국인들 여행 후기가 다른 동남아 국가들에 비해 그리 많지 않은 곳. 나라 자체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언젠가 TV에서 신비로운 불탑들을 배경으로 장엄하게 해 뜨는 모습을 본 정도였고 기대치도 딱 고만큼이었다. 일출 배경으로 인증샷 좀 찍어주고 열대과일이나 실컷 먹으면서 세월아네월아 ‘힐링’하고 와야지.
실제로 여행 가서 그리 지냈다. 느지막이 일어나 목적지 없이 슬렁슬렁 돌아다니다가 해 지면 호스텔로 돌아가 과일을 안주로 맥주를 홀짝이는 하루하루였다. 마주치는 이국적인 풍광에 “와~ 신기하다~”라며 사진 몇 장 찍지만 정작 그게 뭔지 잘 모르고 지나쳐버리는 게 보통이었다. 무슨 상관이야. 지금 걷고 있는 이 거리가 태국이든, 라오스이든 아무렴 어때. ‘싸고 따뜻한 동남아 아무데나’를 찾아 여기로 온 내가 미얀마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딱히 없었고 그러므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 나라를 무신경하게 여행할 예정이었다. 한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 ‘그 한 마디’를 듣기 전까지는.
“여기 사람들 영어가 잘 안 통해서 다니는데 너무 불편해요. 영국 식민지였다면서 그런 거 치곤 영어가 너무 안 되지 않아요?”
아, 이 한 마디. 이게 내 안의 어떤 스위치를 눌렀다. 우리나라에 관광 온 어떤 외국인이 “일본 식민지였다는데 그런 거 치곤 여기 사람들 일본어 너무 못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상상됐다. 상상은 비약을 거듭해 “한국에서 막상 일본어가 잘 안 통해서 불편하시죠?”라며 관광객에게 양해를 구하는 한국 사람의 모습까지 떠올랐다. 순간 피가 거꾸로 치솟는 이 기분! 그런데 답답한 것은, 잘못된 발언이라는 느낌적인 느낌은 있으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 말씀은 적절하지 않아욧!’이라며 지적할 ‘근거’를 나도 잘 모르겠는 거다. 기껏해야 ‘똑같이 식민지배 받은 역사가 있는 나라 출신으로서 어떻게 그런 코멘트를 할 수 있어욧!’하며 감정적으로 비난하는 정도이지 상대를 설득할 만한 한 끗이 없어 그저 화만 났다.
도대체 뭐라고 반박해야 했을까 - 답답한 마음에 남은 여행 동안 미얀마에 대해 조금씩 공부를 시작했다. ‘여기는 어떤 나라인가, 어떤 역사를 거쳐 오늘날까지 왔나, 식민지배는 어떠했나, 지금 이 곳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가’... 관련 내용을 찾아보고 현지인들,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같이 한국과의 공통점을 찾으며 감정이입 하는 순간이 늘어나고 자연스레 나의 시각도 조금씩 바뀌어갔다. 언제부터인지 마주치는 사람들, 풍경들 하나하나가 살갑게 다가오는 탓에 더는 이 곳을 단순 ‘후진국’ 취급하며 무감각하게 다닐 수 없게 됐다. ‘동남아 아무 나라’가 아니라 ‘미얀마’가 궁금해졌고, ‘신비로운 동양’으로 미화된 이미지가 아닌 ‘진짜’ 이 곳의 모습은 무엇인지 보고 싶어졌다. 지난 여정 역시, 이전과는 다른 관점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며 톺아보게 됐다.
아직 답을 찾지는 못했다. 공부는 계속 한답시고 하는데 그저 이 나라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만 늘어나는 기분이다. 전과 비교해 많이 나아졌다 자위하지만 여전히 이 곳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는 소위 우월감이 잔존한다는 걸 시시때때로 느낀다. 아직 한참 멀었다 - 그럼에도, 이 글을 쓰고 있다. 남들에게 읽힌다는 전제 아래 차분히 적어 내려가다 보면 지금껏 머릿속으로만 찧고 까분 생각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고 또 잘못되거나 허술한 부분을 걸러내 보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아가 기존에 나와 있는 미얀마에 관한 여러 좋은 글들에 덧붙여 또 하나의 다른 시각, 다른 경험, 다른 고민들을 공유함으로써 제 나름의 기여 역시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생각 없이 떠난 여행에 생각을 끼얹어 돌아왔다. 비어있던 그만큼 무언가는 담아왔다고, 믿는다.
기본정보
ISBN | 9788962463897 |
---|---|
발행(출시)일자 | 2019년 03월 18일 |
쪽수 | 184쪽 |
크기 |
176 * 227
* 14
mm
/ 393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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