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패러다임
해외주문/바로드림/제휴사주문/업체배송건의 경우 1+1 증정상품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패키지
북카드
키워드 Pick
키워드 Pick 안내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다른 연관 도서를 다양하게 찾아 볼 수 있는 서비스로, 클릭 시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한 다양한 책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키워드는 최근 많이 찾는 순으로 정렬됩니다.
수상내역/미디어추천
작가정보
저자 황병태 黃秉泰는 1935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상과대 경제학과 재학 중 제7회 고등고시(외무과)에 합격, 졸업 후 외무부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상공부를 거쳐 경제기획원 공공차관과장?경제협력국장?통계국장?운영차관보 등을 역임했다. 경제기획원 공공차관과장 시절 경제동향보고회의에서 브리핑을 한 것이 계기가 돼 이후 12년간 박정희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면서 경제개발의 주요 고비마다 박 대통령의 특명을 수행했다. 1974년 운영차관보를 끝으로 경제기획원을 떠난 후 미(美) 하버드대 케네디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버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 귀국 후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및 총장을 지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강남 갑)에 당선된 후 3당 합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김영삼 정부 출범 후에는 주중(駐中)한국대사, 제15대 국회의원(경북 문경-예천),국회재정경제위원장을 역임했다. 이후 대구한의대학교 총장?명예총장 등을 지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경제개발 과정에 참여했던 경험과 국회의원?주중대사 시절의 체험 등을 바탕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및 정치발전 모델을 학문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해 왔다.
목차
- 제1장- 박정희 대통령과의 첫 악수
경제동향 보고회의 브리핑/ 장기영 부총리의 배려/ 청와대에서의 호출/ 순조롭지 못했던 외자업무/ 유솜(USOM), 차관업무 창구/ 상업차관에 대한 우려/ 청와대의 보고 채널
제2장- 국무성의 AID차관
외무부에서 경제부처로/ 늦춰지던 국제개발처 차관/ 정인영 씨에 대한 기억/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외채(外債) 망국론/ 박태준 씨와의 마찰/ 박 대통령의 결단
제3장- 마찰을 이겨내고
포드자동차의 선물/ 국제개발처의 자기반성/ 박 대통령 주재의 실무대책회의/ 얼떨결에 떠난 워싱턴 출장/ 아침마다 국무성 현관에
제4장- 걸프사 특명
걸프사의 서울 지사장/ 특명전권대사 직함으로/ 화이트 회장과의 면담/ 걸프사의 비료공장 투자/ 시급했던 비료공장 건설/ 이병철 회장과의 충돌/ 곤경에 처한 제3비료/ 국회 비준까지 올라갔던 민간차관/ 호텔사업에까지 관심을 보였으나/ 윤세영 회장과의 인연
제5장- 석유화학 산업에 들어서다
다우 케미칼의 시장 타진/ 아서 리틀의 컨설팅 보고서/ 박인천 회장과의 만남/ 여수로 낙착된 제2 정유공장/ 칼텍스의 투자 결정/ 합작 파트너로 선정된 럭키화학/ 청와대의 결정에 맞선 장기영 부총리/ 호남정유의 출범
제6장- 소양강 댐을 둘러싼 논란
고댐이냐, 저댐이냐/ 저녁 회식을 겸한 긴급회의/ 장기영 부총리와 김학렬 경제수석/ 세계은행과의 접촉/ 경부고속로로 아이디어
제7장- 종합제철소 준비작업
제철소 사업계획은 마련됐으나/ 밴플리트 사절단/ 미국의 반대에 부딪혀/ 박 대통령의 서독 방문/ 일본 통산성의 아카사와 국장/ ‘세이의 법칙’을 내세워/ 신격호 회장과의 접촉/ 미국의 노골적인 견제/ 공전하던 IECOK 회의
제8장- 종합제철소로 인한 갈등
비인, 삼천포, 그리고 울산/ 박 대통령의 드라이브 외출/ 박 대통령이 연출한 단막극/ 추석날로 잡혀진 포항제철 기공식/ 청와대로부터의 눈총/ 박 대통령의 호통/ 결국 경질당한 장기영 부총리/ 통계국장으로의 전보/ 결국은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제9장- 중공업에 눈 돌리다
관계부처 대책회의/ 풍산금속 유찬우 회장/ 박 대통령의 설득/ 무너져버린 화약산업 독점체제
제10장- 새마을 사업, 미국 정부와의 마찰
맥나마라의 조언/ 새마을 운동이 시작됐으나/ 미국 정부의 오해/ 다시 떨어진 워싱턴 출장명령/ 국가예산에서 받은 개인 격려금
제11장- ‘박정희 패러다임’과 경제개발
경제개발을 공업화 투자에서 출발했고 이를 근간으로 삼았다/ 자본과 기술을 외국으로부터 조달하는 개방경제 전략을 선택했다/ 창업자적 입장에서 경제개발의 모든 과정을 지휘·감독하였다/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과감하게 받아들였다/ 경제개발의 주체를 민간 자유기업으로 설정하였다/ 경제개발 과정에서 개발의 소프트웨어를 정착시켰다/ 단계별 경제개발 마지막 단계는 민주적 근대국가 체제
제12장 - 박정희 패러다임과 정치발전
쿠데타냐 혁명이냐
책 속으로
ㆍ 커피를 마시면서 몇 마디 더 자나가듯이 의례적인 얘기를 던지던 박 대통령은 나에게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황 과장, 지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서 내 옆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일을 해 줬으면 좋겠군.”
나는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두 귀가 멍멍했다. 무슨 뜻인지 새겨듣기가 어려웠다. 이를테면, 나를 청와대 비서처럼 생각하겠다는 뜻이었지만, 나로서는 그런 얘기를 들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나에게 계속 얘기를 이어나갔다. 앞으로 업무와 관련해 자신에게 보고할 일이 생기면 아무 때라도 비서실을 통해 연락을 하고 특히 자신의 수행비서인 신동관(申東寬)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도 무방하겠다는 얘기였다. <제1장- 박정희 대통령과의 첫 악수>
ㆍ 그러던 어느날, 박 대통령이 장 부총리와 나를 청와대로 불렀다. 역시 ‘외채 망국론’에 대한 얘기를 하려던 참이었다.
“오늘 신문을 봤더니 또 그 얘기가 나오던데, 도대체 제정신들 갖고 그렇게 떠들 수 있는 것인가. 거기에 너무 신경 쓸 일 없네.”
박 대통령은 “우리가 외채를 들여와 개인적으로 술 사먹고 떡 사먹었느냐”고까지 했다. 더 나아가 “국가 경제를 위해 공장을 지으려고 외채를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니 그런 쓸데없는 소리에 공연히 기죽지 말라”며 우리를 위로하기도 했다. <제2장- 미국 국무성의 AID 차관>
ㆍ “자네가 특명전권대사로 미국을 다녀오게나.”
… 뒤이어 이 실장이 박 대통령의 눈짓에 따라 붓과 벼루를 주섬주섬 책상 위에 늘어놓았다. 이날 진행될 일에 대해 미리 귀띔을 받고 있었다는 눈치였다.
박 대통령은 붓에 먹물을 묻히더니 옆에 펼쳐진 한지 위에 그대로 써내려갔다. …
“황병태 공공차관 과장.
우자(右者)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특명사절이므로 그에 준하는 예우를 하가 바란다.
대한민국 대통령 박정희”
대학노트 만한 크기의 종이에 한자와 한글로 씌어진 특명사절 임명장이었다. <제4장- 걸프사 특명>
ㆍ 그렇게 비료사업 추진 방안을 놓고 옥신각신하던 어느날이었다. 장 부총리가 부르기에 집무실로 들어갔더니 눈짓으로 회의실 옆방을 가리키며 “저 방으로 들어가 보라”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으나 그냥 “들어가 보라”는 한마디뿐이었다.
그 방에서 나를 기다리던 사람은 이병철 회장이었다. 장 부총리가 비료공장 때문에 입장이 난처해진 나머지 실무자인 나를 직접 대면시킨 것이었다.
“당신이 황 과장인가.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은 잘 알지만 너무 고집을 부려서야 되겠는가.”
그는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다그치듯 몰아세웠다. …
그러나 이 회장은 내 얘기를 다 듣고는 “자네와 도저히 얘기가 안 되겠구먼”이라며 불만스런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합의가 이뤄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내 입에서도 “그렇다면 직접 높은 데 말씀하시지 왜 저에게 찾아오셨느냐”며 반쯤은 짜증스런 반응이 튀어나왔다.
“이 사람아, 대통령께서 자네가 안 된다면 안 된다고 그러셨네. 다 자네가 만드는 게 아닌가.”
<제4장- 걸프사 특명>
ㆍ “요새 소양강 댐을 놓고 이러니 저러니 말들이 많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역시 그 얘기였다. …
다른 참석자들도 내 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긴장된 분위기였다. 나도 망설임 없이 답변을 해나갔다.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새로 지어지는 소양감 댐은 한강 수계에서 가장 높게 계획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홍수와 한발의 종합적인 관리를 위해서는 고댐 계획을 그대로 살려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기영 부총리가 내 입을 주시하고 있었지만 그 눈치를 살필 입장이 아니었다. 얼마 전, 나에게 소양강 댐에 발전설비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를 내려놓았던 그가 아닌가. 그러나 내 생각은 그게 아니었다. 그것을 박 대통령 앞에서 솔직 담백하게 그대로 말해버린 것이었다. …
이에 박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때, 황 국장 말이 맞는 것 아니냐”며 참석자들을 두루 둘러보았다. 지금이야말로 확실히 결론을 내리겠다는 투였다. 관계부처 장관들이 모두 참석한 자리였던 만큼 결론을 내리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이를테면, 청어알 요리를 빌미로 갑자기 소집된 소양강 댐 대책회의였던 셈이다. <제6장-소양강 댐을 둘러싼 논란>
출판사 서평
체험을 바탕으로 박정희의 경제-정치발전 모델을 학문적으로 정립
- ‘박정희 패러다임’은 전 세계 개도국 발전의 이상형(Ideal Type)
대선(大選)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가고 다음 대통령 선거가 다가올 때면, 예외 없이 역대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재(再)평가가 나오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다시 주목받곤 했다.
올해는 특히 5ㆍ16 50주년이 되는 해인데다가,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朴槿惠) 전 한나라당 대표가 유력한 대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어서,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5월 5ㆍ16 50주년을 맞아 한국정당학회·조선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조사대상자의 82.6%가 박 대통령이 ‘국가발전에 긍정적(매우 긍정적 42.9%, 다소 긍정적 39.7%)’이었다고 평가했다. 심지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응답자의 53.5%, 자신을 진보라고 답한 응답자의 76.5%도 박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평가는 엇갈린다. ‘경제발전’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92.1%로 가장 높았던 반면, ‘정치민주화’에 대해서는 긍정 평가가 38.3%에 불과했고 56.1%가 부정적이었다고 답했다.
국민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발전 업적은 인정하면서도, 그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경제기획원 운영차관보를 지냈던 황병태(黃秉泰) 전 주중(駐中)대사는 이 책 《박정희 패러다임 - 경제기획원 과장이 본 박정희 대통령》에서 이러한 통념에 반기를 든다.
자유시장경제와 대외개방에 바탕을 둔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정책이 경제성장 뿐 아니라, 정치민주화까지 가져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자유시장경제체제와 개방체제에 기초해 경제개발과 나라세우기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은 자체의 발전 모멘텀에 따라 자연스럽게 민주화 단계로 넘어가게 되어 있었다”면서, 박정희 대통령 역시 이러한 추이를 이해하고 있었다고 역설한다.
다만 “경제개발 단계의 전이(轉移) 속도가 무대 설치자인 박 대통령의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으며, 경제집중화에 너무 매달린 나머지 경제 이외의 사회세력 등의 요구와 흐름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고 늦춰보려고 한데서 데서 박 대통령의 비극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저자는 경제기획원 공공차관과장 시절 월례경제동향회의에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브리핑을 한 것이 인연이 되어 이후 12년간 박정희 대통령을 가까이 지켜볼 수 있었다. 경제협력국장, 운영차관보 등을 거치는 동안 저자는 몸은 경제기획원에 있으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박정희 대통령의 ‘숨은 경제비서관’ 내지 ‘경제특사’로 활약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제3공화국 시절의 외자유치는 물론, 소양감댐, 포항종합제철, 중화학공업 건설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처럼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리더십을 곁에서 바라본 생생한 체험에 미(美) 버클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정치학자의 통찰력, 국회의원으로 현실정치에 참여하고 주중대사 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발전 모델을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중국 지도부를 접촉했던 경험이 더해진다. 그 결과물이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발전과 정치발전 간의 상관관계를 치밀하게 분석한 이 책이다.
저자는 “박대통령의 경제개발 모델은 개발 초기에는 정부가 경제를 인도하지만 경제와 시장이 자력으로 성장 발전하게 되면 정부권력은 시장의 민간경제와 단층구조에서 통합하는 자유민주주의적 경제체제로 자연스럽게 변모하는 상황을 저지하는 통치 제동 장치가 없는 점에서 사회주의적 통치체제 하에서 상층의 정치 지배체제 밑에서 경제만 시장주의 경제체제에로 성장 발전하는 이중구조적 덩샤오핑 개발 모델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이렇게 볼 때 박대통령의 경제 개발 모델은 특이(unique)한 모델이며 오늘의 대부분의 신생산업 국가들의 개발모델의 하나의 이상형(Ideal Type)이 되고 있다”면서 “오늘날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모든 개발국가들의 경제개발의 벤치마킹이 되리 만큼 박대통령의 자유주의 시장 경제 구축의 개발전략은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나 베이징 컨센서스(Beijing Consensus)와 같은 맥락의 서울 컨센서스(Seoul Consensus)로 자리잡고 있다. 이 일련의 과정을 망라하는 개발 개념들은 박정희 패러다임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책속으로 추가>
ㆍ 박 대통령은 나에게 귀를 가까이 대라는 시늉을 했다. 본인의 목소리도 한층 낮아진 듯했다.
“자네, 나하고 연극 좀 하세.”
갑자기 무슨 연극을 하자는 것일까. 나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박 대통령은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나에게 얘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그달의 경제동향 보고회가 끝나면 자신이 나를 앞으로 불러 세울 터이니 이 입지 문제에 대해 서슴없이 발표하도록 하라는 주문이었다. 이를테면, 그것이 연극이었다. …
브리핑을 맡은 이희일(李熺逸) 기획국장이 전반적인 경제 움직임에 대한 보고를 마치고 거의 마무리를 해야 할 즈음이었다. 그때 박정희 대통령이 고개를 뒤쪽으로 돌리며 “기획원의 황병태 국장, 여기에 와 있는가”라며 나를 큰 목소리로 호명했다. …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장 부총리가 먼저 “예, 여기 있습니다”라고 답변을 했고, 그에 따라 박 대통령은 “앞으로 나오라”며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종합제철소 계획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고 묻고는, “그런데 입지로는 어디가 좋으냐”며 곧바로 나에게 답변을 요구했다. <제8장- 종합제철소로 인한 갈등>
ㆍ 박 대통령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태 부총리 쪽을 돌아보며 말을 꺼냈다. “황 차관보가 이번에 큰일을 해냈으니 뭘 좀 해줘야 되겠다”는 것이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미루어 그냥 지나치는 공치사는 아닌 것 같았다. …
태 부총리가 “어떤 식으로 해야 할까요”라고 되묻자 박 대통령은 대번에 “이번에는 격려금을 주는 게 어떻겠느냐”며 오히려 태 부총리의 반응을 살폈다. 태 부총리는 단박에 어리둥절해졌다. 그가 다시 “돈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었고, 박 대통령은 재차 “태 부총리의 주머닛돈으로 주라는 것이 아니니까 정부 예산에서 주는 방법을 생각해 보라”고 했다.
기획원의 예비비에서 1억원 정도 주도록 하라는 얘기까지 덧붙여졌다. <제10장- 새마을 사업, 미국 정부와의 마찰>
ㆍ 1960년대의 한국 경제는 1인당 국민소득(GNP)이 1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농촌경제 체제로서 보릿고개를 넘기기 어려운 빈곤한 상태에 있었다. 이런 취약한 기반에서 근대화를 향한 경제개발을 계획하고 실천하려는 출발점에서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본원적 자본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에 있었다. 국가 내부적으로 농민경제의 자력갱생을 통한 개발방식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다른 나라의 축적된 자본과 기술을 빌려서 활용하면서 개발할 것이냐의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있었다.
여기서 박 대통령은 당시 풍미하던 마르크스의 농민희생의 본원적 자본축적 개발이론을 거부하고 공업 개발투자와 기술을 외국으로부터 차관이나 직접투자를 받아 활용함으로써 국민의 어느 계층도 희생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추진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당시로는 어떠한 개발도상국가도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이었다. 한편으로는 박 대통령의 승부사적 결단이었다. …
박 대통령의 승부사적 결단은 모든 분야에 앞서 공업개발을 먼저 일으키고 그 파급효과로 다른 분야를 순차적으로 이끌어간다는 ‘불균형성장 전략’에서 더욱 빛난다. 농촌개발에 앞서 먼저 기간산업 시설을 확충하고 여기서 생기는 고용과 생산, 그리고 소득효과를 주변으로 점차 확대시킨다는 개발계획은 그때만 해도 상당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며 외국의 학계에서도 쉽게 이해될 수 없었었다.
그러나 이 개발전략은 1970년대에 들어와 덩샤오핑의 선부론(先富論)이 중국의 개방·개혁 전략으로 안착되면서 후진국 개발의 일반론으로서 널리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제11장 - 박정희패러다임과 경제개발>
ㆍ 박 대통령 집권기간의 마지막 경제부총리였던 남덕우(南悳祐) 씨의 증언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유신 말기에 그에게 “이제 유신체제가 한계에 다다라 다음 단계인 민주사회 건설에 들어가야만 한다”는 의사를 밝혔고, 오랫동안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정렴(金正濂) 씨도 최근 자신의 자서전에서 “박 대통령이 유신시대를 마감하고 김종필과 김영삼, 그리고 김대중 등 정치인들이 민주적 선거에서 경쟁하는 민주국가로 옮겨져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경제건설의 마지막 단계로 민주사회 정착을 상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이러한 민주화 작업에 시동을 걸지도 못한 채 비극적인 마감을 하게 되었지만 경제개발의 성공을 통해 민주사회 건설의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튼튼히 다져놓았다는 점만큼은 분명히 인정할 필요가 있다. 맹자가 말한 대로 “모든 것이 다 준비되었던(萬物皆備)” 상태였다.
그 덕분에 한국이 세계사에서도 드물게 제2차대전 이후 개발도상국 가운데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모범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산업화의 성공으로 근대적 국가건설(state building)이 완성되었고, 여기에 다시 민주화가 이룩됨으로써 현대적 민주국가(democratic nation-state)가 완성되었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에 이은 ‘한국의 비약’은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 철학과 비전, 그리고 전략과 관리로써 결실하게 되었다. <제12장 - 박정희 패러다임과 정치발전>
기본정보
ISBN | 9788991491748 |
---|---|
발행(출시)일자 | 2011년 09월 30일 |
쪽수 | 327쪽 |
크기 |
148 * 210
mm
|
총권수 | 1권 |
Klover
e교환권은 적립 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리워드는 작성 후 다음 날 제공되며, 발송 전 작성 시 발송 완료 후 익일 제공됩니다.
리워드는 리뷰 종류별로 구매한 아이디당 한 상품에 최초 1회 작성 건들에 대해서만 제공됩니다.
판매가 1,000원 미만 도서의 경우 리워드 지급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일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불편을 끼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래에 해당하는 Klover 리뷰는 별도의 통보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도서나 타인에 대해 근거 없이 비방을 하거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리뷰
- 도서와 무관한 내용의 리뷰
- 인신공격이나 욕설, 비속어, 혐오발언이 개재된 리뷰
- 의성어나 의태어 등 내용의 의미가 없는 리뷰
리뷰는 1인이 중복으로 작성하실 수는 있지만, 평점계산은 가장 최근에 남긴 1건의 리뷰만 반영됩니다.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200원 적립
문장수집
e교환권은 적립 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리워드는 작성 후 다음 날 제공되며, 발송 전 작성 시 발송 완료 후 익일 제공됩니다.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주문취소/반품/절판/품절 시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