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사회공헌의 리모델링 그리고 시장변화에 따른 CSR 낙관론의 함정
기업은 저절로 착해지지 않는다

경제민주화, 윤리경영? 기업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기부, 자원봉사, 친환경, 윤리경영, 동반성장… 착한 기업만이 살아남고, 투자를 받을 수 있고, 경영실적을 쌓을 수 있다는 주장이 대세다. 소비자들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고, 투자자들은 착한 기업만 투자하겠다고 선언한다. CEO는 기업사회책임CSR을 경영원칙으로 삼을 것이라고 발표한다.
우리가 기다려주기만 한다면 기업은 점점 더 착해질 것만 같다. 사실일까? 우리는 이런 낙관적인 전망만을 믿고 기업의 고삐를 풀어놓아도 괜찮을까?

착한 기업의 허와 실

‘착한 기업’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은 시대다. 기업사회공헌을 통해 꿈을 찾게 된 청소년들의 이야기에서, 혹은 따뜻한 겨울을 보내게 된 저소득층 이웃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CSR’이라는 낯선 용어가 자주 오르내린다. 언론엔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고 사회공헌을 하지 않는 기업들은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는 주장이 자주 오르내린다. 그리고 이런 CSR이 이슈로 소개될 때면 늘 거론되는 기업들이 유한킴벌리, 팀버랜드, 바디샵과 같은 소위 ‘착한 기업’들이다. 유한킴벌리는 국내 최장수 사회공헌 캠페인 중 하나인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를 통해 환경친화적인 기업이미지를 구축해왔고, 팀버랜드는 모범적이고 선도적인 사내 자원봉사 지원프로그램으로, 화장품 회사인 바디샵은 제품개발 과정에서 동물실험을 배제해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쌓아왔다. 이들 기업은 ‘기업이 점점 착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 사례로 거론된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 기업들을 보라. CSR의 중요성을 먼저 깨닫고 이를 경영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니까 이익도 얻고 있다. 이제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이 물결에 동참할 것이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다. 너희 기업도 빨리 동참하라!”
단순히 불이익을 최소화 하는 게 아니라 CSR을 통해 이익이 더 커진다는 주장도 있다.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CSR을 추진해야 한다는 전략적 CSR이나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분야에서 혁신을 하자는 CSV(Creating Shared Value)와 같은 개념들의 도입이다.
발 빠른 기업들이 이런 개념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현상도 증거로 제시된다. 이익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기업들이 지속가능하게 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해 스스로 사회적 책임을 이행할 것이라는 주장들이다. 불황에 접어들면서 기업들이 기부금을 줄여나가고 있는 현실에서도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논의되는 것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만이 결국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업들이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다”는 낙관적인 전망에 그친다. 과연 기업은 기다려주기만 하면 알아서 착한 기업으로 환골탈태할까?

시간만 주면 기업이 알아서 착해진다고?

이 책은 한 마디로 “기업이 착해질 수밖에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주장은 과장되었다고 말한다. 기업은 절대 스스로 착해질 수 없다고 말한다. 그 증거는 많다. CSR의 선두기업 중 하나인 롯데와 홈플러스는 골목상권 진입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았고, 윤리경영을 선언했던 엔론은 회계부정을 저질렀다. CSR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한다는 삼성전자는 노동자 자살사건이나 백혈병 관련 문제들로, SKT는 고객정보 유출이나 요금제 담합과 같은 이슈들로 인해 자주 비판을 받는다. 세계 최고의 친환경 기업으로 알려졌던 BP는 부실한 안전대책으로 멕시코만 원유유출 사건을 일으켰다. 이익극대화 앞에서 CSR은 무시되기 일쑤였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착해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의 근거는 소비자의 변화, 투자자의 변화, CEO의 변화, 임직원의 변화, 강화되는 국제공조 등 5가지 경영환경이 변했다는 데 있다. 이것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이 책은 그런 시각이 얼마나 과장되고 지나친 낙관적 시각에서 나온 것인지를 세밀한 논리와 증거로 반박한다. 기업은 그냥 내버려두면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기업이 착해지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의 CSR 환경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통찰을 통해 촘촘하게 정책을 만들어나가는 정부의 역할과, 시민사회의 사회적 압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구체적 사례와 함께 제시한다. CSR의 주역은 바로 정부와 그 정부를 선출한 시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업이 이만큼이라도 착해질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온 것은 기업을 둘러싼 규제들이었고, 그 규제들은 우리 사회의 끊임없는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환경 관련법규가 어느 정도 정비되고, 노동법이 제 기능을 찾아가고,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법률이 제대로 정비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치?사회적 노력들이 필요했었는지 생각해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나마 기업이 변해온 것은 기업 스스로 착해지고자 해서가 아니라 기업이 조금이라도 더 사회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만들고자 했던 수많은 사회적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갈파한다. 따라서 지금껏 기업이 착해지게끔 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던 것처럼 기업이 더 착해지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그런 노력에 대한 이상론적인 공허한 주장이 아닌 실제적인 수단들에 대해 세밀하게 짚어간다. 지금처럼 ‘CSR을 하지 않는 기업은 도태될 것’이라거나 ‘CSR이 기업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식의 낙관적인 태도로 접근한다면 기업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는 CSR의 현장 전문가로서의 확신 때문이다.

한때의 유행으로 끝날 수도 있는 CSR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다가 사라져간 경영기법들은 수도 없이 많다. 하다못해 글로벌 기업이 되어야 한다며 국제적인 업무와 관계도 없이 외국인 직원을 뽑고, 직원회의를 영어로 진행하도록 강제해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결정을 했었던 적도 있었다. 이 책은 글로벌 기업화, CRM 등 다양한 기업경영의 개념들이 유행을 타고 모든 기업에게 필요한 것처럼 인식되다가 거품이 빠졌던 것처럼 CSR도 그런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SR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문제다. 그리고 기업 역시 쉽게 무시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하다고 짚는다. 일단 사회적 요구가 높아졌고, 사회구성원들의 CSR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제 기업들도 그저 법을 잘 지키고 환경파괴를 하지 않는 수준의 CSR로는 사회구성원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 지금은 정보가 빛만큼이나 빠르게 확산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즉 최대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제대로 사회에 봉사할 수 있도록 제어할 수 있는 고삐를 정부와 시민사회가 쥐게 되었다는 말이 된다. 해답은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정부는 기업을 CSR 이행에 나서도록 압력을 행사할 수 있고, 시민사회는 정부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기업을 변화시킬 수단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주요 논점은 정부와 사회구성원들이 기업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도록 하는 데는 두 가지 기준이 있다. 법적인 부분과 사회적 기준에 의한 방법이다. 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사회적 기준에서는 다르다. 이 책이 중점을 두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사회적 기준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높아진 사회적 기준으로 인해 정치권도 변하기 시작했다. 2012년의 총선에서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경제민주화’를 외치며 기업을 규제하는 정책을 쏟아냈던 것이다. 민주통합당에서는 재벌개혁의 3대전략으로 경제력 집중완화, 불공정 행위 엄단, 사회적 책임강화를 선정했고, 새누리당에서도 일감 몰아주기 근절, 중소기업 사업영역 진출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재벌정책을 내놓았다. 이는 ‘친기업주의’를 외쳤던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 대비된다. CSR이 과거의 경영기법들처럼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는 반증이 된다.

어떻게 기업을 바꿀 것인가

이 책은 결국 정부가 CSR에 관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방법은 법적 규제와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 두 가지가 될 것이다. 물론 보다 효율적인 것은 기업의 자발적 참여다. 하지만 잘 움직이지 않으려는 기업을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언론과 협력하여 세밀하게 프로그램 된 산업분야별 기업 정보공개를 통해 기업들이 CSR에 나서지 않을 수 없도록 기준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CSR에 대한 기업의 자발성은 CSR과 이익극대화 목적이 서로 연결되어 있을 때 비로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가 CSR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다면, 정부의 정책 방향을 분석해 자사의 CSR과 사회공헌 프로그램에 적극 반영할 준비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저출산 문제 해결의 한 방법으로 육아휴직 활성화 문제를 사회적으로 이슈화시키고 기업들의 참여를 촉구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미리미리 자사의 육아휴직 현황에 대해 점검할 필요가 있다. 혹시 육아휴직 현황이 사회적 기대보다 높은 수준이라면 이를 잘 활용해서 기업이 ‘육아휴직 모범기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전략을 짜야 하고, 혹시 낮은 수준이라면 육아휴직 활성화 방안이라도 준비해 두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의 성과는 정부의 정책 방향성에 대해 얼마만큼 먼저 눈치를 채고 준비하는지에 달려 있다.

효과적인 CSR을 위하여

이 책은 왜 기업들이 생각만큼 착해지지 않았는지, 왜 정부가 착한 기업 만들기에 관심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는지, 정부가 기업들을 착하게 만들기 위해 어떤 정책들을 고려해볼 수 있는지에 대해 다룬다.
문제는 그동안 CSR이 지나치게 기업의 선의에 기대왔다는 데 있었다. 즉 너무 ‘기업 중심적인 사고’에 매몰돼 있었다는 것이다. 사회공헌 아이템을 선정할 때 담당자들의 주요 관심사는 CSR이 비즈니스와 기업홍보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에 있었다. 사회공헌의 효율성 및 기업의 긍정적 이미지 극대화라는 측면에서 이 말은 틀리지 않다. 하지만 이제부터 기업들은 기업에 대한 분석과 함께 정부의 정책에 대한 분석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앞으로는 정부가 CSR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된다면 기업은 CSR을 통해 보다 높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프로세스 부분에서 정부가 정보공개를 하고자 하는 분야를 대충이라도 미리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다면, CSR을 잘 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보다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알기 위해서 기업은 무엇보다 사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결국 정부나 정치권의 목소리는 사회의 요구를 반영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CSR 정책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고 싶다면, 기업의 이해관계자(특히 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시민단체나 NGO들)들이 기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혹은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는지를 예의주시해야 한다. 정부와 사회를 대상으로 한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과 이를 CSR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새로운 기업의 CSR 주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이 모든 문제들과 관련되어 검토하고 다루어야 할 사안과 그 대책에 대해 하나하나 자세히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