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역사 하얀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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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 이경원
이경원(李慶援)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 대학의 영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연세대학교 인문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영문학과와 비교문학과에서 셰익스피어, 제3세계 문학, 프란츠 파농을 비롯한 탈식민주의 이론가들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역서로는 한길사에서 펴낸 바트 무어-길버트의 『탈식민주의: 저항에서 유희로』가 있고, 탈식민주의 이론과 셰익스피어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현재 프란츠 파농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이다.
목차
- 책머리에
1 탈식민주의의 계보와 정체성
왜 탈식민주의인가
언제부터 탈식민주의였는가
누구의 탈식민주의인가
2 노예의 아들들’과 블라이든의 흑인민족주의
탈식민주의의 뿌리 찾기
해방된 노예들의 자기재현
들레이니와 크러멜의 흑민 ‘문명화’ 사업
블라이든의 아프리카중심주의
블라이든의 순혈주의와 그 모순
흑인민족주의가 남긴 탈식민적 유산
3 듀보이스와 ‘니그로’의 재구성
듀보이스의 현재성
‘인종’의 보존 또는 해체
‘이중의식’과 ‘이중의 노력’
듀보이스의 라이벌, 워싱턴과 가비
듀보이스와 마르크스의 만남
4 듀보이스와 ‘아프리카’의 재발견
마르크스주의와 범아프리카주의
아프리카중심적 과거의 복원
아프리카중심적 미래를 향한 꿈
아프리카중심주의의 모순과 한계
5 포스트모던 시대의 파농주의
왜 다시 파농인가
프로이트적 파농과 마르크스주의적 파농
바바가 해석한 파농
사이드가 해석한 파농
‘파농주의’와 탈식민주의
6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과 정신의 탈식민화
그들의 테크놀로지와 우리의 이데올로기
정신분석학의 탈식민화
백색 신화의 치명적 유혹
식민적 무의식의 역사화
7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과 ‘민족’의 정치학
식민주의의 폭력과 탈식민화의 폭력
민족주의의 양가성
민족 부르주아지의 폐해
새로운 인간과 역사의 창조
8 네그리튀드와 파농의 민족문화론
생고르와 세제르
정치적 실천으로서의 민족문화
민족문화의 이분법
세계화 시대의 민족주의
9 아체베와 응구기의 영어제국주의 논쟁
거부인가 전유인가
영어의 도구성과 영어의 이데올로기
민족문학의 내적 차이와 연대
탈식민주의의 목표와 수단
10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과 탈식민주의의 혼종성
『오리엔탈리즘』의 역사적 위치
변방의 지식인 사이드
오리엔탈리즘의 정체와 속성
사이드의 방법론적 모순
푸코와 마르크스의 어색한 결합
11 오리엔탈리즘, 시오니즘, 테러리즘: 사이드의 『팔레스타인 문제』
『오리엔탈리즘』 이후의 사이드
팔레스타인의 현실과 시오니즘의 해석
배반의 역사, 희망의 서사
12 바바의 『문화의 위치』와 ‘차이’를 읽는 다른 방식
『오리엔탈리즘』의 재구성
식민담론의 ‘양가성’
(탈)식민적 ‘혼종성’과 저항
‘문화적 차이’와 ‘문화적 번역’
탈식민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13 탈식민주의의 탈역사성: 바바의 모순과 한계
누구의 저항인가
‘우리’의 이론, ‘그들’의 역사
식민담론의 역사성
이론의 (탈)정치성
14 스피박과 탈식민적 재현의 딜레마
과연 ‘탈’식민주의인가
탈식민주의의 이론화: 성숙인가 변질인가
탈식민주의의 이분법: 반복인가 극복인가
탈식민주의의 주체성: ‘우리’인가 ‘그들’인가
맺는 말을 대신하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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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인본주의와 형식주의로 세뇌되어 있었던 내게 아프리카 문학은 문학이 아니라는 의심이 들었지만,
그 의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백인 주류사회의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불쾌한 것인지를 일상에서 체감하고 있던 차에 아프리카 문학은 내가 로빈슨 크루소보다는 프라이데이와 더 가깝고,
『햄릿』보다는 『오셀로』에 대해 할 얘기가 더 많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이경원)
“과거 영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식민지 출신의 작가들은 식민주의의 유산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에 들어선 민족주의 정권과도 종종 싸워야 했다. 그들이 문학을 통해 치열하게 씨름했던 사회 모순은 일제의
식민 통치에 이어 군사 독재와 급격한 근대화를 동시에 겪으면서 우리 사회가 안은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의 현실에서 공명되는 그들의 고통스런 경험이 나를 그들의 문학으로 이끌었나보다.”(이석구)
극복과 탈피의 정치학, 탈식민주의를 주목하다
식민주의가 제도권으로 편입되어 서구 비평계의 중심무대에 등장한 지 이제 겨우 20여 년이 지났다. 학계의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한 탈식민주의는 여기서 파생된 수많은 다른 담론을 이끌어냈지만, 그럼에도 한계와 위기론 또한 대두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 원인은 탈식민주의의 실천이 대부분 서구의 물적 기반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며, 그만큼 서구 중심적 이론에 너무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극복과 탈피의 정치학’이 되기 위해선 서구 이론을 적절하게 차용하는 지혜도 필요하지만, 신식민주의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비판할 수 있는 별도의 이론적 틀도 마련되어야 한다.
이번에 ‘한길신인문총서’ 시리즈로 펴낸 『검은 역사 하얀 이론』과 『제국과 민족국가 사이에서』는 각각 탈식민주의의 이론과 계보를 설명하고, 탈식민시대 영미권 문학을 중심으로 비평한 연구서다. 두 저자가 그동안 꾸준히 연구하고 발표해온 결과물들을 한 권으로 집대성했으며, 국내에선 다른 분야에 비해 전공자나 연구자 수요가 적은 ‘탈식민주의’를 사상이론과 문학비평, 두 가지 분야를 동시에 살펴볼 수 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문학과 시대상은 항상 바늘과 실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 문학은 결국 우리의 삶을 투영하고,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시대가 변하고, 세계를 이끄는 새로운 체제나 담론이 등장한다 해도, 신자유주의 사회 체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상 거대 자본에 의한 ‘식민화’는 점점 더 심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3세계 주변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해야 하며, 끊임없이 ‘신식민화’에 대한 경각심을 늦추지 않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진정 누구를 위한 탈식민주의인가: 『검은 역사 하얀 이론』의 구성
『검은 역사 하얀 이론』은 탈식민주의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주요 사상가들과 이론가들을 총 14장에 걸쳐 구성했다. 책제목은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을 빗대어 지었다. 이는 탈식민주의의 혼종성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기 때문에 붙인 것이다. 블라이든, 듀보이스, 파농, 아체베와 응구기, 사이드, 바바, 스피박 등 대표적인 탈식민주의 이론가들의 담론을 자세히 살펴보는 한편, 그 계보가 어떻게 이어오는지를 이 한 권을 통해 알 수 있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이 책은 탈식민주의를 포스트모더니즘의 시험장으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탈식민주의의 출발점으로 규정하는 서구비평계의 서구중심적인 시각을 거부하려는 몸짓이다. 이 책의 부제를 ‘탈식민주의의 계보와 정체성’이라고 정한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다”라고 밝히면서, 서구의 사상과 이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이지만, 언젠가는 진정한 탈식민화를 꿈꾸며 신식민적 사회에 살고 있는 ‘주변인’의 저항의식을 담아내고자 했다.
초기 탈식민주의 이론가로서는 백인우월주의에 대항해 아프리카민족주의를 주창한 블라이든과 니그로를 재구성한 듀보이스를 들 수 있다(제2장~제4장). 그 이전까지 유럽과 아프리카의 관계는 ‘기원과 모방’ 또는 ‘중심과 주변’ 등 철저한 백인주의적 이분법으로 생각해왔다. 이를 해체하기 위해 두 이론가는 좀더 아프리카적인, 아프리카에 집중할 수 있는 고유한 정신을 탐색했다. 특히 듀보이스는 마르크스주의를 만나면서 ‘니그로’ 문제를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사회문화적 차원으로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아프리카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범아프리카 운동’을 펼치며, 반자본주의·사회주의적 독립을 꿈꾸기도 했다.
“나도 한때는 아프리카인 당신들을 교육받은 우리가 해방시켜야 할 어린애로 생각한 적이 있다. 내 생각이 틀렸 다. 우리는 당신들은 고사하고 우리 자신도 이끌어갈 수 없다. 오늘날 나는 아프리카의 독자적인 리더십을 통해 당신들이 스스로 일어서서 당신 자신들의 두뇌로 나아가는 것을 보고 있다.”(듀보이스, 149쪽)
그다음, 이 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는 프란츠 파농의 이론을 총 4장에 걸쳐 깊이 있게 설명한다(제5장~제8장). 그의 대표작인 『검은 피부 하얀 가면』과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을 중심으로, ‘정신적 탈식민화’ ‘민족해방’ ‘네그리튀드’ ‘민족문화론’ 등 탈식민주의 이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주요 사상을 설명하고 있다. 민중이 주체가 된 민족해방을 외치며 탈식민화를 위한 폭력까지 옹호했던 파농이, 포스트모던 시대에 들어서면서 서구 독자의 입맛에 맞게 길들여지고 세련된 파농으로 바뀌어 수용된다.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해 1960년대 이후 혁명의 아이콘으로 상품화된 ‘체 게바라’의 예를 들면서 파농주의 또한 상품화될 수 있는 시대상에 우려를 표한다. 한편 파농에게 큰 영향을 미친 사상으로는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를 들 수 있다. 두 사상가의 이론을 분석틀로 삼고 쓴 『검은 피부 하얀 가면』과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은 개인의 무의식에서 파생된 심리적인 문제, 유물론에 입각한 사회적인 문제까지 다양한 시각으로 폭넓게 논의할 수 있는 작품이다.
“탈식민화는 진정 새로운 인간의 창조다. 하지만 창조의 정당성은 결코 어떤 초자연적인 힘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식민화되었던 물건이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과정을 통해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이다.”(파농, 249쪽)
에드워드 사이드(제10장~제11장)의 『오리엔탈리즘』은 마르크스주의 이후 ‘포스트’ 담론 시대에 가장 파급력이 큰 저서 중 하나다. ‘유럽 인본주의와 식민주의의 공모관계를 폭로한 최초의 기획’이라는 호평까지 받은 이 책에 대해 저자는 “탈식민주의를 반드시 포스트모더니즘과 연계해서 설명하려는 시도는 바로 서구중심적 시각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즉 “제3세계의 유구한 반식민적 민족주의 전통을 푸코와 데리다의 개입을 기다리는 익명의 덩어리로 간주하려는 태도가 깔려 있으며, 이는 역사와 문화가 부재하는 암흑과 미개의 세계로 보는 식민주의적 논리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후속작인 『팔레스타인 문제』는 팔레스타인 출신인 사이드가 서방 세계를 향해 하고 싶었던 말을 가장 직설적으로 내뱉는 텍스트다. 이 작품에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뿐만 아니라 소수민족을 디아스포라로 내모는 유대인의 시오니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가한 테러리즘 문제를 다루면서 평생 꿈꿔온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지지하고 있다.
그밖에도 아체베, 시옹오의 영어제국주의 논쟁(제9장), 사이드, 스피박과 더불어 현대 탈식민주의 이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바바(제12장~제13장)의 모순과 한계, 스피박(제14장)의 탈식민적 ‘재현’의 딜레마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저자는 “결국 탈식민주의의 역사성과 실천성은 제3세계적 현실에 뿌리내림으로써 확보될 수 있으며, 이는 서구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 주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작업으로, 탈식민주의와 제3세계 민족문학의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항, 민족주의, 성차이, 디아스포라의 문학: 『제국과 민족국가 사이에서』의 구성
이 책에서는 9개국 출신 22명의 작가가 발표한 33편의 작품을 당대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살펴볼 수 있다. 본격적인 문학비평에 앞서 각 장의 서두에 해당 국가나 지역에 대한 배경 지식을 알 수 있도록 서술하기 때문에, 탈식민주의 이론에 무지한 독자라도 충분히 배경지식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전체 내용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바로 ‘저항’이다. 저항의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담론뿐 아니라 피지배 내부의 ‘비판과 균열’에도 주목하면서 제국과 민족국가 틈바구니에 낀 존재들을 전경화한다.
영국의 부커상, 노벨문학상을 받은 문학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유럽이나 영미의 백인작가들보다 오히려 식민지 출신의 작가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나이폴, 월콧, 고디머, 쿳시어, 루시디, 피터 캐리 등 영어권 작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가운데 영어권 문학 연구의 필요성은 서구에서 이루어진 영어권 문학에 대한 기존의 평가를 점검해야 하는 시대적 요청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영어권 작가들의 문학이 다룬 정치적 의제를 새롭게 점검할 뿐만 아니라, 이들에 대해 그간에 제기되었던 비판의 유효성도 논의하고자 한다.
저자는 영어권 문학의 사상적·정치적 지형도를 그려내면서 ‘민족주의’를 길잡이 가운데 하나로 선택한다. 민족주의가 개인과 집단에게 행사하는 배타적이고도 절대적인 영향력은 다민족국가들을 내부에서 분열시킬 뿐만 아니라 자치나 독립 같은 최종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는 어떠한 타협이나 양보도 허락하지 않는 분리주의의 역사가 잘 증명한다. 아체베가 『무너져내리다』에서 이보 족의 오랜 관습에 대해 들려주는 것, 응구기가 『아이야 울지마라』 『강을 사이에 두고』에서 키쿠유 족의 할례식이나 성인식을 공들여 서술하는 것, 투투올라가 『야자주 술꾼』 요루바 족의 오랜 신화를 서사화하는 것 모두 전통을 복원하려는 시도다.
“내가 죽음을 그의 집으로부터 데리고 나온 뒤, 죽음은 영구적인 거처나 머물 곳을 잃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의 곳곳에서 그의 이름을 듣게 된 것이다.”(투투올라, 65쪽)
그러나 탈식민시대의 작가들에게 민족주의는 앙양의 대상인 동시에 낙담과 실망의 원인이기도 했다. 결국 민족주의가 민족 부르주아의 계급적 이익을 공고히 하는 데 열중하게 되었고, 국가 공동체 내의 다양한 부족과 인종 간의 갈등은 더욱 표면화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영국인들과 아프리카너들이 하나의 정치체제 아래 살게 되면서 아파르트헤이트와 같은 인종차별 정책이 실행되기도 한다. 이 시기 남아공 문학의 주된 경향은 ‘참여적인 것’이었고, 주로 흑인들이나 혼혈작가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응코시의 『짝짓는 새들』에서는 아파르트헤이트가 남아공 흑인들의 공적인 존재뿐만 아니라 사적인 욕망까지 어떻게 통제하며, 그러한 금기를 위반하는 개인이 어떻게 처벌되는지를 드러낸다. 라 구마의 『때까치의 계절』 또한 남아공의 각 인종이 처해 있는 현실을 그려내며, 민족주의가 교조적·국수적으로 흐를 때 어떤 형태를 띠게 되는지를 집중 조명한다.
내부적 갈등은 계층 간에 발생하기도 하지만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서도 발생한다. 민족주의 자체가 “남성화된 기억”이라는 주장이 드러내듯, 기성의 민족주의는 여성을 차별하거나 배제함으로써 스스로를 정의해왔다. 그렇지만 여성은 민족해방전선에서 남성들과 함께 싸웠고, 민족 공동체의 인적 자원을 재생산하는 기능을 담당해왔다. 이는 남아공을 비롯한 아프리카너 민족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인도 민족주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민족’이라는 보편적 범주에 따라 빼앗긴 목소리를 찾으려는 여성의 노력도 주목할 만한 내용이다.
“이보 여성들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다. 아체베가 뛰어난 작가이기는 하나 그가 그려내는 여성들에 대해, 그리고 색채 없는 여성들을 창조하는 다른 남성 작가들에 대하여 나는 유감스럽게 생각한다.”(에메체타, 116쪽)
영어권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소설가로 평가받는 오곳은 『약속의 땅』에 그녀의 입장을 잘 묘사해두었다. 가족이나 부족 공동체에 대한 의무보다 개인적인 욕망을 우선시하는 주인공이 결국 실패해 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줄거리는 작가가 전통과 개인주의 간의 갈등에서 전통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와파는 『에푸루』에서 여성 할례의식, 신부몸값, 일부다처제와 같은 악습을 재현한다. 그러나 직접적인 판단은 배제하고, 대신 부권주의에 대한 비판을 찾아볼 수 있다. 에메체타의 『모성의 기쁨』에서는 식민지 사회에 대해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서로 다른 반응을 통하여 식민주의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모두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올바른 평가를 위해서는 서구 페미니즘적 시각은 배제하고, 그들의 의제를 그들의 시각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아프리카 여성들은 ‘서구 페미니즘’의 의제에 의해 아프리카 여성운동이 ‘식민화’를 차단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마지막 화두는 ‘디아스포라’다.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정착하게 된 사람들이나 그들의 이동과 정착을 뜻하는 것처럼, 디아스포라 문학과 정체성은 주류 문화와의 차이, 즉 출신국과의 관계에서 조명된 이민자들의 문학과 정체성을 의미한다. 모든 디아스포라 문학이 민족적 정체성의 순수성이나 진정성을 부정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혼종성을 노래하는 문학이 민족 정체성이나 민족문화에 대해 종종 반근원주의적 태도를 취한다고 한다. 디아스포라는 전복의 기능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정착과 동화의 기능도 수행한다. 이처럼 디아스포라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현상이며 민족주의와 맺는 관계도 복합적이고 다면적일 수 있다.
“우리는 사회주의자였다. (……) 생각으로부터 도피하는 수단으로, 민중들이 보기를 원했지만 우리 자신은 맞대면 할 수 없었던 현실로부터의 도피 수단으로, 우리는 빌려온 구호들을 사용했다.”(나이폴, 407쪽)
나이폴의 『흉내내는 사람들』은 주인공인 싱이 민족의 울타리나 국가의 경계를 떠나 “난파”당하고 “표류”하고 있는 느낌을 주며, 『강의 한 굽이』에서는 인도계 주인공이 아프리카의 신생 독립국에서 겪어야 하는 “뿌리 뽑힌 이방인”의 삶을 보여준다. 한편 기원과 순수에 대한 부정은 루시디의 작품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데, 『자정의 아이들』 『악마의 시』에 나오는 주인공의 인종적 정체성이나 묘사를 통해 “순수성”이 아니라 “혼종성”이 개인을 구성한다는 주장을 짐작할 수 있다.
근자에 들어 이전의 문학 비평에서 중요한 키워드였던 ‘집단의 정치학’은 그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반감된 반면, 개인적인 의제를 중요시하는 ‘마이크로 정치학’이 향후 영어권 문학 비평에서 점차 비중이 커질 것이다. 오늘날 문학 비평가는 개별 작품의 목소리가 내는 특수성에 유의함으로써 그것이 집단의 정치학, 순응의 정치학에 함몰되는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해야 하며, 개인의 진실이 총체적인 진실로 행세하는 일이 없도록 역사적인 안목 또한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즉 문학 비평가는 ‘마이크로 정치학’이라는 스킬라와 ‘집단의 정치학’이라는 카리브디스 사이를 조심스럽게 항해하는 오디세우스와 같다. 텍스트를 역사적 맥락 안에 위치시킬 때만 문학 비평이 공정성을 견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항상 역사화하라!”는 제임슨의 경구는 오늘날 문학 연구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기본정보
ISBN | 9788935660056 | ||
---|---|---|---|
발행(출시)일자 | 2011년 06월 25일 | ||
쪽수 | 528쪽 | ||
크기 |
160 * 230
* 35
mm
/ 915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한길신인문총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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