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남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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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밤하늘이 강처럼 흘렀다
유품
사진을 남기는 사람
천장지비(天藏地秘)
무람없이 그의 이마에 앉아 있었다
이제
호수가 돌아오는 사막
셔츠
발문│진실한 순간의 진실들_허희
작가의 말
추천사
-
유희란의 소설을 읽고 나자 드는 생각은 소설이란 남에게 보일 수도 없고 남이 볼 수도 없는, ‘장루 주머니’나 ‘가시박’으로 상징되는 어떤 질병, 슬픔 같은 것을 처리하면서 나오는 그 ‘무엇’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소설에도 품성이 있다면, 유희란의 소설은 찬찬히 읽기를 요구하는 성질을 가졌다. 완성되는 날을 알 수 없는 셔츠 만들기처럼 어쩌면 유희란의 소설을 읽다가 우리는 깜빡 잠이 들기도 하고 잠이 든 어느 순간 건듯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그 사이사이 또 유희란의 소설을 읽다가 아침이 열리고 저녁이 내리고……. 그렇게 유희란의 소설과, 소설 속 인물들과 서서히 낯을 익히고 속삭이듯 말을 걸며 다가가 친구를 삼아도 좋겠다 싶다. 라디오를 친구 삼는 사람도 있는데 소설이 왜 친구가 못 되겠는가. 하물며 그 친구가 유희란의 소설임에랴.
-
「사진을 남기는 사람」에서 그녀는 사진작가의 입을 빌려 이에 대해 말한다. “섬세하게 묘사하는 까닭에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그러니 진실하다고 믿겠지만 찰나의 진실일 뿐 영원하지 않아요. 작가의 감정에 따라 실체의 왜곡도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사진은 이해가 아니라 감정의 동요라고 할 수 있어요.” 사진을 소설로 바꿔 넣으면 예리한 소설론의 일부로 해석할 수 있는 구절이다. 유희란이 이 작품을 첫 소설집의 표제작으로 삼은 요인도 이와 무관하지 않겠지. ‘기다리는 일로서의 삶’, ‘아프면서 남겨진 삶’, ‘위장 혹은 포용으로 잇는 삶’ 이후의 삶은 ‘소설을 남기는 사람’인 그녀가 작품으로 증명을 되풀이할 테다.
책 속으로
‘장루 주머니, 복지 혜택이 부족하다.’ ‘요양병원 입소 거부 부당하다.’ ‘장루 관리가 가능한 의료기관이나 시설이 너무 없다.’ 매주 목요일 보건소 앞에서 가끔은 구청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어떤 날은 이렇게도 썼다. ‘화장실에 세척시설 설치 요구합니다.’ 대부분은 관심이 없었고 오다가다 그녀를 보게 된 사람들은 문구를 보고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누군가의 생명입니다. 살려주세요.’ ‘배변 주머니는 수치일 수 없습니다.’ 이따금 피켓에는 그처럼 노골적인 문구가 쓰였다 지워졌다. 어떤 이들은 장루 주머니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외면했고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그래서 피켓을 들고 살려달라고 애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짐작이라도 해보려는 듯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는 이도 있었다.
_「밤하늘이 강처럼 흘렀다」 중에서
어때? 짐이 많아?
쓰레기 담는 봉투와 박스를 들고 뒤늦게 들어온 이 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트럭 하나면 되겠는데요.
오늘은 일이 좀 수월하겠네.
자연사는 정리사에게 손쉬운 축에 드는 거였다. 죽음을 다루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의뢰받은 곳이 살인이나 자살 현장일 경우엔 분명한 예외가 있었다. 혈흔이나 동원된 물건을 마주해야 하는 형편에선 대화는 물론이고 서로의 시선이 닿는 것마저 삼갔다.
혼자 늙어 죽어도 모르나.
_「유품」 중에서
언젠가 사진작가협회에서 주최한 전시회에서 그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웅숭깊은 안개 속에 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한동안 붙어 있다 떨어진 듯 두 나무 사이의 거리는 애틋했으나 그만큼이나 의연한 모습이었다. 타고난 자리가 그러한 앞선 나무와 뒤에선 나무 둥치 주위로 부단하게 사라졌다 다시 모이는 감정의 일렁임을 한동안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뜨며 말을 이었다.
섬세하게 묘사하는 까닭에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그러니 진실하다고 믿겠지만 찰나의 진실일 뿐 영원하지 않아요. 작가의 감정에 따라 실체의 왜곡도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사진은 이해가 아니라 감정의 동요라고 할 수 있어요.
_「사진을 남기는 사람」 중에서
공이는 이곳에서 남자의 시신을 처음 보았다. 다른 자리에 비해 낮은 이 층이었으나 키 작은 공이에게는 계단에 발을 디딜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높은 곳이었다. 누군가는 지붕과 반자 사이의 공간에 들인 다락방이라고 불렀으나 박씨는 천장지비(天藏地秘)의 터라 여겼다. 하늘과 땅속에 감추어져 드러나지 않는 염원과도 같아 환생을 이루기에 모자람이 없고 산천의 이로운 기가 머물러 유골을 묻으면 노랗게 황골(黃骨)이 되어 수천 년까지도 형태가 변하지 않을 곳이라고 믿었다.
_「천장지비」 중에서
이 사람은 누구지. 부인은 생각했다. 진종일 내리던 비가 그쳤는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비를 맞으면 머리에서부터 눈물이 흐른다고. 그래서 빗속을 오락가락하며 흠뻑 흘렸는데 다 비운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가득 차오른다고 말하려 했다. 무럭무럭 연기를 피워 올리며 바닥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가장 듣기 좋은 소리라고 알려주며 혹시 단 한 번이라도 귀 기울여 그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고요히 자고 있었다. 이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부인은 방과 거실과 주방을 오가며 떠오르는 기억이 있을 때마다 멈춰 서서 밖을 내다봤다. 날은 이미 저물고 어둠 속에 비는 오지 않았다.
_「무람없이 그의 이마에 앉아 있었다」 중에서
출판사 서평
남에게 보일 수도 없고 남이 볼 수도 없는 내밀한 이야기들
소설에도 품성이 있다면, 유희란의 소설은 찬찬히 읽기를 요구하는 성질을 가졌다.
- 공선옥(소설가)
「밤하늘이 강처럼 흘렀다」에는 장루주머니를 차고 살아야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정부에게 장루주머니 지원 확대를 요구하는 일인시위를 펼치기도 하는 등 현실의 제약들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된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막상 그의 조카가 장애를 가진 사람과 만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조카의 연애에 대해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 채 그 만남을 반대한다. 숨겨져 있던, 혹은 외면했던 진실이 드러나는 때는 죽음의 순간과도 맞붙어 있다.
2013년 등단한 유희란 작가의 등단작이기도 한 「유품」에서는 죽음과 삶의 연결이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다. 임신을 한 주인공이 유품정리사로 일하는 내용의 작품으로 점점 더 중요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고독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화자와 어머니의 고독한 삶에 대해서도 보여준다.
시계하고 대화해. 소리가 거슬리긴 하지만 가끔은 친구 같아.
언젠가 어머니가 말했다. 또 그렇게 머물고 있는 어머니의 눈길을 좇아 나는 벽에 붙어 있는 시계를 바라봤다. 누런 시계판 위에 초침은 보이지 않았다. 불균형하게 커다란 시계의 추가 좌우로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붙박여 있던 두 개의 바늘이 겨우 움직임을 보였다.
그뿐인 줄 알아. 사진 보면서도 얘기하고 냄비하고도 얘기해.
_「유품」 중에서
‘고독’은 유희란의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겪고 있는 곤란이기도 하다. 때문에 인물들은 그에 태연하게 굴거나 초연한 척 외면하기도 하지만 그 또한 그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의 일종으로 작동한다. 욕망하는 것이 유예되고 가장 가까운 사람의 좌절을 목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현재를 견디며 다가올 것들을 기다린다.
허위로 점철된 삶에서 가까스로 만나게 되는 진실한 순간
해설을 쓴 허희 평론가는 『사진을 남기는 사람』에 실린 작품들을 ‘기다리는 일로서의 삶’, ‘아프면서 남겨진 삶’, ‘위장 혹은 포용으로 잇는 삶’으로 구분한다.
유희란이 붙잡아 내려는 것은 세상의 진실이 아니다. 허위의 삶으로 점철된 어떤 사람이 아주 가끔 마주하게 되는, 거짓 없는 바로 그때를 착목하려는 것이다. 과거를 성찰하는 작업은 그래서 가치가 있다. 이미 일어난 사건이 무마되거나 극적으로 반전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의 존재가 달라진다. 이럭저럭 세상에 적응해 사는 내가 나의 전부가 아니라, 이를 되새기는 나도 있음을, 그렇게 회고 하는 윤리를 내가 수행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되니까.
_허희(평론가)
이렇듯 유희란은 들뜨지 않고 차분하게 세상을 들여다보며 진실한 순간을 붙잡고자 한다. 공선옥 소설가의 말처럼 유희란이 만들어놓은 겹겹의 세계는 하나씩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또다른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기본정보
ISBN | 9791156625469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05월 31일 |
쪽수 | 264쪽 |
크기 |
129 * 188
* 21
mm
/ 294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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