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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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기
작가의 시들은 하나같이 따듯한 말을 건넨다. 혼자여도 괜찮을 거라고. 세계의 알 수 없음을 되돌아보되, 그걸 꼭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주변 사람에게 안부를 물으며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말라 조언하며, 당신의 혼잣말조차 깊은 소통의 결과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슬픔을 안은 채로 성장할 수 있다면, 깊은 슬픔조차도 꽤 괜찮은 것이라 일러준다.
이러한 일은 시가 타인의 슬픔을 담고 있기에 가능하다. 시는 혼자여서 슬픈 사람을 발견하고 도무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일으키는 노심초사를 이해한다. 마음에만 품고서 전하지 못하는 말들의 무게를 알고, 타인에게 마음을 전할 용기를 북돋는다. 따듯한 말이 가능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슬픔이었다. 시에는 혼자이기에 슬픈 사람이 있고 당신의 마음을 알 수 없어 슬픈 청춘이 있다. 너무 늦어 꼭 전해야 했을 말을 속으로만 삼킨 이들이 있고, 그 말들을 혼자 되뇌며 후회하는 존재가 있다. 작가는 시를 읽음으로써 그들의 슬픔을 읽는다. 슬픔을 읽음으로써 그들의 삶에 닿는다. 그 삶에는 나와 다른 당신이 존재한다. 이제, 여기에 실린 시와 산문을 통해 당신의 존재를 읽고 말할 차례다.
작가정보
목차
- 1부 혼자여도 괜찮을 거야
너 혼자, 박상순 / 혼자여도 괜찮을 거야 10
연보, 이육사 나는 / 어디에서 왔을까 또 어디로 갈까 16
봄나물 다량 입하라기에, 김민정 / 이름에도 뜻이 있다는데 22
지렁이 지키기, 오은경 / 비가 내리면 지렁이가 나온다는데 29
슬픈 무기, 박시하 / 꼭 삶이 전장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35
산유화, 김소월 / 네가 있으니 내가 있는 것 41
비숑큘러스, 배수연 / 마음과 다른 말들 46
꿈, 황인숙 꿈속에서라도 / 말할 수 있다면 53
좋은 것 커다란 것 잊고 있던 어떤 것, 유희경 / 뭐가 좋고 뭐가 나쁜지 알 수 없지만 58
유전 법칙, 채길우 / 가족이라는 빚 64
고구마, 김은지 / 고맙다고 말하는 삶 71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이원하 / 혼자 살기의 어려움 76
가정집, 서효인 / 내 집은 어디 있나 82
분홍 나막신, 송찬호 / 신발이 닳아 없어져도 88
아침, 교외의 강변, 오장환 / 물가에 서면 이상한 기분이 들지만 93
밤은 고요하고, 한용운 / 잠들지 못하는 밤에 99
오-매 단풍 들겄네, 김영랑 / 가을이라고 편지를 쓰지는 않지만 105
2부 내가 아프던 밤
당신의 고향집에 와서, 진은영 / 고향이 없어져도 112
오리 망아지 토끼, 백석 / 시골 작은 동물들 118
커피포트, 장이지 / 대체 그때 그 일은 뭐였을까 123
합주, 정끝별 / 혼자인 게 더 편하더라도 128
초대장 박쥐, 안미린 / 은박지로 할 수 있는 일 133
천변에서, 신해욱 / 생각을 손에 쥐고 138
추운 산, 신대철 / 눈사람이 되기까지 145
귀신 하기, 김복희 / 귀신은 뭐 하나 150
이 짧은 이야기, 김종삼 / 죄와 벌 156
구겨진 교실, 이기리 / 싫은 일은 금세 잊힌다지만 161
태권도를 배우는 오늘, 한연희 / 아무것도 배우지 않지만 모든 것을 다 배우며 168
나는 산불감시초소를 작업실로 쓰고 싶다, 유강희 / 나의 작업실은 어디인가 174
도로 주행, 임지은 / 베스트 드라이버는 못 되더라도 180
바깥, 김소연 / 집에 돌아오면 모든 것이 달라지는 188
홍역, 정지용 / 내가 아프던 밤 194
토끼의 죽음, 윌리엄 B. 예이츠 / 마음의 엔트로피 199
병원, 윤동주 / 아픔에 익숙해지지 않는다면 204
3부 계속 시작되는 오늘
남해 금산, 이성복 / 돌 속에 갇힌 사랑, 둘 속에 갇힌 사람 210
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이, 정현우 / 슬픔 참기 슬픔 들키기 215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성미정 / 사랑이 뭐길래 221
애니를 위하여, 에드거 앨런 포 / 사랑밖엔 난 몰라 227
사랑의 전당, 김승희 상처뿐이라고 하더라도 238
기분 전환, 유병록 / 기분 뒤집기 244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이수명 / 왼쪽과 오른쪽 어디에도 비가 오지 않는다 250
환상의 빛, 강성은 / 나이를 먹더라도 255
합격 수기, 박상수 / 시기도 질투도 없이 260
나는 왕이로소이다, 홍사용 / 우는 사람을 보면 266
사과를 파는 국도, 박서영 / 사과 한 알 274
사랑은 현물(現物)이니, 유종인 / 그 사랑을 어떻게 증명하니 279
길, 김기림 / 모든 돌아오지 않는 것을 떠올리며 285
이런 詩, 이상 / 사랑은 이불킥을 타고 291
오늘, 황인찬 / 계속 시작되는 오늘 296
시인의 말
너는 내가 아니다, 나는 너다 302?
책 속으로
나는 너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야. 이런 말을 드라마나 영화에서 종종 보고 듣기도 하는데요. 굉장히 특별한 고백으로 하는 말이지만,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너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반대로 그렇기에 모두가 소중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테고요.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은 그만큼 우리를 개성적으로, 나다운 것으로 만드는 큰 힘이 되니까요. 네가 어떤 특별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네가 아주 멋지거나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저 네가 나와 다르기 때문에, 그 다르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중요하고 존중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참 뻔하고 당연한 이야기죠? 하지만 당연한 이야기만큼 어려운 것이 없으니까요. 좋은 시는 언제나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아주 새삼스럽게 다시 깨닫게 해주기도 합니다.
-44~45쪽
생각을 계속 손에 쥐는 거예요. 이미 끝나버린 것을 알면서도, 이미 끝나버렸기에 더 오래 생각을 하고, 생각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시인이 말하는 것처럼, 그 생각들은 작고 동그랗지만 가차 없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일을 이만큼 절묘하게 잘 그려낸 시는 없는 것 같아요. 우리는 사랑이든 사랑의 아픔이든, 다른 무엇이든 끊임없이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무슨 생각을, 그리고 어떤 일을, 다 끝나버리고도 놓지 못하고 손에 쥐고 있나요? 그 생각 자체를 그만둘 필요는 없을 거예요. 그렇게 생각을 계속 이어가는 만큼, 어떤 마음은 계속 살아 있는 것일 테니까요.
-144쪽
가만 보면 이 시는 참 비밀이 많아요. 우리는 이 시를 읽는 것만으로는 이 슬픔의 근원도 죄악감의 근원도 파악할 수 없습니다. 어떤 슬픔이 그렇지 않을까요. 한 사람의 슬픔은 다른 사람으로서는 좀처럼 파악할 수 없죠. 한 사람의 슬픔이 들켜버리게 된다면,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과 그것을 나누게 된다면, 그것은 분명 그 한 사람의 슬픔과는 다른 것이 되어버릴 테니까요. 이상하게도, 우리는 이 비밀스러운 시를 읽으면서 그 슬픔과 은밀함에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말할 수 없는 슬픔은 있게 마련이니까요. 이 비밀스러움은 우리 삶의 진실한 순간과 매우 가까운 것이기도 한 셈이죠.
-219~220쪽
이 시는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어요. 누군가 날 감각하지 않으면, 날 만지지 않고 더듬지 않으면 그전까지 나는 아무것에도 이해받지 못하는, 죽은 상태나 다름없다고. 무덤이나 마찬가지라고. 즉 사랑받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으면, 그건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고. 현물, 현실에 속한 생물 혹은 물건이 아니라고. 시는 말하는 겁니다.
쉽게 풀어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우리는 사랑할 때에만 살아 있다고, 그리고 사랑이란 결국 그 살아 있음, 존재함 자체라고요. 이 논리를 거꾸로 활용하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살아 있는 우리, 존재하는 우리, 현물인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는 존재라고요.
아까는 사랑을 증명하기가 참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여기까지 이야기하다 보니 사실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내가 그리고 당신이 살아 있다는 그 사실이야말로 사랑을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283~284쪽
이 책의 제목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은 시가 우리 삶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시를 읽는 일은 다른 존재의 슬픔을 알아차리는 일입니다. 아무리 밝고 희망찬 시라고 하더라도 그 시가 충분히 좋은 시라면 거기에는 얼마간의 슬픔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건 아름다움이 작동하는 방식과 관련이 깊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보면서도 종종 슬픔을 느끼는데요. 아름다움이란 ‘손에 닿지 않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에 감동하면서, 숭고한 사랑의 이야기에 감동하면서, 또 말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어떤 낯선 감각을 온몸으로 체감하면서, 우리는 그 아름다움이 나의 손에 닿지 않음을 절감합니다. 그 손에 닿지 않는 감각이야말로 아름다움의 요체이자, 아름다움이 자아내는 슬픔의 까닭입니다.
-303쪽?
출판사 서평
■ 시를 통해 잠시 하나가 되는 일
시를 통해 만난 타인은 세상 모든 타인이 그렇듯 나와 다른 심장박동을 가졌다. 너와 나는 필시 다르고, 하나 되기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시는, 그러므로 시는, ‘나는 너다’라고 말하기에 도전하는 양식이다. 은유와 상징, 리듬과 침묵을 통해 시 안에서의 나는 시 바깥의 너에게 가닿는다. 가닿음의 순간, 불가능할 것으로만 생각되었던 너와 나의 하나 되기는 잠시나마 성공한다. 그리고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되새기듯 떠올리는 것이다. 내가 너로 분했던 장면, 우리가 하나였던 찰나.
그 순간으로 인해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사람들이 될 수도 있다. 그 순간을 통과해 우리는, 읽기 전보다 성장할 수 있다. 황인찬이 읽은 홍사용의 시는, 타인이 울 때 나도 같은 이유로 울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황인찬이 말하는 윤동주의 시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슬퍼하는 선한 예민함을 품고 있다. 이를 줄여서 사랑이라 말해도 될까. 이를 사랑의 순간이라 부르면 어떨까. 황인찬 시인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래도 괜찮을 거라고, 정말 괜찮다고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을 통해, 상냥하고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성찰하고 헤아리고 성장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시가 우리 삶에서 작동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97504198 |
---|---|
발행(출시)일자 | 2022년 04월 27일 |
쪽수 | 308쪽 |
크기 |
132 * 205
* 24
mm
/ 457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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