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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전 직원 별명 호칭을 시도한 몇몇 기업, ‘수평어’를 통해 상호 예의 있는 소통을 도모한 여러 커뮤니티, 또 음성기반 SNS인 클럽하우스(클하)를 통해 유행한 ‘착한 반말’ 등은 수평적 관계를 담지한 새로운 소통방식에 대한 요구의 현실태들이다.
하지만 지금의 말에는 문제가 있다는 점, 그리고 지금의 말을 사용하는 우리의 세계는 대체로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전제로 한 이런 실천들은 한편으로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공고한 언어 구조 안에서 이루어지기에 일시적인 성공에 머물고 만다. 그래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지금의 말을 미래가 있는 방향으로 재정의함으로써 우리 삶의 존재 조건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존댓말도 반말도 아닌 제3의 말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도래해야 할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끌어올 수 있는 언어. 『예의 있는 반말』은 그러한 언어의 가능성에 관해 질문한다.
“고마워, 연두” “천만에, 동규”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끌어올 수 있을 언어에 관한 열일곱 편의 글
『예의 있는 반말』에는 반말도 존댓말도 아닌, ‘평어’라는 언어체계를 디자인해 사용하고 있는 디자인 커뮤니티 디학(디자인학교)의 열다섯 필진이 쓴 글이 담겨있다.
일상적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말을 사용하는 바로 그만큼 말에 포획당한다. 평어라는 새로운 언어체계의 경험을 경유해 말과 삶의 관계를 말하는 열일곱 편의 글은 우리가 쓰는 말로 인해 이제껏 무엇을 놓쳐왔는지, 그래서 도래할 세계에 어떤 가치들이 새로 포함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말이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새로운 언어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줄 수 있을까? 그런 말을 디자인 할 수 있을까? 새로운 말로 대화를 하게 된다면 우리 사회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 새로운 언어는 좋기만 한 걸까? 존댓말과 반말이 아닌 말이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은 무엇일까? 새로운 언어로 우리는 정말로 평등해질 수 있을까?
작가정보
정동규
기어이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인간의 감수성과 그것을 추동하는 존재의 힘을 지금의 미학적 문제로 삼고 있다. 당장의 질문에 응답하는 예술, 도래할 세계를 요청하고 끌어오는 예술, 새로운 시공을 향한 동세가 기입된 예술에 대해 생각하며 글을 쓰기도 한다.
이성민
철학자, 작가, 번역가. 지은 책으로는 『일상적인 것들의 철학』, 철학하는 날들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한나 아렌트의 『발터 벤야민: 1892-1940』, 키스 도스트의 『프레임 혁신』 등이 있다.
윤여경
경향신문 정보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을지로 디학(designerschool.net)과 국민대에서 디자인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런던에서 온 윌리엄 모리스』(지콜론) 『역사는 디자인된다』(민음사) 『아빠, 디자인이 뭐예요』 (이숲)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말과 시각언어에 관심을 두고 있다.
권지현
지치지 않고 재미있게 일하기 위해서, 좋은 사람들과 오랫동안 잘 지내고 싶어서 꾸준히 공부하고 있는 디자이너입니다.
권정현
하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 N잡러 지망생. 현재 시흥에서 1인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고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고 있다. 무언가를 상상하고 표현하는 일에 매력을 느끼며, 언젠가 직접 창작한 이야기가 세상 밖에 나오길 바라며 꾸준히 작업 중이다.
김영서
어릴 때 대안학교에서 자라나서 그런지 바깥으로 나도는 경향이 좀 있다. 대학에 다니고 있지만 디학이 좋고 영종도에 살고 있지만 서울이 좋다. 뼛속까지 내향형 인간이지만 새로운 사람 만나는 건 재미있다. 디자인 하고 음악도 하고 글도 쓰고 가끔은 춤도 춘다. 정의되지 않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이한별
아직 혼란스러운 게 많은 브랜드 디자이너. 혼란스러움을 해소하고자 이것저것 건드리며 살아가고 있다.
이다솜
폴라로이드 카메라에 비유하자면, 현상되기 전의 흰 필름 같은 사람이 되겠네요. 나의 삶이 어떤 색, 어떤 장면으로 기록될지 모르는 이 떨림을 즐기고 있습니다. 스쳐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여운이 남는 사람이 되며, 애틋하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요? 아직은 몇 줄로 자기소개를 하는 것이 어색하기만 합니다.
백송이
하루를 무얼 하며 보내는 지로 나를 소개하자면 아침부터 낮까지는 디자이너로 일하고 밤에는 그림을 그린다.
김효진
홍대 입구역 원룸에서 평일 내내 노트북을 여닫다가 주말이면 갤러리로 출근합니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예술과 친구들을 매개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져 구글 드라이브에 짜투리 글을 잔뜩 쌓아놓았습니다. 이 글이 어떤 결과물로 나올 지 계속 고민하는 중입니다.
박가람
공간과 시각디자인을 공부한다. 여기저기 참견하고, 이곳저곳 참여해야하는 성격을 가졌다. 이런 성가신 성격으로 따듯하게 관찰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서채연
그림에서 디자인, 디자인에서 브랜드 기획, 무엇 하나 계획대로 된 적 없는 예측 불가능한 삶의 흐름을 즐겨 보고 있다. 감정을 사유로 연결하는 단편적인 작업을 하면서 음악, 사진 등 다양한 영역을 건드리며 탐험 중이다.
황지은
디자이너, 작가. 에이전시와 스타트업에서 UI 디자이너로 일했다. 독립출판 에세이 『열두 번의 점심, 열두 개의 은유』를 썼고, 『에코 에쎄이』에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대안학교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Open Editor』에 글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호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 쓸데없이 요것조것 수집하고, 신문 만드는 직장으로 출근하고, 아마추어 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박민지
INTJ. 디자이너. 그래픽 실험 과정을 작은 책 『참새가 악보를 보는 방법』으로 소개한 적이 있다.
목차
- - 들어서기
모험의 언어
평어와 세 개의 현실
- 에세이
새로운 물결에 발 담그기
평어: 나를 비춰주는 새로운 도구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관계
평어 맛
평어 탐구 생활
저는 아직 평어가 어려운데요
사실, 우리가 친구는 아니잖아
밸런스 게임
가람아, 가람 씨가 아닌 가람
광장 고르기
- 크리틱
틀린 그림 찾기
마음의 거리
실패하고, 그래서 성공하는 대화에 관하
- 이슈?: 평어 번역
은유 만들기
니체와 마스터리
책 속으로
언젠가부터 사회 곳곳에서는 우리의 소통 구조 자체가 변해야 함을 요청하고 있다. 전 직원 별명 호칭을 시도하고 있는 기업들, ‘수평어’를 통해 예의 있는 소통을 도모한 몇몇 독서 커뮤니티, 또 음성기반 SNS인 클럽하우스(클하)를 통해 유행한 ‘착한 반말’ 등은 그러한 요청의 현실태들이다. 하지만, 지금의 말에는 문제가 있다는 점과 지금의 말을 사용하는 세계는 대체로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전제로 한 이런 실천들은 한편으로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공고한 언어 구조 안에서 이루어지기에 일시적인 성공에 머물고 만다. 그래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지금의 말을 미래가 있는 방향으로 재정의함으로써 우리 삶의 존재 조건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
─ 시작의 글 중
그렇지만 오히려 존비어체계의 유지를 통해 우리는 친밀하면서도 평등하고 성숙한 관계에 도착하는 실존적이고 문화적인 여정을 그저 언어를 교체하는 것으로 회피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사용해온 반말을 이제 좀더 세련된 삶의 도구로 개발하는 과제를 저버리고 있었던 것 아닐까?
─ 이성민, 「모험의 언어」 중
우리는 각자 가람, 성민으로만 대화하며, 서로의 나이, 직업, 환경보다 ‘나’로써 상대를 마주한다. 각자로서 서로와 대화하면서 생기는 또 하나의 효과는 서로 진중해지는 것이다. 사용자들은 배경을 앞세워 말하던 습관을 뒤로하고, 오로지 자신으로만 대화하며 왠지 조금은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기도 한다. 평어를 사용할 때에는 그만큼 솔직하고 민낯의 나로 대화하기 때문이다. 선생인 성민의 나이를 우리는 어떻게 짐작할까? 나이를 가늠하지 못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나는 책을 읽을 독자들이 성민을 50대로 생각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우리의 깊은 관념 속에는 학생이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선생에게 이름만 부르는 행동이 옳지 않다거나 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 박가람, 「가람아, 가람 씨가 아닌 가람 」 중
너무나 다른 각자성을 가진 이들은 서로가 이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고, 모든 대화가 매끄럽지는 않지만 모두 수면 위에서 함께 호흡하고 미끄러지고 있다. 평범한 대화들이 일상의 궤도에서 벗어나 또 다른 영역으로 퍼지는 장면은 현실 세계의 대화와는 다른 이질감이 있었다. 반말처럼 마냥 가볍기만 한 장난스러운 말들이나 존댓말처럼 복잡한 구조의 말들이 아닌 대화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말들, 의도치 않아도 마음속 깊이 심연을 꺼낼 줄 아는 대화들을 보면 대화의 행위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만족감과 동시에 대화 자체에 대한 의문이 생겼으며 화려한 미장센을 사용한 영화보다도 새로운 인상을 받았다. 대화의 장면을 보다가 대화를 의식하고 대화를 의식하며 말을 하는 방식과 태도를 되짚어 보게 된다.
─ 서채연, 「광장 고르기」 중
출판사 서평
1. 먹어
2. 밥 먹어
3. 연두야 밥을 먹자
4. 연두 씨 밥을 먹어요
5. 연두 선생님 진지 드세요
위 예시문은 대화의 상황(가령, 식사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하고 사용할 수 있는 말 문장을 다섯 단계로 나열해본 것이다. 처음에 나오는 “먹어”는 가장 단순한 말이고, 마지막에 나오는 “연두 선생님 진지 드세요”는 가장 복잡한 말이다. 또한 가장 첫 단계의 말은 하대하는 누군가에게 아주 짧게 명령할 때 쓰는 말이고, 마지막 단계의 말은 서로 어려운 사이에서 격식 있게 말해야 할 때 쓰는 말, 그래서 복잡하고 어려운 말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문장의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소통도 어렵고 판단도 느려지지만, 말뜻이 섬세해지고 격식이 갖춰진다. 한국말은 이러한 격식 있는 말이 아예 형식으로 굳어지면서 ‘존댓말’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그렇게 반대편의 ‘반말’과 구분되어, 지금까지 우리는 이 두 가지 형식의 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한편, 우리는 이러한 말 형식에 얽매어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기도 한다. 반말 관계는 친근하긴 하지만 비속어가 난무할 수 있는 관계로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존댓말 관계는 반말 관계만큼의 친밀감을 나누기는 어렵게 구조화되어 있다.
‘평어’는 말의 모든 골격이 갖추어졌으면서도, 가장 소통도 빠르고 격식도 없는 3단계 정도의 말(“연두야 밥을 먹자”)을 고른 뒤, 호칭에 토시를 생략해 상대방의 이름을 친근히 부르지만 약간의 격식과 예의를 갖춘 반말을 쓰는 방식으로 디자인되었다. 이러한 평어 가이드라인을 대화에 적용하게 되면 “연두, 밥을 먹자”라고 말하게 된다.
『예의 있는 반말』은 새로운 언어의 가능성에 관해 말한다. 책에는 반말도 존댓말도 아닌, ‘평어’라는 새로운 언어 체계를 디자인해 사용하고 있는 열다섯 필진이 쓴 열일곱 편의 글이 우리가 쓰는 말로 인해 이제껏 무엇을 놓쳐왔었는지, 그래서 도래할 세계에 어떤 가치들이 새로 포함될 수 있는지를 묻고 따지고 고민하는 데 기여하는 바가 있었으면 좋겠다.
기본정보
ISBN | 9791196804695 |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09월 07일 | ||
쪽수 | 220쪽 | ||
크기 |
107 * 189
* 13
mm
/ 191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텍스트 프레스와 친구들 총서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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