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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대표작가들의 첫 퀴어 소설집
작가정보
소설가 김금희(金錦姬)는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 『오직 한 사람의 차지』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복자에게』, 중편소설 『나의 사랑, 매기』, 짧은 소설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현대문학상, 우현예술상, 김승옥문학상 대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
저자(글) 박상영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 2015년 문학동네대학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장편소설 『최선의 삶』,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겟패킹』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문지문학상을 수상했다.
1986년 전주에서 태어났다.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방〉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괜찮은 사람》, 《화이트 호스》, 장편소설 《다른 사람》 등을 썼다. 한겨레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백신애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저자(글) 김봉곤
목차
- -기획의 말 아주 오래된 후일담 5
볕과 그림자 - 이종산 13
레이디 - 김금희 39
강원도 형 - 박상영 81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 임솔아 115
카밀라 - 강화길 143
유월 열차 - 김봉곤 173
책 속으로
“첫 키스?”
우리는 그 말을 놓고 웃음을 터트린다. 첫 키스. 그 말이 무슨 대단한 농담이라도 되는 듯이.
“오늘 하게 될 줄은 몰랐네. 너랑 할 줄도 몰랐지만.”
“나라서 싫어?”
“너라서 행운이라고 생각해.”
_31쪽 이종산, 〈볕과 그림자〉 중
“산다는 게 말이야, 산다는 게…….”
하지만 사는 게 어떻다는 건지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하트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테니까.
“나도 그래.”
_32쪽 이종산, 〈볕과 그림자〉 중
그 고립감은 소중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고 마치 햇볕에 달궈진 모래밭을 밟았던 아까의 낮처럼 몸이 따뜻해진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따뜻해진다는 것은 어쩌면 내 자신이 별이 된다는 것은 아닐까. 측정할 수 없는 정도의 열기를 갖게 되어 눈부시게 밝아진다는 것은 아닐까.
_58쪽 김금희, 〈레이디〉 중
그러자 좀 슬퍼졌는데 우리가 뭘 가진 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건 빈곤함에 대한 자각 같은 것이었다. 우리가 몸을 만질 때나 함께 걸을 때나 사랑해, 라고 표현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마음에 비해 그걸 드러낼 방법이 없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건 원래 없다기보다는 우리의 무지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애초에 없는 것이 아니라 가지지 못한 것 같았다.
_65쪽 김금희, 〈레이디〉 중
내 피에는 사람들의 하트가 흐르거든.
그거면 족해. 난.
_88쪽 박상영, 〈강원도 형〉 중
나는 누구 앞에서도 솔직할 수 없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거든. 누구라도 날 사랑해주면 그걸로 족하거든. 그러니까 더 나를 숨기고 싶어. 더 내가 아니고 싶어. 내가 나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 때까지 한없이 내게서 멀어지고 싶어.
아니. 거짓말이야.
실은 나, 단 한순간이라도 나 자신이고 싶어. 그냥 아무것도 아닌 나 자신으로서 살고 싶어.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고 싶어.
_111쪽 박상영, 〈강원도 형〉 중
나는 혼자 오는 손님들을 좋아했다. 그들은 골똘히 수프를 바라봤고 골똘히 수프를 먹었다. 한 숟가락을 입에 넣고서 허공을 응시했다. 오래도록 입을 우물거렸다. 입안에서 혼잣말을 웅얼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가끔은 나도 수프 한 그릇을 떠서 각자 떨어져 앉은 손님들 사이에 앉고는 했다. 혼자라는 느낌도 함께라는 느낌도 들지 않아서 좋았다.
_124쪽 임솔아,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중
아프면 멀게 느껴졌다. 천장이 너무 높아 보였다. 방문이 너무 멀어 보였다. 물에 잠긴 것처럼 눈을 뜨고 있어도 초점이 흩어졌다. 소리들이 웅얼거렸다. 자세를 바꾸려면 공기를 밀어내는 느낌으로 몸을 움직여야 했다. 숨을 참고 있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이렇게 있다는 걸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아프다는 것은 나 자신이 나 자신을 지나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을 듣고 있어야만 하는 느낌이었다.
_129쪽 임솔아,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중
나도 더 이상 너를 설득할 생각은 없어. 단지 나는 네게 새로운 삶을 선물하고 싶었어. 네가 그 인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줄 알았지.
_160쪽 강화길, 〈카밀라〉 중
이 순간에도, 나는 어떤 시간을 붙잡고 있었으니까. 정말로 끝나버릴 것 같은 순간. 누군가를 영원히 잃어버릴 것 같은 꿈.
_168~169쪽 강화길, 〈카밀라〉 중
나는 엄마에게 류를 소개시켜줄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몰랐다. 소개시켜주고 싶다, 는 그 마음을 난 더 좋아했는지도.
“여기서 끝이라고?”
“응. 여긴 여기가 끝.”
_187~188쪽 김봉곤, 〈유월 열차〉 중
“다시 우리 둘만 남았어.”
“그러네? 너무 좋네?”
“나도.”
나는 류의 허벅지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어 몸을 고정했다. 열차가 더 기울어졌지만 하나도 불안하지 않았다. 드문드문 불 밝힌 건물 사이로 로터리가 동그랗게 빛났다. 그건 이제 손가락에 끼울 수 있을 만큼 작아져 있었다.
_194쪽 김봉곤, 〈유월 열차〉 중
출판사 서평
이종산 김금희 박상영 임솔아 강화길 김봉곤
이 시대 대표작가들의 첫 퀴어 소설집
퀴어문학 전문 출판사 큐큐에서 퀴어문학 단편선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를 출간했다. 등단한 국내 작가들의 퀴어문학 선집으로는 첫 책이다. 현재 우리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고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6명의 젊은 작가 이종산, 김금희, 박상영, 임솔아, 강화길, 김봉곤이 이 책에 함께했다.
‘고전을 퀴어 서사로 풀어보고 싶다’는 기획자의 구상은 첫 소설집 《여름, 스피드》로 한국문학의 퀴어문학 계보를 새롭게 쓴 김봉곤 작가를 주축으로 작가들의 공감과 호응 덕분에 현실화될 수 있었다. 퀴어들의 입체적인 모습을 담은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는 퀴어문학 전문 출판사 큐큐에서 내는 시리즈 ‘큐큐퀴어단편선’의 첫 책이다. 큐큐는 국내 작가들의 단편을 모아 매년 한 권씩 ‘큐큐퀴어단편선’ 시리즈를 선보일 예정이다. 페미니즘과 함께 한국문학의 주요 화두가 된 퀴어문학은 다양한 이야기를 읽고자 하는 문학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줄 것이다.
이 책을 펼치는 것을 시작으로 매일 밤 숨겨진 자기만의 방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모든 이들이 각자의 세계 안에서 이야기에 기대어 자라고, 아직 쓰이지 않은 또 다른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
우리는 이해받기 위해 이해하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이야기가 되었다. 이야기의 힘은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살아 있게 하고 사랑하게 한다.그러니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 이야기가 끝나더라도.
-기획의 말 중에서
《더블린 사람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은하철도의 밤》 등
고전을 ‘퀴어’의 이야기로 풀어내다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는 우리가 잘 아는 고전을 이 시대의 퀴어 이야기로 새롭게 변주했다.
이종산 작가는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의 주요 상징을 가져와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첫사랑 이야기 〈볕과 그림자〉를 완성했다.
김금희 작가는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에서 작가가 사랑하는 단편소설 〈애러비〉와 〈죽은 사람들〉을 가져와 우리가 처음 느꼈던, 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감정들을 〈레이디〉로 탈바꿈시켰다.
박상영 작가는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현대화했다. 강원도를 배경으로 한 유쾌하면서도 씁쓸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강원도 형〉을 통해 아름다움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임솔아 작가는 허먼 멜빌의 〈선원, 빌리 버드〉의 인물들을 변주하여 가깝고도 낯선 타자를 향한 양가감정을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에 섬세하게 담아냈다.
강화길 작가는 조지프 세리든 르 파누의 《카밀라》의 뱀파이어 이미지를 현대로 옮겨와 매력적인 현시대의 〈카밀라〉를 완성했다.
김봉곤 작가는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의 신비로운 여정을 이어가면서 작가 고유의 리듬으로 환상적인 사랑의 여정을 〈유월 열차〉에 그려냈다.
“그럼 네가 그림자를 가져. 내가 해를 가질게.”
빛과 어둠, 삶과 죽음은 나란한 것 ? 이종산??〈볕과 그림자〉
이종산 작가는 《코끼리는 안녕,》으로 제1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평범한 일상에서 발견되는 삶의 순간을 섬세하게 녹여낸《게으른 삶》, 다양한 장르를 흡수할 뿐 아니라 소설 안에서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은 감각적인 작품 《커스터머》를 발표했다.
〈볕과 그림자〉는 볕과 그림자라는 뜻을 모두 가진 ‘경’이라는 이름의 소녀가 성장하는 이야기다. 사랑이란 감정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던 시절의 복잡한 감정을 밀도 있게 그려냈다.??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를 재해석한 이 소설에서 이종산 작가는 인물의 감정 변화를 따라가며 기쁨과 슬픔, 생과 죽음, 볕과 그림자가 언제나 나란히 붙어있다는 삶의 당연한 진실을 서정적이고 다정한 문장 안에 담아냈다. 읽는 이들은??오랫동안 간직해 온 첫사랑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햇볕이란 뜻일 때는 ‘경’이라고 하고, 그림자라는 뜻으로 쓸때는 ‘영’이라고 한대. 근데 난 해보다 그림자가 더 좋아.”“그럼 네가 그림자를 가져. 내가 해를 가질게.”
그래서 나는 하트를 ‘경’이라고 부르게 됐다. 하트는 나를 ‘영’이라고 부른다.
_19쪽 이종산, 〈볕과 그림자〉 중
“그런 재회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고
나는 그것이 기적과도 같은 불행이었다고 생각했다.”
기적과도 같은 불행을 건너온 우리에게 바치는 헌사 ? 김금희??〈레이디〉
김금희 작가는《너무 한낮의 연애》와 《경애의 마음》으로 독자와 평단을 사로잡은 우리 시대 대표 작가다. 냉담한 현실, 고요한 분노, 따뜻한 시선, 감정의 정밀묘사, 소소한 유머. 그의 문장은 시대를 대변하며 내일로 나아가는 바로 오늘의 문장이다.
20세기 초 더블린을 배경으로 인간들의 욕망과 좌절을 그린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그중에서도 작가가 사랑하는 단편 〈애러비〉, 〈죽은사람들〉이 〈레이디〉의 주요 모티프가 되었다. 〈애러비〉의 소년은 1990년대 한국의 소녀 ‘정아’로 재탄생했다.
친구 유나의 가족을 따라 바캉스를 떠난 정아는 짐짓 의연해 보이지만 감수성 예민한 여느 십 대 소녀와 다를 바 없다. 〈레이디〉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놓아버릴 수도 없는 미묘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눈부시게 밝은 순간, 가능한 한 가까워지기 위해 애쓰는 몸짓, 난폭하게 마음을 뒤흔드는 맹렬한 적의와 분노, 비늘처럼 돋던 긴장과 두려움, 즐거운 날들과 슬픈 날들은 그렇게 곁을 지나간다. 김건모, 전람회, 엑스재팬 등 90년대를 추억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나는 그저 입고 있던 파자마와 속옷을 벗고 맨다리로 유나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유나도 옷을 벗고 나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는데 문득 유나가 이제 어떻게 하지? 하고 귓가에 속삭였다.
“어떻게 하고 싶은데?”
내가 작은 소리로 되물었다.
“최선을 다하고 싶어.”
나는 그 진지한 말투가 우스워서 폭 하고 웃고 나서 그래, 최선을 다하자, 하고 대답했다.
_61쪽 김금희, 〈레이디〉 중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요.”
21세기에 환생한 ‘도리언 그레이’ ? 박상영??〈강원도 형〉
박상영 작가는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로 퀴어문학의 지평을 넓혔다. 희비극을 솜씨 좋게 엮어내는 그는 예술과 삶에 대한 위트와 냉소를 통해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었던, 보여주려 하지 않았던 진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만든다.
그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기존의 틀에 들어가고 싶어 애쓰지만 어쩐지 계속 미끄러지기만 한다. 현실에서 만난다면 멀리서 바라보다 돌아설 것 같지만, 〈강원도 형〉의 화자의 방백을 따라가다 보면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절실히 느껴져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다. 오스카 와일드의 유미주의가 함축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도리언은 “아름다운 모습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내어 주겠다”고 말한다. “내 피에는 사람들의 하트가 흐른다”는 〈강원도 형〉의 도이언은 바로 도리언 그레이의 21세기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박상영 작가는 내가 나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 때까지 한없이 내게서 멀어지고 싶은, 더 내가 아니고 싶은, 그럴수록 유리처럼 투명해지는 마음에 대한 질문은 거울 속에 그 답이 있음을 담담히 그려낸다. 작가는 오스카 와일드가 이천 년대에 생존해 있다면 누구보다 열성적인 인스타그래머가 되었으리라 장담한다. 의심하긴 어렵다.
그때의 내 욕망은 단 하나였다.
대단해지고 싶어,
누구도 나를 무시할 수 없게.
특별해지고 싶어,
모두가 날 알아보게.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어,
모두가 내게 쩔쩔매게.
_86쪽 박상영, 〈강원도 형〉 중
“정상이 되고 싶은 건 욕망이 아니라 균형 감각이야.”
나를 불편하게 하는 당신의 선의 ? 임솔아??〈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임솔아 작가는 장편소설 《최선의 삶》과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로 소설과 시 모두에서 탄탄한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임솔아 작가는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에서 담담하지만 지긋이 핵심을 꿰뚫는 간명한 문장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궁금해하고 그의 생활 습관을 내 방식대로 바꾸고야 마는 사랑의 일면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어느 날 갑자기 같은 공간을 공유하게 된 기정과 선미, 악의인지 선의인지 모를 서로의 행동이 겹친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내면서 경험하게 되는 가깝고도 낯선 타자를 향한 양가감정이 묵직하게 전해진다. 허먼 멜빌의 〈선원, 빌리 버드〉가 모티프가 된 이 작품은 선과 악, 정상과 비정상으로 이분할 수 없는 삶의 모호함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아프다는 게 뭔지 아니. 정상이 아니라는 거야. 정상이 아니면 사람이 아프게 되는 거야. 정상이 되고 싶은 건 욕망이 아니라 균형 감각이야. 인간은 항상 회복을 지향하도록 되어 있어. 정상일 때에는 정상에 대해 둔감하지만, 비정상이 되고 나서는 정상이 무엇인지를 뼛속 깊이 생각하고 갈망하게 되는 법이야. 갈망이 신호를 보내는 게 아픔인 거야.
_118~119쪽 임솔아,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중
“영원히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거지. 끔찍해. 지겨워.”
남겨진 자의 고요하고 서늘한 슬픔 ? 강화길 〈카밀라〉
강화길 작가는 여성과 불평등한 사회의 문제의식을 담담하게 그린 작품으로 한국 문단의 시대정신을 새롭게 구축하고 있다. 혐오에 정면으로 맞서는 그의 작품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작품 안에서 시대를 보여주고 화두를 던진다.
〈카밀라〉는 조지프 르 파뉴의 원작 〈카밀라〉의 신비로운 공포와 긴장감에 더해 남겨진 자의 아픔과 슬픔을 고요하고 아름답게 그려냈다. 르 파뉴의 〈카밀라〉는 최초로 레즈비언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작품으로 로라와 카밀라의 관계에 대한 금지된 사랑의 은유가 가득한 작품이다. 작가는 원작의 뱀파이어라는 특수성, 소수성을 가진 매력적인 캐릭터를 현대로 옮겨와 그가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여성의 삶, 소수자의 삶에 대한 문제를 고스란히 녹여냈다.
그런 말들이 너무 달콤해서, 그런 것들에 자꾸 의지하며 덧없는 시간을 보내온 것 같아. 끊임없이 감정을 소모하며, 단 한순간의 편안함도 없이. 그런데 이제는 그런 시간을 영원히 갖게 된 거야. 영원히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거지. 끔찍해. 지겨워.
_160쪽 강화길, 〈카밀라〉 중
“여기서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어.”
고작 사랑이지만 결국 사랑이라고 ? 김봉곤 〈유월 열차〉
김봉곤 작가는 올 여름 퀴어의 사랑을 솔직하게 담아낸 첫 소설집 《여름, 스피드》를 펴내 주목받았다. 꿈결처럼 물결처럼 흐르는 그의 문장들은 작가 고유의 리듬 안으로 독자들을 끌어당긴다. 아마 우리는 여름이면 김봉곤의 메트로놈대로 격렬한 사랑의 문장에 마음을 맞추는 일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유월 열차〉의 화자는 연인 ‘류’와 함께 완벽한 열차 여행을 떠난다. 열차는 과거로부터 도망가면서 미래로 나아간다. 변화하는 시공간인 열차에서는 멈추고 싶지 않은, 붙잡고 싶은 현재의 순간들이 등장한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여행에서 발견하는 그리움과 애틋함의 순간들을 속도감 있는 문체로 그려냈다. 국내에서도 〈은하철도 999〉의 원작으로 널리 알려진 일본의 국민 작가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은 김봉곤 작가의 손에서 신비롭고 환상적인 그리운 것들을 만나 화해하고 보듬는 사랑의 여정으로 다시 태어났다.
우리를 둘러싸던 그 노래.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 제발 멈추지 말아요 하고 반복되던, 고작 사랑이지만 결국 사랑이라고 울려 퍼지던 그 노래를, 무너질 듯 무너지던 천장, 은하처럼 반짝이고 터지던 미러볼, 깊은 밤 나는 흥얼거리는 걸 멈추지 못하면서, 조금은 울면서, 점점 더 멀어지면서, 우린 하나가 되진 못하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둘쯤은 될 거라고, 눈을 뜨면 사랑을 할 테고, 이대로 눈을 감아도 사랑을 하는 거라고, 사랑하는 류, 당신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고.
_198쪽 김봉곤, 〈유월 열차〉 중
기본정보
ISBN | 9791196438111 | ||
---|---|---|---|
발행(출시)일자 | 2018년 08월 14일 | ||
쪽수 | 200쪽 | ||
크기 |
138 * 197
* 15
mm
/ 297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큐큐퀴어단편선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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