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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식민 시대에 살다 언어의 분단 시대에 죽어간 시인의 시를 지금 읽으며 우리는 계속 질문해야 한다.
정지용은 일제강점기에 두 권의 시집을 남겼다. 1935년 <시문학사>에서 낸 『정지용 시집』과 1941년 <문장사>에서 낸 『백록담』. 그리고 해방 직후까지 몇 편의 시를 더 발표했다. 남북분단 이후 금지시켰던 그의 시가 해금되던 1988년 <민음사>에서 시와 산문을 모아 『정지용 전집』 2권을 발행했다.
이 책은 120편이 넘는 그의 시 가운데 시의 특성을 중심으로 다섯 꼭지로 묶었다. 이 책의 내용은 정지용이라는 인물과 그의 시를 통해 그가 살았던 시대를 더듬고자 하는 흔적으로 채워졌다. 정지용의 시를 거울삼아 그가 살았던 시대와 지금 이 시대를 비추어 보고자 한다.
한때 한국 문단의 주목받는 시인이었던 그를 분단 이후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지하에 묻어놓은 것은 정지용의 시에 대한 억압인 동시에 표현의 자유에 대한 죽임, 그리고 그의 시를 읽고 싶어 하던 사람들에 대한 사상의 족쇄이자 감옥이었다.
왜 아름다운 시를 쓴 사람이 비극의 상징이 되어야 하는가. 언어의 식민 시대에 살다 언어의 분단 시대에 죽어간 시인의 시를 지금 읽으며 우리는 계속 질문해야 한다.
한편, 이 책은 옥천 출신의 시인을 옥천 출신의 후학이 이야기하고 옥천 지역에 뿌리를 둔 출판사에서 펴냈다.
옥천에 살면서 정지용을 생각한다는 것. 그를 생각하는 것이 그가 살다간 불의한 시대에 대한 또 다른 저항이어야 하며, 그와 그의 시를 역사에서 지워버리고자 했던 파시스트들을 향한 경고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필자의 뇌리에 강하게 머물러 있다.
2016년 촛불혁명이 있었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되어 간다. 정지용의 시대로부터 아주 멀리 온 것 같지만 한반도는 아직 분단의 그늘 아래 있다. 문학의 분단, 사상의 분단, 한반도 구성원들 삶의 분단 시대가 지속되고 있다. 정지용 시와 그의 삶을 읽는다는 것이 여전히 오늘의 일이자 내일의 일인 이유다.
작가정보
해설 김성장
1902년 5월 15일 충청북도 옥천(沃川)에서 출생하였다.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모교의 교사, 8·15광복 후 이화여자전문 교수와 경향신문사(京鄕新聞社) 편집국장을 지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순수시인이었으나, 광복 후 좌익 문학단체에 관계하다가 전향, 보도연맹(輔導聯盟)에 가입하였으며, 6·25전쟁 때 북한공산군에 끌려간 후 사망했다. 1933년 '가톨릭 청년'의 편집고문으로 있을 때, 이상(李箱)의 시를 실어 그를 시단에 등장시켰으며, 1939년 '문장(文章)'을 통해 조지훈(趙芝薰)·박두진(朴斗鎭)·박목월(朴木月)의 청록파(靑鹿派)를 등장시켰다.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구사하여 대상을 선명히 묘사, 한국 현대시의 신경지를 열었다. 작품으로, 시 '향수(鄕愁)', '압천(鴨川)', '이른봄 아침', '바다' 등과, 시집 '정지용 시집'이 있다.
목차
- 1장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동심과 고향에 관련된 시
향수
옛 이야기 구절
고향
자류
가모가와
조약돌
띠, 할아버지, 홍시, 병
종달새, 딸레, 지는해, 숨기내기
산엣 색시 들녘 사내
2장 뿔뿔이 달아나는 바다
바다에 관련된 시
선취 2
선취1
갑판 위
바다 9
바다 6
갈매기
바다 1
풍랑몽 1
해협
바다 4
3장 나의 눈보다 값진 이
신앙에 관련된 시
불사조
다른 한울
그의 반
나무
갈릴레아 바다
4장 숨어있는 고요함
산에 관련된 시
장수산 1
옥류동
나비
구성동
백록담
진달래
호랑나비
5장 사랑과 절망과 혼돈의 시절
그 밖의 시들
엽서에 쓴 글
파라솔
카페 프란스
유리창 1
발열
비
시계를 죽임
그대들 돌아오시니
나비
정지용 연보
책 속으로
정지용은 고독한 시인이었다. 그는 대한제국이라는 무력한 제국에서 태어나 일본이라는 폭력적 제국의 점령 기간에 시인으로 활동하다가 미국이라는 교묘한 제국이 한반도를 종횡하던 시기에 죽었다.
때로는 영광의 자리에 있었으나 시대의 첨단을 가는 자의 고독한 무게를 견뎌야 했고 이념을 추구하지 않았으나 이념의 포충망에 갇혀 40년 가까운 세월을 한반도에서 잊혀야만 했다. 시인은 언어를 무기로 세상을 재구성하는 자일진대 그는 언어가 시대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던 일제 말 암흑기에 붓을 꺾어야 했고 남북이 극한대립으로 치닫던 6.25 직전, 은둔자로 절필하며 인고의 시간을 버텨야 했다. 한때 히라가나로 시를 써야 했고 마지막엔 죽음의 자리마저 선택할 수 없는 운명으로 길에서 죽어간 시인 정지용, 그를 사랑한 숱한 사람들도 비극의 시대를 함께 건너야 했다. 선택한 것보다 강요된 것이 더 많은 시대를 살던 한반도 거주민들의 운명이었다. (4p)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아무러치도 않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옆에 있어도 아무렇지 않고, 내가 함부로 해도 아무러치도 않고, 내가 아무렇게나 해도 아무러치도 않은 그런 사람일까요. (…) 그런데 그 ‘안해’가 가장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함께 따가운 햇살을 받으면서 맨발로 이삭을 ‘줏고’ 있으니, 이것은 너무 안쓰러운 장면입니다.
그 시절 어쩌면 모든 안해들이 그렇게 힘들었던 시절인지 모릅니다. 정지용은 결국 ‘아무러치도 않은’ 가슴으로 이 장면을 쓰고 있지는 않았겠지요. (27p)
기본정보
ISBN | 9791196380304 |
---|---|
발행(출시)일자 | 2018년 05월 15일 |
쪽수 | 229쪽 |
크기 |
121 * 207
* 17
mm
/ 263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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