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으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시인으로서, 시낭송가로서, 성악가로서 시인은 왜 자신을 풍장(風葬)이라는 가장 애틋하고 서러운 장례의식(葬禮儀式)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는가?
시인은 왜 죽어서도 바람이길 원하는가?
살아서도 왜 바람이길 원하는가?
죽음마저도 축제로 승화시키고 있는가?
그 내면의식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 같은 물음에 대해 서애숙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어릴 적, 어머니의 고향인 진도 죽림(竹林)에선 씻김굿 판이 밤새워 벌어지곤 했다. 그 굿판 귀퉁이에서 밤 깊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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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시인으로서, 시낭송가로서, 성악가로서 시인은 왜 자신을 풍장(風葬)이라는 가장 애틋하고 서러운 장례의식(葬禮儀式)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는가?
시인은 왜 죽어서도 바람이길 원하는가?
살아서도 왜 바람이길 원하는가?
죽음마저도 축제로 승화시키고 있는가?
그 내면의식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 같은 물음에 대해 서애숙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어릴 적, 어머니의 고향인 진도 죽림(竹林)에선 씻김굿 판이 밤새워 벌어지곤 했다. 그 굿판 귀퉁이에서 밤 깊은 줄도 모르고 지켜보던 아이가 있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그 굿판의 신령함은 아이의 내면의식에서 끊임없이 풍화작용을 하며 아이의 삶과 세계관을 추동하곤 했다. 이번 시집은 그 아련함의 추동으로 지난 15년 동안 써온 시들이다. 그 두루마리를 펴서 이제 세상에 내놓는다.”
이 내면의식이 바로 시인이 죽음을 축제로 승화시키는 이유이기도 하고, 살아서도 죽어서도 바람이길 원하는 답니다. 실제로 그러한 시편을 살펴보자.
나도 모르게 지은 죄에 묶여
내 영혼이 제 갈 길 가지 못하거든
부디 살풀이 한 가락 춰주오
그래도 제 갈 길 찾지 못하거든
바다소리 끊이지 않게
메아리라도 남겨주오
그런데도 제 갈 길 찾지 못하고 헤매거든
바람에 잘 말려
한지에 곱게 싸
깊은 땅 속에 묻어주오
지상에 두고 가야 할 마음자락
아직도 놓지 못하고 있는 이 탐욕 어여삐 여겨
부디 봉분 하나 만들어주오
-「죽림 풍장 84」 전문
서애숙 시인은 이처럼 다하지 못한 죽음이 삶이요, 다하지 못한 삶이 죽음인 것을 에둘러 노래하며, 다 죽지 못한 죽음이 삶일 때와 다 살지 못한 삶이 죽음일 때, 그 둘 사이의 사이가 마냥 앞뒤가 엇갈리는 모순이 아님을, 주검은 물론 살아있는 우리들에게도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서애숙 시인의 또 다른 명편인 「죽림 풍장 53」도 다음과 같은 명민한 감성과 촉각으로 죽음을 축제로 승화시키고 있다.
생전에 단 한 번도 꺼내놓지 못한 마음
단정하게 말라가며 고백합니다
백일홍같이 매끈한 허리에 감기고 싶었고
새벽별같이 푸르게 빛나던 그 눈에 빠지고 싶었고
장삼자락 휘날리던 그 바람 속에 감기고 싶었고
그 어진 미소 속에 나를 묶어두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 행여 놓으면
당신 영영 산문으로 접어 들까봐
아무도 몰래
가슴에 옹이로 남겨놓았는데
제가 먼저 이곳에 누울 줄 알았다면
당신 등 뒤에 풍경소리라도 남기고 올 걸
초분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없어 더 아픕니다
서애숙 시인의 석류 같은 내면의식과 죽음에 대한 축제의 마음은 시인의 또 다른 시 「죽림 풍장 91」에서 정점에 다다른다.
죄 많은 상처가 사방에 흩어진다
온천지에 하얀 붕대가 머리띠를 두르고 날아다닌다
더러는 상수리나무를 휘감고
또 더러는 초분을 휘감고
또 더러는 우우거리는 노송을 휘감고
내 뼈도 휘감고
붕대가 붕대마저 휘감고
내 비로소 바람 되어 붕대 풀던 날에야
상처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삶의 흔적임을 알았다
초막에 누워
내 마음의 상처가 별빛보다 더 찬란함을
비로소 알았다
이처럼 ‘바람 되어 붕대 풀던 날에야/ 상처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삶의 흔적임을 알았다/ 초막에 누워/ 내 마음의 상처가 별빛보다 더 찬란함을/ 비로소 알았다’는 시인의 육탈적 고백은 (아직은 죽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닥쳐올) 시인의 죽음이 매우 성숙하고 농익은 죽음임을 우리들은 먼저 볼 수 있다. 더불어 그 주검이 단순히 자연의 이법에 따라 그냥 썩어가는 주검이 아니라 또 다시 맞이할 죽음 이후의 세상에서 더욱 확장되고 성숙한 살아있는 죽음인 것을 볼 수 있다. 시인이 죽음을 단순한 주검이 아니라 축제로 승화시키는 힘은 바로 거기서 나온다.
다음의 시는 서애숙 시인의 그러한 내면의식과 죽음의 축제의식을 진짜 축제의식으로 승화시켜주는 이 시집의 백미이자, 시인 자신의 죽음 너머 세계를 진짜 축제로 확실하게 명명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가난한 나를
고래등 같은 능선 아래 놓아두고 갔다
바람에 아주 잘 마를 자리에
나의 칠성판을 놓아두고 갔다
밤별들이 내려와
나에게 숙박계를 쓰라 한다
숙박계가 있어야 별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한 번도 숙박계를 쓰지 않고 살아온 무지랭이 인생인데
무어라 쓸까 망설이다
‘시인’이라고 딱 두 글자만 쓰고 말았다
눈을 들어 바라보니
밤별들이 자지러지게 웃고 있었다
여기 모인 별들은 다 시인이라고
-「죽림 풍장 94」 전문
밤하늘의 별들이 모두 ‘시인’이라니, 이 기막힌 상상과 발상이라니, 이 시 한 편으로 서애숙 시인은 이미 죽은 후의 자신의 모습을 예언하고 있다. 무려 15년에 걸쳐 102편으로 완성해낸 「죽림 풍장」이 단순히 죽음(혹은 주검)을 노래한 허무송(虛無頌)이 아니라 인생의 찬가(讚歌)로 돌려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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