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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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기관 추천도서 > 문학나눔 선정도서 > 2022년 선정
김백형 『귤』 출간
“사람들 입에 별무리 터지는 소리 자꾸만 고이게,
아빠도 아빠의 껍질을 까서 군침 도는 시를 나눠 주세요”
사람과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는 달콤하고 새콤한 상상력
호흡을 기록하고 육성을 기억하는 김백형 시인의 첫 시집
이 시집에는 가족, 그리고 어울려 사는 공동체 세상에 대한 진한 애정이 녹아들어 있다. 그는 눈사람이라는 무명의 존재에게도 “이름부터 지어” 주는 사람이다. “사람대접도 못 받고 춥고 고프고 서러웠다고 울컥 복받쳐 우는 사람”을 연상시키는 눈사람에게 이름을 지어 주고, “돌림자를 써서 한 가족으로 만들어”낸다. 이러한 장면은 시인이 가진 신실함과 동심(童心)을 한데 보여 주는 아름다운 대목이다. 시적 화자는 눈사람에게 “목도리를 둘러” 주기도 하지만, 눈사람 가족은 모두 곧 녹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눈사람이 “길의 나이테”가 되어 겨울마다 “몸 씻고 하얗게 돌아올 것”이며 “제 이름 부르는 소리 듣고 지상으로 펑펑 마음”(「하관」)을 쏟을 것이라고 믿는다. 동화적인 상상력으로 쌓아 올린 애도는 그가 지닌 극진한 삶의 태도이자 세상을 향한 애정이다. 시인이 노래하는 ‘가족’은 “세계와 대치하며 저 안쪽의 가족”까지 “인식하고 형상하는 꿈”이고, 그것은 “곧 우리 모두에게 치유의 기쁨을 선물한다.”(고형렬 시인, 추천사)
그는 그만의 호흡법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육성으로 그것을 기록한다. 그가 하나의 공간에 낯선 존재를 부여함으로써 세상은 한순간에 이질적으로 변해 버린다. 그는 대담하게 광장 한복판에 “혹등고래 한 마리”를 내려놓는다. “오대양 물을 잔뜩 채우고” “허공에 물줄기를 쏘”는 혹등고래 한 마리가 등장하는 순간, 광화문은 순식간에 “신이 난 아이들”이 “고래 등을 뛰어다니고” “세상 굽어보던 이순신 장군”이 “살 것 같다”(「광화문 바닥분수」)고 숨을 내쉬는 쾌적한 공간이 된다. 꽉 막혀 있고 혼란스러운 세계를 환상적인 상상력으로 환기시킴으로써 읽는 이에게도 청량한 느낌을 선사하는데, 이런 시인의 호흡법은 “비현실이 지친 현실을 압도하는 장면”(김준현 시인, 해설)으로 우리에게 승화된다. 이외에도 ‘우산’을 “마음을 그대로 본”떠 만든 사물로 바라보고, 우산살 아래의 한 평 남짓의 공간을 “아담의 갈비뼈 아래 지붕마저 둥근 에덴”(「우산」)으로 인식하는가 하면, 마카롱을 “태양에 구워”진 지구로 보고, “수성 금성 목성 화성 토성 명왕성”(「마카롱」) 등의 행성으로 바라보는 등 사소한 사물을 포착하는 데에도 그만의 독특한 상상력이 발휘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시인이 살아내고 있는 곳은 “짖지 않는 것들만”(「골목, 길 없는」) 사는 골목이다. 그가 가는 길이 “창공에 끊긴 연줄이거나 흐르다 익사하고 마는 물길”(「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이어도 시인은 그저 묵묵하게 “흘러오는 것과 흘러가는 것”(「물소리를 따라 걷다」)을 분간하며, 물소리를 따라 걷는다. 그만의 달콤하고 새콤한 상상력으로 꾸려 놓은 한 권의 시집을 보고, 김준현 시인은 “대상의 너머를 넘겨다보는 그 자리들이, 유의미와 무의미의 이분법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아름답다는 것을 그저 감각할 수 있다면 좋겠다”(「해설」)고 당부한다. 시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기보다는 그저 시인의 감각과 목소리에 동참하여 따라가는 것이 “시인이 마련해 놓은 시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작가정보
작가의 말
그리움엔 늘 통증이 박혀 있어 지움만이 위안인 듯 먹빛 씻기는 새벽입니다.
끝까지 길잡이가 되어 주신 고산준봉과 열두 별의 동행을 상기하면서
아빠 시가 나눠 먹는 ‘귤’이었으면 좋겠다는 흰초꽃해봄에게 21그램의 이 시집을 증여합니다.
2022년 6월 16일 4시 30분 행성 정렬을 기다리며
김백형
목차
- 1부 저녁불을 켜러 갑니다
귤
하관
섭섬, 고래가 되다
우산
지구과학
창틀에 낀 것들
광화문 바닥분수
운천터미널
삼부연폭포
석이
마장호수 출렁다리
물소리를 따라 걷다
상선약수
2부 생과 죽음의 디저트
마카롱
평상
탁자
골목, 길 없는
계단 학습법
눈많은그늘나비
꽃근이
페이크 삭스
까닭을 키우다
박스
방충망
경의중앙선에게 묻다
3부 캄캄하게 나를 걸었다
그릇
와불
손가락을 위로하다
달력
내 자리는 어디인가요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0
옷걸이
나도 지우개
방아깨비
냉장고
오십
4부 살릉살릉 죽은 별의 소리가 났다
크로키, 1979년 겨울
장화였다
유대류
홍제천
벽화
이브, 폭설
옷핀
요강
알전구 심부름
대설
동파
똥살개
해설
호흡을 기록하고 육성을 기억하는 시
-김준현(시인·문학평론가)
추천사
-
이 첫 시집의 중심에는 삶의 근원인 가족이 있다. 어떤 사회적 가치와 정치적 목적도 가정(家庭. 가족과 정원)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실패가 된다. 위험한 현실 속에서 인내를 배운 그의 시가 세계와 대치하며 저 안쪽의 가족을 인식하고 형상하는 꿈은 곧 우리 모두에게 치유의 기쁨을 선물한다.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고 노래한 소월 소년의 꿈은 한국 시의 최종 목적지이다. 이 퍼스낼리티의 시들은 심장에서 뿜어져 먼 기약된 실핏줄로 ‘다시’ 돌아올 것을 믿는다. 언제까지고 그대 가족은 성채이며 삶의 목표는 시이다. 아내와 함께 노모를 지키며 다섯 아이의 힘으로 살아가는 파주 시인에게 전서구를 녹음 속에 날려 보낸다.
“김백형 시인, 같이 눈을 열어서(개안開眼) 마음을 열고(개심開心) 다시 마음을 열어서 멈추지 않고 산을 열어 가기(개산開山) 바랍니다.”
책 속으로
귤이 익으면 몇 칸의 방이 되지요? 아빠도 시의 집을 지어요, 가난한 사람들 입에 별무리 터지는 소리 자꾸만 고이게, 아빠도 아빠의 껍질을 까서 군침 도는 시를 나눠 주세요
잠든 아이들 동그랗게 옮겨 놓고 껍질은 두 팔 벌려 덮었다 편다 새콤하고 달콤한 말들이 꽉 차 있다
어둠도 심장에 주홍빛 귀를 기울인다
-「귤」 전문
쓸쓸하지는 않습니다 물소리도 한참을 따라 걸어요 흘러오는 것과 흘러가는 것은 어느 지점에서 분간되는 걸까요? 물결의 걸음을 세다 그만 내 발길은 잊고 맙니다
온몸 스트로처럼 꽂아 세월 마시는 머리 하얀 갈대 무리, 너머에 오리들은 징검돌처럼 묵묵하네요
(…)
길이 다시 귀를 열고 발자국 소리를 따라 걷습니다 오선지 그으며 쫓아오던 둑길 전봇대들도 수문 넘어 민통선으로 왜가리를 배웅하고 돌아서 저녁불을 켜러 갑니다
-「물소리를 따라 걷다」 부분
뒷산에서 푸른 늑대가 운다
달달한 꿈이
한 달이면 만들어진다
일 년 열두 달 빨주노초파남보
가지각색 입고 오는
생과 죽음의 디저트,
지구는 내일도 태양에 구워지고
수성 금성 목성 화성 토성 명왕성
이것들 누가 주문한 걸까?
-「마카롱」 전문
직벽을 더듬던 더듬이가 자꾸 미끄러졌다
여름은 대체 어디서 기진하였나
-「눈많은그늘나비」 전문
땅골 곱대띠 사랑방 구석 자리
아무 때나 누가 오든 깎아 주던 고매
밤새 비상 물고 치통 다스리던 할매 옆에서
살얼음 김치 얹어 먹던 고매
해를 이고 가면 달을 이고 오는 물산 금광
돌가루투성이 고모를 기다리며
정지 밥 짓는 할매 옆에 부지깽이 들고 앉아
눈물 콧물 연금하던 고매
고매순 까다 까매진 열 손가락
부서진 손톱 들여다볼 적마다 문디 같던 고매
논밭 거머쥔 벼뿌리 얼음 위를 지치다 오면
대청마루 텅 빈 쪽거울 아래
스뎅 대접 가득 담겨 있던 찐 고매
고매꽃 한번 못 피워 보고 땅속에 묻힌
꽃근이 고매
-「꽃근이」 전문
상목 아재의 맨발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올라와 수박 한 쪽 먹고 가, 몇 번의 아버지 청에도
꼴이 이래서, 수박 한 쪽 그냥 들고 가셨다
돼지 멱을 딸 때도 장화를 신고 있었고
동튼 후 물꼬 트고 오는 것도 장화였다
장날 면사무소 앞뜰에 늙은 염소를 묶어 놓고 토지 대장을 떼는 것도
상여를 메고, 떼 심은 봉분을 밟아 주는 것도 장화였다
(…)
형제도 없고 자식도 없고 배신할 여자도 없는
오직 한 짝의 장화
그가 감추고 있는 장화 속에 족적을 도무지 알 길이 없었지만
에휴 불쌍한 사람, 아버지는 말했다
다 떨어진 감꽃은 잊었지만
보이지 않는 그를 아무도 보려 하지 않던 장마 끝
장화다!
가림못에 떠 있는 그를 외지 낚시꾼이 발견했다
제 속에 물을 흠뻑 담고서도 끝내 그를 벗지 않는
-「장화였다」 부분
퍽!
불이 나갔다
어둑어둑 저녁이 오자 진공 속 사슬을 끊고 뛰쳐나갔다
엄마는 알을 꺼내 두어 번 귀에 흔들어 보고 건네셨다
살릉살릉 죽은 별의 소리가 났다
빤히 보이는 안팎에서
점등과 소등의 줄탁이 있었고,
부화가 되자마자 어둠 속으로 날아간 새
심부름을 간다
예쁘다의상실 모퉁이를 돌아 동산약방을 지나
세제 냄새 흘러가는 개천 다리 건너
별자리를 이어 가면
밤하늘에 필라멘트가 반짝거렸다
나는 탁란이었을까?
재순이 엄마는 선반 끄트머리
골판지에 싸여 있는 알전구를 꺼내
그 고요를 내 귀에도 확인시켰다
번쩍! 소켓에서
전구가 나를 봤다
캄캄한 의심이 환하게 사라졌다
세상은 알전구 삼키려 돌부리 내미는 먹구렁이 길
허공에 알 하나 받쳐 들고 돌아오는 새
엄마는 캄캄하게 늙어 버렸다
-「알전구 심부름」 전문
기본정보
ISBN | 9791192333168 | ||
---|---|---|---|
발행(출시)일자 | 2022년 06월 24일 | ||
쪽수 | 112쪽 | ||
크기 |
126 * 201
* 12
mm
/ 229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걷는사람 시인선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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