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의 맛: 아무렇지 않을 준비가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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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하게 위의 기준으로 살펴본다면, 열한 번째로 선보이는 띵 시리즈 『용기의 맛 : 아무렇지 않을 준비가 되었어』는 꽤 훌륭한 에세이다. 솔직함의 기준을 본능적으로 영리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책은 “평범하게 산다는 것 자체가 용기투성이.”였다는 고백으로 시작한다. 오래도록 가까운 가족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지나온 한 시절에 대해 조심스럽게 꺼내놓으면서도, 독자를 향해 세상을 향해 그리고 또다시 자기 자신을 향해 말을 걸어오고 있다.
여기에는 작가가 어린 시절 앓았던 ‘소아 천식’과 결혼 후 알게 된 ‘다낭성 난소 증후군’은 차치하고서도 다양한 병명이 등장한다. 심실중격결손, 유미흉, 백질연화증…. 모두 2018년에 태어난 아이 ‘호수’에게 내려진 진단이다.
호수의 엄마이자 이 책의 작가, 룬아(필명)는 사람을 만나 인터뷰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신문이나 잡지에 소속된 기자는 아니다. 그간 자신이 직접 만든 콘텐츠 스튜디오 ‘더콤마에이’와 유튜브 채널 〈마요네즈 매거진〉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만나며 인터뷰 기록을 쌓아온 그다. 주로 아주 유명한 사람보다는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유일무이한 브랜드를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에는 그중 몇몇을 모아 『취향집』이라는 책으로 출간했으며, 계속해서 그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바짝 가까이 가져다대고, 마음은 크게 열고, 또 손은 부지런히 기록으로 남기는 일에 익숙한 사람. 그러니까, 주로 듣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것은 아마도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였을 수도 있고, 금방이라도 깨질지 모르는 유리구슬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무엇이든 중요한 것은 이제 그것을 꺼내 사람들에게 들려줄 채비를 마쳤다는 것. 그것은 곧, 아무렇지 않을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작가정보
목차
- 프롤로그 그때 나는 몰랐지
경험주의자가 사는 법
삶의 조종사
시간은 다 알고 있다
상대적이라는 함정
그냥 그런 거야
까다롭고 자연스럽게 흐른다
실질적으로 의미 없는 일일지라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나는 가끔 내가 무섭다
시련이라는 선물
어둡기만 한 어둠은 없어
어버이날 선물
자식에게 바란다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
끝까지 내지 못한 용기
요리하는 호수 아빠
모든 걱정을 잊고
관점의 차이
넌 어떻게 버텼어
살고 싶으면 도망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던
룬아와 호수 엄마 사이
에필로그 잘 먹었습니다
책 속으로
“선천성 심장병은 대부분 원인 불명입니다.” 의사들이 해준 이 말, 전문서적과 인터넷에 반복해서 나오는 이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기까지 아주 오래 걸렸다. 원인 불명이라는 단어는 죄책감에 절절매는 부모들을 달래주기 위해 전문가들이 논문에 써놓은 비밀코드처럼 느껴졌다. 원인을 알 수 없다면, 그냥 운이 나쁜 건가요? 답답하게도 이런 일에 논리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
그냥 그런 것이다. 산다는 것은.
45쪽 그냥 그런 거야 중에서
“수술 잘되었습니다.”
이 말의 사정거리가 어디까지인지 이때 처음 알았다. 의사는 계획한 대로 집도했고, 수술의 모든 단계들이 원칙대로 이행되었다.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오는 회복이라는 과정은 온전한 환자의 몫이었다.
65쪽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중에서
감히 입에 올리지 못할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지들 멋대로 떠들었다. 그냥 다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 새로 시작하다니, 무얼? 한 방향으로만 가는 세월에 ‘새로 시작’이라는 개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염없이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날에는 아이를 낳기 전으로, 임신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허망한 욕심이 일었다. 그런 날이면 스스로가 너무 징그럽고 무서워서 내 인생을 통째로 갈아엎고 싶어졌다. 나는 어쩌다 이런 망상을 떠올리는 괴물이 되었나.
72쪽 나는 가끔 내가 무섭다 중에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간사하다. 아이는 병실에서 젖도 제대로 못 먹고 있는데, 부모는 입맛대로 커피를 마시고 비싼 케이크까지 베어 문다. 찰나 같은 시간이었지만 그때 우리는 보통의 커플과 다를 게 없었다. 같은 공간에서 스친 그 누구도 우리가 불과 얼마 전에 아기를 낳았고, 그 아기가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는 사실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농담을 했고, 웃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숨기고 있는 이야기들을 상상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가슴에 품은 크고 작은 이야기 하나 없는 사람이 있을까. 타인은 그냥, 모를 뿐이다.
89-90쪽 어둡기만 한 어둠은 없어 중에서
아이는 소고기와 아보카도가 아니라 사랑을 먹고 자란다. 양육자의, 소아과 선생님의, 길을 지나가는 할머니와 놀이터 누나와 민들레, 고양이, 달님의 사랑을 냠냠. 사랑은 규칙과 말이 아닌, 여유와 마음이다.
116-117쪽 끝까지 내지 못한 용기 중에서
호수의 시간을 겪는 동안 삶에서 빠져나가고 싶다고, 증발해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병원에 있는 호수에게 가장 필요한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신입 엄마라는 배지를 달고선 삶을 놓아버리지도, 그렇다고 제대로 움켜쥐지도 못하는 나약하고 불안정한 나. 어느 날에는 그런 압박감과 보상심리 같은 것에 휩쓸려서 쇼핑 앱을 켜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뭔가에 홀린 듯이 주문을 하고, 택배 상자를 뜯어 거울 앞에서 걸쳐보고, 새 옷을 입고 중환자실 면회를 갔다. 조금 미친 사람 같았다. 아픈 아기를 두고 패션쇼라니. 하지만 나는 그렇게라도 살아야 했다.
149-150쪽 살고 싶으면 도망쳐 중에서
나는 되도록이면 하는 쪽을 택하며 살았다. 태어나기 전으로 갈 수 있다 해도 분명히 태어나는 쪽을 선택했을 것이다. 사는 것은 그 자체로 벅차지만, 그래서 더 살아볼 만하다고 느낀다. 우리는 언젠가는 반드시 이별한다. 헤어짐이 두려워서 마음 주지 않는다면 더 많은 걸 잃을 뿐이다. 만남과 이별, 사랑과 갈등, 그리고 삶과 죽음 안에는 직접 겪어봐야만 얻을 수 있는 감동이 있다. 감동 따위,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산다는 건 그게 다다. 온몸으로 느끼는 것.
157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에서
출판사 서평
퍽퍽한 건빵 속에서 하나씩 튀어나오는 별사탕처럼
인생은 문득 찾아오는 달콤함이다
한 아이의 눈부신 성장을 지켜보는 경험은 뭉클하다. 함께 위기를 마주하고 또 극복한 가족의 이야기는 눈부시다. 그러나 사실 그것이 대단한 것이라기보다는 ‘누구의 엄마’도 ‘누구의 딸’도 아닌 언제나 나 자신으로서 충실하고자 했던 작가의 작은 용기가 하루하루 모였고, 결국 가족을 지켜내는 커다랗고 든든한 용기로 발전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태어나기도 전 엄마의 배 속에서, 이제 막 세상을 만나고 나서, 아이에게 연이어 선고되는 낯선 병명들, 그리고 두 차례에 걸친 큰 수술. 때론 지치고 때론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룬아는 자신과 아이의 상태를 차분히 헤아리고 어느 것 하나 눈물과 함께 하수구에 흘려버리지 않았다. 장면 장면 생생하게 기억하고 모아두었다가 감정을 가다듬고 이토록 소중한 한 권의 책으로 길어올렸다.
이 책에서는 그런 과정을 겪으며 손에 들려 있던 음식들이 하나씩 언급된다. “아이는 병실에서 젖도 제대로 못 먹고 있는데, 부모는 입맛대로 커피를 마시고 비싼 케이크까지 베어 문” 날도 있었다. 아이가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와중에도 잠시 잠깐이나마 입에 맛있는 것을 넣으며 웃음을 찾다가 또 금세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용기라는 불꽃을 지피는 데도 연료는 필요한 법.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필연적으로 ‘먹는 존재’이므로. 지극히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에 읽는 사람의 마음도 함께 움직인다.
용기는 태풍이 눈앞에 닥쳤을 때 불끈 내는 것이 아니라
조용한 바람이 불 때 모으고 다져놓는 것
아이는 결국 양육자의 씩씩한 용기를 먹고 자란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런 시절을 지나왔다. 이제는 제법 건강을 되찾은 아이를 바라보며 엄마는 “새로운 친구를 만나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일이, 여름 바다에 놀러가 웃통을 벗는 일이, 군대에 가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일이” 모두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기를 염원할 수 있게 되었다.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고 했다. 그 식상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진실에 가까운 말의 힘을 우리는 믿는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한 가지 더 배운 것이 있다면, 용기는 나누면 네 배, 여덟 배 그 이상의 힘으로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사실. “용기는 태풍이 눈앞에 닥쳤을 때 불끈 내는 것이 아니라 조용한 바람이 불 때 모으고 다져놓는 것.”이라는 책 속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작가의 이 메시지가 지키고 싶은 소중한 사람이 있는 모든 이에게 진하게 가 닿기를.
언젠가 위기는 다시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 말을 하기까지 정말로 많은 용기가 필요했음을 모르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을 준비가 되었어.”
기본정보
ISBN | 9791191187458 |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09월 15일 | ||
쪽수 | 188쪽 | ||
크기 |
116 * 180
* 14
mm
/ 178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띵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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