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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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의 위협 아래 각자도생이 활개 치는 시대
환(幻)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느릿느릿 함께 나아가는 방법
『어리석은 여행자』는 경쟁과 소비로 점철되고 자본을 축재하는 데에만 골몰하는 현시대를 비판적으로 응시하며 그 반대 방향의 삶을 모색한다. 저자는 타자를 환대하고 자연과 함께 거하는 천천한 삶을 제안한다. 더하기보다 빼기에 가까운 모습을 한 이러한 삶은 ‘어리석음’이라는 단어로 연결된다. 어리석음이 품은 웅숭깊은 크기만큼이나 책 속에는 인문학ㆍ철학ㆍ문학적 사유가 가득하다. 내용도 그렇거니와 시인이 쓴 산문집이다 보니 상징과 은유로 빚어진 단어들과 문장을 읽는 즐거움 또한 남다르다.
작가정보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1995년 『시와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늦깎이로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고,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서아프리카 사하라와 스페인 카나리아섬에서 십여 년 머무르기도 했으며, 틈틈이 여행길에 오르는 떠돌이별로 사진을 좋아한다. 이십여 년 만에 귀향, 부산 원도심에 글쓰기 공동체 〈백년어서원〉을 열고 너그러운 사람들과 퐁당퐁당, 공존을 공부 중이다. 시집 『당신의 옹이에 옷을 건다』, 『몰락경전』, 사진에세이집 『지붕밑 푸른바다』, 산문집 『참죽나무서랍』 『쿠바, 춤추는 악어』 외 십여 권이 있다. 쿠바를 네 번 다녀오면서 19세기 시인 호세 마르티를 사랑하게 되었고, 『호세 마르티 평전』을 쓰고 『호세 마르티 시선집』을 번역했다.
목차
- 1부 어리석음의 이유: 영혼과 영원을 위하여
바보의 자격
되새김질을 위하여
행복한 왕자의 수수께끼
가장 위대한 바보 예수
어리석은 이름, 아버지, 어머니
무위를 꽃피우는 바보들
물질을 정신으로 바꾸는 싸움
내가 돈을 버는 방법
못, 어리석음의 견고한 기도
어리석음을 길러준 나의 장소들
불가능한 것을 믿는 연습
백 마리 물고기의 부호, 마이너스
달팽이의 비밀
2부 어리석음의 방법론: 거닐며 공부하기
먼 길을 가는 법
길가메시의 여행
당신의 심장은 날개보다 가벼운가요
물에 비친 까마귀 그림자를 읽다
고유한 죽음을 향해
‘어른’이라는 선물
너는 여행자의 집이니
무용지용의 독서를 위하여
삶을 견디게 하는 工夫
공부라는 놀이를 위하여
책, 그 새김의 세계
주는 공부, 받는 공부, 잊는 공부
3부 어리석음의 숨은 능력: 상상력과 감수성
응시 그리고 상상력 Ⅰ
응시 그리고 상상력 Ⅱ
응시 그리고 상상력 Ⅲ
엄마, 우리 돌아가는 중이에요
나의 쑥바구니는 어디에 있을까
거대한 들판을 품은 사람들
강, 가장 오래된 연애편지
나에게도 분명 아름다운 꼬리가 있었다
자연, 흉내 내어야 하는 자유
반려종 인간 그리고 툴루세
서사적 능력을 위하여
얼굴을 찾아
새 신발 한 켤레, 감수성과 용기
문학은 쫄병이다
추천사
-
김수우 시인은 부산의 동광동 백년어서원에서 백 마리의 물고기와 함께 산다. 그곳에서 독서와 글쓰기를 장려, 소통과 공존, 실천을 통한 생명 회복을 꿈꾸며 부지런히 산소를 만들어내고 있다. 자신의 이름자인 어리석을 우(愚)를 발판 삼아 모든 환(幻)과 욕심을 내려놓고, 우공이산(愚公移山)을 향해 한 걸음, 또 한 걸음, 달팽이처럼 느리게, 행복한 왕자와 같은 측은지심으로, 순하고 우직한 암소처럼 하루하루를 되새김질하며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흘러가고 있다. 배운 것을 실천하는 게 학문의 큰 기쁨임을 알기에 그 기쁨을 모두와 나누기 위해, 이 빠르고 영악한 시대를 뚜벅뚜벅 거룩한 바보처럼, 느림보 달팽이처럼 최선을 다해 걸어가고 있다.
이 책은 그런 김수우 시인의 하나하나의 발자취인 동시에 그녀가 추구하는 ‘어리석음’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가늠 없는 큰 뜻과 큰 세계, 그 안에서 발견하는 놀라운 지혜와 성찰에 대한 고백서이다. 같은 시우로서, 동향으로서 그녀의 그 끝없는 공부, 더 큰 어리석음의 아름다운 얼굴로 나아가고자 날마다 질문하고 또 질문하며 더 어리석어지고, 다시 어리석어지고, 새롭게 어리석어지는 그 길에 동참의 끝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녀만의 아주 깊고 소박한, ‘어리석음’이라는 그 빛나는 숨은 능력에!
책 속으로
인문학이란 결국 바보 정신을 배우는 학문이 아닐까. 바보들은 결과를 따지지 않는다. 손해를 보고도 손해라고 생각지 않는다. 이것이 무위의 철학이다. 성과에 매달리지 않는 삶. 그래서 바보의 삶은 자연이고 지혜이고 끈기이고 용기이다. 결과를 따지기 이전에 과정 자체에서 이미 완성이다. 인디언 영성이 가르치는 생태적 지혜처럼 말이다. ‘어떻게 대지의 온기를 사고판단 말인가? 신선한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인디언 추장의 질문을 다시 떠올린다. 15쪽
“들에 핀 백합화를 보십시오. 심지도 거두지도 길쌈도 하지 않는데 솔로몬 왕의 모든 영광으로도 그 꽃 하나만 같지 못합니다.” 26쪽
그래서 어리석음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틈을 찾아 스며든다. 틈새에 핀 꽃처럼 말이다. 우기엔 아가미로, 수년 수개월의 건기엔 폐로 숨을 쉬던 고생대 물고기 폐어처럼 철저히 자신의 밑바닥에 들어간다. 묵묵함과 겸허함. 세계와 자신의 존재 이유를 향한 끊임없는 성찰은 어리석음에서 나온다. 39쪽
세상 어느 곳에선가 못을 박는다. 누군가는 못을 뽑는다. 박히고 또 뽑히면서 살아가는 못의 일생은 존재의 굴곡을 그대로 닮았다. 사정없이 두들겨 맞기도 하고, 한순간에 뽑히기도 하지만 매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무게를 온 힘으로 버텨낸다. 사람도 사람의 삶도 하나의 못이 아닐까. 오늘도 우리는 하나의 못으로 풍진 세상을 걷는다. 때문에 못은 그 어떤 시대가 와도 모든 삶을 버티고 고정시키고 견뎌내는 관계의 상징이 된다. 자기 역할을 견딜 뿐 아니라 누군가를 견디게 하는 힘이 있다. 63쪽
달팽이는 날카로운 면도날 위로 걸어갈 수 있다. 그 느림의 힘 때문이다. 20~30g밖에 되지 않는 자신의 무게보다 200배나 되는 물체를 끌 수 있는 것도 그가 느림보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 그는 어마어마한 시간의 지평을 그 느림으로 넘어온 것이리라. 달팽이의 둥근 자태에서 武治가 아니라 文治를 본다. 곧 시의 정신이라 하겠다. 91~92쪽
삶은 끊임없이 부유浮遊하지만 어떤 호소에 귀를 기울이는 일만이 모든 불화를 견디게 한다. 호소를 들을 수 있을 때만 내 안과 밖의 타자에게 응답할 수 있다. 그 응답은 환대의 밥상을 차리는 일에 우리를 일으켜 세울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장소를 생성해내는 장소이다, 나는, 내 자아는, 우리는, 돈은, 꿈은, 도시는, 동광동은, 몸은, 책은 다 여행자의 집인 것이다. 134~135쪽
새김은 경외와 경이가 담긴 기억이었다. 정성을 다하여 무언가를 감동시키려는 나눔이었다. 이 시대 책이 정신의 새김이 되고 있는지 반성한다. 새긴다는 말은 삶을 깊이 인식한다는 말이다. 새긴다는 말은 삶을 정성스럽게 실천하는 일이다. 새긴다는 말은 삶을 지극하게 나눈다는 말이다. 새긴다는 말은 일상을 역사로, 미래의 꿈으로 바꾸어낸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우주적인 어리석음이 필요한 것이다. 156~157쪽
자기 안에 들판을 가진 사람은 우주의 이치를 잘 알고 있다. 어떤 고단함 속에서도 생명의 순리를 따라갈 수 있는 것이다. 무수한 희망의 경계를 길러내는 힘이 그 마음의 들판에 있는 것이다. 꽃들은 결국 마음의 들판에 피어나는 우주이다. 내 속에 우주를 담은 사람은 내가 우주에 담기는 법도 안다. 광대한 우주가 한 방울 물에 담기기도 하고, 우리 자체가 작은 우주인 것처럼 말이다. 우주에 담기는 법을 안다는 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예수의 말이나, 무소유를 가르친 붓다의 언어를 이미 안다는 말이 아닐까. 209쪽
생명 연대는 이 시대에 우리에게 던져진 과감한 질문이다. 이제 ‘반려’를 적극적으로 사유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타자를 이해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해러웨이는 상대편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종들, 자연 문화적 역사를 공유해온 종들을 ‘반려종’이라 부른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와 어린 왕자처럼 반려종은 대개 길들이기를 통해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여기서 누가 누구를 만들고, 누가 주체이며 대상인지는 불분명하다. 이젠 ‘반려 인간’ 즉 ‘반려종 인간’이 분명한 시점이다. 237쪽
문학은 쫄병이다. 대장은 참 많다. 뮤즈가 문학의 대장이다. 자유도 자연도 문학의 대장이요, 정의도 평화도 그러하다. 모든 타자가 대장이다. 감동시키고 치유해야 할 모든 소외된 슬픔들도 대장이다. 문학에서는 결코 내가 대장이 될 수 없다. 자유와 정의 없이 문학은 뼈를 세울 수 없다. 평화 없는 땅에서 문학은 품격을 지킬 수 없다. 253쪽
출판사 서평
이 책은 김수우 시인의 하나하나의 발자취인 동시에 그녀가 추구하는 ‘어리석음’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가늠 없는 큰 뜻과 큰 세계, 그 안에서 발견하는 놀라운 지혜와 성찰에 대한 고백서이다.
-추천사 중에서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어리석어야 하는 이유를 살핀다. 영성을 가꾸는 일이 우리가 지구에 온 까닭이라는 저자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리석음이 영혼과 영원에 닿아 있음을 깨닫는다. 2부는 어떻게 어리석어질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는데, 책에서 그 방법론으로 제시하는 것은 ‘여행’과 ‘공부’이다. 두 가지 모두 고집스럽고 무거운 몸이 아닌 유연하고 가벼운 몸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3부는 어리석음의 숨은 능력이 무엇인지 들려준다. 자연과 문학(예술)은 오래전부터 어리석음의 자세를 보여주었는데, 거기에서 저자는 상상력과 감응(감수성)의 힘을 찾아내고 이것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능력인지를 논구한다.
ㆍ “우리는 어떻게 영악함을 넘어서 큰 어리석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끊임없는 배움과 여행 속에서 어리석음의 비의(秘義)를 발견하다!
어떠한 혼란과 위기에도 우리는 인간임을 증명해야 한다. 어리석음은 새로운 우주이다. 광대한 그 어리석음을 익힐 수 있을까. 이슬라바마드에서 카슈가르까지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달리면서 마주쳤던, 메마른 고원을 채우고 있던 깨알 같은 꽃송이들. 땅에 바짝 붙어 핀 노랑과 보라, 그 색색의 기묘한 꽃잎들은 지금도 나를 낮게 만드는 우주이다.
-저자의 말 중에서
어리석음이야말로 가장 큰 지혜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은 언뜻 모순 같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산문집의 글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읽다 보면 어느새 고개를 끄덕거리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어리석음에서 진리(우주)를 보기 위해서 우선 “깨알 같은 꽃송이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일상의 낮은 자리에 위치한 것들을 성실하고도 섬세하게 들여다볼 때, 그곳에서부터 깨달음은 시작된다. 지척에 산재하는 모든 것(一切)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진지하게 공부하며 교감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여행자?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삶의 비의(秘義)인 것이다.
약지 않게, ‘바보’의 자세로, 열린 채 살아가기란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떠돌이별’을 자처하는 저자와 함께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저 저자처럼 가벼운 배낭을 하나 메고, 마음의 뒤꿈치를 슬쩍 들어올려, 어리석음을 향하여 여행길을 떠나면 될 일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90971461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04월 10일 |
쪽수 | 260쪽 |
크기 |
136 * 205
* 23
mm
/ 314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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