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오이디푸스와 가족, 나는 아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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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튜브 가족특강’ 시리즈는 2019년 〈남산강학원 & 감이당〉에서 열린 가족특강(총 6강)의 내용을 여섯 권의 책으로 엮었다. 이 중 네 권이 1차분으로 출간되었으며(「기생충과 가족」, 「루쉰과 가족」, 「안티오이디푸스와 가족」, 「사기와 가족」), 2차분으로 두 권(「소세키와 가족」, 「카프카와 가족」)이 출간될 예정이다.
작가정보
〈남산강학원〉 연구원. 수학과 윤리학으로 대학 졸업장만 두 개. 그러나 그건 말 그대로 졸업장일 뿐, 공부로 삶을 꾸려 나가기 시작한 것은 30대 중반 연구실에 와서부터다. 그 이후 삶이란 곧 배움의 길일 수밖에 없음을, 그리고 배움은 곧 우정의 길일 수밖에 없음을 조금씩 알아 나가는 중이다. 『칼 구스타프 융, 언제나 다시금 새로워지는 삶』,
『사람은 왜 아플까』를 썼으며, 함께 쓴 책으로 『고전 톡톡』, 『인물 톡톡』, 『루쉰, 길 없는 대지』가 있다. 낭송집 『낭송 금강경 외』를 풀어 읽었고, 『원자폭탄』(스티브 셰인킨)을 함께 옮겼다.
작가의 말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펠릭스 가타리(F?lix Guattari)의 『안티 오이디푸스』(L’Anti-Oedipe)는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말하죠. 우리가 돌봐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의 생명력이다. 개인이라든지, 시민이라든지, 주체라든지 혹은 인간이라든지 이런 것 이전에, 이런 것 아래서 우리 존재 자체를 살아가게 하는 힘으로서의 생명력. 이 생명력을 들뢰즈-가타리는 무의식, 또는 욕망이라고 부릅니다. 그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들뢰즈-가타리의 관심은 생명/삶의 원리이고, 그에 기반해 생명/삶을 잘 돌보고 기를 수 있는 길을 찾아요. 다른 말로 하면 양생의 원리를 탐색한다고 할 수 있죠. 기를 양(養)에 생명 생(生), 생명을 기르는 원리로서 양생법을 탐구한 게 『안티 오이디푸스』예요.
목차
- 책머리에
1부 _ 들뢰즈-가타리의 분열증적 상상
자본주의와 핵가족의 출현
번개와 피뢰침의 만남 : 들뢰즈와 가타리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분열증적 상상
유물론적 정신의학 :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결합
2부 _ 자본주의, 죽음을 향하는 욕망
자본주의, 죽음을 향하는 자발적 복종
‘오이디푸스’를 통해 만들어지는 주체
3부 _ 욕망-기계와 분열자의 산책
억압된 욕망과 욕망-기계
욕망-기계의 작동법 : 짝짓기로서의 기능과 생산
분열자의 산책
4부 _ 가족에서 벗어나 우주적 욕망으로
우주적 욕망의 가족적 경험으로의 축소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소유에의 욕망
“나는 아이가 아니다”
질의응답
책 속으로
과연 핵가족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왜 핵가족은 유독 자본주의라는 시공간이 열리면서 같이 등장했는가? 왜 고대 그리스에는, 봉건제 사회에는 이런 식의 가족이 없었는가? 한마디로 ‘왜 자본주의는 핵가족과 함께 출현했는가’라는 질문이죠. 들뢰즈-가타리의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들뢰즈-가타리는 자본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핵가족이라고 하는 ‘모터’가 필요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엄마-아빠-아이로 이루어진 가족, 사랑의 결정체로서 가족이라는 것을 중심적인 ‘모터’로 장착했을 때 비로소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로서 작동할 수 있었다는 거죠.(18쪽)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기관이 가족입니다. 대통령이 없어도, 삼성이 없어도, 정부 기관이 없어도 자본주의는 굴러가요. 하지만 가족이 없으면 안 굴러가요. 왜? 프로이트가 이야기했듯, 자본주의에서 가족이란 우리의 무의식, 그러니까 우리 욕망의 배치가 구성되고 펼쳐지는 장소인 거죠. 그리고 그렇게 이뤄진 욕망이 바로 자본주의를 굴러가게 하는 힘이라는 거. 들뢰즈-가타리는 그렇게 보는 겁니다. 그래서 프로이트가 생각했던 오이디푸스적인 욕망, 혹은 이 욕망으로 이야기되는 가족, 이 가족이 자본주의라고 하는 사회체계와 아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는 거예요.(28쪽)
그런데 자본주의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아요.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는 ‘누구에게 복종하고 있다’, 이런 느낌을 잘 못 받습니다. ‘우리 다 해방됐다.’ 이런 느낌을 가지고 살고 있죠. 그래서, 조선 시대 노비들이나 천민들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잖아요? ‘우리는 어쨌든 자유로워’, ‘우리는 더 이상 그런 식의 예속적인 굴레를 갖고 있지 않아’라고 우리 자신이 믿고 있어요. 그런데 들뢰즈-가타리는 ‘우리는 정말 예속의 굴레에서 벗어났는가?’라고 질문을 해요. 자본주의는 그 이전에 있었던 방식으로, 즉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복종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스스로가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을 욕망하고, 우리 스스로가 자본주의를 지탱하고 재생산하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거예요. 바꿔 말하면 자발적 복종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39-40쪽)
그런데 들뢰즈-가타리는 프로이트와 달리 이 욕망을 뭐라고 부르냐면, 재밌게도 ‘기계’라고 불러요. 욕망은 기계다. 자, 여기서 기계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첫번째, 프로이트의 틀을 보면 아직 인간이 아닌 상태와 인간인 상태가 구분돼 있죠. 여기는 자연 상태, 여기는 문명 상태, 사회적 상태인 거예요. 자연계와 인간계가 분리돼 있다는 거예요. 자연 상태에서는 아직 무의식이라고 하는 것이 없는 거죠. 무의식이 생기면서 문명인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프로이트에게 있어 무의식은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것으로 전유되고 있다는 거예요. 들뢰즈-가타리는 이 무의식이 단순히 인간, 문명, 사회의 힘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는 욕망이라는 점을 나타내기 위해서 기계라는 말을 쓰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자연과 분리된, ‘인간’이라는 특권을 해체시키는 거죠.(54-56쪽)
만약에 내가 지금 정말로 엄마에 대한 상처 때문에 혹은 부모님이 나에게 주지 못했던 무엇 때문에 너무 힘들다면, 내가 여태까지 살아왔던 모든 관계는 나한테는 아무 의미도 없었던 거라고. 가족으로부터의 상처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가 내가 40년을 살아도 50년을 살아도 60년을 살아도 여전히 나를 움직이는 힘이 된다는 것은, 살아오면서 이것들 말고는 나에게 존재적으로 힘을 줄 수 있는 관계가 없었다는 걸 말하는 거예요. 그런 관계를 맺어 본 경험이 없다는 걸 말해요. 세상에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 모든 관계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잖아요.(78-79쪽)
출판사 서평
『안티 오이디푸스와 가족, 나는 아이가 아니다』
지은이 인터뷰
1. 근대 핵가족이 자본주의의 원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계신데요. 그 메커니즘에 대해 간단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자본주의와 함께 출현한 근대의 핵가족은 단순히 구성원의 숫자가 줄어들었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작동 원리를 가지고 있어요. 이 새로운 가족의 출현을 잡아낸 게 프로이트입니다. 아빠-엄마-아이로 이뤄진 근대 핵가족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본 것이죠. 이를 설명한 것이 오이디푸스 이론입니다.
오이디푸스 이론의 핵심은, 우리 무의식은 가족 드라마가 펼쳐지는 무대다, 즉 욕망의 시작과 끝은 가족이라는 겁니다. 뭐, 어찌 보면 여기까지는 그다지 문제가 될 게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 가족 드라마의 끝이 무엇이냐면, 욕망의 결핍이에요. 욕망은 이제 결핍으로 정의되고, 결핍을 통해 움직입니다. 결핍으로서 욕망, 이것이 가족 극장이 된 무의식의 결론이에요.
들뢰즈-가타리는 이 지점을 참을 수 없어 합니다. 욕망이 결핍에 시달리고, 욕망을 추동하는 게 결핍이라니, 들뢰즈-가타리가 보기에 이것은 욕망 본연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결핍은 욕망이 가족 안에 갇히면서 생겨난 현상이라는 거죠. 우리 무의식이, 그러니까 마음의 바탕이 가족들로 가득 차 있고, 가족이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 욕망의 가족주의! 이것이 욕망을 결핍으로 만드는 주범이라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바로 이 결핍된 욕망 위에서 작동합니다. 자본주의는 간단히 말해 상품 경제예요. 상품이 팔려야 자본이 굴러가요. 그런데 상품이 팔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뭔가 결핍감을 느껴야 합니다. 왠지 속이 빈 느낌, 허한 기분, 그런 것들에 호소해야 상품이 먹힙니다. 이런 상품이 당신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다는 식인 거죠. 결핍은 상품 경제의 동력이고, 해서 결핍이야말로 자본주의의 필수적 요소입니다.
결핍에 허덕이는 욕망, 그것이 자본주의의 에너지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결핍을 발굴하고 생산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욕망을 가족 안에 가두려 하는 것이고요. 욕망의 가족주의와 자본주의. 이 둘은 그렇게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2.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가 근대 핵가족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구조인데요. 들뢰즈-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는 어떻게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오이디푸스의 핵심은 우리 욕망을 가족적 경험으로 축소시키고 환원한다는 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존재의 출발지점과 도착지점을 가족에 둔다는 겁니다. 가족은 존재의 기반이고, 우리가 세상과 관계 맺는 원형으로 이야기되는 것이죠.
하지만 욕망은 가족에 그 뿌리를 두지 않아요. 욕망은 가족을 몰라요. 무엇이 되었든 그것과 접속하고, 접속을 통해 또 무언가를 생산하고, 다시 다른 무언가와 접속하고…. 결핍 때문이 아니라, 그저 접속하고 생산하는 것. 이것이 욕망의 기본적 모습이에요.
더욱이 욕망의 작동을 조금만 잘 살펴보면, 그 접속이 자기와는 다른 것들을 향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자기 자신이나 가족, 즉 자기 혈통적인 것들 바깥으로 자꾸 나가려 드는 것이죠. 자기 안에 갇혀 있으며, 자기와 비슷한 것들 속에만 있으면 기존에 있던 것을 재생산하는 것말고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욕망은 자기 영역을 벗어나서 자기 아닌 것들과의 만남을 생산합니다.
저는 이것을 욕망의 가족주의와 대비해서, ‘우주적 접속’, 혹은 ‘우주적 짝짓기’라 부릅니다. 이것이야말로 욕망의 일차적 작동이고, 자연의 원리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한 송이 꽃이 있습니다. 이 꽃이 자신과 같은 부류의 꽃과 수정하려고 할 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벌과의 짝짓기예요. 뭐, 바람이나 나비 이런 것이어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과는 완전히 종(種)이 다른 어떤 존재들과의 짝짓기가 일차적이라는 점이니까요. 자기 바깥과의 접속이 먼저이고, 자기와 같은 종류에서 이뤄지는 짝짓기는 이차적이에요. 그러니 그 꽃의 진화적 동반자가 되는 사랑의 상대는, 다른 꽃이 아니라, 벌, 혹은 바람, 혹은 나비가 되는 것이죠. 인간도 다르지 않아요. 여자 사람과 남자 사람의 접속이 먼저가 아니에요. 그 전에 이뤄지는 수많은 짝짓기들이 있어요. 눈과 빛의 짝짓기, 산소와 폐의 짝짓기, 위와 음식의 짝짓기, 발과 땅의 짝짓기 등등. 이런 짝짓기들 위에서만 인간적 짝짓기도 가능한 겁니다.
그런데 이런 욕망을 가족이라는 틀에 가두고, 거기하고만 접속하라고 한다면 얼마나 갑갑하겠어요. 이 갑갑함이 욕망을 결핍되게 만드는 원천입니다. 우주적 욕망을 가족적 경험으로 축소시키는 것. 들뢰즈-가타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욕망의 거인다움이 왜소해지는 것이죠. 자본주의는 바로 이런 메커니즘 속에서 굴러갑니다. 우리 욕망과 존재를 점점 더 왜소하게 만들어야 자본의 증식이 잘 이뤄질 수 있는 겁니다.
결국 오이디푸스를 극복한다는 것은 왜소해진 욕망에게 다시 그 거인다움을 돌려주는 겁니다. 우주적 짝짓기의 장으로 욕망을 풀어놓는 것이죠. 가족 안에 갇힌 욕망, 그렇게 세상과 격리된 욕망, 자폐적인 욕망을 세상 밖으로 끌고 나오는 것이죠. 요컨대, 욕망의 출가!! 이 출가만이 욕망의 결핍을 ‘해소’할 수 있어요. 결핍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결핍 그 자체를 없애 버릴 수 있다는 겁니다.
들뢰즈-가타리는 이를 아주 간명하게 말합니다. 오이디푸스를 극복하는 길? 그것은 “바깥과의 약간의 참된 관계, 약간의 진짜 현실 말고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3. 자본주의가 바뀌지 않는 한 핵가족은 변하지 않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최근 핵가족의 붕괴라는 진단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극단을 향해 가는데 핵가족이 붕괴되는 것은 어째서일까요?
가족의 붕괴, 얼핏 보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그건 붕괴라기보다는 자본주의 가족의 실상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를 다시 한 번 살펴보죠. 프로이트를 찾아온 환자들은 흔히 이야기되는 결손가정의 사람들이 아니에요. 부르주아 가족, 부모의 지극한 관심과 사랑 속에서 경제적으로도 여유롭고, 교육도 충실히 받은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가족, 그 누구도 전혀 아플 이유가 없는 그런 환경이었습니다. 그런데 프로이트는 이 평화로운 가족의 속살을 보게 됩니다. 스위트 홈의 실상을요.
우리가 지금의 현상을 가족의 붕괴로 보는 것은 가족이 그 어디에도 없는 사랑의 결정체라고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헌신적이고 이타적인 사랑, 이것의 구현으로서 가족. 여기에 스위트 홈의 가족주의가 등장합니다. 이 가족 안에서는 결코 폭력이나 상처 따위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해서 요새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가족 관련 사건들이 비정상적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이 사랑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보여 줍니다. 그것은 헌신이나 이타성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새로운 가족 안에서 프로이트가 본 것, 그것은 소유로서의 사랑입니다.
소유는 관계의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성격을 전제합니다. ‘내 꺼’라는 것, 그것은 나 말고는 다른 관계들은 다 끊으라는 명령이자, 다른 관계들은 거기에 함부로 접속해서는 안 된다는 신호인 것이죠. 가족은 이 소유적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서로가 관계를 배타적으로 독점하기 위한 분투의 장이 오이디푸스적 가족입니다.
이 가족은 소유적 사랑 위에서 서로에게 말합니다. 다른 데 보지 말고 나만 봐.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줘,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나한테 모든 걸 걸고, 나한테 너의 모든 것을 줘. 누가 이런 사랑을 온전히 충족시켜 줄 수 있을까요. 아니, 이것은 원리상 이뤄질 수 없는 사랑입니다. 욕망의 거인다움은 이런 식의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접속만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으니까 말이죠. 결국 이 사랑에서 남는 것은 상처, 죄책감, 또는 피해의식이나 분노, 혹은 원한감정 따위일 겁니다. 이게 스위트 홈의 실상입니다. 이전에는 이것을 어느 정도 가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될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자본주의가 강고해지면서 가족주의가 더 강화되고, 그만큼 가족 간의 그 사랑이 더욱더 찐해졌기(?) 때문이죠.
오이디푸스적 가족의 테마는 소유적 사랑이고, 해서 그것은 태생적으로 비극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랑극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드라마의 결론 부분을 보고 있는 것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치열한 인정 투쟁, 그로 인한 상처들, 가족 간의 폭력과 살해, 그리고 가족을 죽이고 자신도 죽는 식의 자살 사건 등등. 이것은 스위트 홈의 예기치 못한 반전이 아니라, 필연적 결말입니다. 그러니 가족을 살리고 싶다면 가족주의에서 나와야 합니다. 욕망의 가족주의에 안티를 걸고, 욕망을 가족 밖으로 끌고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가족도 살고 우리 욕망도 살아납니다.
기본정보
ISBN | 9791190351263 | ||
---|---|---|---|
발행(출시)일자 | 2020년 09월 01일 | ||
쪽수 | 104쪽 | ||
크기 |
111 * 183
* 13
mm
/ 132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가족특강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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