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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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연미의 작업은 1999년 프랑스를 강타했던 폭풍의 흔적으로부터 시작된다. 빠리 전체가 역사상 보기 드문 피해를 입었고 가로수가 뿌리째 뽑혀나가는 거센 바람이 휩쓸고 지나갔다.
그녀는 폭풍이 지나간 다음 자주 산보를 하던 뱅센느 숲을 찾았을 때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였다. 빠리의 가장 큰 숲이기도 한 그곳이 아예 숲의 형태가 사라져 버리고 한순간에 벌판으로 변했던 것이다.
거대한 아름드리나무들이 허리가 부러져 뒤엉켜 있는가 하면, 작은 나무들은 상당수가 아예 뽑혀나가거나 누워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폭격을 맞은 듯한, 폐허의 현장을 보는 작가의 가슴에 와 닿는 아우성은 자연에 대한 심미 상태를 완전히 바꾸어놓게 된다. 그동안 인간에게 영원한 안식과 쉼터를 제공하면서 영원한 이상향의 대상이 되었던 숲들의 무한질서나 색채, 소리, 형태 등은 물론이고, 크고 작은 나무들이 처참하게 폐허화 된 장면을 보면서 문득 오늘날의 인간들이 갖는 왜곡과 오만, 생존의 비애들을 연상하게 된다.
이때부터 순식간에 황폐해버린 숲의 충격적인 이미지에서 감응된 변연미의 새로운 조형언어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문명의 비판과 현대인들에 대한 비유적 언어로서 삶의 현장을 연상케 하였다. 결국 순연한 자연과 역시 동일한 자연이지만 폐허가 되어버린 숲의 변신을 보면서 상처나 전쟁, 생존경쟁과 파멸 등의 환부들로 연상되는 숲의 시리즈가 이어진다.
그간 한국이나 동양에서 사유나 수양 등의 대상으로 여겨져 온 자연관과는 전혀 다른 국면의 해석이 시작된 것이다. 곡선이 직선으로 대체되고, 자유분방하게 사용되던 색채가 절제되면서 블랙 톤을 즐겨 사용하게 된다. 또한, 기존에 사용하던 붓을 떠나서 가는 모래에 본드와 함께 먹물을 섞어 고무장갑을 끼고 선을 그어 나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작업들은 극도로 단순화되고, 장엄한 스케일과 평소 나무가 갖는 강인한 이미지를 연상하도록 하면서 바로 그 뱅센느 숲에서 느꼈던 충격을 형상화한다. ● 최병식 / 미술평론가, 경희대교수
작가정보
'숲의 화가' 변연미 작가는 추계예술대학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17년간 거주하며 ‘숲’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작품활동을 이어왔다. 작가는 원래 선(線)에 천착해 비구상 회화를 주로 그렸으나 작가가 매일 산책하며 자연과 교감하던 뱅센느 숲이 1999년 파리에 상륙한 태풍으로 황폐화 된 이후 원형적 이미지로 각인된 그 풍경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숲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가는 태초의 자연,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초적 숲을 캔버스 가득히 담는다. 변연미의 작품들은 커피 찌꺼기, 모래, 먹물, 잉크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나무와 숲이 가진 다채로운 힘과 분위기를 대형 화폭에 독특한 질감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특징이다.
목차
- ● WORKS
다시 숲 de nouveau la for?t 2021-2019
spectral forest for?t spectrale 2018-2012
검은 숲ㆍ뱅센느 숲 for?t noir · bois de vincennes 2011-1999
은유와 운동 im?taphore et mouvement 1998-1995
드로잉 drawing
● TEXT
검은 숲에서 다시, 숲으로 - 고충환
숲의 교차 - 앙드레 데르발
? la crois?e des bois _Andr? Derval
연미... - 파스칼 오비에
Younmi... _Pascal Aubier86 나무, 인간, 숲, 다시 나무+인간+숲 - 홍순환
변연미, 숲을 불러내다 - 일레아나 꼬르네아
L'appel de la for?t Younmi Byun _Ileana Cornea
뱅센느 숲의 폐허로부터 획득한 나무들의 언어 - 최병식
The Language of Trees Acquired from the Devastated Vincennes Forest _Byungsik CHOI
역동적 긴장의 회화 - 손월언
La Peintura de la tension dynamique _Woul-Ohn SON
검은 숲에 이식된 푸른 나무 - 이승미
작가노트 - 변연미
프로필 Profile
책 속으로
황폐한 숲은 나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삶의 처참한 현장을 가르쳐주었으며, 함성을 지르며 경쟁하는 전쟁터와도 같은 현실의 슬픔을 맛보는 듯하여 참으로 오랫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각인 되었다...직선의 나무들이 위태로운 구도로 서 있는 숲. 혼돈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은. 나에겐 대지보다 넓은 화폭이 필요하다...검은색은 잡다한 다른 표현들을 잡아먹고 무겁고 거칠고 상처투성인 몸을 그 자체만으로 존재할 수 있게 도와준다. (작가 노트)
모든 일은 뱅센느 숲에서 시작되었다. 작가의 작업실 근처에 뱅센느 숲이 있었고, 뱅센느 숲을 산책하는 일은 작가의 일과 중 하나였다. 작가는 뱅센느 숲을 산책하면서 문명과는 다른 바람과 공기를 호흡했을 것이고, 도시와는 다른 빛깔과 색깔을 감촉했을 것이다. 그렇게 문명에서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즐겼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다른 바람, 다른 공기, 다른 빛깔, 다른 색깔이 작가의 그림 속으로 들어왔다. 비록 사물 대상의 감각적 닮은꼴을 따라 그리는 재현적인 회화가 아니어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자연과의 교감이나 숲과의 상호작용을 유추해볼 수는 있다. 자연과 작가가, 숲과 작가가 서로 주고받았을 감각과 감정에 일어난 일이 여실하고, 그렇게 그림은 숲이 주었을 위로와 온기로 다정하다.
꼬불거리는 선 몇 개, 질박하고 거친 선 몇 개, 무심한 듯 툭툭 찍은 비정형의 점 몇 개, 그리고 흐릿한 얼룩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작가의 그림은 말하자면 자연과의 교감과 상호작용의 비가시적 실체가 흔적으로 육화된 그림이다. 어쩌면 외관상 프리페인팅 혹은 자유드로잉이라고 해도 좋을, 그렇게 감정의 직접적인 표출이라고 해도 좋을 추상 작업을 하던 초기부터 자연에 대한 공감이 그 저변에 깔려 있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 심상 혹은 심성에 물들어 있었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이후 본격적으로 숲을 그리기 이전부터 선이 나무를, 점이 꽃을, 그리고 얼룩이 숲을 예견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그 그림 한가운데에 뱅센 숲이 있었다.
그리고 1999년 폭풍이 불었다. 폭풍은 프랑스를 휩쓸었고 뱅센느 숲을 망가트렸다. 부러지고 쓰러진 나무들로 가득한 황폐한 숲에서 당시 작가가 조우했던 풍경은 충격이었고, 이후 작가에게 일종의 원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칼 융은 개인의 기억보다 아득한 기억 그러므로 원초적인 기억을 집단무의식이라고 했고, 집단무의식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상징 그러므로 반복 상징을 원형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작가는 검은 숲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검은 숲이 향후 작가의 그림에서 일종의 원형적인 이미지가 될 것이었다.
어쩌면 이 사건을 계기로 전에 보지 못했던 원형적인 이미지를 부지불식간 보게 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검은 숲은 황폐화된 숲의 이미지이면서, 동시에 일종의 원형적인 이미지이기도 한 것이다. 원형적인 이미지? 어떤? 무엇의? 황폐한 숲은 작가에게 삶의 처참한 현장을 가르쳐주었고, 경쟁하는 현실의 슬픔을 맛보게 했다. 숲 자체는 가치중립적이지만, 검은 숲은 의인화된 숲이다. 황폐해졌다고는 해도 사실은 여전히 무심한 숲에 작가가 검은 감정을 이입하면서 처참하고 슬픈 현실을 대리하는 숲으로 그 성분이 변질된 것이다.
그렇게 검은 감정은 처참하고 슬프고 치명적이다. 그리고 치명적인 것으로 치자면 그 지극한 경우가 죽음이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낭만주의는 숲에서 죽음을 본다. 죽음이 삶을 정화한다고 본 것인데, 숲이 삶을 정화한다는 관념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검은 숲 그러므로 검은 감정은 향후 작가에게 치유 불가능한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한다면 지나친 상상력의 비약이라고 할까. 이로써 적어도 이후 작가가 본격적으로 숲을 파고들게 된 계기이며 사건이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흔히 숲은 치유와 위로를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관념은 인간 본위의 생각일 뿐이다. 굳이 범신론과 물활론, 토테미즘과 애니미즘, 그리고 영성주의를 소환하지 않더라도 숲은 영적이고 주술적이고 신비적이고 신적인 대상 그러므로 선과 악, 도덕과 윤리 나아가 미학마저 초월한 대상이다. 자연은 인간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본다고 했다(노자). 인간이 저를 뭐라고 부르든 아무런 상관이 없고, 자연을 명명하는 개념은 다만 인간의 일 일 따름이다. 그렇게 자연과 인간, 자연과 개념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른다. 언제나 개념화되지도 의미화되지도 제도화되지도 않은 채 엄연한 현실로서 존재하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궁극은 언제나 손에 잡히지 않은 채 미증유의 대상으로 남아있는 법이다. 하나의 의미(그러므로 개념)란 언제나 미세한 차이를 만들어내면서 끊임없이 연기될 뿐, 궁극적인 의미, 최종적인 의미, 바로 그 의미는 끝내 붙잡을 수가 없다(자크 데리다의 차연). 그렇게 실재는 의미의 손아귀를 빠져나간다.
● 고충환 / 미술비평
출판사 서평
검은 숲은 변연미가 지치지도 않고 고집스럽게 용기를 다해 그려온 유일하고도 특별한 주제이다. 1999년 프랑스에 불어 닥친 폭풍이 망가트린 숲, 부러지고 쓰러진 나무들로 가득한 황폐한 숲, 그때 변연미와 숲 사이에는 일종의 강한 공모의식이 형성된다.
세잔느는 〈사람은 자연에 그다지 세심하지도, 성실하지도, 순종적이지도 않다.〉 라는 글을 남겼다. 그의 열정적인 주제는 셍 빅트와르 산이었다.
자연과 진리
〈나는 셍 빅트와르 산을 그릴 수도 없고, 그릴 줄도 모르는 채 오랜 시간을 보냈다.〉 라고 엑스 출신의 거장은 말했다. 그는 아주 조금씩 그 무게와 아름다움을 재현해 내었고 셍 빅트와르 산은 그때부터 미술사에 자취를 남기게 된다. 변연미는 나무 몸체를 모래와 접착제, 커피가루로 두텁게 바르고 칠한다. 세잔느와는 달리, 나무 꼭대기는 화폭보다 더 광활한 높은 곳을 지향한다. 하늘 높은 곳에서, 나뭇가지들은 현기증을 불러일으킨다. 색채는 단지 빛의 필터일 뿐이다. 아뜰리에에서 현실의 숲은 환상의 숲으로 변모한다. 복잡하게 얽힌 가지들을 지닌 일련의 나무들을 부드럽게 스며든 빛이 안쪽에서 밝게 비추인다. 장면포착, 빛의 작업, 하늘의 밝음의 강도 등은 기후현상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작가 내면의 감성과 연결된다.
변연미가 거대한 화폭에 그려낸 사람이 살지 않는 숲은 가스파르 프리드리히의 형이상학적인 풍경을 연상시킨다. 선의 섬세함, 세심하게 표현된 가벼움, 그리고 뎃상의 왕성함 등은 그가 동양 출신임을 미묘하게 드러내 준다. 숨이 막힐 듯한, 황색. 그림자가 드리운 듯한, 청색. 비현실을 드러내는 듯한, 보라색은 유니크하다. 그녀의 숲, 그녀는 그것을 항상 검은 숲이라 부른다.
신낭만주의?
이제 그녀는 그녀가 초기에 보여주었던 어두운 단면들, 부러진 선들, 묵시록적인 이미지들과는 멀어진 것처럼 보인다. 숲들은 화폭마다 수직으로 뻗어있고 나무들도 성장한 모습이다. 신비로우면서 신화적인 이런 인적 없는 배경 속에서 영혼은 사방을 배회하는 듯하다. 전체적인 구도는 보편적 감성을 기반으로 하는 사상과, 자연은 우리보다 강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순수한 시적 절제와 억제된 색채로 이루어진 변연미의 낭만주의는 자연에 대한 경의, 감사, 숭배이며 자연에 대한 동일시이다. 자연과 인간 정신 사이의 일체화된 유대관계가 엄숙히 확인된다. 작가 변연미의 근작에는 처음으로 수풀과 야생잡초 뒤에 깊숙이 자리 잡은 작은 나무 집이 등장한다. 이것은 인간의 출현을 예고한다. ● 일레아나 꼬르네아 / 미술비평가
기본정보
ISBN | 9791189688646 |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10월 15일 | ||
쪽수 | 192쪽 | ||
크기 |
151 * 181
* 13
mm
/ 336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한국현대미술선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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