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된 항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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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조선일보 > 2021년 12월 5주 선정
이 책은 동남아시아 문화와 미술에 정통한 강희정과 말레이시아ㆍ인도네시아 역사와 사회를 연구해온 송승원, 두 저자가 의기투합해 보다 다각적이고 전문적인 분석을 시도한다. 관련 문헌을 섭렵한 것은 물론 현지를 직접 방문해 주요 장소들을 답사하고 관련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함으로써, 사원의 건축양식이나 세부장식 같은 시각문화 분석에서 이런 건축물이 등장한 역사적ㆍ사회적 배경과 관련 담론까지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30여 컷의 사진을 수록해 생생한 현장감을 더했다.
작가정보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에서 동남아시아 문화와 미술을 가르치고 있다.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중국미술사를 전공했으며, 시각미술과 물질문화를 통한 한국과 중국, 동남아시아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신남방정책 특별위원회 민간위원,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특별위원회 위원이자 국립중앙박물관 자문위원으로 동남아 관련 지식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저서로 『지상에 내려온 천상의 미』(2016년 불교출판문화상 수상), 『아편과 깡통의 궁전-동남아의 근대와 페낭 화교사회』(2020년 롯데출판문화대상 및 2021년 ICAS 한국어 우수학술도서상 수상), 『해상 실크로드와 문명의 교류』 등이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말레이ㆍ인도네시아어 통번역학과에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한국외대 말레이ㆍ인도네시아어과와 국제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대학교에서 동남아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동남아학회 편집위원장, 아세안문화원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주요 논저로 「The revival of adat and the articulation of the ‘kingdom slot’ in Loloda, North Halmahera, Indonesia」 「A heavenly nymph married to an Arab sayyid: stranger-kingship and diarchic divisions of authority as reflected in foundation myths and rituals in North Maluku, Indonesia」 「Origin narratives, origin structures, and the diarchic system of Buton kingdom, Indonesia」 외 다수의 논문이 있고, 공저 『동남아시아의 박물관』 『외부 세계와 동남아』가 있다. 현재 인도네시아 말루쿠 제도와 술라웨시의 전통 계급구조와 기원 신화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진행 중이다.
목차
- 서문 | 중국인이자 무슬림이었던 정화
chapter 1
1405년, 정화와 그의 함대
1 서쪽으로 떠난 환관 정화의 항해
2 정화는 누구인가?
3 정화 원정대가 들른 동남아시아의 나라들
chapter 2
동남아시아에 전하는 정화의 신화와 사당
1 인도네시아의 삼푸콩 사원
2 말레이시아의 불교 사원 쳉훈텡
chapter 3
인도네시아의 화인 커뮤니티와 종교적 동화 전략
1 화인의 이주 역사와 식민 시기의 분할통치 전략
2 수하르토 정권의 신질서와 동화 전략
3 개혁공간 - 중국적인 것과 이슬람의 부상
chapter 4
정화 모스크와 이슬람 전파에 대한 담론
1 모스크로 부활한 정화
2 자바에 이슬람을 전파한 아홉 명의 성인
chapter 5
21세기 인도네시아의 정화 모스크
1 건립 배경과 건축양식
2 실행양상 - 혼합과 융합을 통한 동화
맺는말 | 과거와 현재, 역사와 종교의 융합으로서 정화 모스크
주
참고문헌
사진 크레딧
책 속으로
현대의 우리는 정화를 막대한 선단을 이끌고 인도양을 거쳐 아프리카까지 가는 항로를 개척한 인물 정도로만 기억한다. 오로지 해양사에서 정화의 위상만이 주 관심 대상이었다. 그가 남긴 유산, 정화라는 존재가 동남아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어떤 책이나 다큐멘터리를 보더라도 정화는 그저 함대의 지휘자로 세계의 바다를 호령했던 인물이며, 왜 항해가 추진되었는가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게다가 정화가 중국인이므로 중국 종교인 불교ㆍ도교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왔다. 그가 실제로는 무슬림이었고, 동남아시아나 아라비아의 무슬림 사회와 연계성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더구나 정화는 석가모니 같은 성인도 아니고, 공자 같은 사상가도 아니었으므로 종교적으로 신성시될 만한 여지가 적었다. 그럼에도 그는 앞의 인물들과 더불어 동남아시아에서 신이 되었다. 왜 그는 신으로 숭배되는가? 정화라는 인물은 과연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화인들의 정치적ㆍ사회적 정체성 확립에 어떻게 기여해왔는가? _「서문 | 중국인이자 무슬림이었던 정화」 35쪽
먼저 1장에서는 정화의 함대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었으며 그들은 왜 중국을 떠나 머나먼 항해의 길을 나섰는가, 그들이 항해 중에 들른 동남아의 기항지들은 어디였고 거기서 어떤 일을 했는가, 현지인과는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었는가를 담았다. 다음으로 2장에서는 정화의 함대가다녀간 이후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를 종교의 관점에서 살폈다. 이 두 나라 특정 지역에 세워진 사원에서 정화를 어떻게 모시고 어떤 이야기들이 전해지는가를 알아보았다. 3장은 현대 인도네시아의 화인 커뮤니티와 이슬람을 매개로 한 그들의 동화 전략을 다루었다. 20세기독립 이후 인도네시아 정부의 정책 및 토착인과 화인 간의 불화, 그 해결을 위한 화인들의 노력이 정화 모스크를 통해 종교적으로 어떻게 표출되었는가를 검토했다. 4장에서는 정화 원정대의 모스크 건립과 이슬람 전파 담론을 둘러싸고 벌어진 학계의 논쟁에 대해 살펴보고, 그 역사적 근거를 분석했다. 5장에서는 정화 모스크의 건축양식과 종교 실행양상을 설명하여, 정화의 이슬람 전파를 지지하는 인도네시아 무슬림 화인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정치적ㆍ사회적 목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_「서문 | 중국인이자 무슬림이었던 정화」 38~39쪽
‘정화’라는 이름은 환관이 되어 영락제에게 하사받은 이름이고, 원래 이름은 마삼보馬三保이다. 독실한 이슬람교도였던 그의 아버지 마합지馬哈只는 이슬람의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후손이라는 의미에서 ‘마’라는 성을 썼고, ‘합지’라는 이름도 이슬람교의 성지 메카 Mecca를 순례한 사람에게 붙이는 존칭인 하지haji를 한문으로 음역한 것이다. 얼마나 독실한 무슬림인지를 알려주는 이름이다. _「chapter 1 1405년, 정화와 그의 함대」 59쪽
정화의 원정은 중국의 도자기, 비단 같은 특산물을 수출하고 동남아 여러 나라의 후추, 상아, 향료 등을 수입하는 국제교역이 이루어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어느 쪽이든 영락제 재위 기간에 국한된 것이었고 교역도 공공연하게 이뤄지지는 못했지만, 많은 중국인에게 바다 바깥의 세상과 다종다양한 사람들에 대해 알려줬으며, 이로써 중국인의 해외 이주가 늘어나게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화의 원정은 중국에 새로운 왕조가 들어설 때 통상 행하던 인접 국가에 대한 행동 방식을 벗어나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제적 세력을 과시하는 일이었다. 황제 중심의 천하 체계 속에서 명이야말로 인접 국가 간 갈등의 조정자이자, 질서와 규범의 수호자임을 각인시킨 이벤트였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_「chapter 1 1405년, 정화와 그의 함대」 93쪽
네덜란드 식민정부는 분할통치 전략을 통해 식민지 주민들의 통합을 저해하는 정책을 폈다. 이에 따라 유럽인을 제1시민으로, 중국인 등 기타 외국인을 제2시민으로, 현지인을 제3시민으로 분류하는 계급 인식이 형성되었다. 식민 당국은 현지인에 비해 중국인을 우대했고, 현지인은 게으르고 열등하다는 식민담론을 유포했다. 효과적인 분리통치를 위해 식민정부는 중국인들이 무슬림으로 개종하는 것을 고의로 막기도 했는데, 단적으로 이슬람교로 개종한 중국인은 일반 중국인보다 더 많은 세금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중국인들에게 이슬람으로의 개종은 식민정부가 억제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중국인커뮤니티 속에서도 스스로의 계급을 강등시키는 일이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었다. _「chapter 3 인도네시아의 화인 커뮤니티와 종교적 동화 전략」 127~129쪽
예전의 이슬람이 가난한 농촌의 삶, 종교적 교조주의, 아랍 종교, 반反화인ㆍ반反서구 정서, 무슬림 극우주의자들의 이슬람국가 수립 노력 등으로 표상되는 교조적이고 정치적인 이미지였다면, 수하르토 후반기에는 고급 라이프스타일과 소비문화로 대표되는 문화상품으로 이미지가 전환된 것이다. 그러자 수하르토도 정치 이데올로기로 사용될 경우 이슬람이 가진 폭발성에 대해 더 이상 긴장하지 않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수하르토는 자신의 재단 기부금으로 전국에 모
스크를 지어주고, 문화적 이슬람의 성장을 장려하였다. 이슬람이 고급스러운 중산층 이미지와 중첩되기 시작하자 화인들도 이슬람에 대해 보다 긍정적인 자세를 갖게 되었으리라.
이런 상황 속에서 인도네시아의 화인 무슬림 숫자는 증가 추세에 있으며, 더 나아가 정화 모스크를 수립하여 자신들의 정체성에 변화를 꾀하고 있다. _「chapter 3 인도네시아의 화인 커뮤니티와 종교적 동화 전략」 145쪽
정화 모스크의 건립 내러티브는 이전과는 달리 상당히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화인 무슬림들이 현지 사회에 동화되려는 것을 보여준다. 화인무슬림협회는 정화 모스크 건립과 관련하여, 자바에 이슬람을 전파한 선구자들이 15세기 정화의 원정대와 관련 있는 중국인 무슬림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자바 이슬람화의 주역은 ‘왈리송오wali songo’라 불리는 9명의 성인인데, 이들 모두가 원정대가 주축이 되어 수립한 중국인 커뮤니티 출신이라고 설명한다. 자바어로 왈리는 성인을, 송오는 숫자 9를 뜻한다. 이 주장은 학계에 수용된 인도네시아의 이슬람화 이론과 상치되는데, 기존 이론에 따르면 이슬람은 13세기 말 아랍 무역상, 페르시아 수피교도, 인도 구자라트 지방의 무슬림 상인에 의해 인도네시아에 전파되었다. 왈리송오는 이집트와 터키에서 온 무슬림들, 수마트라 북부의 아체인과 자바인 등 현지인들로 구성되었다고 본다. _「정화 모스크와 이슬람 전파에 대한 담론」 155~156쪽
출판사 서평
정화의 원정, 잊힌 것과 남긴 것
1492년 콜럼버스의 대서양 횡단은 세계사에 길이 남을 엄청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거의 1세기나 앞선 정화의 항해는 여러 차례 동남아를 거쳐 인도, 서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항해를 통해 새로운 바닷길을 개척하고 해양 네트워크의 여러 가능성을 열었음에도, 그만큼 높이 평가받지는 못한다. 이는 명ㆍ청대 내내 강력한 해금령이 추진됨에 따라 해상교역에서 막대한 공을 쌓은 정화가 기억에서 잊힌 것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항해 도중 정화가 들렀던 동남아시아 지역들에서는 정화와 관련된 사원을 지어 그를 기리는가 하면, 관련 전설이나 풍습이 구전되고 있다. 오늘날 말레이시아 믈라카에는 정화박물관이 지어져 그의 업적을 기념하며, 인도네시아 스마랑에서는 정화 도래를 기리는 축제를 벌이기도 한다.
우리에게 특히 생소한 사실은 정화가 이슬람교도였다는 것이다. 정화 원정대 중에도 무슬림이 다수 있었으며 일부는 동남아시아 사회에 정착해 이주 중국인 공동체를 꾸리기도 했다. 이 사실은 오늘날 이슬람교도가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동남아시아 사회에 매우 의미심장한 것이 되었다.
말레이 세계에서 정화 숭배의 두 가지 양상
정화는 일곱 차례 원정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넘나드는 동안 말레이 세계의 여러 국가와 평화로운 교역을 하고 이들을 명의 황제를 중심에 둔 조공 체계로 편입시켰다. 따라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지에서는 정화에 관한 기억과 전승이 폭력적이고 약탈적인 것보다는 대인, 부유한 상인 등의 이미지로 굳어졌다.
실제로 정화가 방문한 적이 있는 몇몇 도시에서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공자나 관우와 함께 정화를 신처럼 모시는 유ㆍ불ㆍ도 혼합 형태의 사원이 세워졌다. 이곳에서 정화는 중국을 대표하는 인물로, 고향인 중국을 떠나 머나먼 이국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종의 수호신 역할을 하며 종교적 구심점이 되어왔다. 이런 숭배 양상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소가 인도네시아의 삼푸콩 사원이나 말레이시아의 쳉훈텡 사원이다.
흥미로운 것은 오늘날 정화 숭배가 이슬람과 결합되는 새로운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21세기 들어 인도네시아에서는 십여 개의 대도시에 정화 모스크가 건립되었는데, 공통적으로 중국계 이주 정착민, 즉 화인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이라는 특징이 있다.
인도네시아 화인의 정체성과 동화 전략
이 책의 후반부는 최근 인도네시아 화인 사회에서 발견되고 있는 자발적 동화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정화 모스크를 주목한다. 인도네시아에는 19세기 네덜란드의 식민통치 시기에 중국인 노동력이 대거 유입되었는데, 당시 식민정부는 토착 말레이인들이 기피하던 세관원이나 육체노동자로 종사해 효용가치가 있던 중국인을 우대하며 토착인과 분리하는 계급 인식을 형성했다. 인도네시아공화국이 수립된 후에도 소수 화교들의 경제력이 다수를 차지하는 토착 말레이인보다 월등히 크다는 사실은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되었고, 중국적인 것은 금기시되었다. 단적으로 1965년 공산당 소요사태와 1998년 수하르토의 몰락 이후 전국을 초토화한 종족ㆍ종교 갈등 속에서 많은 중국인이 무고하게 희생되었다.
이후 개혁시기의 사회 변동 속에서 화인들은 적극적인 동화 전략을 모색해, 이슬람교 인구가 88퍼센트를 차지하는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하거나 이슬람적인 요소를 수용하게 되었다. 그 상징이 바로 정화다. 인도네시아 화인 사회는 15세기부터 동남아 일대에 정착한 정화와 그의 일행을 소환해 자신들의 정통성을 주장하며, 정화 일행이 이슬람교 전파에 기여했다는 담론을 적극적으로 유포한다. 정화 모스크는 그 전략의 일환으로, 관용적이고 다문화적인 이슬람을 상징하며, 인종을 넘어서 무슬림 간의 상생을 도모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기본정보
ISBN | 9791189652920 |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11월 30일 | ||
쪽수 | 208쪽 | ||
크기 |
137 * 209
* 22
mm
/ 335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아시아문화연구소 아시아+ 시리즈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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