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비는 정밀성은 현대 세계의 필수 요소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숨겨져 있다고 말했다. 기계가 정밀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주요 물품(카메라, 휴대 전화, 컴퓨터, 자전거, 자동차, 식기 세척기, 볼펜)은 부품들이 정확히 맞아서 완전하게 작동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 안다. 그리고 우리는 아마도 더 정밀할수록 더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동시에 이 정밀성이라는 현상은 산소나 영어처럼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며, 대개 보이지 않는 것이며, 제대로 상상할 수 없는 것이며, 보통 사람들은 토론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정밀성은 항상 현대를 가능하게 하는 현대성의 필수 요소였다.
-15~16쪽, ‘머리말’ 중에서

해리슨 시계들이 대단히 중요한 이유는 또 있었다. 이 시계와 뒤이어 등장한 시계들 덕분에 선박들은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 효율적으로 정확하고 정밀하게 항해를 계획할 수 있었고 큰 무역 이익을 냈다. 또 현재는 상황이 달라졌지만, 해리슨 시계가 영국에서 발명되었고 뒤이어 나온 시계들이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덕분에 전성기의 영국이 한 세기 이상 세계 바다의 통치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정밀한 시계가 정밀한 항해를 가능하게 했고 정밀한 항해는 해양 지식, 통치, 권력을 창출했다.
-50쪽, 제1장 ‘별, 초, 실린더, 수증기’ 중에서

기술 관련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루이스 멈퍼드(Lewis Mumford)는 기술 발전에서 정밀성에 기초한 표준화(standardization)가 보급되는 데 군대가 주된 역할을 했다고 최초로 인지한 인물이다. 또 나노미터 이상의 작은 오차도 없어야 하는 위험물을 반복 생산하는 데 군대가 주된 역할을 할 거라고 예상했다. 이제 표준화와 정밀성에 기초한 제조가 영국과 미국 군대 모두의 중요한 야심임을 보여 주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여기서 우리는 멈퍼드의 선견지명을 확인하고 정밀성의 발전에서 군대가 담당한 역할을 보게 된다. 과학 초창기의 사례들은 당연히 비밀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정확도와 정밀성에 더 집착하는 시대다. 오늘날의 세계에 대해 가능한 충분히 설명하겠지만 이런 연구 주제들은 강화된 보안 속에서 비밀리에 진행된다. ‘다크 사이드’답게 영원히 그늘 아래 있다.
-119쪽, 제3장 ‘가정마다 총, 집집마다 시계’ 중에서

모즐리가 이미 증명했듯이 완전한 평평함은 극도로 중요한 요소다. 그것의 본질적인 중요성은 매우 간단하며, 우리가 정밀함의 철학이라고 부를 만한 것의 핵심이다. 완전한 정반은 다른 물건에서 완벽함을 끌어내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것과 대비해서 계측되는 게 아니다. 치수는 중요하지 않다. 모양도 문제가 아니다. 평평한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다. 정확히 평평해야 위에 올려 측량하는 다른 물건들에도 정밀성을 얻을 수 있다. 자, 직각자, 게이지 블록은 정반 위에 설치되어 정밀하게 만들어졌는지 아닌지 그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158쪽, 제4장 ‘더 완벽한 세계의 가장자리에서’ 중에서

헨리 로이스는 만들기 어렵고 비싸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자동차의 가치를 아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최고급 자동차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한편 헨리 포드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최소의 비용으로 자동차를 이용하게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들은 각자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헨리 로이스는 수작업으로 차를 만들 기술자 팀을 구성하려 했고, 헨리 포드는 과정에 따라 기계를 도입해서 대량으로 차를 생산하려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노력에는 모두 극단적인 기계의 정밀성이 필요했다. 예술가를 자처하는 기술자가 꼼꼼하고 유연하게 이용할 정밀성이든, 개혁가를 자처하는 기술자가 매몰차고 단호하게 이용할 정밀성이든 말이다. 두 회사를 비교하는 것은, 20세기 초 문명을 완전하게 확립하는 데 필수 요소였던 정밀성을 적용하는 방법을 보여 주는 과정이다. 이 두 방식은 결국 무척 다른 결과로 이어졌다.
-175쪽, 제5장 ‘고속 도로의 거부할 수 없는 유혹’ 중에서

치명적인 실수는 검사실에서 일어났고 이건 사소한 오류가 아니었다. 거울 표면의 매끄러운 정도나 정밀도는 예외 없이 확실하게 만들어지고 있었지만 측정이 완전히 잘못되고 있었다. 댄버리 팀이 계측 도구를 부정확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직선 자 같은 기구를 사용했고 정확히 1피트, 즉 12인치(30.48센티미터)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13인치(33.02센티미터)로 측정되었는데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기술자들은 이런 사실을 몰랐다. 그들은 분주하게 측정하고 나서 완벽하지만 완전히 잘못된 물건을 만들었다. 그들은 정밀하게 정밀하지 않은 망원경 거울을 만들고 있었다.
-303~304쪽, 제7장 ‘유리를 통해, 선명하게’ 중에서

칩을 제작하는 기계를 만드는 일과 칩을 제작하는 일, 두 가지가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이야기는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정밀성과 관련한 전설이다. 두 회사를 하나로 융합하는 기술은 워낙 작은 크기를 다루는 것이고, 수십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터무니없고 불가능해 보였을 정도의 허용 오차로 작동한다. 이제 정밀성은 믿기 힘든 세계로 들어섰다. 하지만 믿어야 하는 세계이고 이로 인해 현대 인류는 큰 특혜를 받을 것이고 더 나은 세상이 될 거라는 주장에 인텔과 ASML 모두 동의할 것이다.
-350~351쪽, 제9장 ‘한계를 넘어서’ 중에서

이제 과학은 정밀한 시간 측정이라는 희귀한 세계로 접어들었고 이상한 시간 측정에 돈과 장비와 인력을 쏟아붓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계측학자들이 시간이 모든 것을 관할한다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는 중력까지 포함된다. 다른 시계보다 겨우 5센티미터 높은 테이블 위에 있는 시계는 실제로 측정할 수는 없겠지만 확실히 1초를 다른 시계보다 길게 기록할 것이다. 지구 중력에 영향을 덜 받기 때문이다. 지구의 중심에서 5센티미터 더 멀리 있으니까.
-432~433쪽, ‘맺음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