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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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가지고 있는 운율에 먼저 눈이 간다. 시가 가진 가장 큰 특징은 운율이다. 어떠한 이야기와 형식을 담더라도 시라면 리듬감이 느껴져야만 한다. 『나도 꽃이다』에 담긴 김도명의 시는 산문에 근접하면서도 시가 가진 기존의 골격을 성실히 지켜나간다. 시인은 숙련되고 천연덕스럽게 자신의 이야기에 리듬을 얹어 시를 쓴다. 시가 다소 길더라도, 바닥에 리듬감을 탄탄하게 얹고 그 위에 이야기를 쌓는다. 시를 산문에 근접시키지만, 시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서정성을 놓치지 않는다.
다음은 작가가 담아낸 이야기를 꺼내어 볼 차례이다. 시는 몇 안 되는 단어로 작가의 내면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수단이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상황과 인물들을 주제로 다루지만, 그 속을 깊숙하게 들여다보면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다가올 죽음이란 시간을 목전에 둔 80대 시인의 시선과 사유는 필연적으로 삶을 돌아보는 관조와 회한, 그동안 살아 낸 삶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워진다. 죽음 앞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돌아보거나, 주변에 있는 사람을 살펴보거나, 세상을 떠난 뒤 마주할 세상을 떠올리기도 한다. 시인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80대 노인의 시각으로 보는 세상은 어떠한지 함축적인 언어로 가리기 보다는 독자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풀어낸다.
『나도 꽃이다』에 담긴 시를 읽다보면 “산문화로 운율에 의한 지배구조에서 살짝 비켜가면서 시적화자의 육성이 도드라진 시의 존재감을 발견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더위가 사라지고 해가 짧아지는 계절에 어울릴 시집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김도명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가 고향이다.
오현고등학교를 거쳐 제주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후
제주신문 지방부장과 정경부장으로 재직했었다.
월간 ?문예사조?를 통해 등단했으며,
시집으로는 ?허튼소리?가 있다.
작가의 말
나막신이며 초신 신고
가파른 보릿고개를 넘곤 하던
그해 설 지나고
어느 눈 오는 날 새벽
첫울음 울고 나서부터 여태껏
나는
종아리에 쥐가 나도록
저 알 수 없는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훗날
거짓말처럼 그 곳엘 가 닿아도
나는 정작 몰라도 되는
이 맹목盲目의 길을!
여기,
이렇듯
어눌한 혀끝을 나불대기도 하며,
2020년 여름
遠峯 김 도 명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허공에 누운잠1
만약에
이승울담 저 너머를 넘보고 싶다
동전 굴리기
신도 똥을 누실까
·
·
[중략]
·
·
천상의 꽃
버리다
죽음인들 지치지 않으랴
열반
나도 꽃이다
제2부
자화상
버릇없다고
젊은 노인
바닥
손톱깍이
·
·
[중략]
·
·
고수레
별밤3
민머리 도둑님
착시
초로인생
제3부
색맹들
안 그래도 늙어서 서러운데
길 아닌 길
요상한 현수막
팻말
·
·
[중략]
·
·
말의고장
빈손1
일출2
술
혼자 술 먹는 늦은 밤
제4부
갈빗대를 돌려다오
몸
땜질
오줌발이 약해졌다
병수발
·
·
[중략]
·
·
손등에 나룻배 한 척 띄어놓고
나의 그림자
이 뭣고
파장
향방(向方)
작품해설
추천사
-
읽히는 시라야 좋은 시다. 시가 독자 곁으로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가독성이 없는 시들이 양산되는 시단에 귀감이 되리라 생각한다.
나는 김도명이 법고 창신의 가치 실현에 고민하는 시인이라 말하고 싶다. 한마디로 그의 시에는 고전적 정서를 품는 가운데 청년의 신선한 숨결이 깃들어 있다.
그의 시가 불교적 토양에서 배태된 데다 전통적 정서를 기반으로 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품으려는 의지가 혼요하고 있는 데 연유한다. 젊은 시절에 시인이 중견 언론인이었던 데서 저널리즘 시각을 보이는 것도 시적 화자의 육성으로 변용되면서 나타난다. 이도 그의 시에 독자적 문양을 아로새기고 있어 주목하게 된다. 다른 무엇보다 그에게는 시인이면 누구나 갈망하는 메타포(metaphor)가 있다. 상념을 이미지로 받아쓰기할 수 있을 것이라 그는 말년이 행복할 것이다.
책 속으로
어느 날
아래랑 구운 고구마를 먹다가 문득,
때 늦은 감이 있지만 쌍꺼풀 수술을 받으면
좀 더 예뻐질 것만 같은 아내더러
그리하라고 일렀더니
말도 말라며 펄쩍 뛰었다
조금은 젊었을 때
관상에 도통하다는 어느 스님이
얼굴에 칼을 대면 남편을 잃을 팔자라고 그래서
친구들은 쌍꺼풀 수술을 했는데도
자기만은 안했다며,
한 친구는 스님의 말을 대스럽지 않게 여겼다가
돌연 남편을 잃기도 했다는 거다
오호라!
오직 이 한 목숨을 위해 예뻐지기를 마다했던
아내의 벽오동 심은 뜻도 모르고
여태껏 목숨 부지해오며
아내가 좀 더 예뻐지기만을 바랐던
내 잘못을 사죄하는 뜻으로
먹던 군고구마 반쪽을 아내에게 건넸다
하긴, 나도 이젠 살만큼 살았으니
그에 괘념치 말고
아내 맘껏 예뻐졌으면! 하는 속내마저
덤으로 얹어……
-「쌍꺼풀」
가끔은 아내의 안경알을 입김 후후 불며
깨끗이 닦아준 것 말고는
살며, 착한일 한 게 별로였던 것만 같은
내 삶의 흉터에
알게 모르게 쉬슬 듯 쌓인 업
아, 산이겠다
두고두고 무너져 내리는 족족 부메랑일
저 산 짊어지고
이 생을 다 건너느니
차라리 이쯤에서 되돌아 선 발길로
내 피의 족적을 거슬러 든 태초의 문턱 저 너머
(…)
아득한 고요엘 가
-「업業」
꽃이 시들어 지고 나면
본디 흙의 자리로
되돌아가는데
그 고운 꽃도 아니었던 난들
눈 감으면
감 데가 따로 있으랴
하면,
나도 꽃이다
꽃 따라 지는
아니 아니다
삭은 나무토막이다
불의 만찬에 아, 군불이나 지필!
-「나도 꽃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88339570 | ||
---|---|---|---|
발행(출시)일자 | 2020년 09월 14일 | ||
쪽수 | 174쪽 | ||
크기 |
121 * 186
* 17
mm
/ 198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도서출판 각 시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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