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맛본 사람만이 자두 맛을 안다(큰글씨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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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여간 아껴 읽어온 책들에 대한 독서 에세이.
삶과 여행과 시와 인문학과 다종다양한 책이 하나로 녹아든 사색의 결정체가
때론 감성적으로, 때론 비판적으로 유려하게 흐르는 문장 속에서 반짝반짝 빛난다.
작가정보
시인, 문장노동자, 산책자. 시립도서관 참고열람실에서 습작을 하다가 시와 비평에 입문한 지 마흔 해째다. 니체와 바슐라르, 콜린 윌슨, 카뮈와 사르트르, 발터 베냐민과 롤랑 바르트, 미셸 푸코와 질 들뢰즈 등을 읽으며 전업작가의 꿈을 키워왔다. 출판편집자, 대학 강의, 방송진행자 등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항상 읽고 쓰며 산책자로 사는 이 우연의 생을 기꺼워한다. 오늘도 자유롭게 읽고 쓰며 가난한 사유 속에서 문장 몇 개를 건지려고 책상 앞에 앉는다. 이제껏 누구도 쓰지 않은 한 구절을 꿈꾸며!
그동안 제법 많은 책을 냈는데 그중에서도 『풍경의 탄생』, 『일상의 인문학』, 『일요일의 인문학』, 『마흔의 서재』, 『은유의 힘』, 『이상과 모던뽀이들』, 『철학자의 사물들』, 『동물원과 유토피아』,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내가 읽은 것이 곧 나의 우주다』, 『나는 문학이다』 등이 특히 많은 사랑을 받았다.
목차
- 서문
01 계절이 바뀌는 소리
입춘 지났는데 날은 춥다 / 우리는 날씨에 따라 변한다 /
쓸모없는 것의 쓸모를 생각함 / 시간은 거대한 아르페지오를 연주한다 /
기록과 망각 / 한여름의 더위 속에서 /
인생의 슬픔을 아는 자만이 자두의 맛을 안다 / 당신은 살아 있으라! /
가을의 기척 / 12월의 침울함 속에서 / 눈 쌓인 새벽에 시집을 읽다 /
12월의 독서 / 묵은해를 보내며
02 여행과 일상 사이에서
벽난로 앞에서 / 다시 시드니에서 / 제주 겨울 바닷가에서 /
여행과 서점 / 책에 추천사를 쓴다는 것 / 비평을 쓴다는 것 /
날마다 아침을 맞으며 / 책의 표지에 관하여 /
동네서점 ‘어쩌다책방’과 열 권의 책
03 사색의 시간
말하며 침묵하는 존재 / 눕기 예찬 / 호텔에 대하여 /
쓰레기 분리수거 하는 날 / 인간은 혼자다 / 대지에서 대지를 생각하다 /
기다림은 낯선 일이 아니다 / 노스탤지어에 대하여
04 고전이 된 작품들
『토지』, 민족의 대서사시 / 인생의 급류 속에서 /
그토록 불길했던 상상력 / ‘인간은 진리다!’라고 쓴 작가 /
5월에 『열하일기』를 읽다 / 정직한 문장 하나
05 인문학과 비평의 세계
왜 우리는 새로운 것을 탐하는가? / 인문학과 시 /
인문학과 시 2 / ‘비극의 탄생’을 읽는다는 것 / 리좀과 연애
미주
책 속으로
읽고 쓰는 게 생업과 관련이 있어 아주 미친 듯이 읽지는 않았지만 읽는 일을 쉰 적은 없어요. 여기에 묶은 에세이는 그런 저의 일상적 사유 활동의 자취를 보여줍니다. 책을 읽으며 생긴 내면의 파장, 감정의 굴절과 기분의 흐름, 그리고 마음의 무늬를 드러내죠. 책을 좋아하는 이에게 보내는 책으로의 초대장이기도 해요. (10~11쪽)
나는 장작이 타오르는 벽난로 앞을 떠나지 않는다. 불꽃은 장작을 감싸며 타오르는데, 귀 기울이면 정적이라는 안감에 작은 한숨이 쉼표 같은 무늬를 새긴다. 불꽃은 타다닥거리며 타오른다. 가끔 제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듯하다. 불꽃에 의해 분리된 장작 조각이 아래로 떨어지면 불꽃은 이내 숨을 죽이고 가끔 한숨이나 작은 신음을 토해낸다. 불꽃의 몽상가라면 이 작은 소리조차 놓칠 리가 없다. (124쪽)
추천사는 책 전체를 읽고 써야 하니 의외로 시간과 품이 많이 든다. 독자에게 책을 소개하되 독서 욕구를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것, 그게 추천사의 암묵적 책무겠다. 추천사는 익명의 독자에게 띄우는 초대장이고, 이 책이 아름다운 낙원이라는 것을 알리는 짤막한 안내서다. 때로 엉뚱한 추천사는 이슬람교도에게 성경을 내밀고, 불교도에게 쿠란을 내미는 불상사를 낳기도 한다.
추천사를 쓸 때 내용을 너무 구체적으로 소개해서는 안 된다. 무릇 추천사는 약간 두루뭉술하게 써야 하는 법. 그 책이 어떤 기후에서 읽어야 좋을지를 말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좋다. 그 책이 영혼에 속하는 것인지 육체에 속하는 것인지를, 그리고 사랑, 증오, 감탄, 기쁨, 슬픔, 욕구와 같은 정념 중에서 어느 것에 충실한지는 알려줘도 좋겠다. 사실 사냥꾼에게 낚시 안내서를 보내거나 감기 환자에게 우울증 처방전을 내주는 격으로 궤도에서 이탈한 추천사를 본 적이 있다. 추천사를 쓰는 이는 조급한 결혼 중매쟁이와 비슷하다.
중매쟁이는 결혼을 성사시키려는 욕심을 앞세워 없는 것을 지어내고 있는 것은 한껏 치장하는 법이다. 그러니 책 추천사를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어리석다. 나 역시 추천사를 믿고 책을 구매했다가 낭패를 본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142~143쪽)
표지는 책의 얼굴이다. 책이 생물이라면 표지는 그 생물의 살아 있는 감각과 표정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한데 요즘 책 표지는 과거에 견줘 세련되고 화려해졌지만 정작 소박한 개성과 고졸한 품격을 찾기는 힘들다. 몰개성과 분식扮飾으로 덧칠된 표지는 책에 대한 신뢰감을 떨어뜨린다. 물론 책의 핵심은 단어와 문장, 그것이 실어 나르는 알갱이, 즉 내용, 메시지, 전언이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썼느냐는 항상 책을 고를 때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하지만 나는 책을 선택할 때 표지도 유심히 본다. 표지가 내용과 별개로 존재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책을 이루는 일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표지가 책의 내용을 반영한다고 믿지만, 표지는 항상 그 이상이다. 표지와 텍스트 사이의 상호교감은 세상에 울려 퍼지는 화음이고 교향악이다. 그런 화음과 교향악이 없는 책의 표지를 믿지 않는다. 나는 텍스트와 상관없이 책의 표지에 매료되어 책을 고를 때도 종종 있다. 표지는 그 책과 만나는 순간을 기념하는 운명의 표징이다. 얼마나 많은 책이 볼썽사납고 통속적인 표지로 나를 실망시켰던가! 반면 얼마나 많은 훌륭한 표지가 내 심장을 뛰게 했던가! (168~169쪽)
이 책의 한국어판이 나왔을 때 나는 아무 망설임도 없이 서점으로 달려가 집어 들었다. 아마도 이 책을 가장 먼저 사서 읽은 독자 중 하나일 테다. 처음 산 책은 너무 낡아 누군가에게 주었다. 지금 읽는 것은 두 번째 책이다. 이 책의 겉장도 낡았다. 어느덧 열다섯 해가 훌쩍 넘었다. 다양한 출구와 입구를 가진 ‘영토, 탈영토화, 재영토화, 도주’ 같은 낯선 개념이 춤추는 1,000쪽이 넘는 책을 붙들고 씨름하는 동안, 나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변화와 유동을 체화하며 삶에서 가능한 한 가장 멀리 달아났다. 특히 ‘리좀’의 장을 반복해서 읽었다. 읽은 회수를 세거나 기록하지는 않았다. 열 번, 아니 그 이상으로 읽었다. 그사이 들뢰즈의 다른 책을 구해 읽고, 사유의 방식과 그 외연을 확장하는 가운데 ‘철학하는 것’에 대한 사유를 밀고 나갔다. 철학은 다른 것들의 접목이고, 사유방식의 발명이며, 철학자의 등에 올라타서 철학을 건너가기다. 철학은 변화하는 것과 변화하지 않는 것 사이의 전쟁이자 평화다. (328~329쪽)
출판사 서평
“많은 이가 ‘책을 읽은들 무슨 소용이 있나!’라고 탄식한다. 책을 읽는다고 삶이 갑자기 좋아지지는 않는 까닭이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독자’라는 지위를 얻는다. 독자란 세상의 번잡과 소음에서 떠나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이동하는 여행자다. 그 여행은 장소의 이동이 아니다. 독자로서 치르는 여행은 ‘끊임없는 현재’라는 지평에서 시간 이동을 하는 것이다. 독자는 늘 현실에 부재한다. 그는 짧고 덧없는 삶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가 아닌 저곳의 시공을 떠돈다. 그렇게 문장과 행간이 불러일으키는 몰입과 몽상의 시간을 떠도는 동안 독자는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삶을 살며 ‘준불멸적 존재’로 거듭 태어난다. 독서는 세계라는 책의 여행, 거듭 태어나기다.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책이라는 피난처 안에서 ‘준불멸적 존재’로 살며, 자신만의 삶을 설계하는 작고 소박한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독서는 현실 저 너머의 아폴론적 황금빛에 감싸인 먼 세계를 힐끗 엿보는 일이고 그 세계에 대한 동경을 키우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독서는 그것에 빠진 자를 고독에 빠뜨리는 일이다. 어쩌면 고독은 독서의 본질적 속성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고독의 오롯함을 좋아했다. 현실의 삶이 메마르고 가난할수록 나는 독서가 만드는 고독의 풍요에 빠져들기를 갈망한다. 그것이 비록 누추한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 지독하게 성실한 ‘문장노동자’의 삶과 사색의 바탕이 된 책 이야기
반세기 동안 지독한 성실함으로 책을 읽고 쉼 없이 글을 써온 작가 장석주가 말하는 독서의 본질적 속성은 ‘고독’이다. 고독의 오롯함 속에서 ‘준불멸적 존재’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작가 장석주에게 책읽기는 글을 쓰기 위해 읽는 것이라기보다 그 자체로 존재증명이자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한 불쏘시개다.
분명 일반 독자와는 다른 층위에 있으나 작가는 그 거리감을 강조하지 않는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그가 선별한 책들은 일단 믿고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신간의 바다 위에서 작가 또한 좋은 책을 고르는 데 실패한 적이 많다고 토로한다. 추천사만 믿고 샀다가 낭패를 본다거나 그저 표지가 너무 좋아 샀지만 실상 내용은 별로인 경우 등은 일반 독자들도 충분히 경험해봤을 법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단순히 작가가 그동안 읽은 책들 중 추천할 만한 도서를 선별한 책인가? 그렇지 않다. 서문에서 저자는 소박하게 ‘독서 에세이’라고 말하지만 실상 이 책은 문학과 인문학이 하나로 녹아들고, 삶과 여행과 사색이 완전체를 이룬 또 하나의 풍경화이자 작가의 내밀한 아픔까지도 일별할 수 있는 고백록이기도 하고, 고전이 된 작품과 그 작품을 탄생시킨 작가들에 대한 진중한 비평서이기도 하다.
작가에게 큰 영향과 영감을 준 철학자 질 들뢰즈가 강조한 ‘리좀’처럼 이 책은 딱히 정해진 입구와 출구가 없다. 편의상 점층법 구조로 배열되어 있지만 아무 꼭지나 마음에 드는 부분부터 시작해도 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지나고 다시 봄이 오듯 자연스러운 계절의 흐름에 의식을 맡겨도 좋고, “한 페이지짜리에 머무는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은” 이들이라면 가벼운 여행 이야기부터 시작해도 무관할 것이다. 반면 진중한 작품 분석이나 비평의 세계를 먼저 맛보고 싶다면 맨 뒤부터 펼쳐도 좋을 것이다. 평소 “적게 먹고 적게 배설하고자 한다”는 저자의 소식 습관과 달리 이 책은 풍성한 뷔페식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자연스럽게 다른 책들로 넘어가는 훌륭한 가교 역할도 한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특별한 초대장이지만 평생 책과 담 쌓고 지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곳곳에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녹아 있는 이 책은 지루함을 털어버리고 ‘책-독서’의 매력을 한껏 느끼게 해줄 것이다. 시큼하면서도 달달한 ‘자두 맛’이 곧 인생의 맛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안내를 따라 풍요로운 책의 바다에 빠져보자.
◆ 인생은 자두 맛과 같고 삶이란 저마다 한 권의 책을 쓰는 일
거부할 수 없는 열정에 이끌려 첫 평론을 쓴 때로부터 40년이나 흘러 60대가 된 작가는 인생의 맛을 자두에 빗댄다. 출판업이 무난한 성공을 거두던 30대에 분노조절장애를 앓았던 일이며, 혼자 세 들어 사는 아파트에서 새벽마다 타자기의 자판을 두드리던 어느 날 이웃의 신고로 경찰관이 들이닥친 일, 딱히 대상이 없는 분노와 울분으로 괴로워했던 날들 속에서 “세계의 우울을 견디며 오래된 의례와 같이 몇 번의 연애를 치”른 뒤 시를 쓰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 새로운 생활을 꾸리기까지의 인생편력을 곳곳에 담담히 풀어놓는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 “운 좋게” 60대에 이른 지금, 작가는 웬만한 소규모 출판사보다 연간 출간종수가 더 많은 왕성한 필력을 자랑한다. 수입의 상당 부분을 헐어 책을 사고, 하루의 절반을 꼼짝 않고 책 읽는 데 할애하며, 꾸준한 산책으로 사유의 깊이를 더해가는 삶을 성실하게 꾸려가는 작가 장석주를 우리는 이제 ‘책의 사제’라 불러도 좋으리라.
늦더위가 사라지고 소슬바람 불 때 가을은 돌이킬 수 없는 사태로 다가온다. 아내는 잘 익은 자주색 자두를 먹을 때 달콤하고 시디신 맛에 몸서리를 친다. 날씨에도 맛이 있다면 청명한 가을 초입 날씨는 잘 익은 자두 맛이다. 이 맛은 슬픔과 행복이 뒤섞인 맛이다. 두어 개를 먹은 뒤 돌아서면 금세 아련해진다. 인생의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이 자두 맛도 모를 테다. 나는 인생의 슬픔을 아는 사람만이 자두 맛을 안다고 믿는다. (71쪽)
나는 문신도 하지 않고, 비트코인 따위에 투자하려는 마음도 품지 않는다. 다만 새 책이 늘어나 서가를 채우고, 손톱과 발톱이 자라나는 세계에서 산다. 간혹 30대의 빛나던 젊음을 칙칙하게 만들고, 나를 딱히 대상 없는 분노와 울분에 빠뜨린 것이 무엇이었나 생각한다. 출판업이 무난한 성공을 거두던 그때 나는 왜 분노조절장애를 앓았을까. 마음에 짚이는 바가 있지만 굳이 발설하고 싶지는 않다. 그 분노와 울분을 넘어서서 나는 살아남았다. 미세먼지와 암이 만연하는 세상은 여전히 살 만하거나 그렇지 못하다. 재난과 비명횡사가 많은 세상에서 운 좋게 살아남아 60대에 이른 나는 삶이란 시간과 망각의 압력 속에서 기억력의 저하와 오류를 겪으며 저마다 한 권의 책을 쓰는 것이라 상상한다. (258쪽)
◆ 책은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다
평소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든 책이라면 질색인 사람이든 작가가 모든 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한마디는 바로 이것이다. “책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오죽하면 이런 고백을 할까.
‘천국의 도서관’이 있다면 나는 날마다 읽을 책을 한 바구니 내려주소서, 하고 기도할 것이다. 책은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다. 우리는 나와 현실 사이에 걸쳐 있는 책을 매개로 현실과 만나고, 더 넓은 세계와 소통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불안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내면의 변화를 겪으며, 찰나의 점에 불과한 존재를 무한으로 확장해서 영원에 잇는다. 책은 경이와 충일감을 주고, 감성과 정신을 쇄신하며, 나라는 존재를 새롭게 빚는다. 나는 책을 읽으며 어제와는 다른 존재로 거듭난다. (221쪽)
◆ 거울에 갇히지 않기 위하여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작가 장석주는 시인이다. 그런데 그는 문학뿐 아니라 인문학 책들에도 무한한 애정을 갖고 시간을 쏟는다. 그에게 시와 인문학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작가에 따르면 ‘거울의 수인’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시와 신화, 인문학이라는 거울을 되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거울은 책의 형태를 띠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책이 소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인문학 역시 항상 현실 저 너머를 가리킨다. 인문학으로 위장한 자기계발서는 바로 여기 지옥 같은 현실에서 생존하는 법과 성공을 고무하는 이야기로 채워진다. 자기계발서가 현실 저 너머에 대해 말하는 법은 없다. 오직 현실에서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나쁜 습관을 바꿔 성공을 거둘 수 있는지 그 기술에 대해서만 말한다. 그러나 진짜 인문학은 마치 거울인 듯 현실이 아닌 곳, 그 너머를 가리킨다. 이 거울은 천 개의 눈을 가진 그리스 신화 속 괴물 아르고스다. 아르고스의 눈은 거의 모든 것을 본다.
우리는 거울을 잃어버렸다. 타자라는 이름의 거울을, 시와 인문학으로 명명되던 거울을, 신화라는 거울을 잃었을 때 우리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볼 수 없다. 거울을 잃은 사람은 역설적으로 거울에 갇힌다. 거울의 수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불행은 거울을 잃어버린 데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거울이라는 감옥에 유폐되었다. 그 감옥에서 해방되려면 거울을 되찾아야 한다. 어떤 거울을? ‘이것은 네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거울, ‘나’의 내부에 펼쳐진 외부로서의 거울, 직관과 상상력으로 빚은 거울, 거울로서 상연되는 시와 신화와 인문학이라는 거울을! (318~319쪽)
기본정보
ISBN | 9791187700616 |
---|---|
발행(출시)일자 | 2022년 03월 18일 |
쪽수 | 336쪽 |
크기 |
210 * 297
mm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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