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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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유교에 중점을 둔 기존의 중국 사상사와는 달리 실제에 비해 작게 다루어져 왔던 노장 사상과 불교의 영향을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춘추전국시대 유가와 더불어 가장 큰 세력이었던 묵가나 중국 사상사에서 최초로 철학이라고 할 만한 수준에 오른 것으로 저자가 평가한 노장 사상에 대해 크게 다루고 있으며 유가 중에서도 순자의 항목이 인성론과 관련해 비중 있게 다뤄진다. 중세의 대분열이 시작된 남북조 시대에 들어온 불교 역시 문명사적인 시각에서 중국 사상의 역사에 큰 영향을 주었음이 설득력 있게 제시된다.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다양한 사상적 갈래가 한대 이후 유교로 수렴되어 이후 송대에 이르러 원시 유학을 철학화한 신유학으로 발전했다는 것이 중국 사상사의 큰 틀이라면 유학을 철학화하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이 바로 노장 사상과 불교이다.
유교가 중국의 자생적인 사상이라면 불교는 대표적인 중국의 외래사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유교를 중국의 자생적인 사상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중국 불교는 외래사상의 산물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이 책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시 유학을 철학화한 신유학을 일으킨 송대 사대부들에게 노장 사상과 불교는 교양으로서 그들의 정신세계에 깊숙이 침투해 있어서 무의식적으로, 혹은 선승들과의 교류를 통해 직접적으로 그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바가 결코 작지 않다.
또한 노장 사상은 불교와 함께 흥망성쇠를 되풀이하는 파란만장한 중국의 역사에서 일관되게 현실 지향적인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종교적 구심점의 역할을 했다. 후한 말의 오두미교나 위진남북조 시대 지식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현학, 명 건국의 계기가 된 홍건적의 난 등은 노장 사상과 그것의 종교적 형태인 도교가 민중들과 현실의 역사에서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해 왔는지를 웅변한다.
한대 이후 유학은 관학으로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쳐왔지만 그러한 유학의 발전은 장기적으로 학문의 교조화와 정체를 가져와 중국에는 불행을 초래했다. 송대의 신유학이나 양명학, 청대의 고증학처럼 학문에 새로운 혁신을 도입하려 한 움직임들은 유교 경전의 틀을 끝내 벗어나지 못했다.
저자 모리 미키사부로는 중국 사상의 이러한 흐름들을 결정지은 중국 문명의 특징을 예리하게 포착해 낸다. 범신론적인 하늘 숭배 사상, 고립어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한자가 서양적인 의미의 철학의 부재를 초래했다는 점, 현세 지향적인 인생관과 지식인의 강한 정치 지향성 등이다. 이러한 중국 사상의 일반적인 성격이 시대를 내려오면서 어떻게 현실의 사상으로 열매 맺게 되었는지를 책의 전편을 통해 설득력 있게 전개하고 있다.
춘추전국시대 이래 청조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약 2,500년 동안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어왔다. 고대의 통일제국 진과 한이 등장했고 이후 북방민족의 침입으로 중세의 대분열이 시작되었다. 대분열의 끝에 통일을 이룩한 송은 이민족인 몽골에 멸망했으며 뒤이어 등장한 명 또한 송의 운명을 답습했다. 분열의 시기를 제외해도 왕조 순환의 교체 시기는 겨우 3백 년이 되지 않고 이민족의 침입은 중국의 역사지리에 큰 영향을 끼쳐 영토의 경계선이 바뀌고 한족의 민족의식을 자극해 근세에 들어 중화주의가 싹트기 시작했다. 중화주의란 말은 역사적인 용어에 그치지 않고 현재도 은연중에 현대 중국의 국가 정책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 사상의 흐름을 이해한다는 것은 현재의 중국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중국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이다. 그뿐 아니라 중국 사상은 한 나라의 사상을 넘어 우리를 비롯해 동아시아 전체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이러한 주제에 대해 거시적이면서도 깊은 통찰을 보여주는 모리 미키사부로의 [중국 사상사]는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도 큰 자극이 될 것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모리 미키사부로
저자 모리 미키사부로 (森三樹三?, 1909~1986)
노장 철학과 불교를 기축으로 한 중국 사상 연구자. 교토에서 태어나 교토제국대학 중국철학과를 졸업했고 오사카대학, 불교대학 교수 등을 역임했다. 저자가 말년에 평생의 연구를 응축시켜 집필한 『중국 사상사』는 장대한 중국 사상의 역사를 밀도 있게 압축한 최고의 중국 사상사 개설서로 일본에서 명성이 높은 책이다. 사상이 어떻게 역사를 만들어내고 그 역사가 또 어떻게 사상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주는 이 책은 한 분야의 대가만이 획득할 수 있는 거시적 관점으로 장대한 중국 사상의 역사에 면면히 이어지는 흐름을 일반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중국 고대 신화』 『상고로부터 한대에 이르기까지 성명관의 전개』 『양 무제-불교 왕조의 비극』 『무의 사상 노장 사상의 계보』 『신 없는 시대』 『노장과 불교』 『육조 사대부의 정신』 『생과 사의 사상』 『무위자연의 사상』 등이 있고 『장자』 『묵자』 『세설신어』 『정토 삼부경』 등을 번역했다. 명강연가이자 명문장가로 후학들의 존경을 받았던 모리 미키사부로는 1973년 정년퇴임 후에 오사카대학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강연과 연구 집필에 힘쓰다가 1986년 별세했다.
번역 조병한
역자 조병한
194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동양사학과에서 청대와 중국 근대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의대, 계명대를 거쳐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2012년 정년퇴임했고, 동양사학회 회장(2003~2005), 역사학회 회장(2007~2008)을 역임했다. 현재 서강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로서 저술 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학술논문 약 60편이 있고, 『중국통사』 『5.4운동-근대 중국의 지식혁명』 등을 번역했다.
목차
- 머리말
제1장 중국 사상의 일반적 성격
1. 종교적 색채의 결여
2. 서양적 의미의 철학 부재
3. 중국 사상을 정치적으로 만든 요인
제2장 하늘 사상과 범신론적 세계관
1. 하늘 숭배의 기원
2. 하늘의 비인격화와 범신론적, 연속적 세계관
3. 천성과 천명
제3장 전국 시대의 제자백가
1. 제자백가가 발생한 사회적 배경
2. 공자
3. 맹자
4. 순자
5. 한비자
6. 묵자
7. 노자
8. 장자
9. 열자
10. 명가─논리와 궤변
11. 음양오행설
12. 잡가─전국 시대 말기 제자백가의 교류
제4장 진의 천하 통일과 법가 사상의 승리
제5장 진·한 대제국의 성립과 사상계의 동향
1. 한 초기의 사상계
2. 유교의 승리와 경학의 성립
3. 한대 사상계의 흐름
제6장 육조 시대의 사상
1. 육조 문화의 대세
2. 삼국 위나라 시대와 노장 사상의 전성
3. 서진의 천하 통일과 향락주의 풍조
4. 동진 왕조와 불교의 수용
5. 불교의 중국식 이해
6. 도교의 성립
제7장 수·당 시대의 사상
1. 당의 전반기─안녹산의 반란까지
2. 당의 후반기
제8장 송대의 사상
1. 송대의 사회와 신유학의 탄생
2. 북송에서 재생한 유학
3. 남송의 주자학
4. 주자학의 대립자 육상산
5. 송대의 불교와 도교
제9장 원·명의 사상
1. 왕양명
2. 양명학의 좌파
3. 이탁오─양명학의 자멸
제10장 청조의 사상
1. 청조 초기의 사상계
2. 청조 중기의 사상계
3. 청조 말기의 사상계
역주
역자 후기
책 속으로
사자死者 숭배란 것은 고대 이집트 등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듯이 죽은 자의 내세에 강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며 내세 신앙의 성격이 짙다. 하지만 조상 숭배는 이것과는 거꾸로 오히려 현세에의 관심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결국 조상의 영혼이 현세의 자손을 지켜준다는 현세적 관심이 중심이 되어 있어, 조상의 영혼이 실재하는가 혹은 사후 세계가 어떠한가라는 긴요한 문제에는 극히 냉담한 것이 보통이다. 한마디로 하면 사자 숭배가 내세적인 데 반해 조상 숭배는 현세적이다. 조상 숭배는 현세의 자손을 결집시킨다는 기능을 갖는 데 반해 사자 숭배에는 그런 것이 없다. 이 때문에 사자 숭배가 성했던 이집트에서는 씨족 제도가 일찍이 해체되어버렸지만 조상 숭배가 강한 중국에서는 씨족제가 길이 유지되었다.
무릇 사랑의 범위가 확대된다는 것은 유가가 말하듯이 직선적으로 나아가는 것일까. 가족애를 그대로 확대하면 애국심이 될까. 전쟁 장면을 생각해 보자. 그 경우 애국심은 가족애의 부정 없이는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애국심을 확대하면 그대로 인류애로 될 수 있을까. 여기서도 전쟁 장면을 생각해보면 좋다. 인류애는 애국심의 극복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랑의 확대는 직선적으로 진행하는 것은 아니고 늘 자기부정 위에 성립한다는, 말하자면 변증법적 전개에 의할 수밖에는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되돌아보면 제자백가 시대란 것은 중국 사상사에서 극히 특이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과연 진·한 이후 사상계에서는 전국 시대의 사상계를 넘어서는 깊이와 정밀함을 보여주는 점이 있다 해도, 전체로서는 유교 일색으로 온통 도배되어 제자백가 사상의 다채로운 취향을 나타낼 수 없었다. 겸애를 설파하는 묵가, 논리와 궤변을 종횡으로 휘두른 명가, 정면에서 대담하게 도덕을 부정하는 한비자 등의 전통은 전국 시대를 최후로 영구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만일 제자백가의 전통이 그대로 유지, 발전되었더라면 중국 사상사는 지금 보는 것보다도 훨씬 변화가 풍부한 것이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중국의 불행은 유교라는 하나의 교리가 2천 년이란 장기간에 걸쳐 사상계를 지배했다는 사실에 있다. 물론 유교는 법가 따위와는 달리 분서갱유라는 강경 수단을 취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왕조라는 강대한 권력이 있었다. 더욱이 지식인이 전부 관리 내지 관리 지향형의 인간이었다는 중국 특유의 사정은 이 관제 사상에 대한 저항을 극히 미약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사상은 무엇보다도 자유를 요구한다. 강력한 왕조 지배 아래에서는 진실로 생명 있는 사상은 발생하지 않는다. 전국 시대나 육조 시대는 분열의 시기이며, 정치적으로는 암흑의 시대이다. 그럼에도 풍부하고 다채로운 사상이 발생한 것은 다름 아니라 거기에 무질서에 의한 자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경서의 권위가 확립됨과 함께 경서를 연구하고 해석하는 ‘경학經學’이 발생했다. 이는 기독교의 성서학 내지 신학에 해당하는 것으로 한대 이후의 유학은 경학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것이다. 이를테면 송宋의 주자학朱子學이나 명明의 양명학陽明學 등은 노장과 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유학이기는 하지만 최후의 거점은 역시 경서였으며, 다만 그 해석이 종래와 달랐다는 데 머무른다. 따라서 주자학이나 양명학은 경학 내부에서 발생한 시대적인 변천이며, 경학의 외부로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전체로서 위 왕조의 정시 시대는 노장풍의 청담가들에게는 오히려 수난과 시련의 시기였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노장 사상의 실천이라는 면에서도 적지 않게 불철저한 점을 남기고 있다. 이를 ‘정시의 풍조’로 이상화하는 것은 다음 서진西晋의 ‘원강元康의 풍조’가 방종의 극한에 이른 결과 마침내 망국을 불러왔다는 반성에서 나온 것이다.
그 때문에 황하 유역인 중원中原에 사는 중국인은 귀족·호족은 말할 나위 없고 귀천노소를 가릴 것 없이 서로 손잡고 강남江南 지역으로 피난했다. 바로 민족 대이동이다. 뭐라 해도 중원 땅은 한漢 민족의 수천 년에 걸친 고향이었고, 강남은 당시 아직 후진 지역이었으므로 사람들은 애끊는 마음을 금할 수 없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이주지의 생활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새로운 왕조를 세운 동진 원제조차 의복과 음식이 부족해 돼지 한 마리를 얻으면 진선珍膳이라 하고, 그 목살은 금련禁?이라 부르며 여러 신하들에게는 젓가락을 대지 못하게 했다. 이 생활을 견디기 어려웠던 귀족 중에는 거기장군車騎將軍 조적祖?처럼 강도짓을 하는 자까지 나타났다.
도교는 주로 무지한 민중에 의해 신봉되었으며, 일반 지식인은 이에 강한 경멸감을 품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리고 도교와 도가, 즉 노장 사상을 구별하는 것도 상식이 되어 있었다고 해도 좋다. 다만 도교는 중국의 오랜 전통 위에 서 있는 민간신앙이나 무술巫術을 배경으로 하는 것인 만큼 그 사회적 세력은 매우 강대한 면이 있었다. 그것은 불교의 유력한 경쟁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상호 영향을 교환하게 되고, 근세 중국의 민중사회에서 볼 수 있는 도교·불교 혼합 상태를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당대 전반기에는 대부분의 종파 불교가 다 나왔는데, 이들 중 정토교淨土敎와 선종禪宗에 관해서는 특기할 필요가 있다. 그 까닭은 이 두 종파 불교는 모든 중국 불교 중에서도 가장 중국적인 특색이 있고 중국인의 체질에 맞는 불교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다른 종파 불교의 다수가 당 이후 잇달아 그 자취를 감춘 데 반해 홀로 정토교와 선종만이 살아남아 송 이후 1천 년 동안 생명을 유지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사대부가 귀족적 성격을 청산하고 일대에 한정된 관리가 되었다. 더욱이 내외 모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고 그것이 국가의 흥망에 연결되는 성질의 것이었으므로, 이것이 사대부의 위기감을 자아내게 된다. 영원의 문제보다도 현실적인 문제의 해결 쪽이 한층 중요하다. 이 같은 의식이 송대 사대부를 종교적 인간으로부터 정치적 인간으로 전환시키게 되었다.
송학의 목적은 불교나 노장의 철학을 극복해 유교의 철학을 건설하는 데 있었다. 그 때문에 유교 의 경전을 근거로 해서 독자적 이론을 구성하는 데 노력했지만, 이미 노장이나 불교 사상이 지식인의 교양 속에 침투해 있었으므로 무의식적으로 이를 섭취하는 결과가 되었다. 특히 주돈이로부터 주자에 이르기까지 송학자는 당시의 풍조에 따라 선승禪僧과의 교유가 드물지 않았기 때문에 더 한층 그 영향을 받는 일이 많았다. 그 때문에 “송학의 문도는 불교를 바깥문에서 추방하면서 뒷문으로 고스란히 끌어들였다”는 비평도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불교나 노장이 출세간적인 경향을 강하게 갖는 데 반해 송학은 그 우주나 인생론을 도덕이나 정치의 세계에 연속시키려고 노력한 것이어서, 거기에 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주자학 속에도 약점과 결함이 잠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주희 당시에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는데 시대가 경과함에 따라 팽창해 현저히 드러나게 되었다.
첫째는 주자학이 너무나도 훌륭하게 완결성을 갖춘 철학이기 때문에 이미 이 이상의 발전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원·명·청 7백 년을 통해 주자학에는 본질적인 발전이 없었고 주자학의 신봉자는 전부 아류의 썩은 유자儒子들에 지나지 않는 참담한 지경이었다. 오히려 독창적인 사상은 오로지 주자학의 비판자 속에서 나온 게 실상이었다.
주자학을 엄하게 비판한 청조淸朝의 대진戴震은 “사람이 법法을 위반해서 죽는 경우에는 아직 이를 슬퍼하는 자가 있지만 이理에 위반해 죽는 경우에는 이를 슬퍼하는 자는 누구 한 사람도 없다”고 했다. 이理는 법보다도 냉혹, 무자비하다. 만일 인정의 자연을 존중하는 것이 근대정신의 표현이라고 하면 근대의 도래와 함께 자취를 감추는 것이 주자학의 운명이었다고 할 것이다.
주희는 50년의 관료 경력을 지녔다 해도 실무를 수반하는 관직에 오른 것은 10년을 넘지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왕양명은 행정과 군사의 격무 중에 생애를 마쳤다. 주희가 보다 학구적이고 양명이 간이하고 즉각적인 행동의 학문을 제창한 것은 한편으로는 개인적인 환경의 다름에 기인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양명의 반反주지주의, 무엇보다도 감정과 의지를 중시하는 입장이 명대 사회의 풍조에 근거한 것임은 이미 앞에서 서술한 대로이다.
물론 이탁오를 이 같은 노장적 자연주의로 이끈 것은 노장 사상의 ‘영향’이란 것이 아니라, 명 말기에 넘쳐흘렀던 향락주의적 풍조와 퇴폐의 현실이었다. 명 말기의 사회 자체가 이탁오라는 일개 사상가를 빌려 자기를 표현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퇴폐는 그 다다른 곳에서 파멸로 끝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탁오의 자살은 그대로 명대 사회의 자멸을 상징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양명학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진보다도 약 백 년 전에 나타난 일본의 이토 진사이(伊藤仁齋, 1627~1705)는 겐로쿠(元祿) 전후의 시기에 『어맹자의語孟字義』 등 일련의 책을 저술했는데, 그 사상은 완전히라 해도 좋을 만큼 대진의 학설에 가깝고, 더욱이 그 논지는 대진보다도 한층 명쾌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진의 설이 거의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데 비해 진사이의 학문은 그 영향하에 있던 소라이(?徠)학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하는 유행이 되었던 것이다.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가 “인욕도 또한 천리가 아닌가”라고 한 것도 다름 아닌 그 표현이었다. 이것은 청조와 에도 시대 양
기본정보
ISBN | 9791187295228 |
---|---|
발행(출시)일자 | 2018년 09월 30일 |
쪽수 | 472쪽 |
크기 |
128 * 191
* 24
mm
/ 438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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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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