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없습니다
도서+교보Only(교보배송)을 함께 15,000원 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15,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20,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15,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1Box 기준 : 도서 10권
해외주문/바로드림/제휴사주문/업체배송건의 경우 1+1 증정상품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패키지
북카드
키워드 Pick
키워드 Pick 안내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다른 연관 도서를 다양하게 찾아 볼 수 있는 서비스로, 클릭 시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한 다양한 책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키워드는 최근 많이 찾는 순으로 정렬됩니다.
작가정보
저자 피터 럭크만 박사(Dr. Peter S. Ruckman)는 현재 미국 플로리다 주 펜사콜라에 있는 성경침례교회(Bible Baptist Church)의 목사이며, 펜사콜라 성경 신학원(Pensacola Bible Institute)의 설립자이자 원장으로서 40년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럭크만 박사는 밥 존스 대학교(Bob Jones University)에서 Ph.D.를 받았지만, 그 학교의 신학 노선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저자는 존 칼빈 이래로 500여 명 이상의 유명하다는 성경 주석가들이 주석서에 범해 놓은 주요 오류들을 일일이 지적하여 바로잡았으며, 창세기, 출애굽기, 욥기, 시편, 잠언, 소선지서, 마태복음, 사도행전, 히브리서, 요한계시록 등의 주석서를 저술함으로써 올바른 성경 진리를 밝히고 있다.
또한 럭크만 박사는 [킹제임스성경]이 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권위 있게 설명하고 증명할 수 있는 독보적인 학자이다.
특히 그의 저서 [필사본 증거], [알렉산드리아의 이단들], [신약 교회사],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 등에서 그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다. 그는 주석서와 성경 교리에 관한 150여 권이 넘는 책의 저자이며, 세계 전역에 있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존경받는 스승이다.
목차
- 들어가는 말 / 5
여호수아 1장 / 21
여호수아 2장 / 62
여호수아 3장 / 83
여호수아 4장 / 102
여호수아 5장 / 124
여호수아 6장 / 145
여호수아 7장 / 181
여호수아 8장 / 211
여호수아 9장 / 252
여호수아 10장 / 291
여호수아 11장 / 342
여호수아 12장 / 372
여호수아 13장 / 381
여호수아 14장 / 401
여호수아 15장 / 424
여호수아 16장 / 443
여호수아 17장 / 448
여호수아 18장 / 462
여호수아 19장 / 471
여호수아 20장 / 492
여호수아 21장 / 504
여호수아 22장 / 514
여호수아 23장 / 533
여호수아 24장 / 552
그 림 / 584
책 속으로
1:6 강건하고 담대하라. 이는 내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네 조상들에게 약속한 그 땅을, 네가 그들에게 유업으로 나눠 줄 것임이라.
7 너는 오직 강건하고 아주 담대하여 내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모든 율법대로 지켜 행하고 그로부터 오른편이나 왼편으로 돌이키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번영하리라.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주야로 그 안에 있는 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모든 것대로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너의 길을 번영하게 만들 것이고 네가 좋은 성공을 이루리라.
9 내가 네게 명령하지 아니하였느냐? 강건하고 담대하라. 무서워 말고 낙심치 말라. 이는 주 네 하나님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와 함께함이라.” 하시니라.
『강건하고 담대하라』(6절). 이 명령이 여호수아 1장에서 네 번이나 나온다(6,7,9,18절). 신명기에서 모세도 여호수아에게 똑같은 명령을 세 번 반복해서 줬다(신 31:6,7,23). 이 명령은 여호수아 10:25, 역대기상 22:13; 28:20, 역대기하 32:7에도 나온다. 이 명령은 옳은 일을 행할 것이냐, 그릇된 일을 행할 것이냐,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존중할 것이냐, 존중하지 않을 것이냐, 주님께 순종할 것이냐, 순종하지 않을 것이냐와 같은 선택의 상황에서 주어진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하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옳다고 알고 있는 바로 그것을 행해야 한다. 용기란 앞으로 일어날 결과를 알지만 그럼에도 옳은 일을 행하는 것이다. 배짱이 있어야 그렇게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말한 구절 하나가 있다. 그것은 일단의 구원받지 못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인들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그리스도인을 위한 어떤 훌륭한 조언을 담고 있다. 『오 너희 필리스티아인들아, 강하고 사나이답게 행동하라. 그래야 너희는 히브리인들이 너희에게 종 되었던 것같이 그들에게 종이 되지 아니하리라. 사나이답게 행동하여 싸우라』(삼상 4:9).
유대인들은 언약궤를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전쟁에 가지고 나왔었다. 필리스티아인들은 모세와 여호수아가 이 언약궤를 가지고 다니던 시절에 이스라엘의 적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항복하는 대신, “남자답게 행동하고” 어떻게든 싸우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전쟁은 결국 필리스티아인들의 승리로 끝났는데, 이는 이스라엘인들이 언약궤를 우상처럼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리스티아인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쨌든 필리스티아인들은 패배의 기운이 짙었음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고 맞서 싸운 것이다.
출판사 서평
자, 우리가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들의 조언이라는 이유로 이 조언을 무시해 버리기 전에,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신약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도 바울이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보도록 하자. 『깨어 있으라. 믿음 안에 굳게 서라. 남자답게 처신하라. 강건하라』(고전 16:13). 용기에 관해서라면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 “보병들”도 그리스도인에게 한 수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다(고전 16:13의 주석을 보라).
단순한 용기(courage)가 아니라 선한 용기, 곧 “담대함”(good courage)이다. 그리스도의 군사는 비장한 결의 이상의 것을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의 군사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고 기쁨으로 자기 자신을 드려 싸워야 하는 것이다. (역대기상 22:13; 28:20에서 다윗이 솔로몬에게 한 명령을 보라.) 그리스도인은 그냥 “강건”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고전 16:13), 『주 안에서와 그의 힘의 능력 안에서』 강건해야 하고(엡 6:10),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건해야 한다(딤후 2:1).
자, 여기 6,7절에서 여호수아는 두 가지 이유로 『강건하고 담대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하나는 실제적인 이유이고, 다른 하나는 영적인 이유이다. 첫째는 실제적인 지파들에게 실제적인 유업으로 실제적인 땅을 나누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영적인 법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전자를 성취하려면 후자를 반드시 먼저 성취해야 한다. 만일 누군가 주님께로부터 유업을 얻고자 한다면, 『성령 안에서 행하라.』는 명령을 지켜야 한다(갈 5:16-25). 또 성령 안에서 행하려면 하나님의 말씀, 곧 영과 생명인 그 말씀들에 집중하고(요 6:63) 또 기록된 말씀들을 실행해야만 하는 것이다(약 1:22). 성령님께서는 그분의 말씀들, 즉 진리를 통하여 성도를 인도하시고 안내하신다(요 16:13; 17:17). 주님의 책인 성경에 기록된 성도들을 위한 말씀들을 지키고 행하는 데 신실하지 않다면, 그 성도는 주님께로부터 『잘하였도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라는 칭찬을 들을 수 없을 것이다(마 25:21,23).
자, 이제 성경의 위대한 구절들 중 하나를 읽어 보도록 하자.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주야로 그 안에 있는 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모든 것대로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너의 길을 번영하게 만들 것이고 네가 좋은 성공을 이루리라』(8절).
이 구절에는 두 가지 위대한 진리가 있다. 첫째, 성도가 구원받은 것은 행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무언가를 행하기를 바라신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행위로 구원이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받은 후 무언가를 행하기를 바라신다. 사도 바울도 우리가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며, 구원받는 믿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값없는 선물이라고 말한 직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들을 위하여 창조되었느니라. 이 일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시어 우리로 그것들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신 것이라』(엡 2:10).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을 때, 그분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들을 행할 수 있는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셨다(고후 5:17). 『허물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엡 2:1) 우리는, 그런 잃어버린 죄인의 상태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어떤 선한 일도 행할 수 없었다.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없도다, 한 사람도 없도다』(롬 3:12).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그 사람 안에 성령님께서 새로운 출생을 통해 만드신 새 사람을 소유하게 된다. 그 새 사람은 선한 행위들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새 사람이 바로 그 목적을 위해 창조되고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진리는, 이 구절이 바로 하나님께서 한 “책”을 통해 한 사람을 온전히 인도하는 첫 번째 경우라는 것이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는 모두 하나님께 직접 계시와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시대에 이르면서 율법이라고도 불리고 모세오경이라고도 불리는, 성경의 첫 다섯 책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가 모두 완성된 것이다(신 31:26). 여호수아는 “성경”의 권위 아래서 백성의 지도자가 된 첫 번째 인물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왕들이 성경의 필사본을 만들어 매일 읽어야 한다고 명령했다(신 17:18,19). 그러나 여호수아 1장에는 아직 왕이 없다. 성경에 복종해야 한다는 첫 번째 명령을 받은 사람은 여호수아인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위대한 교훈이다.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성경을 길잡이로 삼아야 한다. 베드로는 성경을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보다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라고 칭했다(벧후 1:16-20). 옛말에 “네 작은 검은 책에 그 말을 적어라.”는 것이 있다. 이 표현은 지난 400년간 킹제임스성경이 검은 표지로 출판된 것에 기인한다. 검은색은 죽음을 상징한다. 성경은 우리가 죄와 자아에게는 죽은 자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는 산 자』가 되게 하려고 주신 책이다(롬 6:11). 성령님께서 성도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실 때에(요 16:13), 그분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그 일을 하신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이다(요 17:17). 창세기 41:40에서 (문맥상 아버지 하나님을 예표하는) 파라오는 (아들 하나님을 예표하는) 요셉에게 『나의 모든 백성이 네 말에 따라 다스림을 받으리니』라고 말한다(pp.38-43).
[서문]
여호수아서는 성경의 여섯 번째 책이다. 유대인들의 구약성경 분류법에 따르면(눅 24:44), 여호수아서는 “선지서”에 포함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구약성경을 유대인들과 다르게 분류한다. 또 성경의 첫 다섯 권의 책을 “모세오경”이라고 부르는데, 간혹 어떤 이들은 여호수아서를 이 다섯에 더하여 “육경” 또는 “모세육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여호수아의 사역을 모세의 사역의 연장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 여호수아서를 역사서로 분류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역사서는 여호수아서에서 에스더서까지이다.
여호수아서는 총 24장, 658절, (영어 [킹제임스성경]의 경우) 18,854개의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어셔 주교는 여호수아서에 기록된 사건들의 연대를 B.C. 1451-1427년으로 잡고 있으나, 필자는 B.C. 1510-1486년으로 본다.
여호수아서의 저자는 물론 여호수아임이 분명하다. 일부 내용은 재판관들의 통치기에 기록되었을 수 있고, 어쩌면 사무엘이 일부를 기록했을 가능성도 있다. 여호수아는 여호수아서뿐 아니라 신명기의 일부도 기록했으며, 창세기 일부를 기록했을 가능성도 있다(수 24:26, cf. 창 14:14).
여호수아의 이름은 출애굽기 17:9에 처음 나온다. 처음부터 여호수아는 전투에 임한 군인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여호수아가 항상 군사령관으로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십계명을 받은 후 시내 산에서 내려오면서 모세와 여호수아는 금송아지 주변에서 벌어지는 “록 콘서트”의 소리를 들었다. 그때 여호수아는 그 소리를 듣고 『진영에 전쟁의 소리가 나나이다.』(출 32:17)라고 했었다. 물론 착각이었지만, 여기서 우리는 여호수아의 평소 마음가짐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에프라임 지파 출신이며, 카나안을 정탐하기 위해 선발된 열두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중 여호수아와 칼렙 두 사람만이 이스라엘 민족이 그 땅의 거인들을 『능히 이길 수』 있다는 『복음』을 전파했다(히 4:2, cf. 민 13:30; 14:6-9). 여호수아의 전쟁 철학은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전해 온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곧 “주를 찬양하라! 그리고 탄약을 나르라!”이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라고 명령하신 일을 하고 있는 한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여호수아의 생애는 이집트의 노예로 시작하여 약속의 땅을 정복하는 군사령관으로 끝맺음한다. 여호수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의 위대한 그림인 것이다(빌 2:5-11).
여호수아서는 후기로서의 마지막 두 장을 제외하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12장은 카나안 정복을 다룬다. 13-21장은 카나안 땅의 분배를 다룬다. 22장은 요단 강 건너편 지파들인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자기들의 유업으로 돌아가는 내용을 다룬다. 후기인 23,24장은 여호수아의 마지막 날들을 다룬다.
여호수아서의 교리적 중요성은 여호수아가 재림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는 점에 있다.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예수”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이름이다. 히브리서 4:8과 사도행전 7:45을 보라. 『만일 예수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하나님께서 그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히 4:8). 이 구절은 역사적으로 40년의 광야 생활 후에 이스라엘을 카나안 땅으로 데리고 들어간 여호수아에 대한 참조 구절이다(히 4:7, 시 95:7-11, 민 14:28-35).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민족을 카나안 땅으로 데리고 갈 수는 있었으나,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지는 못했다. 여호수아가 시작한 전쟁은 여호수아가 죽은 후 재판관기에서도 계속된다(판 1,2장).
그러나 그 문맥에서 히브리서 4:8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보라. 구약의 여호수아가 할 수 없었던 것을 신약의 “여호수아”께서는 이뤄 내셨던 것이다(히 4:9-16). 이 일은 영적으로는 교회 시대에 성취되었고, 실제적으로는 미래의 천년왕국에서 성취될 것이다. 『우리 조상이 또한 그것을 물려받아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의 면전에서 쫓아내신 이방인들의 땅으로 예수와 함께 가지고 와서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행 7:45).
이 구절은 역사적으로는 여호수아서에서 이뤄졌고, 예언적으로는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성취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적그리스도의 수하에 있는 UN의 군대를 전멸시키실 것인데, 성령님께서는 이 사건을 여호수아 10장에서의 전쟁으로 보여 주신 것이다(? 14:3, cf. 수 10:14).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여호수아가 할 수 없었던 것을 하실 것이며, 모든 전쟁을 끝내실 것이다(사 2:4). 이스라엘 민족은 마침내 하나님께서 창세기 15:18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그 땅에 있게 될 것이다(겔 48장). 그러면 어떠한 민족도 창조주이신 왕께 대항할 수 없게 된다(? 14:9,16-19).
만약 현대의 번역본들에서 히브리서 4:8과 사도행전 7:45을 찾아본다면, “예수”라는 이름이 “여호수아”로 바뀌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권위를 인정받은 [킹제임스성경] 속에서 성령님께서 주신 계시를 파괴하려는 마귀의 교묘한 시도이다. 알다시피, 현대의 번역본들이 히브리서 4:8과 사도행전 7:45에서 “여호수아”로 번역한 단어는 헬라어 단어 “예수스”(?ησο??)이다. 이 단어는 모든 영어 성경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예수”로 번역된 바로 그 단어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4:8과 사도행전 7:45에서 “예수”를 “여호수아”로 바꾸는 것은 여호수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연결하는 고리를 끊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구절의 “예수”가 역사적으로는 “여호수아”라 할지라도, 성경의 저자께서 주신 계시를 파괴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존중하신 영어 본문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사도행전 7:45을 예로 든다면, 이 구절은 여호수아에 대한 역사적인 언급일 뿐만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 “문자적으로 적용된다.” 알다시피, 구약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 이전의 모습, 즉 주의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호 12:3,4). 여호수아 5:13-15에서 『주의 군대 대장』으로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신 분은 바로 주의 천사이셨다.
형제들이여, 이처럼 “예수”를 “여호수아”로 고치는 이런 변개는 무해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즉 킹제임스성경에 어떤 변화를 가한다는 것은 성령님께서 주신 계시를 상실하게 되는 결과만을 낳을 뿐이다. 따라서 필자는 킹제임스성경의 본문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고, 있는 그대로 그 뜻을 밝힐 것이고, 있는 그대로 가르칠 것이다. 그러나 결코 킹제임스성경의 본문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여호수아서의 핵심 주제는 “전쟁”이다. 성경의 모든 구절은 세 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 역사적 적용, 교리적 적용, 영적 적용이 그것이다. 구약에서 여호수아서의 역사적 적용은 하나님께서 “실제적이고,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민족”에게 “실제적이고,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땅”을 약속으로 주셨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호수아의 전쟁도 물리적이다. 물리적인 칼들, 창들, 투구들, 방패들, 활들, 화살들을 가지고 싸웠던 것이다.
여호수아가 수행한 물리적인 전쟁에 대해 세상 사람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접근한다. 하나는 자유주의자들, 회의론자들, 무신론자들, 불가지론자들의 접근 방식으로, 여호수아가 수행한 전쟁이 “부당하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여호수아 당시의 유대인들은 카나안 땅으로 쳐들어가서 모든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을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신 20:16-18). “대량 학살”을 명령받은 것이다. 자, 분명 “구약의 하나님”은 결단코 신약의 “사랑의 하나님”(요일 4:8)이실 수가 없다. 어쨌든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 민족들 전체를 학살하는 데 찬성하실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지 않은가?!
구약의 하나님은 원시적이고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관념은 두 가지 중요한 사항을 무시한 것이다. 첫째, 하나님의 “고유의 속성” 자체를 무시한 것이다. 즉 성경의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도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영원히 참으시지는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비와 오래 참으심 속에서 인간이 돌이키기를 바라시면서 오랜 기간을 기다려 주신다(창 6:3).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께서 도끼로 내려치실 때는, 죄인들은 자기 자신 외에는 누구도 비난할 수 없게 된다.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연장해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멸절시키라고 말씀하신 힛인들, 아모리인들, 카나안인들, 프리스인들, 히위인들, 기르가스인들, 여부스인들이 바로 그 예이다. 주님께서는 그 민족들에게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을 400년이나 허락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돌이켜서 스스로를 바로잡지 않았다(창 15:13-16). 그 후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택함받은 백성을 그들에게 보내시어 그들을 멸절하게 하신 것이다. 『죄악』이 마침내 『다 차』 버린 일곱 족속을 멸절하라고 하신 것이다. 카나안 땅의 족속들은 단지 우상 숭배만을 행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죄인이 행할 수 있는 가장 부패한 행위들을 행하고 있었다(레 18:3). 그들은 근친상간, 자녀를 희생제물로 바치는 것, 성도착, 수간 등을 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죄들을 미국 정부는 현재 공교육 체계 속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무해한 것처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런 종류의 가증한 짓들이 그 국가는 물론 그 땅까지도 더럽힌다고 말씀하셨다(레 18:24,25). 미국이 지난 30년간 행한 이런 가증한 짓들을 행하는 국가는 어느 국가든지 동일한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그 땅도 스스로 그 거주자들을 토해 내느니라』(레 18:25). 유대인들이 레위기 18장에 나오는 가증한 짓들을 행하기 시작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카나안 땅의 거주민들을 쫓아내셨듯이 유대인들도 동일하게 조치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레 18:27,28 cf. 왕하 17:20-23). 유대인들이 그 땅의 이전 거주자들과는 달리 완전히 멸절되는 것에서 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 덕분이었다(롬 11:28).
...(중략)...
여호수아서의 본문을 다루기 전에,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수아서의 위대한 교리적 교훈에 주목해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을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들어간 것은 모세가 아니라 여호수아였다는 것이다. 입법자는 유대인들을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지 못했다. 입법자 자신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해 주시는 분은 바로 『예수』이시다(행 7:45).
신약의 그리스도인을 위한 교훈은 분명하다. 만약 혹자가 “약속의 땅”(하늘 또는 새 예루살렘, 히 12:22)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모세(율법)는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데는 신약의 “여호수아,” 곧 예수님이 필요한 것이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받았지만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것이라』(요 1:17). 『너희가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게 되지 못하였던 그 모든 일에 있어서도 믿는 자는 모두 그분을 통하여 의롭게 된다는 것이니라』(행 13:39).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위대한 성경적 진리들을 가지고, 전쟁사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들 중의 하나였던 여호수아의 책을 깊이 탐구해 보도록 하자. 여호수아는 자신이 직접 진두지휘한 전투에서는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세 명의 사령관 중 한 사람이다. 나머지 둘은 다윗과 올리버 크롬웰이다.
피터 럭크만의 주석서 시리즈의 모든 주석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킹제임스성경의 본문을 있는 그대로 믿을 것이다. 학계나 “과학”이나 교계의 권위에 맞추어 본문의 한 단어라도 바꾸는 짓은 결단코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킹제임스성경을 우리의 총사령관께서 우리에게 주신 위대한 『성령의 칼』(엡 6:17)로 여긴다. 우리의 총사령관은 신약의 “여호수아,”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히 2:10). 우리는 우리가 성경을 믿고 따른다면 성경이 매 순간 그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진리를 확고부동하게 믿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여호수아, 주 예수 그리스도 만세!
권위를 인정받은 [킹제임스성경] 만세!
기본정보
ISBN | 9791187227519 |
---|---|
발행(출시)일자 | 2017년 08월 31일 |
쪽수 | 588쪽 |
크기 |
155 * 223
* 30
mm
/ 832 g
|
총권수 | 1권 |
Klover
e교환권은 적립 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리워드는 작성 후 다음 날 제공되며, 발송 전 작성 시 발송 완료 후 익일 제공됩니다.
리워드는 리뷰 종류별로 구매한 아이디당 한 상품에 최초 1회 작성 건들에 대해서만 제공됩니다.
판매가 1,000원 미만 도서의 경우 리워드 지급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일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불편을 끼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래에 해당하는 Klover 리뷰는 별도의 통보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도서나 타인에 대해 근거 없이 비방을 하거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리뷰
- 도서와 무관한 내용의 리뷰
- 인신공격이나 욕설, 비속어, 혐오발언이 개재된 리뷰
- 의성어나 의태어 등 내용의 의미가 없는 리뷰
리뷰는 1인이 중복으로 작성하실 수는 있지만, 평점계산은 가장 최근에 남긴 1건의 리뷰만 반영됩니다.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200원 적립
문장수집
e교환권은 적립 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리워드는 작성 후 다음 날 제공되며, 발송 전 작성 시 발송 완료 후 익일 제공됩니다.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주문취소/반품/절판/품절 시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