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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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는 나이 어린 왕자를 대신해 이집트를 통치하며 국가의 부를 증진시키고 왕자가 훌륭한 왕이 될 수 있도록 최고의 교육을 시켰지만 세상을 떠난 뒤, 신전 벽에 새겨져 있던 그녀의 이름은 칼로 도려내졌다. 몽골제국을 이룬 칭기즈칸은 아들을 후계자로 삼는 다른 왕들과 달리, 딸들을 정복한 땅의 왕들과 결혼시켜 딸들이 그 땅을 다스리게끔 했고 사위들이 딸들의 통치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정복 전쟁에 늘 데리고 다녔다. 하지만 당시 역사가들이 양피지에 여자에 대한 기록이 적혀 있으면 모조리 잘라냈고, 그 결과 칭기즈칸의 딸들에 대한 기록 대부분이 사라지고 말았다.
여성들이 역사책에 이름을 올리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된 것은 ‘여성이 비범한 일을 하면 올바르지 않다’, ‘여자가 역사에 끼어들면 나쁜 일이 생긴다’는 편견과 혐오였다. 시대를 막론하고 아무리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인물이라고 해도, 여성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서는 한 번이라도 살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 책은 이처럼 우리가 쉽게 만나기 어려웠던 여성 인물들을 다루면서 그녀들이 세계사의 주요 사건들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함께 살펴보며 세계사를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작가정보
저자 케르스틴 뤼커
철학, 슬라브학 및 음악학을 공부했다. 종교철학과 세계 종교, 유럽 및 러시아 역사가 그녀의 주요 연구 주제이다. 번역가이자 작가,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글) 우테 댄셸
저자 우테 댄셸
독일 문학과 역사를 공부했다. 그녀는 성, 문화와 과학의 역사를 중점적으로 연구한다. 프리랜서 편집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책을 편집했다. 2017년부터는 교사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역자 장혜경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독일 학술교류처 장학생으로 독일 하노버에서 공부했다.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감정을 읽는 시간》, 《나는 이제 참지 않고 말하기로 했다》, 《나무 수업》,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등 다수의 문학서와 인문교양서를 우리말로 옮겼다.
목차
- 시작: 빠진 퍼즐 채우기
1 태초에 차별이 있었다
남자는 사냥, 여자는 수다? / 베일이 알려주는 것 / 여왕의 이름을 칼로 도려내다 / 차별의 탄생 / 딸은 길하지 않다 / 유일신은 어떻게 남자가 되었나 / 붓다가 깨닫는 동안 그의 아내는 / 그리스는 남자만 사랑해
2 여성은 언제나 거기에 있었다
최초의 세계 정복자 / 로마다운 여자가 돼라 / 열녀전의 시대 / 예수에겐 여제자가 없었을까 / 기독교 왕국의 숨은 공로자들 / 비잔틴제국의 찬란한 황후 / 아시아의 여제들 / 왜곡된 선지자의 뜻
3 여자라서 못할 일은 없다
성상을 지켜낸 두 명의 황후 / 키예프 공국의 여대공 / 결혼으로 이룬 왕국 / 여왕께 많은 날을 허락하소서 / 궁정 여인, 소설을 발명하다 / 도시의 삶 / 안나 콤네나가 기록한 십자군 전쟁 / 중세 궁정의 여인들 / 돈이 모이면 분열이 시작된다 / 몽골제국의 여전사 / 그녀들은 왜 화형을 당했나
4 남자도 여자도, 다만 인간일 뿐이다
나, 크리스틴은 / 오스만제국의 등장 / 인간의 존재를 묻다 / 그리고 새로운 대륙을 유린하다 / 문을 걸어 잠근 제국의 상징 / 교회에 예속되지 않는 삶
5 자유와 권리를 찾아서
여왕의 시대 / 바다를 타고 온 변화 / 하렘의 벽을 넘어서 / 나는 여성이다, 고로 존재한다 / 왕과 권리를 나누다 / 이성의 빛은 여자를 비추지 않는다 / 계몽 군주들 / 차를 버리고 독립을 얻다 / 올랭프 드 구주의 여성 권리 선언 / 되돌아간 시간
6 누구도 누구를 억압할 수 없다
기계의 발전과 출산의 문제 / 다윈도 마르크스도 깨닫지 못한 것 / 기회를 놓치다 / 노예에게 해방을, 여성에게 해방을
7 정해진 길을 가지 않을 권리
제국주의가 시작되다 / 넬리 블라이의 세계일주 / 저항의 몸짓 / 멈추지 않는 약탈과 경쟁 / 여성에게 참정권을!
8 평화와 평등을 꿈꾸다
등불을 든 여인 /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 갈등을 불러온 국경선 / 하나의 세계, 두 개의 이념 / 야만의 시대 / 냉전
9 그렇게 우리는 역사가 된다
앞으로 가야 할 길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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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요한 관점을 열어준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세계 어디서나 잊혔던 사실을 밝혀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언제, 어디서든 여자들이 살아 활동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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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역할을 둘러싼 논쟁이 새롭게 불붙은 현실에서, 이러한 작업은 너무나 시의적절하고 필요한 일이다…학교에서 배운 케케묵은 지식에 새 바람을 불어넣을 풍성한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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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노생거 수도원》의 주인공 캐서린 모를랜드는 이 책을 매우 반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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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일 때도 많지만 주연일 때도 그 못지않게 많다. 어쨌든 이 책에선 여성이 역할을 맡는다. 시대를 통틀어 언제나 무슨 역할이든, 나름의 역할이 있다.
책 속으로
한번은 긴 옷을 입은 사람들이 그려진 화병이 발견되었다. 옷이 삼각형 모양이었는데 치마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당연히 여자를 그린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수염을 기른 인물이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그림이 발견되었다. 치마 입은 남자들이었다. 고고학자들이 정밀 조사에 착수했고, ‘남자는 사냥을 하고 여자는 수다를 떤다’는 식의 노동 분업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들이 점점 더 많이 발견되었다. 예를 들면 도구나 무기와 함께 묻힌 여자, 진주구슬과 실패와 함께 매장된 남자가 발견된 것이다. 그러니까 그 여성들은 생전에 그 무기를 들고 다니며 사용했던 것이 아닐까? 우리는 실잣기와 천짜기가 전형적인 여성의 일이라고 알고 있지만 직물 생산을 담당했던 남자들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20쪽
상나라나 주나라 같은 왕조가 멸망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다른 귀족 가문들의 힘이 점차 세져서 왕의 권력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또 몽골에서 중국을 침략한 기마민족의 위협도 만만치 않았다. 왕을 망친 두 여인 달기와 포사의 이야기는 이런 과정을 심하게 단순화시킨 것이다. 바로 이것이 전설의 목적이다. 사람들은 단순한 이야기를 더 잘 기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설은 특정한 해석을 퍼뜨리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런 전설들이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것이 우연의 결과가 아닌 것이다. 나쁜 여인이 등장해 왕을 비도덕적 행동으로 이끌고 그로 인해 불행을 끌어들인다. 여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멸망의 진짜 이유와 남자들의 실책을 은폐한다.
―51~52쪽
아테네 민주주의는 독특한 발명품이었다. 아테네 시민들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자신들의 권리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런데 그들의 민주주의에도 단 하나 문제가 있었다. 오직 남자들만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남자로 태어나면 농부도 정치인도 될 수 있었다. 상인, 수공업자, 시인, 철학자, 연설가, 조각가, 건축가, 의사가 될 수 있었다. 오늘은 연극을 하고 내일은 전쟁터로 나가 싸우고, 모레는 평의회에서 정치 현안을 논의할 수 있었다. 운동 경기에 참가해 온 나라에 이름을 떨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자는 민주주의에서 배제되었다. 아테네에서 무엇을 계획하고 건축하고 토론하고 결정한다 해도 여자는 참여하거나 발언할 수 없었다.
심지어 연극의 여자 역할도 남자들이 대신했다. 여자에게 허용된 것은 무희로 춤을 추는 것뿐이었다. “여자는 보아야 하는 것, 그 말은 듣지 말아야 한다.” 시인 소포클레스는 말했다. 한마디로 여자는 입 닥치라는 소리였다.
―75~76쪽
미리안 왕과 그가 다스린 나라를 기독교로 개종시킨 사람은 니노였다. 그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이베리아 사람들은 하필이면 여자가 자기 나라의 가장 중요한 성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서 100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신학자들이 니노는 사실 남자였다고 주장했다. 그녀에 관한 이야기가 전부 지어낸 것이라고 우긴 사람들도 있었다. 기독교 초기에 설교를 하며 곳곳을 순례한 수많은 여성에 대해서도 비슷한 주장이 떠돌았다. 역사가들은 파울로스가 높이 평가했던 여사도 유니아의 이름에도 ‘s’를 붙여 유니아스라고 부르며 남자라고 우겼다. 학자들이 이 주장을 다시 바로잡은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유니아는 여자였고 여사도라는 그녀의 직함은 초기 기독교가 남녀평등 사상을 실천했다는 증거이다.
―142~143쪽
출판사 서평
왜 역사책에는 여성의 이름이 그토록 적을까?
선사시대 동굴벽화부터 달 착륙 프로젝트까지,
누락된 여성의 기록을 복원해 다시 쓰는 세계사
왜 박물관에 전시된 선사시대 모형에서는 늘 남자들이 사냥을 하고 여자들은 음식을 만들까? 왜 역사책에서는 남자들만 전쟁을 하고 나라를 세우고 영웅이 될까? 세상을 바꾼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순간에, 혁명의 자리에 왜 여자들은 보이지 않는 걸까? 이 책은 그동안 남성 중심적으로 기록된 역사에 의문을 던지며 우리가 잃어버렸던 ‘여성’이라는 퍼즐 조각을 제자리에 돌려놓고자 한다. 나라를 다스리고, 전장에 나가 싸우고, 철학자나 작가나 과학자가 되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 보인 여성들을 다시 역사 속으로 소환하며 역사에서 빠져 있던 ‘여성’이라는 퍼즐을 하나씩 찾아서 끼워나간다.
그렇다고 이 책에 여성들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들은 역사에 발자취를 남긴 남자들을 거둬내는 방식으로 이 책이 또다시 역사의 한 갈래로 남는 것을 거부한다. 여성들도 엄연히 역사의 한 부분임을 독자들에게, 특히 젊은 독자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여자들도 남자들과 똑같이 언제 어디서나 살았고 행동했다. 그동안 역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 사실을 누락했다. 이 책은 기존의 역사적 관점이 지닌 편견을 바로잡고, 더욱 바람직한 역사를 써나가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남자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역사 속 여성들, 이름을 되찾다
-남성 중심의 시각을 벗어나 서술한 새로운 세계사 입문서
역사에서 남자와 똑같이 대단한 일을 해냈음에도 남자의 이름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여성들이 많이 있다. 최초로 우주 비행에 성공한 사람이 유리 가가린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최초의 ‘여성’ 우주인 발렌티나 테레시코바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남성에 의해, 남성 중심적으로 서술된 역사책에서는 이처럼 여성의 업적이나 능력이 기록되지 않은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누군가(남자)의 어머니, 아내, 딸로 기록되어 이름조차 실리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비잔틴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여러 치적을 쌓아 ‘대제’라 불릴 정도이지만, 황후 테오도라는 기껏해야 ‘경기장 무희에서 황후로 신분 상승한 신데렐라’ 정도로만 언급되고 있다. 사실 테오도라는 남편 유스티니아누스가 반란군에 쫓겨 도망치려 할 때 반란군에 맞서 콘스탄티노플을 지킬 것을 끝까지 주장했고, 이후에는 어려운 처지의 여성들을 위한 법을 제정하는 등 나라를 다스리는 데 깊이 관여했다.
몽골제국을 이룬 칭기즈칸은 아들을 후계자로 삼는 다른 왕들과 달리, 딸들을 정복한 땅의 왕들과 결혼시켜 딸들이 그 땅을 다스리게끔 했다. 그리고 사위들이 딸들의 통치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정복 전쟁에 늘 데리고 다녔다. 하지만 그의 처사를 못마땅하게 여긴 당시 사가들이 양피지에 여자에 대한 기록이 적혀 있으면 모조리 잘라냈다고 한다. 그 결과 칭기즈칸의 딸들에 대한 기록 대부분이 사라지고 말았다.
심지어 중요한 업적을 이룬 여성을 남자로 둔갑시킨 경우도 있다. 초기 기독교 시절, 여사도 니노는 이베리아 왕국에 기독교를 전파하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니노가 세상을 떠난 후 자기 나라의 위대한 성인이 여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신학자들은 그녀가 사실 남자였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파울로스(바오로)가 높이 평가했던 여사도 유니아의 이름에는 아예 ‘s’를 붙여 유니아스라고 칭하며 남자로 둔갑시키기까지 했다.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에서는 다른 역사책에서는 만나기 어려웠던 여성 인물들을 다루면서 그녀들이 세계사의 주요 사건들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함께 살펴본다. 인물의 단편적인 삶에 매몰되지 않고 역사의 흐름과 유기적으로 연관 지으며 세계사를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여성 인물을 다룬 타 도서와 차별성을 지닌다.
그리스는 민주주의의 발상지가 아니라 여성혐오의 발상지다
-남성 지식인의 여성혐오는 어떻게 여성의 자유와 권리를 막았나
여성들이 역사책에 이름을 올리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된 것은 ‘여성이 비범한 일을 하면 올바르지 않다’, ‘여자가 역사에 끼어들면 나쁜 일이 생긴다’는 편견과 혐오였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이미 고대 법전이나 경전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아시리아의 법전은 정숙한 여성이 사람들 앞에 나설 때 베일을 써 얼굴을 가려야 한다고 정했다. 이 말은 베일을 쓰지 않은 여성은 정숙하지 않으므로 함부로 해도 된다는 의미였다. 당연히 남자들에게는 이런 규칙이 적용되지 않았다. 또한 무지하고 나약한 이브가 뱀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선악과를 따먹어 낙원에서 쫓겨났다는 유대교 경전의 이야기는 여자 때문에 인류가 지금처럼 힘들게 살고 있다는 남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되었다.
‘민주주의의 발상지’로 유명한 고대 그리스는 사실 ‘여성혐오의 발상지’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 법하다. ‘여성혐오’를 뜻하는 ‘미소지니(misogyny)’라는 용어 자체가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지만, 고대 그리스의 수많은 사상가와 작가들이 여성 비하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역사가 헤시오도스는 “고귀한 제우스가 여자를 창조한 것은 남자를 괴롭히기 위해서였다.”라고 말했고, 시인 소포클레스는 “여자는 보아야 하는 것, 그 말은 듣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며 사실상 여성들이 말할 기회조차 막아버렸다. 크세노폰은 물레질이 “여성에게 가장 명예롭고 가장 적합한 일”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실 잣고 베를 짜고 옷 만드는 일을 여자에게 떠넘길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가장 압권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인류 최고의 철학자로 칭송받는 그도 여자에 대해서만은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태아가 자궁에 있을 때 남아는 오른쪽에, 여아는 왼쪽에 앉아 있다고 주장했다. 오른쪽이 정의, 공평, 선이 자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뱃속에서부터 여자는 부족한 면이 있으며, 이런 결함 탓에 여성의 뇌가 더 작고 덜 발달했다고 확신했다. 한마디로 실패한 남자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주장은 그의 사상을 재발견한 중세에도 이어져, 중세 스콜라 철학의 대부로 꼽히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불완전한 여성은 신의 의도이다. 여성의 유일한 목적은 종의 보존이다.”라는 발언을 하기에 이른다.
오직 이성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던 계몽주의 사상가들도 유독 여성에게만큼은 그 냉철한 이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계몽주의의 대표적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올바른 아동교육을 다룬 소설 《에밀》에서 여자는 피아노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고 바느질을 하고 요리를 해야 하며, 여성의 호기심은 억눌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볼테르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자신의 연인 에밀리 뒤샤틀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여성이라는 유일한 결점을 가진 위대한 남성이다.”
급진적 혁명가들은 다르지 않았을까? 안타깝게도 아니었다. 공장에서 수백만 노동자가 노예로 전락했다고 비판하던 카를 마르크스도 여성이 집에서 추가로 무임금 노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보지 못했다. 밥과 빨래, 청소와 육아의 노동에는 아무런 대가가 지급되지 않으며 적지 않은 남성이 아내를 노예 취급한다는 사실은 전혀 그의 정의감을 건드리지 못했다. 이처럼 시대를 막론하고 아무리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인물이라고 해도, 여성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서는 한 번이라도 살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살펴보는 여성 논쟁의 역사
-온전한 역사를 만들어나갈 방향을 제시하는, 지금 꼭 읽어야 할 교양서
이 책에서는 또한 언제 어디서나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찾고자 했던 여성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교회의 권위가 절대적이던 중세 시대에 라틴어가 아닌 자국의 언어로, 그리고 가명이나 남자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신학서를 펴낸 마르그리트 포레트는 정신적 자유를 추구한 대가로 화형을 당해야 했다. 르네상스가 시작되면서 인간의 진정한 의미를 묻게 되자, 작가 크리스틴 드피상은 저서 《숙녀들의 도시》에서 여성이 주도권을 잡은 세상을 그려냈다. 많은 여성들이 여전히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현실과 정반대인 세상을 창조함으로써 여성의 영혼도 남성의 영혼 못지않게 가치가 크다고 주장했다.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하면서 서적의 보급이 수월해지자 ‘여성 논쟁’에도 불이 붙었다. 여성도 남성과 같이 존엄한 존재인지에 대한 토론이 활발히 일어나게 된 것이다.
여러 혁명의 시대를 거치는 와중에도 여성들의 제자리 찾기는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루터와 칼뱅만 종교개혁을 이룬 것은 아니었다. 낭비도, 과도한 금욕도 신앙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독자적인 수도원을 세운 아빌라의 테레사가 있었고, 여성에게도 공개적으로 설교할 권리가 있음을 주장한 마리 당티에르가 있었다. 미국 독립전쟁 때는 영국 차 대신 ‘자유의 차’를 만들어 마시며 저항한 여성들이, 프랑스혁명 때는 베르사유궁으로 앞장서 진격한 시장의 여인들이 역사를 이끌며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를 얻기 위해 싸웠다.
피나는 노력으로 여성이 참정권을 얻게 된 오늘날에도 여성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여전히 여성들을 가로막고 있는 벽을 허물기 위한 다양한 논의들을 다룬다. 더 이상 역사에서 ‘여성’이라는 퍼즐 조각을 잃어버리지 않고 온전한 세계사를 만들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함을 저자들은 거듭 당부한다.
[책속으로 추가]
그 큰 제국을 오랜 시간 혼자서 다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칭기즈칸은 다른 왕들과 달리 공동 통치자나 상속자로 아들들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아들들은 아무리 봐도 잘하는 짓이라고는 술 퍼마시는 일뿐, 전술도 별로인 데다 다른 일에도 아주 형편없었다. 대신 그는 딸들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 아들들에 비해 총명하고 재능이 뛰어났다. 그래서 칭기즈칸은 딸들을 정복한 땅의 왕들과 결혼시키고 몽골족의 이름으로 제국의 일부를 통치하는 통치자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칭기즈칸은 여자들이 맡아 하는 집안일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았다. 그래서 집안을 잘 이끌어나갈 수 있는 사람은 나라도 잘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딸 치체겐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네 아버지 칸의 딸이므로 너를 보내 오이라트족을 다스리게 할 것이다.” 딸 알라카이 베키에게는 ‘나라를 다스리는 공주’라는 칭호를 선사했다. 사위들이 딸들을 간섭하지 못하도록 그는 사위들에게 이런저런 직책을 맡겨 멀리 유럽의 전쟁터까지 데리고 다녔다.
―248쪽
그러나 늘 그렇듯 인류의 역사에는 여성을 위해 투신한 남성들도 있었다. 마르키 드 콩도르세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이 시민권을 행사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란 힘들 것이다. 겨울마다 통풍에 시달리고 감기에 잘 걸리는 사람들한테서도 결코 빼앗지 않을 권리를 왜 여성들은 임신을 할 수 있고 잠시 기분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행사하지 말아야 한단 말인가?” 콩도르세는 여성의 선거권을 지지했고, 나아가 노예제도 철폐를 주장했다. 올랭프 역시 노예제도의 부당함을 알린 희곡을 쓴 적이 있다. 그러니까 콩도르세와 올랭프는 역사상 처음으로 보편적 인권선언이 무슨 의미인지를 끝까지 고민한 사람들이었다. 인권이란 모두에게, 여성은 물론 노예에게도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프랑스혁명 당시 그들과 생각을 같이한 사람은 절대적 소수에 머물렀다. 올랭프의 연극은 너무 큰 스캔들을 불러일으키는 바람에 공연을 몇 번 하지도 못하고 무대에서 내려야 했다.
―372~373쪽
정말 놀라운 일이다. 무슨 혁명이든 혁명이 끝나고 나면 여성들은 대대로 내려오던 부엌의 자리로 돌아갔다. 기독교 교회가 여성에게 일체의 공동 발언권을 빼앗았을 때도 그랬다. 프로테스탄트가 마리 당티에르 같은 여성 사상가의 입을 틀어막았을 때도 그랬다. 루소처럼 계몽주의의 대표들이 자유와 권리는 여성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을 때도 그랬다. 마지막으로 프랑스혁명 역시 올랭프 드 구주를 처형해 여성들에게 경고장을 던지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여자가 집을 나와 정치에 끼어들면 어떻게 되는지 너희 눈으로 똑똑히 보아라!
그리고 이제 자유와 정의를 위한 기나긴 투쟁에서 새로운 위대한 사상가가 등장했다. 마르크스였다. 그러나 공장에서 수백만 노동자가 노예가 되었다고 비판했던 그 역시 여성이 집에서 추가로 무임금 노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보지 못했다. 밥과 빨래, 청소와 육아의 노동에는 아무런 대가가 지급되지 않으며 적지 않은 남성이 아내를 노예 취급한다는 사실은 전혀 그의 정의감을 건드리지 않았던 것 같다.
―396쪽
마리 퀴리, 넬리 블라이, 할리데 에디브처럼 점점 더 많은 수의 여성들이 기자, 작가, 학자가 되었다. 물론 여전히 드문 경우였지만 그 드문 경우의 숫자가 날로 늘어났다. 현대의 변화는 옛 질서를 흔들었고, 여성도 정해놓은 길을 벗어나 남들과 다른 행보를 걷기가 과거보다 쉬워졌다. 한편으로는 그랬다. 그러나 드문 경우가 되는 것만으로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 차별이 만연했다. 마리 퀴리가 프랑스과학아카데미에 가입 신청을 하자 사람들은 그녀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녀 키르케에 빗대어 ‘라듐 키르케’라고 조롱했다. 그녀가 파리 대학에서 공부할 때는 여학생의 비율이 남학생 100명당 한 명꼴이었다. 적었다. 적어도 너무 적었다. 게다가 선거권의 문제에선 여전히 여성의 요구에 귀를 틀어막았다.
―439~440쪽
기본정보
ISBN | 9791160560435 | ||
---|---|---|---|
발행(출시)일자 | 2018년 03월 21일 | ||
쪽수 | 512쪽 | ||
크기 |
141 * 211
* 29
mm
/ 632 g
|
||
총권수 | 1권 | ||
원서명/저자명 | Weltgeschichte fuer junge Leserinnen/Daenschel, U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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