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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색맹과 신경질환에 대한 통찰과 인간애로 가득한 과학 논픽션
자연과 과학에 대한 사랑, 휴머니티가 선사하는 감동
흉상 뒤편의 나뭇잎은 책 속에서 펼쳐질 식물 이야기를 암시함으로써, 올리버 색스의 식물학자로서의 면모를 기대케 한다. 올리버 색스의 미크로네시아섬 여행기를 담고 있는 《색맹의 섬》에서 저자는 질병에 대한 통찰력과 환자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주며 독자로 하여금 그가 왜 참된 의사인지 깨닫게 한다.
독자들은 《색맹의 섬》을 통해 색스 박사의 꼼꼼한 문화사적 기록과 깊이 있는 사유를 마주함으로써 그의 인류학자로서의 면모까지 엿볼 수 있다. 또한 《색맹의 섬》 후반부를 차지하는 식물에 대한 묘사와 애정은 올리버 색스가 탁월한 식물학자였음을 방증한다. 이렇듯 올리버 색스가 《색맹의 섬》에 기록한 자연과 과학에 대한 사랑, 휴머니티를 향한 지향은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알마는 올리버 색스와 《색맹의 섬》을 사랑하는 독자들을 위해 네 가지 버전의 특별한 표지를 선보인다.
*제목의 색을 분홍 / 노랑 / 초록 / 파랑으로 달리한 4종의 표지로 랜덤 발송됩니다.
작가정보
1933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 대학교 퀸스칼리지에서 의학 학위를 받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와 UCLA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했다. 1965년 뉴욕으로 옮겨 가 이듬해부터 베스에이브러햄 병원에서 신경과 전문의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 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과 뉴욕 대학교를 거쳐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신경정신과 임상 교수로 일했다. 2002년 록펠러 대학교가 탁월한 과학 저술가에게 수여하는 ‘루이스 토머스상’을 수상했고, 옥스퍼드 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 안암이 간으로 전이되면서 향년 82세로 타계했다. 올리버 색스는 신경과 전문의로 활동하면서 여러 환자들의 사연을 책으로 펴냈다. 인간의 뇌와 정신 활동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들려주어 수많은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뉴욕 타임스〉는 문학적인 글쓰기로 대중과 소통하는 올리버 색스를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고 불렀다. 지은 책으로 베스트셀러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비롯해 《색맹의 섬》 《뮤지코필리아》 《환각》 《마음의 눈》 《목소리를 보았네》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깨어남》 등 10여 권이 있다. 생을 마감하기 전에 자신의 삶과 연구, 저술 등을 감동적으로 서술한 자서전 《온 더 무브》와 삶과 죽음을 담담한 어조로 통찰한 칼럼집 《고맙습니다》, 인간과 과학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담긴 과학에세이 《의식의 강》, 자신이 평생 사랑하고 추구했던 것들에 관한 우아하면서도 사려 깊은 에세이집 《모든 것은 그 자리에》를 남겨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중문학을 공부했고, 영문 책과 중문 책을 번역한다. 옮긴 책으로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올리버 색스의 《온 더 무브》 《깨어남》 《색맹의 섬》, 빌 헤이스의 《인섬니악 시티》, 에릭 호퍼의 《맹신자들》, 이언 매큐언의 《토요일》, 헬렌 한프의 《채링크로스 84번지》, 수전 손택의 《해석에 반대한다》, 피터 브룩의 《빈 공간》 등 다수가 있다.
목차
- 머리말
1부 색맹의 섬
[섬돌이]
섬에 매혹되다
색깔 없는 세상에서 산다는 것
장님의 골짜기, 귀머거리의 섬
색맹의 섬을 향하여
크누트, 색맹의 동행자
독가스 가득한 해골 섬
마주로에서의 짧은 휴식
콰잘레인에서 감금당하다
자연주의자의 낙원, 폰페이
[핀지랩]
아이들의 섬
산호섬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마스쿤의 유래
핀지랩에서의 첫날 밤
'한쪽 눈'을 선물한 크누트
돌아온 고향에서 외톨이 되다
색맹 여인이 짠 아름다운 무늬
색맹검사 소동
스팸에 중독된 사람들
토란밭에서 만난 노인
이틀 만에 만들어진 신화
마지막 날의 밤낚시
[폰페이]
폰페이를 발견한 남자
난마돌 유적을 찾아서
만드, 섬 안의 섬
색맹 아이들의 공부법
삼남매가 걸어간 서로 다른 길
소년의 작별 인사
토박이 의사들에게 강연하다
폰페이, 어느 식민지의 역사
식물학자가 된 선교사
토종 식물 탐험
사카우에 취하다
폰페이에서의 마지막 밤
사이버공간으로 간 색맹의 섬
2부 소철 섬
[괌]
괌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
소철 섬에 도착하다
고갱을 닮은 신경학자
세상에서 가장 특이한 병
천천히 타는 도화선
파킨슨증 걸린 리어왕
악마의 코코넛
후안의 떨리는 손
알마와 함께한 바닷속 탐험
괌, 그 슬픈 기억들
서양 의사는 믿을 수 없어!
환자를 품는 차모로 가족들
로케 이야기
점령당한 낙원 수메이
기계장치의 삶 앞에서
세상이 층계로 이루어져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 질병의 공통점
무너진 소철 가설
일본 식당에서의 생선 독 강의
괌에는 새가 없다
괌의 국가대표 고사리
헤수스의 공놀이
그리고 증상은 아주 뒤늦게 찾아온다
가이두섹의 쾌거
스펜서, 새로운 독소를 발견하다
또 다른 가능성─유전자 가설
40년 동안의 숨바꼭질
기억하지 못할 테니 만나면 또 반가울 겁니다
우마탁의 묘비 사이를 거닐며
[로타]
고대 식물과의 첫 만남
쥐라기 수풀 속으로
뭍으로 올라온 최초의 식물
야자열매를 따 먹는 게
방울열매가 뜨거운 이유
소철의 신기한 번식 방법
5억 년을 살아남은 생명력
단단한 소철 씨의 비밀
더 다양하게, 더 복잡하게
원시림은 숭고하다
아득한 시간을 거슬러 지구의 벗이 되다
소철 씨, 바다를 건너다
주석
참고문헌
찾아보기
추천사
책 속으로
1부 색맹의 섬
어쨌거나 가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거기서 기이한 흔적을 발견하는 것을 상상했다. 그 알록달록한 집에 살았던 색맹의 유령들, 흑백의 식물군, 그들을 알았던 자들이 남긴 문서와 그림, 기억과 이야기를 말이다. 그러나 아직 핀지랩이 남아 있었다. 나는 거기에는 아직까지 색맹이 ‘다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크누트에게 다시 편지를 써서 핀지랩까지 1만 6,000킬로미터 길, 그 과학 모험에 나와 함께하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물었고, 그는 좋다, 가고 싶다, 8월에 몇 주 동안 여행이 가능할 것 같다고 답했다._ 27쪽
나는 자기네만의 독특한 멋과 예술, 음식, 의복을 지닌 완전한 색맹 문화를 상상했다. 감각기관, 상상력이 우리와는 상당히 다른 곳, ‘빛깔’이 가리키는 내용이나 의미가 전혀 없어 빛깔의 이름도 빛깔에 대한 은유도 빛깔을 표현하는 말도 없는, 그러나 우리가 그저 ‘잿빛’ 한마디로 끝내버릴 질감과 농담(濃淡)에 관해서라면 제아무리 미묘한 것도 놓치지 않고 잡아내는 언어를 가진, 그런 문화 말이다._ 27쪽
수천 개의 섬이 우주의 무한한 공간을 사이에 둔 하늘의 무수한 행성들만큼이나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섬의 성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기심이건 야망이건 공포건 기근이건 종교건 전쟁이건, 무슨 이유에서였건 간에 인류사의 위대한 항해가들이 직감에 가까운 지식과 하늘의 별만을 길잡이 삼아 몰려왔던 곳이 바로 이 폴리네시아라는 광대한 은하계였다. 그들은 그리스인들이 지중해를 탐험하고 호메로스가 오디세우스의 방랑을 이야기하던, 지금으로부터 3,000년도 더 전에 이곳으로 왔다._ 43쪽
아이들이 숲에서 튀어나오고 몇몇은 어깨동무를 하고 열대 초목은 사방으로 무성해서 그걸 바라보느라 길어진 첫 만남을 통해, 나는 원시의 사람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혔다. 내 안에서 사랑이 물결쳤다. 이 아이들에게, 이 숲에, 이 섬에, 이 모든 광경에. 이곳은 낙원이었고, 이 순간은 마법에 가까운 현실이었다. 나는 다 왔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왔다고. 남은 인생을 여기서 살고 싶었다. 잘하면 이렇게 아름다운 아이들도 몇 얻고._ 49쪽
핀지랩을 바라보며 한때 드높았던 화산이 수천만 년에 걸쳐 눈에 보이지 않게 조금씩 가라앉았다는 것을 생각하니 시간의 무변함이 피부로 느껴지는 듯했다. 우리는 우리의 남태평양 탐험이 공간 여행일 뿐만 아니라 시간 여행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_ 55쪽
이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깔개를 짜는 사람은 색맹 여인이었는데, 그 여인은 그 기술을 마찬가지로 색맹이었던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제임스가 그 여인을 만나게 해주었다. 여인은 깜깜한 오두막 안에서 섬세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환한 바깥에 있다가 그 안에 들어갔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반면에 크누트는 이중 색안경을 벗었고, 이 섬에서 여기보다 눈이 편안한 곳은 없다고 그랬다. 우리는 점차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독특한 빛을 지닌 여인의 작품을 볼 수 있었고, 그 정교한 무늬들이 서로 다른 밝기로 구성돼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깔개 한 장을 환한 밖으로 갖고 나오자, 그 아름다운 무늬들이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_ 64쪽
나는 색맹 주민들에게 다양한 뜨개실의 빛깔을 알아볼 수 있는지 아니면 빛깔이 같은 것끼리 맞추는 것이라도 할 수 있는지 물었다. 짝 맞춤은 분명코 빛깔이 아니라 밝기로 이루어졌다. 노랑과 연파랑은 하양과 한 묶음이 되고, 진빨강과 녹색은 검정과 한 묶음이 되는 식이다._ 66쪽
우리는 진료소 앞에서 우리가 가져온 광각 선글라스와 모자, 햇빛 가리개를 나눠주었고, 다양한 결과를 얻어냈다. 눈을 찌푸리며 목청이 터져라 울어 젖히는 색맹 아기를 품안에 안은 한 어머니가 소아용 선글라스를 받아 아기 코에 얹으니 아기가 잠잠해지고 곧바로 행동에 변화가 일어났다. 아기는 더는 눈을 깜빡이지도 찌푸리지도 않으면서 호기심 가득한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주변의 사물을 구경하기 시작했다._ 67~68쪽
비가 계속 쏟아지는 와중에 해가 다시 나왔고, 하늘과 바다 사이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나타났다. 크누트는 이것이 빛나는 활처럼 보인다면서 그동안 보았던 다른 무지개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쌍무지개, 뒤집힌 무지개, 그리고 딱 한 번 보았다는 완전한 동그라미 무지개에 대해서도. 크누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두 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의 시력, 그의 눈에 보이는 세계가 어떤 면에서는 빈약한 구석도 있지만 또 어떤 면으로는 우리 못지않게 풍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_ 81~82쪽
우리는 이렇게 만드의 색맹 어린이 몇 명만 보고도 사람이 지각 능력에 문제가 있을 때 얼마나 신속하게 이론적 지식과 요령을 깨치며 호기심과 기억력을 과도하게 발달시키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직접적으로 지각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인식 작용으로 벌충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_ 92쪽
빌은 예수회 선교사로 폰페이에 자원했는데 원주민들에게 농업 경영과 멸종 위기종 보존에 대해 가르칠 계획이었다. 그는 처음 여기 올 때는 자기도 서양 과학의 자만에 젖은 건방진 사람이었는데 토박이 주술사들의 섬의 식물종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상세하고 체계적인지를 알고는 콧대가 납작해졌다고 말했다. 그 사람들은 망그로브 늪지에서 해초지, 산꼭대기의 왜관목림矮灌木林까지 10여 가지 생태계를 알고 있었다._ 105쪽
2부 소철 섬
괌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신경학자들에게 특별한 반향을 일으켰던 곳인데, 이 섬의 풍토병으로서 괌의 차모로 부족이 리티코-보딕lytico-bodig이라고 부르는 특이한 질병에 관한 보고가 활발하게 발표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이 질병은 때로는 신경위축성경화증(운동신경원 질환으로 약자 ALS로도 통한다)과 비슷한 진행성 마비 질환인 ‘리티코’로, 때로는 파킨슨증과 흡사하며 왕왕 치매의 동반 질환인 ‘보딕’으로 나타나는 등 다양한 형태로 발현된다._ 121~122쪽
나는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에스텔라에게 눈이 갔는데, 조각상처럼 서서 한 팔은 쭉 뻗고 고개는 뒤로 기울인 채 뭔가에 홀린 듯한 표정을 한 모습이 내 뇌염후 환자 한 사람과 너무나 비슷했기 때문이다. 누가 그녀의 팔을 어떤 자세로 만들면, 겉보기에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몇 시간씩 그 자세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다. 혼자 그냥 놔두면 꼼짝도 않고 마치 주문에 걸린 것처럼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며 침을 흘리고 서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을 걸자 에스텔라는 바로 대답했다. 적절히, 재치 있게._ 134쪽
에스텔라의 남편 호세는 아주 달랐다. 우선 생리작용부터가 달랐다. 표정의 일그러짐이 일반적인 경우보다 심하고 이를 악무는 증후가 있는 확실한 파킨슨증으로, 근육이 뭉치고 굳어져 어떤 동작을 취하려 할 때마다 근육끼리 싸우고 뒤엉키곤 했다. 팔을 뻗으려 하면 삼두근이 길항근인 (정상인이라면 팔을 뻗을 때 이완되는) 이두근의 움직임에 저항을 받고, 또 역으로도 마찬가지였다. 팔이 자꾸만 굽힐 수도 뻗을 수도 없는 요상한 동작에서 멈춰버렸다. 비슷한 일그러짐과 비슷한 경직이 전신의 근육에 영향을 미쳤다. 전신의 신경이 그의 뜻을 저버렸다._ 135쪽
나는 조심스럽게 진찰을 해도 될지 물었다. 나에게 그는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약자가 아닌 힘센 권위자였다. 게다가 나는 이 지역의 관습도 잘 알지 못했다. 신경의의 진찰 행위를 무례한 짓으로 보지는 않을까? 뭔가 조치가 꼭 있어야 한다면 문을 닫고 가족이 보지 않는 곳에서 하면 될까? 회장은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진찰해도 됩니다.” 그는 말했다. “가족 있는 데서요.”_ 140~141쪽
소철 이론은 몇가지 근거에서 문제가 있었다. 첫째, 소철이 오랜 기간 전 세계에서 두루 사용되어왔지만 괌 이외의 지역에서는 고질적인, 사람에게서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소철 상용이라는 예증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괌에 서식하는 소철에 뭔가 다른 점이 있을 수도 있고, 차모로 사람들이 특별히 이 병에 취약할 수도 있다. 둘째, 정말로 소철과 리티코-보딕이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소철에 노출되어 리티코-보딕이 발병하기까지의 시간일 수 있는 수십 년이 신경계 중독과 관련해서 전례가 없는 기간이라는 점이다. 알려져 있는 모든 신경독이 즉각적으로 또는 몇 주 내에 작용하는데, 이 기간은 독성 농도가 체내에 축적되기까지 혹은 신경 손상이 증후를 일으키는 임계점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이다. 중금속 중독, 악명 높은 미나마타병, 독성 있는 풀완두를 먹으면 일어나는 인도의 풀완두신경중독, 소의 소철신경중독의 경우가 모두 그랬다. 그러나 리티코 환자들의 경우는 비록 즉각적인 작용은 없지만, 몇 년이 지나서 특정한 신경세포가 진행성 퇴화를 일으킬 수도 있는 독성 요소와는 상당히 달라 보였다. 그렇게 뒤늦게 일어나는 독의 작용에 대한 보고는 아직껏 없었다._ 149~150쪽
1710년 무렵 괌에는 차모로 남자는 사실상 한 명도 없이 여자와 아이만 1,000명 정도가 남았다. 40년이라는 시간 안에 인구의 90퍼센트가 쓸려 나간 것이다. 이제 저항이 없어졌으니 선교사들은 거의 절멸된 차모로 부족이 살아남을 길을 찾게끔, 말하자면 자기네 식인 기독교와 서양식으로 의생활을 바꾸고 교리문답을 배우고 그들 고유의 신과 신화와 풍습을 버리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_ 157쪽
그동안 차모로 사람들 사이에는 서양 의사들에 대한 분노가 쌓여왔다. 차모로 사람들은 그들의 사연과 시간, 피, 나아가서는 뇌까지 바쳐왔다. 그러면서 종종 의사들이 자기네를 의학 표본이나 실험 대상으로 여길 뿐 그들이 진정으로 자기들에게 관심을 갖
출판사 서평
색맹과 신경질환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여행기
편두통으로 인한 색각 이상을 겪은 경험이 있어 색맹에 대해 무척 관심이 많았던 올리버 색스. 그는 색맹인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태평양의 작은 섬 ‘핀지랩’과 ‘폰페이’로 향한다.
색맹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올리버 색스는 “자기네만의 독특한 멋과 예술, 음식, 의복을 지닌 완전한 색맹 문화를 상상”하며 “빛깔의 이름도 빛깔에 대한 은유도 빛깔을 표현하는 말도 없는, 그러나 우리가 그저 ‘잿빛’ 한마디로 끝내버릴 질감과 농담(濃淡)에 관해서라면 제아무리 미묘한 것도 놓치지 않고 잡아내는 언어를 가진, 그런 문화”를 찾아 나선다. 마침내 색맹에다가 환한 빛은 쳐다볼 수도 없는 ‘마스쿤’을 안고 살아가는 섬사람들과 마주하게 된 올리버 색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실험대상으로 삼지도, 애처롭게 바라보지도 않는다.
그는 다만 그들이 밝은 빛 아래에서도 활동할 수 있도록 선글라스를 건네고, 마스쿤이 누구의 잘못도 아닌 선천적 질환이라고 말할 뿐이다. 완전색맹인 동료 의사 크누트와의 동행으로 올리버 색스는 색맹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고, 마침내 그 여정의 끝에서 우리를 무채색 세계의 경이로움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소철 섬’ 이야기. 소철이란 올리버 색스가 사랑한 고대 식물로, 색스 박사는 소철이 가득한 섬의 주민들이 ‘리티코-보딕’이라 부르는 신경질환에 시달린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에는 괌과 로타로 떠난다.
색스 박사는 파킨슨병과 비슷한 이 리티코-보딕의 원인을 밝혀낼 수 있을까? 병의 원인은 유전일까, 과거의 주식인 소철 씨일까, 아니면 성분 함량이 특이한 우물물일까. 수많은 가설들을 가늠해보며 올리버 색스는 병의 실체에 한걸음 더 다가선다.
인류학자이자 식물학자였던 올리버 색스
《색맹의 섬》이 가진 가장 값진 의의는 올리버 색스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올리버 색스는 인류학자가 되기도 하고 식물학자가 되기도 한다. 그 변화무쌍함은 그가 치열하게 작성한 기록에서 비롯된다.
메모를 넘어서는 세세하고도 논리적인 기록을 기반으로 하여 사방으로 가지를 뻗는 사유는, 그를 받치는 풍부한 지식과 결합해 밀도 있는 과학 논픽션 《색맹의 섬》을 탄생시켰다.
섬사람들의 문화와 역사, 자연환경과 유적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은 그가 신경의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배를 전복시킬 만큼 쏟아지는 비를 뚫고 유적지로 향하는 모험담이나, 원주민들의 신화를 조사하는 모습에서 독자들은 ‘문화인류학자 올리버 색스’를 만나게 된다.
질병의 원인마저 역사적 배경과 과거 자연재해로 인한 고립 등에서 찾아내는 그의 행보를 읽으며 우리는 훌륭한 인류학자 하나를 잃은 슬픔과 다시금 마주하게 된다.
올리버 색스의 식물학자로서의 면모는 2부 ‘소철 섬’에서 본격화된다. 섬의 수많은 식물들. 각 종의 특징과 식물학적 의미, 식물에 얽힌 자신의 추억을 담담히 풀어내는 올리버 색스의 음성은 어느새 우리를 햇볕 뜨거운 태평양 한가운데, 거대한 나뭇잎 아래로 데려다 놓는다.
올리버 색스가 섬을 여행하며 사방으로 뻗어낸 사유의 갈래. 그 종착지는 결국 자연과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다. 그를 보여주듯 방대한 주석은 미처 다 전하지 못한 그의 연서로도 읽힌다.
참된 의사 올리버 색스가 전하는 따뜻한 인간애
《색맹의 섬》에서 독자는 올리버 색스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지만, 그의 전작을 통틀어 이 작품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생애의 중심축인 그의 의사로서의 정체성일 테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낯선 지역에 방문함으로써 자신이 가진 기존의 역할과 지위가 지워지고 새로운 정체성을 상정해야 할 상황에서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올리버 색스는 섬에 온 뒤로는 의사로서의 권위를 버리고, 섬사람들을 계몽시키려고 하지도 않으며, 지나친 연민을 표현하지도 않는다.
다만, 원주민들의 문화와 행동양식을 존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색맹의 섬》의 한 꼭지인 <파킨슨증 걸린 리어왕>이다. 올리버 색스의 따뜻한 시선이 빛을 발한 이 흥미로운 에피소드에서 그는 신경질환으로 전신 마비 상태가 된 환자를 진료하려다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다.
‘소철 섬’의 관습도 잘 모를뿐더러 진찰 행위가 무례해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환자의 가족이 보지 않는 곳에서 진찰을 해야 하나 고민하기까지 한다.
이런 세심한 배려에 응답하듯 환자는 말한다. “여기서 진찰해도 됩니다. 가족 있는 데서요.” 올리버 색스가 비로소 의사로 돌아가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그가 참된 의사였음을 상기하며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다.
“나에게 그는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약자가 아닌 힘센 권위자였다.”
환자를 우러르는 이 마음가짐이 올리버 색스를 다시 의사로 만들어준다. 올리버 색스는 환자 한 명 한 명을 위해 왕진을 나서고자 마음먹는다.
환자들과의 만남은 깨달음의 연속이다. 거기에 의사-환자의 관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사이의 교감, 서로가 서로에게 전하는 따뜻한 인간애만이 밝게 빛난다.
기본정보
ISBN | 9791159921940 | ||
---|---|---|---|
발행(출시)일자 | 2018년 08월 22일 | ||
쪽수 | 356쪽 | ||
크기 |
147 * 234
* 26
mm
/ 579 g
|
||
총권수 | 1권 | ||
원서명/저자명 | The Island of the Colorblind and Cycad Island/Sacks, Oliver 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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