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쏙 빠질 정도로 사람이 많은 종로 3가 역 안에서 주웠다. 아마도 가방에 달았던 것이 떨어진 게 아닐까. 밖을 다니는 내내 장소를 옮길 때마다 주머니에서 나침반을 꺼내서 방향을 확인했다. 그러면서 해가 있는 방향을 계속 확인하게 되고, 바람이 불면 바람의 방향을 따져보기도 했다. 정신을 놓을 때마다 나침반이 방향을 잡아주듯 굴었다. 바람을 따라 걸으니 저절로, 나그네 여행자가 된다.
_ 〈나침반 - 나는, 이 도시의 여행자〉 중에서

겨우내 먹던 김장김치가 지겹다던 엄마가 배추를 몇 포기 사오셨다. 옆에 앉아 먹잇감을 노리듯 지켜보다가 배추의 가장 안쪽에 들어 있는 속은 김치에 넣지 않을 거라는 엄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귀여운 배춧속을 챙겼다. 나에게 한 장 한 장 떨어진 배춧잎을 주고 조합해서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보라고 한다면 원래의 모습이 주는 자연스러움을 따를 수 있을까?
자연스러움은 노력해서 도달할 수 없는 경지.
_ 〈배춧속 ?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 중에서

이른 봄. 베란다에서 핀 화려한 수선화 덕에 눈이 호강했다. 꽃이 시들자 엄마는 화분을 정리하셨다. 구근은 내년을 기약하며 모아지고, 쓰레기통으로 가려던 마른 꽃은 방문에서 다시 피었다.
_ 〈마른 수선화 ? 내게로 와서 다시 피었다〉 중에서

집에서 보던 액자를 전시장에 두면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 길에서 흔하게 보던 수만 개의 회양목 잎들 중 하나를 길 위에서 보니 신비롭게 보였다. 눈송이를 현미경으로 확대해보면 모두 다른 모양이라지……. 거리마다 떨어져 있는 수만 개의 회양목 잎들도 모두 다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바라보면 다름이 보인다.
_ 〈회양목 한 잎 ? 자세히 바라보면 다름이 보인다〉 중에서

아침을 먹고 일어서는 찰나 밥공기에서 숨 가쁜 소리가 들렸다. 들여다보니 쫓기듯 뛰고 있는 밥풀이 내는 소리다. 달리는 밥풀. 그러고 보니 내가 요즘 마음이 급한가 보다. 어젯밤에도 막차 시간에 쫓기는 꿈을 꿨다. 상황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지는가 보다.
_ 〈밥풀 ?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 중에서

심심할 때 찾으라고 사람별로 배당된 숨겨진 일상의 보물들도 함께 태어나는지 모른다. 소풍의 백미, 보물찾기처럼 삶에서 각자 찾도록 배당된 심심풀이 보물들이 있는지도 모른다. 길에서 표정 신호를 주우며 나는 이렇게 숨은 보물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_ 〈부서진 스마일 ? 길 위에서 보내는 사물의 신호에 응답하다〉 중에서

누가 보면 쓰레기를 모아둔 것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선반에 놓여 있는 주운 것들을 보았다. 그러자 마침 내 얘기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아침볕이 들었고, 그림자가 내려왔다. 그래 나까지 방심하지 말아야지. 이런 그림자를 가지고 있는 것들을 쓰레기라고 생각하디니. 아침볕이 정신 차리라고 채찍질을 한다.
_ 〈쓰레기로 오해할 뻔한 것들 ? 그림자로 말 거는 물건들〉 중에서

친구가 여행을 다녀왔다. 무엇보다 기대되는 친구가 주워온 것이다. 그동안 내가 어찌나 강요를 했었는지 친구가 주워온 것은 풍성했다. 스웨덴 어느 숲속에서 주웠다는 광물 같은 재질의 돌들과 프랑스 어느 해변에서 주웠다는 소라와 조개의 껍데기들……. 꺼내서 쭉 펼쳐두고 보니, 내 심장까지 두근거린다. ‘한 알의 모래에 세계가 다 있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화려한 색의 작은 소라 껍데기 하나에서, 무늬가 있는 돌멩이 하나에서, 내가 보지 못한 여러 그림들이 보이는 것만 같다.
_ 〈친구가 여행지에서 데리고 온 것들 ? 함께하지 못했지만 함께 있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