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집을 짓는 10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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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이 책은 욕망이라는 추상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사례들은 흥미진진하다. 두바이의 무모할 정도로 대담한 건물을 통해, 환상과 투기, 미래를 담보로 한 피라미드식 세일즈의 현장을 둘러보고 그 이면을 분석한다. 또한 저자가 자하 하디드와 작업한 런던 건축재단 작업 이야기는 건물을 짓게된 사연부터 설계 공모, 자하 하디드 당선까지 그 자체로 한 편의 재미있는 드라마다.
작가정보
저자(글) 로완 무어
저자 로완 무어 Rowan Moore는 영국 《옵저버》의 건축평론가로, 인간 본성과 건물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날카로운 분석을 거침없이 드러낸다는 평을 받고 있다. 캠브리지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실제 설계와 건축 작업을 하면서, 90년대부터 건축에 관한 글을 꾸준히 발표했다. 2002-2008년에는 런던의 건축재단에서 디렉터로 활동했다. 그 이후에는 《이브닝 스탠더드》와 《가디언》에 본격적으로 건축과 도시에 관한 다양한 평론과 에세이를 썼다. 2014년 영국언론상(British Press Awards)에서 ‘올해의 평론가’로 선정됐다.
《우리가 집을 짓는 10가지 이유》는 그의 첫 책으로, 국제건축평론가협회(Comit? Internationale des Critiques d’Architecture)의 2014년 저술상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받았다.
번역 이재영
역자 이재영은 고려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과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언론과 홍보, 마케팅 계통에서 일했다. 경제신문 기자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와 경제 문제에 대한 글쓰기에 관심을 갖고 있다.
옮긴 책으로 《그레이트 빌더》《빅 아카이브》《다른 세계를 요구한다》《유혹하는 플라스틱》《나의 지구를 살려줘》《30초 철학읽기》《오늘부터 시작하는 친환경생활 250》 등이 있다.
목차
- 한국의 독자들에게
1. 욕망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욕망을 낳는다 - 돈
2. 고정된 집, 떠도는 소우주 - 가정
3. 진짜 같은 가짜 - 상징
4. 아찔한 환상, 해체되는 중력 - 섹스
5. 힘의 주는 자유 - 권력
6. 형식은 돈의 뒤를 따른다 - 과시
7. 탐욕의 다른 이름 - 희망
8. 과대평가된 영원성 - 아름다움
9. 삶, 그리고 삶의 모습 - 생활
10. 빵처럼 꼭 필요한, 일상이라는 매혹
참고문헌
감사의 글
그림 출처 및 저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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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우리는 왜 집을 짓는가?
집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
돈과 섹스에서, 권력과 미래까지
우리가 집을 짓는 10가지 이유
집은 도구이면서 동시에 상징이다. 바람과 비를 피하고,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거주의 공간이면서, 그와 함께 부와 힘, 위엄과 안식, 안전과 정착, 희망과 아름다움이라는 가치와 정서를 드러낸다.
우리가 집을 지을 때는, 단순히 생활 영역을 확보한다는 의미 이상으로 수없이 많은 욕망과 감정이 개입한다. 섹스를 위한 비현실감을 필요로 하기도 하고, 환상과 투기, 미래를 내건 피라미드식 세일즈의 상품이 되기도 한다. 검은 것을 희다고 주장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으로도 작용하고, 허구를 현실로 제시하는 설득력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순수하게 기능만 고려해서 내리는 결정 이외의 모든 판단을 극대화하면, 바로 우리가 집을 짓는 이유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욕망과 감정은 집을 짓게 만들고, 집은 반대로 그런 감정을 경험하게 한다. 이런 현상은 모호하지 않고, 건축에서 분명하고 뚜렷하게 표현된다. 다만 건축물이 유동적인 감정을 다루는 강력한 수단이기는 하지만, 소통에는 의외로 서툴러 우리가 곧잘 놓칠 뿐이다. 이 책에서는 섹스와 돈, 희망과 권력, 진실과 상징, 가정과 생활이라는 사람들의 감정과 욕망이, 집을 비롯한 건축물에 어떻게 작동하고 반영되고 있는지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뜻밖의 통찰을 통해 알아본다.
우리는 왜 집을 짓는가?
“한 건축가가 가끔 하던 이야기다. 어느 부부로부터 집을 증축하고 싶다는 의뢰를 받고 찾아간 그는 그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그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요구 사항이 있는지 잘 듣고, 남편과 아내의 의견도 각각 들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그는 전문가다운 조언을 제시했다. ‘두 분에게 증축은 필요 없습니다. 그냥 이혼하시는 게 어떨까요?’”
아마도 이들 부부는 새롭게 집을 늘리면서 사랑과 희망을 복원하고 싶었을 것이다. 관계와 감정을 치유하고 싶었을 것이고, 일상을 지속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마음에서 이들은 집을 지으려 했을 것이다. 집이라는 물질이 가족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뭔가 이루어졌음을 증명하는 건축물의 독특한 힘이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집을 지으며, 집을 통해 안전한 일상 외의 다른 많은 것을 얻으려 한다.
집은 기능과 효율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짓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감정과 욕망의 산물이기도 하다. 실용적인 목적에서 지어지는 건물이라도, 그 과정에는 수 많은 비합리적 감정이 개입하면서 형태가 결정되고 용도와 규모가 바뀌곤 한다.
이 책은 이런 인간과 사회의 감정과 욕망이 집과 건물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살펴본다. 우선 권력과 돈, 섹스와 희망 같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과 감정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이들 감정과 욕망이 집과 건물에 어떻게 투사되고 반영되는지 하나하나 알아볼 것이다.
물론 건물은 의뢰인이나 건축가, 건설회사에 의해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집과 건물은 그것을 경험하고, 사용하고,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만들어진다’.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의 일상을 통해 집과 건물이 어떻게 다시 태어나고 발전하며, 또 반대로 이런 건물들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주의깊게 살펴볼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이 건물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즉 계단을 올라 시간이 흐르며 발전하는 인간의 모험으로서의 공간을 점유하기 전까지, 건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집과 건물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읽는다
- 욕망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을 욕망을 낳는다
돈과 힘과 섹스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 욕망이다. 건축물만큼 이들 욕망을 실감나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웅장하고 화려한 공간, 노동력과 물자를 동원할 수 있는 능력, 아찔한 쾌감과 번식의 자유까지. 미래의 모습을 그보다 앞선 현재의 시공간에 생생한 오감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종교도 할 수 없는 건축만의 독특한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래를 채울 무언가를 앞서 보여줄 수 있는 건축의 힘 덕분에 우리는 돈과 미래를 맞바꾸며 건물을 짓는다. 이 책에서는 두바이의 무모할 정도로 대담한 건물을 통해, 환상과 투기, 미래를 담보로 한 피라미드식 세일즈의 현장을 둘러보고 그 이면을 분석한다.
"그토록 화려해 보이던 건물들이 환상과 투기, 미래를 내건 피라미드식 세일즈의 입구가 돼버렸다. 이런 금융 모험은 오로지 건축이 갖는 힘 덕분에 발생한다. 그 힘은 미래를 채울 무언가를 앞서 보여줄 수 있다는 데서 나온다. 그래서 먼저 짓고 나중에 계획한다.
어찌보면 재개발 사업과 부동산 버블이란 건축의 생리인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는 ‘만들어진 부동산이 경제위기를 만들어냈다’는 미국의 도시개발부 장관 숀 도노반의 말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명쾌하게 보여준다.
19세기 미국 건축가 헨리 홉슨 리처드슨은 건축의 첫번째 원리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했다. 역시 우리에게도 변치 않는 건축의 모습이다.
- 집이 우리를 바꿔놓을 것이다.
"방은 교육적인 것들로 가득했다. 그는 미술품과 골동품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그것들을 아들들의 영감과 교육을 위해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방에 설치했다. 아버지는 그곳을 '최고의 건축가 혈통을 위한 이상적인 환경'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아들은 아버지와 싸웠고, 아버지의 건축을 표절이라 공격했다. 나중에는 빚 때문에 감옥까지 갔다. 아버지는 박물관이 되어버린 그 집에서 만년을 홀로 지내야 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집'을 지으면 가족이 더 낫게 변할 것이라는 믿음은 정답이 아니다. 건물의 치유력을 신봉했고, 형식의 힘을 과대평가했고, 생명과 물질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그는 너무나도 큰 실망을 맛봐야만 했다.”
건물이 만들어낸 공간이 우리들 삶을 바꿔놓을 것이라는 믿음은 여전히 우리 주위를 맴돈다. 물론 그 믿음이 거짓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 믿음이 깨지기 쉬운 유리구슬이라는 것을 우리가 잘 잊을 뿐이다. 집을 지으면서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처럼 꾸미거나, 부부만을 위한 은밀한 샤워실을 만들기도 하지만, 기대와 현실이 항상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뭔가 이루어졌음을 증명하는 건축물의 독특한 힘 덕분에 이들 집과 건물들은 문제가 해소되었거나, 더 나아가 이들 욕망이 앞으로도 계속 현실이 될 것이라는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우리가 이상적 집이나 모범 마을이라는 개념을 계속 떠올리며 실행하는 것도 바로 이런 힘 때문이다. 공간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은 정말 굳건하다. 한 의뢰인은 건축가에게 이런 부탁까지 했다고 한다.
“품격있는 사람이 아니면 불편하다고 느낄 무도회장을 만들어달라.”
이 책에서는 집이 갖는 압축적이고 상징적 의미를 건물과 거주자,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통해 알아본다. 집을 바꾸면 사람과 관계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은 오래된 생각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집을 바꾸면 사회를 바꿀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합리적 설계가 언제나 정돈된 삶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었다. 좋은 집, 좋은 건축물은 기억을 부르고 상상을 불러오지만, 각본을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 건축에서 힘은 꿈의 소유권으로 드러난다.
"공간을 만들어낸 권력과 권력이 만들어낸 공간 사이에 분명한 상관관계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건축에서 권력은 대개 꿈의 소유권과 관련이 있다.”
건축은 꿈의 소유권과 관련이 있다. 그것은 집과 건물이 바라만 보거나 기념하는 대상이 아니라, 들어가 살고 일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집에 머물고 일할 때는 우리의 몸뿐 아니라 우리의 상상도 거주한다. 그래서 집과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미래의 거주자들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을 행사하는 일이다.
다른 사람의 꿈을 듣는 일은 언제나 따분할 수 밖에 없다. 남의 꿈 속에 사는 일은 더욱 그러하다. 지금 거주자들은 그곳에서 오직 경탄하는 목격자가 될 뿐이다. 그들은 자신의 것을 추가하지 못한다. 집과 건물에서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활동과 상상을 펼치지 않으면 그곳은 언제나 반쪽일 수 밖에 없다. 건축가, 건설업자, 도시계획가가 세운 각본대로 사는 생활에서 활기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공간에 깃든 꿈의 소유권을 찾아오는 사례들을 몇 가지 제시한다. 엘레멘탈의 “좋은 집 반 채”는 건축가와 사는 사람이 함께 만들어 가는 집이다. 그곳에는 건축가의 전문성과 거주자의 일상성이 행복하게 결합하고 있다. 리나 보 바르디가 브라질 상파울루에 만든 쎄시 폼페이아SESCPomp?ia도 있다.
“쎄시에서 그녀는 규정이 없는 열린 공간들을 모아 하나의 영토를 창조했다. 그곳에서는 즉흥성이 마음껏 펼쳐질 수 있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한 번은 내부에서, 어떨 때는 외부에서, 그것들은 한데 어우러져 마치 공원 같은 공간을 만들었다. 거기서는 정해진 기능과 자유가 함께 공존한다. 어디서든 앉고, 읽고, 만나고, 생각하고, 아니 그 어떤 것이든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다. 그녀는 내버려두기와 과감하게 개입하기를 조합했고, 단지 내부는 영리하게 바꾸면서 외부에는 단호한 타워를 올리도록 구성했다.”
쎄시 폼페이아는 기존의 꿈을 허물지 않았다. 존재하는 것들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그저 작은 물건 몇 개를 거기에 살짝 갖다 놓았다. 물 조금, 난로 하나”만을 했다고 말한다. 이곳에는 그들의 삶이 살아있다. 그들의 꿈도 함께 한다. 말뿐인 희망이 아니라 실제 그들의 일상이 연결되어 만들어질 미래가 그들에게 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의 모습이 펼쳐지기도 한다.
"이해 관계와 욕망의 해결 불가능한 중복, 교차, 대치, 협력, 바로 이런 것들이 도시를 구성한다. 우리가 마찰을 일으키며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생물학적,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진실이다. 그래서 희망은 마찰에 있다.
하지만 말뿐인 희망은 마찰을 거부한다. 비전과 환상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추구되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힘이 가해질 때면 언제나 마찰을 피하고 숨기고 없애려 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한가운데 있던 까다롭고 곤란한 것들을 쓸어버린다. 그러면서 희망은 탐욕에 미래를 열어준다.”
우리는 집을 짓기 위해 집을 허문다. 마치 우리의 도시 재개발을 두고 하는 말 같다. 하지만 이 말은 9/11로 무너진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지을 때의 모습과, 카트리나 태풍으로 무너진 루이지애나 주민들의 재건 과정을 묘사하는 말이다. 꿈의 소유권은 결코 머무는 사람들에게 있지 않았다. 그 꿈은 살지 않고 머릿속으로 짓는 사람들, 돈을 건물과 맞바꾸는 사람들, 하늘 높이 치솟는 건물에서 자신들의 힘을 발견하는 사람들에게 있었다.
“건축가들은 또한 삶이 일어나리라고 예상되는 형식을 만들어내고 싶어한다. 1970년대에는 ‘담화실’이라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거실 한가운데를 약간 낮추고 그 안을 쿠션으로 채웠다. 이런 공간을 확대하면 바로 ‘아트리움’인데, 공동체 활동의 표식이다. 스페인어로 플라자, 이탈리아어로 피아짜라는, 정감있고 활기찬 느낌의 광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형식들이 약속했던 삶을 항상 태동시킨 것은 아니었다. 대화는 구덩이 하나 파 놓는다고 시작되기에는 너무 미묘하고, 유동적이고, 알 수 없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광장도 마찬가지다. ‘대화 시작’이라는 말만큼 대화를 죽이는 것도 없다. 건축은 사회의 다양한 활동들을 연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미리 규정하려고 하면 대부분 실패한다. 어떨 때는 건축가들이 자신들의 디자인이 바란다는 즐거운 소란을 진짜 원하는지조차 의심스럽다. …… 심지어 종교가 폐기되고 나서도 건축은 구세주적인 분위기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 건물이 우리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법
1997년에는 두 개의 기념할만한 문화적 성취가 있었다. 하나는 영화 〈타이타닉〉이다. 다른 하나는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의 개관이다. 그 뒤로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도 중요하기도 하지만, 그 둘을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을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타이타닉은 2억 달러가 들었고, 구겐하임 미술관은 1억 달러가 들었다. 그 거대한 미술관을 짓는 것보다 3시간짜리 영화 하나를 만드는 데 더 많은 돈이 들어간 것이다. 이는 건축의 변화를 잘 말해준다.
“건축에서 시각은 너무나도 많은 감각을 차지한다. 중세에는 건축이 중요한 볼거리 중 하나였다. 스테인드글라스와 조각상, 천장과 벽에 장식된 그림을 사방에 두르고, 그곳에서 음악, 공연, 의식을 치르는 것이다. 성당의 아치와 버팀벽은 더 많은 빛을, 따라서 더 큰 장관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런 요소들 자체가 인상적이라, 미래의 역사가와 관광객들에게는 하나의 매혹이지만, 사실 그런 요소는 오늘날 텔레비전 수상기 뒤에 놓인 회로와 거의 동일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대성당과 영화는 재능과 돈의 동원에서도 유사한 능력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건축이 이런 오락적 기능을 벗는 것 외에, 건축의 변화는 다른 측면에서도 일어났다.
건축의 역사는 용도폐기의 역사와 함께 한다. 건축 기술의 발전은 점점 늘어나는 건물 공간의 용도폐기의 역사와 함께 한다. 빅토리아식 저택은 각각 온도, 공기흐름, 규모, 표면 특성과 같은 물리적 특성에 따라 분리된 공간들, 예를 들어 식품 저장실,식기 보관실, 얼음 창고, 세탁실 등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가로 세로 높이 60×60×90센티미터의 백색 제품인, 냉장고, 식기세척기, 냉동고, 세탁기에 의해 그런 기능들이 아주 간단하게 충족되고 있다.”
“냉장고든 영화든 기술이 건축물의 필요를 줄여 놓았다면, 그리고 건축이 오락에 대한 책임을 벗게 되었다면, 이제 건축은 19세기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용도와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여야 했다. 그래서 건축은 기이한 외관으로 용도의 불확실성에 대처하려 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그 기이한 형상과 놀라운 재료들이 가득한 건물들이 바로 우리가 보고 있는 그것들이다. 그리고 브랜드화된 마케팅의 상징이기도 하다.”
우리가 집과 건물을 짓는 동기가 달라지고 방식이 바뀌면서, 건물은 그 나름의 대응을 하고 있다. 이제 건축의 기괴한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 집은 누구의 것인가?
“르 코르브쥐에의 빌라 사부아니 하는 말들을 들으면 그 집이 건축가의 소유이지 의뢰인의 소유가 아닌 듯하다.
“만들 필요는 있지만 살지는 않아도 된다.” - 브루노 타우트
건물은 짓는 사람의 예술 작품이 아니지만, 아직도 우리는 여전히 건축가의 머릿속 상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사는 사람, 일하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집과 건물을 원하는지 모른다. 이 책에 나오는 리나 보 바르디의 말이다.
“그 건물은 강력한 존재지만 지시하지는 않는다. 크고 대칭적 형태는 하나의 궁전을 연상케 하며, 그 소박함은 엄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궁전의 거대한 계단이나 어마어마한 문은 없다. 또한 건축가들이 종종 사용하는 거리두기 효과를 피하고 있다. 우리로 하여금 뒤로 물러서서 경탄할 것을 요구하는 장엄한 형식이나, 불변의 예술이라는 태도로 깨끗한 세부와 마감을 구사하지는 않았다. 보 바르디는 자신의 목표가 “문화적 우월의식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에 그녀는 즉시성을 제공했다. 그것에 따라 그림들이 제시되고, 또 그에 따라 광장이 대로 옆에 개방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접근법을 “가난한 건축(Arquitetura Pobre)”이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일반콘크리트, 검정고무 바닥재, 그 지역의 포장석 등 기본적인 소재만을 사용했다.”
건축가들은 권력과 친하다고 한다. 아마도 자신의 꿈에 사람들을 놓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모든 난관을 뚫고 완공을 해야하는 그들의 일이 그렇게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건축가들은, 적어도 일부 건축가는 권력에 아부하기를 좋아한다.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는 나치 독일에서 필요 이상으로 오랜 기간 얼쩡거렸다. 그 정권이 자신의 건축 스타일을 채택해주기를 바란 것이 분명하다. 그는 1935년 브뤼셀 국제 박람회의 독일관 디자인을 제안했다. 스바스티카(卍) 형상 이었다. 공식제안서에는 그 모양이 ‘나치의 전투력과 영웅적 의지’를 상징한다고 했다. 미국의 건축가 필립 존슨은 20세기 건축의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당시 미스를 존경했던 젊은 그는 한술 더 떴다. 그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찬양하는가 하면, 회색 셔츠로 불렸던 미국 파시스트당의 창건을 도왔다. 그리고 1939년에는 독일군을 따라 폴란드로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불타는 바르샤바를 보고 “감동적인 장관”이라고 묘사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소비에트 러시아의 후원을 따내려고 애를 썼으나 결국 실패했고, 나중에는 프랑스 비시 정권의 환심을 사려했다.”
건축가들의 ‘권력에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수 많은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건축가들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저자의 실제 경험이 녹아있는 생생한 현장감
이 책은 인간의 욕망이라는 추상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실제 글은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저자가 자하 하디드와 작업한 런던 건축재단 작업 이야기를 한 번 읽어보라. 그 자체로 긴장감 만점의 한 편의 재미있는 드라마다. 건물을 짓게된 사연부터 설계 공모, 자하 하디드 당선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 벌어진 기상천외한 일들이 실제 건설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듯 현장감있는 스토리와 함께 진행된다.
9/11로 파괴된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새로 세우는 과정도 그에 못지 않은 사연들이 가득하다. 수천명이 사망하고, 뉴욕의 상징과도 같았던 건물이 사라져 다시 세우는 전국가적 과제였지만, 실제 건설과정은 겉모습과 달랐다. 건축가들의 독선과 헐뜯기, 〈베니스의 상인〉의 그 영리한 포샤가 다시 온다해도 어쩔 수 없는 부동산업자들의 탐욕은, 과연 이 작업이 매년 9/11이면 그라운드제로에서 추모의 촛불을 밝히고 눈물을 닦던 사람들의 모습과 함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이 책에는 저자가 직접 경험한 수많은 건축 사례들이 자연스레, 그리고 구체적으로 녹아 있다. 아파트 동호수가 없으면 어디가 어딘지 찾을 수 없는 판박이 건물의 익명성이 대세지만, 이 글에서는 개인의 경험이 모두 하나하나 오롯이 살아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개인의 경험이 사변적인 감상에 그치지 않고, 집과 사람, 건물과 도시 그리고 사회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우리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느낌과 활동들이 건물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 그 철학적 순간을 놀라운 통찰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저자의 활동은 영국 언론의 평가를 받아 2014년 영국언론상에서 ‘올해의 평론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이 책도 국제건축평론가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책’ 부문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당선되기도 했다.
리뷰
“이 책은 건물이나 집을 예로 들고 있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말한다. 우리가 아무리 멋진 말로 둘러대더라도, 살아가는 집이나 일하는 건물은 우리의 가치관과 정치적 입장을 또렷하게 드러낸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_《파이낸셜 타임스》
“사람과' 집, 사회와 건물의 관계에 철학이 깃드는 순간을 절묘하게 드러낸다.” _《텔리그래프》
“사려깊고 품격있다. 건축물과 인간 본성에 대한 꾸준하고 분별있는 관찰 덕분에, 해석과 주장이 분명하고 설득력있다. 도식적이거나 권위적이지 않다.”_《스펙테이터》
건축 관련 책들이 대부분 자신들만의 닫힌 세계를 고집하는 반면, 이 책은 흔쾌히 모든 걸 열어놓는다. 전문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 읽는 데 막힘이 없고, 가끔씩 튀어나오는 통찰력 있는 유머가 보는 맛을 한층 더한다._ 《데일리 텔리그래프》
기본정보
ISBN | 9788998243036 |
---|---|
발행(출시)일자 | 2014년 11월 21일 |
쪽수 | 512쪽 |
크기 |
160 * 229
* 36
mm
/ 1002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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