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나무 사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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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에 나는 시나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지는 못하고, 아이들에게 시와 소설을 가르치는 국어 교사가 되었다. 교사가 된 이상 정말로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나는 힘닿는 대로 최선을 다했다. 모든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좋은 선생님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학교에서 나와 만난 나의 아이들의 삶에 내가 밀알만큼이라도 도움이 되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교사가 되어 처음 만난 첫 학교의 아이들은 특별히 더 잊지 못한다. 발령을 받고, 갈탄 난로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 3월에, 그다지 깨끗해 보이지 않는 남학교의 복도를 걸어갈 때의 감회가 새롭다. 여중, 여고를 다닌 나에게 남학교의 살풍경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32년 6개월의 교사 생활을 마무리하고도 10년 가까이 세월이 흘러갔다. 마침내 나는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1년 조금 넘는 동안 80여 편의 시를 쓰고, 시집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고 싶다》를 출간하였다. 소박한 나의 시들을 모아놓고 보니,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같이 했던 나의 학생들이 더욱 그리워졌다.
‘선생님이 드디어 시를 썼어’라고 자랑도 하고 싶어졌다.
아이들을 그리워하다가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산문집은 아이들에 대한 추억과 사랑과 그리움을 담은 책이다.
내 마음의 빛깔은 같아도 젊어서 처음에 만난 아이들과 끝 무렵에 만난 아이들은 상당히 달랐다. 시절도 다르고 나의 나이도 달라져서일까. 조금씩 달라져 가는 모습을 대략 10년 단위로 나누어, 1부 ‘나의 수선화에게’, 2부 ‘살며, 사랑하며’, 3부 ‘홀씨가 머문 자리’로 구분하였다.
이 글이 아직도 어디선가 열심히 살고 있을 그들의 마음에 닿아 작은 등불이 되길 바란다.
◎저자의 ‘서문’ 중에서
작가정보
저자(글) 윤경옥
1957년생
인천 인일여자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졸업
1979 서울 신림중학교 국어교사로 부임
2011 서울 성원중학교에서 퇴임
1987 서울특별시장 표창장
1994 서울특별시교원연수원 교육연수상
1999 서울특별시 교육감 표창장
2009 강원대 교육대학원 졸업, 전문 상담교사 자격 취득
2012 대통령 근정포장
2020 시집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고 싶다》 간행
목차
- 서문
1부 : 나의 수선화에게(1979~1988)
1. 교사가 되어
2. 교사와 학생의 사이
3. 3월 배정, 4월 발령
4. 초심을 잃지 말아야
5. 승주의 조언
6. 우리 반 종언이
7. 연극 공연
8. 완곡한 말솜씨
9. 새로 오신 도덕 선생님
10. 민이의 결석
11. 철희 어머니
12. 내 모습 패러디
13. 글 잘 쓰는 정호
14. 메뚜기볶음 반찬
15. 그리운 환이
16. 첫 학교의 기억 마무리
17. 한자 시험
18. 인연
19. 온탕과 냉탕
20. 국화꽃 한 송이
21. 복남이 사건
22. 충청도에서 온 아이
23. 진학 지도
24. 주용이
25. 가가멜 교장 선생님
2부 : 살며, 사랑하며(1989~2000)
26. 신설 학교
27. 교실에서 레슬링을 하는 아이들
28. 현중이의 꿈
29. 부장 선생님
30. 자유를 위한 변명
31. 등기 우편물
32. 배철수의 크리스마스카드
33. 어물전
34. 참새 방앗간
35. 그리운 연주
36. 수정이의 속 깊은 마음
37. 상계동의 슈바이처
38. 줄다리기
39. 우리의 인생
40. 사춘기
41. 내성적인 성품
42. 올리브나무 사이로
43. 새우튀김
44. 교감 선생님
45. 연구교사가 되어
46. 나, 졸도하다
47. 장학사가 되려고
48. 학교 배정
3부 : 홀씨가 머문 자리(2001~2011)
49. 기타 치는 한문 선생님
50. 명문 학교 나오신 도덕 선생님
51. 학교에 도둑이 들다
52. 가을 시화전
53. 넛지(Nudge)
54. 삶은 토종밤
55. 우리 반의 새터민
56. 개구쟁이들
57. 급식 지도
58. ‘말하기’ 수업
59. 선우가 출구를 잃고
60. 귀여운 남준이
61. 1학년 3반의 추억
62. 모두가 좋아하는 재웅이
63. 전기문 ‘이육사’
64. 가출
65. 연지의 꿈
66. 일탈 행동
67. 영리한 형언이
68. 5월의 선풍기
69. 컨닝 사건
70. 사업가 마인드
71. 천사
72. 그리운 승현이
73. 실내화
74. 전학을 보내다
75. 논술 채점
76. 제주도 수학여행
77. 노랑머리
78. 반말을 듣다
79. 돼지와 멸치
80. 잃어버린 돈
81. 운서의 학교생활
82. 학부모를 위한 공개수업
83. 일찍 등교하는 종훈이
84. ‘나대다’라는 말
85. 컨닝과 오해
86. 준수 아버지
87. 퇴임을 하면서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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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제자들과의 인연을 담은 윤경옥 시인의 《올리브나무 사이로》는 담백하다. 시인들의 산문은 대체로 담백하다. 그 담백함이 어릴 적 내 모습을 선생님들의 눈길로 살필 여유를 주었는지, 마음이 자꾸 옛적으로 끌렸다. “학교에서 나와 만난 나의 아이들에게”라는 헌사를 지닌 이 책이 많은 독자들을 만나리라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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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지식만으로 자라지 않는다. 사람은 사랑이 있어야 어른이 된다. 《올리브나무 사이로》는 좋은 선생님이 좋은 학교를 만든다는 진실을 담아낸다. 담백하지만 강력하다. 학교 붕괴를 둘러싼 소문 속에서도 학생들을 마음으로 사랑하는 선생님들의 헌신이 학교를 살린다. 지은이는 아이들과 진심으로 만나,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질풍노도의 과정을 같이 넘어선다. 《올리브나무 사이로》는 다정하고 사려 깊은 선생님과 통통 튀는 아이들이 빚는 삶의 협주곡이 한 편의 서정시처럼 빛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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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감동적인 글은 삶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32년여의 삶을 책 한 권에 담으려면 많은 고심과 용기가 필요하다. 이 책은 교육과 교사에 대한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고뇌, 행복, 절망, 안타까움이 모두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 쉽게 읽히고, 쉽게 감동받으며, 쉽게 공감하게 된다. 삶은 그리 어렵지 않고, 이렇게 쉽게 쓰여질 수도 있다.
책 속으로
어느 날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갔더니 누가 오렌지를 까서 먹고 그 껍질만 교탁 위에 올려놓았다. 선생님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누가 그랬냐고 나오라고 소리 지르며 야단쳐야 할까? 아니다. 이렇게 하라고 써 있었다. “누가 오렌지 껍질을 여기 놓았느냐? 나는 껍질보다 알맹이를 좋아하니 다음에는 알맹이를 주렴.” 그러고 수업을 시작하면 된다고.
내 입장에서 그렇게 약간 오글거리게 대응하는 일은 쉽지 않겠지만 중요한 일화로 마음에 담아 두었다. 아마도 나라면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고 수업을 시작하지 않았을까. -p.19
그날도 아이들을 보내고 한자 테스트한 것을 가지고 교무실에 돌아와 채점을 하였다, 정운이가 9개를 다 맞추고 한 글자에서 한 획을 빠뜨렸다. 내가 빨간 펜으로 한 획을 마저 긋고 다 맞은 걸로 해 주었다. ‘이 정도면 다 맞은 거나 마찬가지야 잘 외웠네’ 하면서. 빨간 펜으로 또렷하게 한 획을 마저 그어 주었으니 정운이도 분명히 그것을 보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분 좋으라고 선생님이 점수에 인심 쓰셨구나’ 이 정도 생각할 줄 알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나중에 그 글자가 중간고사 시험에 나왔고, 정운이는 여전히 한 획을 빠뜨려서 틀리고 말았다. 내가 그 쪽지시험 볼 때 틀렸다고 빨간 줄을 좌악 그었다면 아마도 정운이는 그것을 정확하게 다시 외웠을 것이고 진짜 시험에서 틀리지 않았을 텐데. 아쉬움인지, 미안함인지, 후회인지 뭔가 복잡한 심정이 되었다. -p.54
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은우는 비빔국수를 배달 중인데 불어터지면 안 되니까 가던 길을 속히 가야 했다. ‘참새 방앗간’ 주인이라니 기쁘다. 아르바이트나 점원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버젓이 가게를 차렸다니 뭔가 안심이 되면서 새록새록 기쁘다.
‘참새 방앗간’은 김밥도 팔고 비빔국수도 파는 소박한 분식집이다. 우리 가족도, 물론 은우네 ‘참새 방앗간’은 아니고 우리집 근처의 ‘참새 방앗간’에 가끔 김밥이나 비빔국수를 먹으러 갔었다. -p.94
선우는 잘 지내고 있는지, 총명하지만 어딘가 엉뚱한 태윤이는 여전히 그러고 있는지, 작은 귀염둥이 남준이는 잘 자라고 있는지, 착하고 통솔력 있었으나 앞장서서 실내화 바람으로 운동장으로 뛰어나가던 반장은 여전히 반장을 하고 있는지, 곰처럼 생겼어도 순하기만 했던 영식이는 좀 날렵해졌는지, 우르르 운동장으로 몰려나가다 결국은 얼어 있던 서편 현관문을 깨뜨리는 바람에 애꿎은 수인이가 다리를 다쳐 한 달간 휠체어를 탔었는데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은연이는 학교에 잘 다니는지, 성윤이는 이제 청소 시간에 도망가던 일을 멈추었는지, 많은 것이 궁금하고 그리웠다. -p.170
-어, 뒈졌네.
하는 어느 남학생의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누군지 알 것 같은 목소리다. 품행이 불량한 학생은 아니다.
이 학교에 와 보니 예의바르면서도 왠지 좀 까다롭고 쉽게 곁을 주지 않는 아이들이 종종 있다. 먼저 학교의 아이들과는 많이 다르다.
전기문이 시작되는 단원의 맨 앞 페이지에는 간단하게 정리해놓은 연표가 있다. 이육사의 생애를 요약한 그 연표를 들여다보다가 생몰연도를 보았나보다.
분필을 든 채로 돌아섰다. 수런수런하던 아이들도 놀라 모두 입을 다물고 일제히 나를 바라본다. 그 남학생을 잠깐 쳐다보다가 한마디 했다.
-김영수! 네가 죽으면 뒈진 거고, 이육사는 돌아가신 거야.
그 이상 다른 말은 하지 않고 바로 수업을 시작하였다. 아무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조용하다. 수업도 별일 없이 진행되었다. -p.174
기본정보
ISBN | 9788997871513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05월 30일 |
쪽수 | 234쪽 |
크기 |
127 * 188
* 16
mm
/ 257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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