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의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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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내가 미술사학을 전공한 지 40년이 되는 해이다. 1981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 미술사학과가 신설되면서 1기생으로 입학을 하여 미술사학이라는 학문을 처음으로 접했을 때의 설렘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국내에서 현대미술사를 전공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그 시절, 필요한 문헌 자료도 지금처럼 풍부하지 못했고 선행 연구도 별로 없는 상황이었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미술작품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이해하는 미술사학의 매력을 알아가면서 하루하루가 정말 즐겁고 행복했다. 특히 학부에서 수강한 미술사 수업에서는 거의 접하지 못했던 초현실주의 운동을 대학원에서 심층적으로 공부하게 된 것은 나의 학문적인 행보에 있어 큰 의미가 있다. 1차 세계대전이라는 참상을 겪으면서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진실한 세계인 초현실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던미술사를 보다 심층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결심을 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석사학위를 받은 후 나는 초현실주의 운동의 본고장인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수년간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곳곳의 미술관들을 돌아보면서 많은 미술작품을 직접 보고 분석할 수 있었고 그러한 경험은 내게 학문적으로 성장할 수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내가 미술사학의 여러 방법론 중에서도 미술의 사회적 기능, 즉 미술작품은 순수한 개인적 표현임과 동시에 시대를 증언하고 사회적 시각을 대변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집중하는 사회사적 방법론을 선호하게 된 것이 그 시절부터였다.
〈중략〉
나는 개인적으로 전시나 미술가들에 대한 비평문을 많이 집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저서를 위해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지인들이나 제자들과 관련된 전시의 서문이나 비평문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 기회에 흩어져있던 글들을 함께 엮어주는 것도 좋을 것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마지막 5부에서는 이 책의 주제에 맞는 단문과 비평문들을 추려서 수록하였다.
바쁜 일정에도 이 책이 완성될 수 있도록 꼼꼼하게 교정을 도와준 강은주, 전희정, 한승혜를 비롯한 제자들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성원과 격려의 마음을 보내준 모든 제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또한 작품 게재를 허락해주신 작가 선생님들과 미술관, 그리고 까다로운 저자의 요구를 맞추느라 수고하신 디자인나눔의 관계자분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 계승되어 온 평범함의 미술사는, 예술 장르 간에, 전통적인 미술 재료와 일반적인 물질 사이에, 그리고 미술가와 관람자 사이에 존재하는 위계에 대한 도전의 역사였다. 미술 창조에 있어 인간의 풍부한 상상력과 불굴의 도전정신만 있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던 평범함의 전략은 형식주의 모더니즘 미학과 함께 현대미술사를 이끄는 역동적인 추진력이었다는 사실이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전달되었기를 바란다.
작가정보
저자(글) 오진경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프랑스 파리 1대학(Panth?n-Sorbonne) 대학원에서 현대미술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현재까지 이화여자대학교 인문과학대학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양미술사학회 회장, 현대미술사학회 회장, 미술사교육학회 회장을 비롯하여,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한국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위원,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관장 등을 역임하였다.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미술, 팝아트, 누보 레알리즘 그리고 페미니즘 미술사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그에 관한 수십 편의 연구논문을 전문 학술지에 발표하였다. 『다다와 초현실주의』, 『페미니즘 미술사』, 『1960년 이후의 현대미술』 등의 번역서와 공저 Understanding Korean Art: from the Prehistoric through the Modern Day 등이 있다.
목차
- 책머리에
1부 평범함의 도전
2부 일상에서 찾는 새로운 현실
3부 여성, 중심에 서다
4부 정보사회 속의 미술사
5부 단문과 전시비평
참고문헌
지도 논문 목록
찾아보기
책 속으로
정보과학기술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발달하면서 현대 사회의 각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특히 1980년대 초반 군사적인 목적을 위해 개발되었던 인터넷4은 이제 정치·사회·교육·문화 그리고 예술 분야에까지 현대인 삶의 모든 분야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정보혁명을 추진하고 옹호하는 사람들은 컴퓨터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인간은 모든 일을 보다 효과적이고 수월하게 수행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인간의 삶의 수준도 더욱 향상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들은 인터넷 활용의 많은 장점을 거론하면서, 그물망이라는 의미의 네트(net)라는 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거대한 규모의 정보통신망을 통해 지구의 모든 사람과 문화가 서로 하나로 연결되고 소통할 수 있게 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과거 매스미디어의 시대에서 볼 수 있었던 생산자와 소비자, 정보 송신자와 수신자라는 이분법적 대립의 의미가 소거되고,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방식이 아니라 쌍방 간의 상호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는 점이야말로 인터넷의 가장 큰 가능성이라고도 이야기한다. 미술경험에 있어서 인터넷의 활용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선 인터넷이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미술작품에 경제적이고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한다는 점, 그리고 정보전달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설치되어 있다면 미술작품에 관한 방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흡수할 수 있고, 컴퓨터의 기능을 통해 그 방대한 정보들을 신속하고 조직적으로 정리·보관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예술이 특권층의 전유물로 간주되었던 점을 고려해 볼 때, 이제 정보과학기술의 발전이야말로 미술 감상의 대중성을 더욱 확대시킬 수 있는 분배적 측면에서 예술의 민주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기에 이른다. 인터넷에 대한 이러한 긍정적인 사고는 1930년대에 발터 벤야민이 기존의 지배질서에 저항하기 위해 대중매체가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매스미디어의 본질이 의사 전달이나 소통에 있기보다는 기존의 지배질서를 강요하는 근원적 강제력에 있다고 보았던 장 보드리야르의 견해를 생각해 보자. 그는 매스미디어의 구조를 논하는 글에서, 미디어가 어떠한 형태로든 사용자로부터의 응답의 형식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미디어가 지니는 일방적인 대화 행위라는 근본적 속성을 전혀 변화시키지 못한다고 지적하였다. 예를 들어 매스미디어가 독자의 편지나 전화, 앙케트 등의 형식을 이용하면서 일종의 정보 전달의 ‘역전성’을 염두에 둔 열린 대화의 장을 벌이는 듯이 보이더라도, 그러한 독자의 반응이나 수정행위는 지배 코드의 권력을 확장하고 재생산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뿐, 발송자와 수신자 간의 역할 구분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미디어가 피드백(feed-back)이 가능한 상호행위(interaction)의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말하지만, 미디어의 속성상 발송자와 수신자 간의 그러한 ‘역전성’은 진정한 ‘상호성’과는 무관한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피드백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형태라고 보드리야르는 말한다.5다. _본문 284~285쪽
기본정보
ISBN | 9788997595655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05월 28일 |
쪽수 | 430쪽 |
크기 |
180 * 240
mm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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