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선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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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은 오늘날 의미가 변질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젊은 세대의 대화를 잘 알아듣지 못하고, 벌어지는 사건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한물간 구시대 사람들의 모습은 젊은 세대에 밀려난 노인의 권위를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복잡했던 사건을 해결하고 응어리졌던 마음을 풀어가는 지혜는 노인들에게서 나온다.
돈이 없어도 소중한 사랑을 받고, 명예보다 정직을 지키고, 권력은 없어도 가족애가 있고, 유명하지 않아도 남을 먼저 생각하는 온정이 있는 사람들. 그들은 이 시대를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휴머니스트들이다. 구자명의 소설들은 이 험난한 세상에도 따뜻한 손길이 있음을, 가야 할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되어줄 지혜가 있음을 알려준다.
작가정보
목차
- 호야 이모
귀로
날아라 선녀
나리나리 개나리
누가 처용의 비늘을 보았는가
처용의 딸
작품 해설_정현기
출판사 서평
이 시대 휴머니즘을 위하여
친절한 자명 씨
구자명은 요즘 보기 드문 소설가이다. 인기에 천착하지 않는다는 점도 그렇고, 원고 생산에 집착하지 않아 과작(寡作)한다는 점도 그렇고, 사회에서 남들이 잘 돌아보지 않는 구석을 찬찬히 살핀다는 점도 그렇다. 그런 면에서는 아마도 작고한 아버지 구상(具常) 시인의 성격을 닮은 모양이다.
구자명의 소설집 《날아라 선녀》에는 모두 여섯 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을 보면 참 안타깝고 마음이 짠하다. 빚에 시달리는 중년 가장, 가정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어쩌지 못하는 아들, 부당한 대우를 받는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활동하는 목사와 그의 아내, 직장을 때려치우고 시나리오 작업에 매달리는 실업자……. 작품에는 우리 사회 ‘보통 사람’이라 불리는 인물들의 삶의 편련이 켜켜이 들어와 박혀 있다.
책의 말미에 해설을 쓴 정현기 교수의 말마따나, 이들의 삶은 오늘날 그 의미가 변질되어버린 가족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호야 이모〉의 주인공 백창호, 〈귀로〉에 등장하는 어머니, 〈날아라 선녀〉의 명노인은 모두 한물간 구시대 사람들이다. 이들은 젊은 세대의 대화를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벌어지는 사건들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다. 사회가 핵가족화하면서 생산과 소득과 정보를 독점한 젊은 세대에 밀려난 노인의 권위는 마치 구닥다리 유물처럼 추레하다.
그러나 시류의 중심에 서 있는 젊은 세대의 삶은 전혀 행복하지 않다. 그들은 빚에 쪼들리고, 배우자와의 갈등에 마음 졸이며, 직장과 사업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치여 어쩔 줄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삶이 진정 옳은 삶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결국, 소설의 끝부분에서 그동안 복잡했던 사건들을 해결하고, 응어리졌던 마음들을 풀어 모두가 행복한 종국으로 이끌어가는 지혜는 노인들에게서 나온다. 심지어,〈나리나리 개나리〉에서는 사당지기로 둔갑하여 나타난 무의공 이순신 할아버지의 지혜를 담은 수수께끼 같은 한 마디가 주인공이 직면한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풀어주기도 한다.
구자명의 소설을 읽다 보면, 이토록 험하고 냉혹한 세상에서도 따듯하게 내미는 손길이 있고(호야 이모), 갈 길 잃은 우리에게 이정표가 되어줄 지혜가 있음을(귀로) 알게 되어 마음 훈훈해진다. 친절한 자명 씨.
일상적 사건의 배경에 숨어 있는 신화들
롤랑 바르트가 말했듯, 훌륭한 작품의 특징은 ‘복수(複數)의 독서’가 가능하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구자명의 작품은 여러 층위에서 우리에게 말을 건다.〈귀로〉를 보자. 주인공의 가족은 전주 친척집 혼사에 다녀오는 김에 1박2일의 나들이에 나선다. 전주 외곽 온천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군산에 들러 저녁을 먹은 가족은 서울로 올라오는 길을 찾지 못해 헤맨다. 서해안고속도로로 진입하는 길이 나와 있어야 할 지도는 너무 오래되어 새로 난 길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여기저기서 길을 묻고, 같은 길을 여러 차례 돌고 도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남편은 짜증을 내고, 아내는 불만이 쌓인다. 뒷좌석에 앉은 할머니와 손자는 피로에 지치고, 밤은 깊어 가는데 ‘귀로’는 오리무중이다.
그러는 사이, 아들과 어머니는 젊은 시절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와 남편 생각에 젖는다. 아들에게 증오의 대상이었던 아버지가 묻혀 있는 곳이 바로 그들이 헤매는 곳에서 가까운 서산 땅 팔봉면이고, 며느리는 차안에서 언뜻 죽은 시아버지의 혼령을 본 듯한 착각(?)에 빠진다. 결국, 아들의 증오와 어머니의 회한이 서로 녹아들어 용서와 동정으로 변하면서 그들은 서울로 향하던 차를 돌려 서산 아버지의 묘를 찾는다.
이 이야기는 어느 평범한 가정의 단순한 가정사로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층위의 독서는 귀로를 찾지 못해 늦은 밤을 헤매는 등장인물에서,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험한 여행길에 올랐던 오디세우스의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가 하면, 등장인물들의 귀로는 현실 세계인 서울이 아니라, 화해와 용서의 세계를 상징하는 아버지의 묘소로 향하고 있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힘, 균형을 추구하는 초월적인 의지(demiurge)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플라톤적 독서도 가능하다.
이처럼, 중첩된 서사의 질서는 단편 〈누가 처용의 비늘을 보았는가〉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청강생 이묵이 제출한 리포트의 내용은 이 소설의 기본적인 서사를 구성한다. 그는 한편으로 처용을 동해 왕의 아들이며 셔먼(巫子)으로 해석하고, 다른 한편으로 배를 타고 신라에 상륙한 바그다드 상인으로 해석한 소위 ‘픽션화한 보고서’를 교수에게 제출한다. 그러나 이 소설의 줄거리를 이루는 이 두 편의 서사는 사실, 저자인 구자명이 소위 비평가라는 사람들에게 ‘육성으로’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그 점을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순수 창작자들의 놀이에 동참하여 그들이 마시는 밀주密酒에 함께 취해볼 용의가 있는가?” 이것은 창작과 비평이라는 인간의 두 가지 활동에 대해 수세기에 걸쳐 던져졌던 신화적 질문으로, 독자는 작품을 통해 텍스트의 서사와 텍스트 외적 대화라는 두 층위의 독서를 경험하게 된다.
휴머니즘에 보내는 찬사
세상살이가 참 고단하다.
집에서는 돈 걱정에 시달리고, 가족 간 불화에 시달리고, 직장에 나가면 비루한 직장 상사, 배반한 동업자로부터 아물지 않는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그런대로 잘사는 것처럼만 보인다. 주식에서 대박을 냈다는 친구, 신문의 인사동정에 승급이 소개된 지인, 연봉이 나보다 대여섯 배나 많은 첫사랑의 남편 얘기를 들으면 나 자신이 하찮은 미물처럼 느껴진다. 나만 한심하고, 부족하고, 도무지 헤어날 가망이 없는 삼류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때로 여기서 모든 걸 끝내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럴 때, 구자명의 《날아라 선녀》를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병삼, 동식, 종락, 우섭, 명노인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어딘가 모자라고, 하찮고, 고통스러워하고, 절망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돈이 없어도 그보다 더 소중한 사랑을 받고(호야 이모), 명예보다 더 아름다운 정직을 지키는 사람들이다(날아라 선녀). 권력은 없어도 가족애가 있고(귀로), 유명하지 않아도 남을 먼저 생각하는 온정이 있어 삶이 견딜 만한 사람들이다(나리나리 개나리). 결국 그들은 이 시대를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휴머니스트들이며, 그런 점에서 구자명의 소설은 휴머니즘에 보내는 찬사이다. 이토록 큰 위무와 감동을 준 저자의 휴머니즘에도 찬사를.
기본정보
ISBN | 9788996003038 |
---|---|
발행(출시)일자 | 2008년 05월 20일 |
쪽수 | 289쪽 |
크기 |
140 * 195
mm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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