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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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질병, 굶주림과 죽음이 가득한 1930년대 인도의 캘커타. 소설가 피터 모르간은 ‘길을 잃기 위해 무작정 걷는’ 기나긴 여정 중에 미쳐 버린 거지 여인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시작한다. 한편, 라호르의 부영사 장 마르크 드 H는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프랑스 대사로부터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대사관에서 열린 파티에 초대된 그는 대사의 부인인 안 마리를 만나게 되고, 묘한 매력을 지닌 그녀에게 끌리게 되는데….
작가정보
저자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1914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백인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1932년 프랑스로 건너와 소르본느 대학에서 법학과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1943년 아시아에서의 유년기와 가족애를 소재로 첫 소설 『철면피들』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후 『태평양의 방파제』, 『북중국의 여인』, 『모데라토 칸타빌레』, 『히로시마 내 사랑』, 『인디아 송』 등, 50여 년에 걸쳐 70편에 달하는 작품을 발표하며 프랑스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1984년 공쿠르 상을 수상한 『연인』은 프랑스를 비롯한 35개 국어로 번역돼 세계 각국에서 수백만 부가 팔렸고,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알랭 레네 감독이 연출한 「히로시마 내 사랑」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와 연을 맺게 된 뒤라스는 1966년 「라 뮈지카」를 통해 활동 영역을 영화로까지 확장시킨다. 그녀가 감독한 작품으로는 「인디아」,「나탈리 그랑제」, 「트럭」, 「오렐리아 슈타이너」 등이 있다. 정치활동과 사회운동에도 활발히 참여한 뒤라스는 2차 세계 대전 중 프랑수아 미테랑과 함께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이기도 하였으며, 이후 전쟁 포로들과 강제 수용자들의 정보를 다루는 신문 《리브르》를 발행하는 등 문학 외부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1989년 이후 건강 악화로 치료를 받던 뒤라스는 1995년에 마지막 작품『이게 다예요』를 발표하고 1996년 세상을 떠났다.
역자 장소미는 숙명여자대학교 불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파리3대학에서 영화문학 박사과정을 마쳤으며, 숙명여자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미셸 우엘벡의 『지도와 영토』를 비롯하여 『지금 일어나 어디로 향할 것인가』, 『이런 사랑』, 『10월의 아이』, 『포기의 순간』, 『악어들의 노란 눈』, 『거북이들의 느린 왈츠』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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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난 인생을 가볍게 살아요. -그녀는 손을 빼내려고 애쓴다.- 난 그렇다고요. 나한텐 모두가 옳죠. 모두가 완전히, 철저하게 옳아요."
-160쪽
조지 크라운이 말한다.
"아세요? 피터가 그 사반나케트의 노래를 모티브로 소설을 쓰고 있는 거?"
피터 모르간이 결국 웃음을 보인다.
"인도의 고통에 여간 자극을 받지 않을 수가 있어야 말이죠.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그렇지 않나요? 자기가 안전하게 숨을 쉴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이 고통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죠. 난 그 여자에 대해 상상한 것들을 메모해요."
"왜 하필 그 여자죠?"
"그 여자한텐 더 이상 닥칠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문둥병조차 말이죠."
-176~177쪽
부영사가 샤를르 로제트에게서 시선을 뗀다. 발코니의 난간을 움켜쥔 그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그가 말한다.
"당신은 행운아요. 그녀를 울게 하다니."
"뭐라고요?"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그녀의 하늘, 그건 바로 눈물이오."
-194쪽
호기심이 이는 여자예요. 보신 적 있으세요?
아니, 모르오.
밤에 들리는 노래가 그 여자가 부르는 거라는 걸 아셨습니까?
아니, 모르오.
그 여자가 대부분의 시간을 이 부근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갠지스 강가에서 보낸다는 걸, 본능처럼 늘 백인들이 있는 곳으로 가되 바짝 다가가지는 않는다는 걸…… 아셨습니까?"
마침내 부영사가 말한다.
"진행되는 삶 속의 죽음, 허나 결코 삶을 앗아가지 않는 죽음 말이오? 바로 그거요?"
바로 그거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197쪽
"그녀는 계속 걸어요. 난 특히 이 점에 중점을 둘 거예요. 그녀는 동일한 흔들림 -그녀의 발걸음의 흔들림-의 탄성을 받아 계속되는, 무수한 다른 걸음들로 점철된 아주 기나긴 보행 그 자체죠. 그녀는 걸어요. 문장을 주워섬기며 걷고, 철도와 도로를 따라 걷고, 만달레이며 프롬이며 바세인 같은 지명들이 새겨져 땅에 꽂힌 마을 경계석들을 뒤로 휙휙 지나치며 걷죠. 그녀는 지는 해를 향해 돌면서 이 빛에 의지해 십년 동안 시암과 캄보디아와 비르마니를 지나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마침내 캘커타에 이르러 멈추는 거지요."
-203쪽
"그 애가 결정적으로 길을 잃는 곳은, 어떻게 길을 잃을지 알게 되는 곳은, 갠지스 강물 속이 될 거요. 자신이 누군지 잊고, X의 딸이었는지 Y의 딸이었는지도 더 이상 모르고, 더 이상 권태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곳 말이오. -조지 크라운이 웃는다-하긴 우리도 원칙적으로는 바로 그것 때문에 여기 있는 것 아니오? 절대, 절대로, 조금이라도 권태롭지 않으려고 말이오."
-205쪽
나는 설명할 수 있는 이유 없이 웁니다. 그저 고통이 나를 관통하는 것 같다고 할까요. 누군가 울어야 하고, 그 누군가가 바로 나인 것처럼요.
그녀는 그들, 캘커타의 남자들이 바로 곁에 있다는 것을 안다.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만일 그녀가 울었다면, 아니다. 그녀는 이제, 아직도 울기에는 너무 오래된 고통의 포로가 된 느낌을 준다.
-224쪽
출판사 서평
에디션 D의 탄생
욕망, 우리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이것은 때때로 부정적이고 위험한 것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 형태와 크기는 다르더라도 욕망을 품고 살아간다. 다만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제하거나 억누르는 사람, 혹은 비틀어진 욕망을 평범하지 않은 방식으로 표출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소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내면의 풍경들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 번쯤 고요히 침잠하여 자신의 마음속 욕망을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性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다룬 소설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폴린 레아주의 『오(O)의 이야기』, 사드의 『소돔 120일』,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 등이 그 대표적인 작품이지만, 장르적 한계로 일반 독자까지 끌어 모으기에는 무리라는 평과 함께 포르노 수준을 넘는 설정과 묘사로 지탄의 화살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에로틱 로맨스 소설은 이제 세계 모든 연령의 여성을 사로잡으며 출판계를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E. L. 제임스)와, 『크로스파이어 유혹 1,2』(실비아 데이) 등의 에로틱 로맨스 소설이 ‘여성 취향의 로맨스 소설'이라는 비판이 무색하게 출간되자마자 폭발적인 판매 부수를 기록,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자리를 굳혔다.
인간의 에로티시즘과 욕망을 말하는 그책의 문학 시리즈인 에디션D(desire)는 단순히 말초신경을 자극시키는 노골적인 묘사가 아닌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깊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세계적인 열풍에 한발 앞서 2011년 국내 출간되었던 조세핀 하트의 『데미지』, 제임스 발라드의 『크래시』, 엘리자베스 맥닐의 『나인 하프 위크』가 표지 디자인 및 본문 가독성을 높여 개정된 형태로 재출간 되었으며,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비터문』과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부영사』를 더해 총 5권이 동시 출간되었다. 이어서 2013년 하반기에는 앙리 피에르 로쉐의 『줄앤짐』, 필립 장의 『베티 블루』까지 추가로 출간할 계획이다. (총 20권 출간 목표)
이처럼 에디션D는 인간 내면에 숨겨진 은밀한 욕망의 세계를 탐험하고, 나아가 인간이라는 가장 불가해한 존재에 대해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 『데미지』,『크래시』,『나인 하프 위크』는 표지 및 본문이 개정된 형태로 재출간되었습니다.
에디션D 시리즈 05 - 부영사 LE VICE-CONSUL
고통은 가장 순수한 시이며 완전한 노래
비참한 현실이 만들어내는 기묘하고도 역설적인 아름다움
“나는 설명할 수 있는 이유 없이 웁니다.
그저 고통이 나를 관통하는 것 같다고 할까요.
누군가 울어야 하고, 그 누군가가 바로 나인 것처럼요.“
진행되는 삶 속의 죽음, 허나 결코 삶을 앗아가지 않는 죽음.
가난과 질병, 굶주림과 죽음이 가득한 1930년대 인도의 캘커타. 세상의 모든 고통이 모이는 듯한 그곳에서 소설가 피터 모르간은 한 미친 거지 여인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시작한다. ‘길을 잃기 위해 무작정 걷는’ 기나긴 여정 중에 미쳐 버린 그녀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자신이 태어나 자란 곳인 바탐방이라는 단어만을 기억하고 반복해서 말할 뿐이다.
또 하나의 인물, 라호르의 부영사 장 마르크 드 H. 그는 거지들과 나병 환자들이 모여 있는 캘커타의 광장을 향해 총을 쏜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프랑스 대사인 스트레테르로부터 처분을 기다리는 중이다. 어느 날, 대사관에서 열린 파티에 초대된 그는 대사의 부인인 안 마리를 만나게 된다. 무성한 추측과 소문의 중심에 있는 이들의 모습에,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부영사는 안 마리, 관대한 남편의 묵인과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정부를 여럿 거느리지만 존재의 근본적인 권태와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한 그녀에게 묘한 매력을 느낀다.
프랑스 문학의 거장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그려낸 인간의 욕망
『부영사』는 전통적 소설 기법과 결별하고 누보로망에서도 비켜 나와 자신만의 독자적 글쓰기를 해온 뒤라스가 오십 줄에 접어들어 작가적 개성이 무르익은 시기에 집필한 소설이다. 뒤라스적 특성, 즉 심리묘사 배제, 언어의 간결성, 반복, 암시, 맥락 없는 대화, 모호성, 감각적 분위기, 끝내 폭발되지 않는 욕망 등이 집약돼 있다. 프랑스에서는 뒤라스의 작품세계를 연구할 때 끊임없이 거론되는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다. 『부영사』에서 뒤라스는 철저히 혼자인 인물들을 지탱하는 익숙한 정적과 침묵, 타인과의 간극, 회피 속에서 이타심을 강요당할 때의 괴로움, 외면하고픈 현실과 동떨어지지 못한 채 끝내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짤막하고 간략한 대화와 묘사를 통해 그려냈다.
이 소설에는 일견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된다. 어린나이에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임신했다는 이유로 어머니한테 쫓겨나 캄보디아의 톤레사프에서부터 무작정 10년을 걸어 인도의 캘커타에 이른 여자걸인의 이야기가 그 하나고, 계절풍이 부는 인도의 무더위와 권태에 짓눌린 캘커타 주재 프랑스 대사의 부인 안 마리 스트레테르와 라호르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캘커타로 좌천돼 당국의 처분을 기다리는 중에 안 마리 스트레테르를 사랑하게 된 라호르 주재 부영사의 이야기가 다른 하나다.
수많은 생략과 침묵을 채우는 것은 간략한 묘사들이고, 대화와 수군거림은 넘쳐나지만 불충분하다. 또한 빈약한 정보마저 틀리거나 모호하다. 캘커타는 인도의 수도가 아니고, 걸인 소녀가 거치는 인도차이나의 도시들은 실재하지만 허구의 세계를 구축하는 구체적 지표의 기능을 하지 않으며, 학창시절에 대한 부영사와 유럽협회장의 추억은 혼동되거나 상호 혼합된다. 하지만 줄거리 자체를 따라가기보다 캘커타의 계절풍과 무더위, 길가에 늘어선 종려나무들, 갠지스 강가에서 얽히고설켜 잠을 자다가 음식을 얻기 위해 프랑스 대사관 앞으로 자리를 옮겨 널브러져 있는 문둥이들, 휑한 테니스장, 걸인 소녀의 허기와 바탐방의 노래, 안 마리 스트레테르의 슈베르트 피아노 연주, 부영사가 휘파람으로 부는 인디아나 송. 부영사의 총격, 부영사와 협회장의 비몽사몽간의 대화 그리고 연회장의 선풍기 바람아래서 느릿느릿 춤추는 사람들 등 장면 장면 이미지들을 천천히 따르며 상상력을 동원하다보면 어느 순간 이 모든 상반된 것의 조각들이 놀랍게도 하나로 총합될 것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연출한 영화 「인디아 송」의 모태가 된 『부영사』
뒤라스는 1996년 사망하기 1년 전까지 소설, 산문, 희곡, 시나리오 등 장르를 넘나들며 왕성한 필력을 펼쳤고, 실험적 영화를 개척했다. 뒤라스가 영화로 만든 「인디아 송」은 『부영사』의 배경과 등장인물을 그대로 차용하여 만든 작품이다.
「인디아 송」은 뒤라스가 카메라로 다시 쓴 『부영사』에 가깝고, 소설과 영화가 상호보완적이다. 특히 유령같이 대사관을 떠도는 인물들과 인물 못지않은 존재감을 드러내는 배경들, 취하도록 흐르는 음악, 아련한 분위기를 묘사하는 데 완벽해 보이는 100% 보이스 오프 기법은 소설의 이미지를 구체화하면서도 또 다른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 부영사와 안 마리 스트레테르의 욕망과 관능을 표현해 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인디아 송」에 매력을 느꼈다면, 이 작품의 모태가 된『부영사』에도 분명 흠뻑 빠져들 것이다.
추천의 글
비참한 풍경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인생의 반영이다. 극단의 상태에 다다른 부영사의 행동과 안 마리 스트레테르의 인격화된 양심이 대비를 이루며 매혹을 선사한다.
프렌치 리뷰
거지 여인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고, 어느 다른 여자도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부영사라는 인물은 그 여인이 존재함으로써 존재한다. 사람들이 울부짖고, 이 세상의 고통스러운 광경을 목격함으로써 미쳐 버리게 된다면, 그것은 그 고통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파리 매거진
어리둥절하고 당황스런 소설의 방식들은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독서에 많은 수고를 들이도록 요구하지만, 바로 여기에 뒤라스 소설의 매력이 있다. 힘들지만 일단 내맡기고 적극적으로 빠져들면, 예기치 못한 선물 같은 매혹과 황홀경을 선사받을 수 있다.
장소미 (옮긴이)
기본정보
ISBN | 9788994040394 | ||
---|---|---|---|
발행(출시)일자 | 2013년 02월 20일 | ||
쪽수 | 246쪽 | ||
크기 |
114 * 185
* 20
mm
/ 216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에디션D
|
||
원서명/저자명 | (Le)vice-consul/Duras, Marguerite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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