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소프트웨어 리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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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목차
- 시작하는글
대한민국 소프트웨어는 위기?
01부_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을 지배하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요구사항 명세는 개발의 핵심이다
요구사항, 요구사항 명세, 설계는 다르다
회사에서 만드는 소프트웨어가 망해간다면 UX에 주목하자
UX란 개발 이상의 것이다
사용자의 말보다 행동을 믿자
아키텍트가 없더라도 아키텍처는 꼭 필요하다
PM과 아키텍트는 다르다
사공이 많은 프로젝트 팀이라면 아키텍트가 반드시 필요하다
매뉴얼을 만들기보다 매뉴얼이 필요 없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자
제대로 테스트하려면 자원, 프로세스, 문서가 필요하다
최적의 테스트 기법을 찾아라
테스트하기 전에 품질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걸 선택하자
개발자도 테스트해야 한다
형상관리와 버전관리는 다르다
소프트웨어 프로덕트 라인은 은총알이 아니다!
우수한 품질은 명확한 품질 기준에서 나온다
QA는 체크리스트를 채우는 게 아니라 품질을 완성하는 것이다
프로세스를 개선하려면 절차, 도구, 인력 모두 개선해야 한다.
CMMI와 애자일 방법론은 양립하기가 매우 어렵다
애자일 방법론은 한물 간 방법론이 아니다!
CMMI가 적당한 조직이 있다!
레거시의 저주를 피하려면 선배, 후배 모두 노력해야 한다
02부_소프트웨어, 사람이 만든다!
자격증이 프로젝트 관리자의 역량을 보증하지 못한다
인본주의 관리가 효과가 있으려면 개발자의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진짜 보수개발자와 진짜 진보개발자가 일하는 문화를 만들자
업무가 중심이 되는 일터를 만들자
야근은 필요악이라도 악일 뿐이다
관리자는 회의를 하면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정말 착각이다!
이해당사자의 역학관계를 파악하자
일을 지정하기보다 범위를 정하자
멋진 의사결정 결과보다 그 과정이 더 중요하다
신입사원에게는 멘토링을 하자
피드백이 성공하려면 문제에 대한 객관화가 먼저다
이기지 않는 게 이기는 것이다.
아이디어를 많이 얻으려면 말을 자르지 마라
너무 적게 혹은 너무 많이 측정해서는 안 된다
프로젝트 관리자는 완전한 잣대가 돼서는 안 된다
갑질은 대물림해서는 안 된다
을을 대하는 자세
외호내혐 PM이 강한 팀워크를 만들 수도 있지만 그래도 문제는 있다
관리자도 0.5MM는 힘들다
영업을 하든 관리를 하든 둘 중에 하나만 하자
권한이 없다면 관리할 수 없다
성공일지라도 팀원이 꼭 좋아하는 건 아니다
프로젝트에서 시간은 늘 부족하다
열심히 일한 개발자에게 잠깐의 휴식이라도 허하라
03부_위험을 감수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라!
제안서나 기획서가 아무리 상세해도 불확실성을 최소화하지 못한다
위험, 이슈, 문제를 구분하자
PM은 불확실성의 화신이다
불확실성이 제거되지 않는다는 건 프로젝트가 망해간다는 명백한 증거다
불확실성을 극복하려면 팀 내 이견을 최소화해야 한다
일찍 실패하는 것이 좋다
계획이 변하더라도 계획은 늘 세워야 한다
프로젝트는 어쨌든 끝난다
맺는글
오픈 이노베이션을 DNA화하라, 그리고 DNA의 핵심은 사람임을 잊지 말자!
책 속으로
대한민국소프트웨어는위기?
직장경력만으로 보자면 소프트웨어 업계에 발을 들여 놓은 지 10년이 넘었다. 여기에 컴키드로서 GW-Basic으로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아마추어 프로그래머로 보낸 시간까지 더하면 25년이 조금 안 된다. 컴퓨터와 지낸 시간이 오래됐기에 주위에는 이 분야와 관련된 지인이 많다.
서버 엔지니어인 친구가 있다. 이 친구를 만나면 이야기 화제가 다양하다. 아무래도 같은 IT 분야에 있다 보니 상당 부분 업계 이야기다. 얼마 전에도 이 친구를 만나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 흐름이 업계 쪽으로 흘러갔다. 이 친구는 대한민국의 IT 상황을 70년대 미싱공장으로 생각했다.
70년대 미싱공장 하면 나와 연배가 비슷한 사람들은 대개 전태일 열사를 떠올릴 것이다. 노동법 대로 일하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분신한 전태일 열사 말이다. 하나뿐인 소중한 생명을 희생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열악한 노동현장은 그나마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었다. 시대는 빠르게 지나 전태일 열사의 노동현장이었던 공장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옮겨졌다.
그 자리는 대개 휘황찬란한 쇼핑몰이나 고층의 벤처 빌딩이 차지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천 년을 맞으면서 벤처라는 신기원을 그 공간에서 키웠다. 밀레니엄 신드롬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IT 노동자로서 첨단에서 활동하는 친구는 우리 분야의 사람들을 70년대 미싱공장의 노동자라고 부른다.
재봉과 미싱으로 돈을 버는 미싱공장 노동자와 최첨단의 IT 기술로 돈을 버는 IT 엔지니어를 동일선상에 두고 이야기하는 친구의 논리를 이쪽 분야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들으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친구의 과격한 비유에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친구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리고 과격한 친구의 말에 별 거부감을 느끼지 않은 이유는 뭘까?
대한민국 은행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농협의 전산망이 마비된 사건이다. 몇 시간이면 해결될 거라 생각한 사건은 며칠이 지나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 사건의 원인에 대해 검찰까지 나서는 국가적인 이슈가 되고 말았다. 농협 사태를 요약하자면 간단하다.
은행 시스템을 관리하는 서버에서 최고 권한을 지닌 루트 계정이 해킹됐고, 해킹한 계정으로 모든 서버에 대해 무차별적인 삭제 명령이 내려졌다. 거대한 은행 업무를 마비시킨 해킹 수법은 rm, dd 명령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사건으로 전 국민이 rm, dd 명령을 알게 됐고, 검찰에서 이런 명령이 내려진 진원지를 조사해 보니 공용 노트북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사건 초기에는 내부 소행이라고 가닥이 잡혔으나 검찰에선 결국 북한 정보부대의 해킹으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결론 내렸다.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에 일각에선 짜맞추기식 수사가 아니냐는 반론이 제기됐지만 일단 결론이 북한의 소행으로 난 이상, 전 국민의 이슈였던 농협사태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IT 종사자로서 사건을 일으킨 배후가 북한이라는 발표는 참으로 놀라웠다. 초기에 이 사건을 들은 IT 종사자들은 드디어 터질 일이 터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도 농협 사건을 처음 들었을 때 1년 전쯤에 들은 뉴스가 생각이 났다. 아마도 이 사건을 생각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농협에서 아웃소싱한 개발자가 과도한 업무 강도 탓에 폐를 잘라냈다는 소식이었다. 처음에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슨 인터넷 신문의 가십성 기사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 서평
세계는 SNS에서 비즈니스를 창출하고 있는데 국내는 아직도 포탈에 머물고 있고, 자고 나면 해킹으로 털리는 신상정보가 된 탓에 대한민국의 주민등록번호는 더는 개인정보가 아니며, 국내 굴지의 소프트웨어 회사가 오픈소스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토종 기술로 윈도우 호환 운영체제를 만들었다고 거짓말했다가 그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IT계의 황우석 사건.
이처럼 소프트웨어 개발이라는 타이틀을 건 막장 드라마가 펼쳐지는 가운데, 클라이맥스가 펼쳐진다. 아이폰발 모바일 혁명에서 촉발된 IT 혁신으로 국내 핸드폰 제조업체는 위기에 처한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언론에서는 위기의 원인을 소프트웨어에 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소프트웨어가 위기라고 말한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내가 GW-Basic으로 프로그래밍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대한민국 소프트웨어는 늘 위기였다. 단돈 500원만 주면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에 미국에서 나온 최신 게임을 불법 복사해서 즐길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은 국내에서 나온 게임도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에서 좋은 소프트웨어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뭘까? 좋은 소프트웨어가 나올 만한 환경이 아니라서 정부나 회사에서 그토록 바라는 좋은 소프트웨어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들려면 무엇을 고쳐야 할지 살펴본다. 여기서 다루는 내용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몰라서 안 하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선배들이 그렇게 했기에, 사회가 그렇게 요구했기에, 그렇게 개발하고 만들었기에 대한민국의 소프트웨어는 지금의 상황에 처한 것이다.
자, 대한민국 소프트웨어를 리스타트하자!
얼마 전에 중소기업에서 초봉 4천만원을 제시해서 65:1이라는 놀라운 경쟁률을 보였다는 기사가 있었다. 이에 반해 SI 업체에서는 날코딩에 해당하는 업무를 백만 원이 조금 넘는 돈으로 중국에 아웃소싱할 수 있어, 비용 측면에서 상당한 이득을 보고 있다는 기사도 소개됐다. 사실 이 이야기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런데 그 기사의 댓글을 읽다가 먹먹해졌다. 자신들도 백만 원 조금 넘는 돈 받아가면서 일하고 있다는 댓글이 상당수 달렸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에서는 소프트웨어 인력을 확실히 키우기 위해 S직군을 신설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S직군은 기본적으로 다른 직군에 비해 초봉도 높고 대우도 좋다고 한다. 삼성전자인만큼 여타 대기업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줄 것임이 틀림없다. 여기에 더블S라는 신조어도 나온다고 한다. S직군에서도 S급 인재를 말한다고 한다. 옥상옥 정도가 될까?
같은 대한민국 아래에서 소프트웨어라는 타이틀을 걸고 일어나는 인재전쟁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돈이다. 신입사원들이 중소기업을 꺼려한다고 하지만 돈만 많이 준다면, 그곳이 비정상적인 회사가 아닌 이상 지원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SI 업체는 비용 절감을 위해 외국으로 잇달아 나가고 있다는 기사와 최상위권에 속하는 회사에서는 최고의 인재를 대우한다는 기사, 그리고 최근에 개발자 모집과 관련해 넘쳐나는 기사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바로 돈이다.
기사에 나오는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살리기 해법은 개발자에게 돈만 많이 주면 될 것처럼 비춰진다. 과연 그럴까? 회사에서는 직원들을 동기부여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어떤 이상가들은 직원들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서 동기부여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진짜? 그럴싸한 이론을 가져다 붙이지 않더라도 먹고사는 데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연히 돈은 중요하다. 하지만 돈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건 보상이론이나 행동경제학 같은 것들로 충분히 실증되고 있다.
핸드폰 제조업계에서 유발된 소프트웨어 위기로 우리는 모두 개발자를 잘 대우하고, 그래야 경쟁력 있는 소프트웨어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소프트웨어는 최근에 위기를 맞은 게 아니라 저자가 이 세계에 입문했을 때인 20여 년 전부터 위기였다.
소프트웨어는 돈을 주고 사는 물건이 아니라, 아는 형이나 아는 동생한테 부탁만 하면 디스크나 CD로 구해서 설치할 수 있는 품앗이 대상이었다. 그래서 최근에 급부상하는 소프트웨어 위기는 정말로 허구다. 그 허구는 핸드폰 제조업의 추락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즉, 제조업의 붕괴 때문에 발생한 대기업의 위기를 걱정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소프트웨어 위기가 제조업의 붕괴에 대한 걱정 때문에 조명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소프트웨어가 현재 위기에 처한 원인을 되짚어 보면 결국 소프트웨어를 제값 주고 사지 않았다는 데 있다. 만약 좋은 소프트웨어에 대해 적절한 비용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문화가 있었다면 우리나라 소프트웨어는 위기에 처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토록 많은 개발자 지망생이나 경력 개발자들이 월급 많이 주는 회사에 취직하려고 목숨을 걸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너무 단순한 생각일까?
물론 지금에라도 개발자들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들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해주는 건 다행이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복원되지 않고 단순히 제조업의 영속만을 위한 개발자 키우기(다시 말해, 개발자 모집하기)에만 집중한다면, 그리고 돈도 중요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개발 문화가 생기지 않는다면 정말 대한민국의 소프트웨어가 처할 미래는 암울할 것이다. 자, 그렇다면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는 좋은 개발 문화는 어떻게 만들어낼까?
우선 앱 시장처럼 돈을 주고받는 시장이 조금씩 살아난다는 건 다행이다. 이런 경제적 환경의 개선과 더불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는 개발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컴키드에서 소프트웨어 컨설턴트로서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의 현실을 경험한 저자가 어떻게 하면 좋은 소프트웨어를 탄생시키는 개발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그 해법을 제시한다. 자! 이제부터 대한민국 소프트웨어를 리스타트해보자!
<책속으로 추가>
하지만 기사뿐 아니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당사자의 입을 통해 들은 사건의 전말은 놀라웠다. 2년 동안 자정이 넘는 시간에 퇴근하기를 반복하면서 면역력이 급격히 나빠지고 이 때문에 폐에 염증이 생겼다고 한다. 항생제를 써도 염증이 나아지지 않자 결국 폐를 일부 절단하는 수술을 받게 됐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노동환경 개선이 꽃을 피우던 시절에나 있을 법한 일이, 그것도 최첨단을 달린다는 IT 분야에서 일어나다니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유로 농협 전산망 사태가 벌어지고 내부자 소행일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 때 폐를 잘라낸 노동자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만큼 근무 환경이 열악하니 거기에 앙심을 품은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사 결과, 다행히도(?) 농협 사태는 북한의 소행이라는 결론이 났다.
과도한 업무 강도 탓에 폐를 잘라낸 개발자, 그 직원을 파면한 회사, 북한에 해킹 당한 은행. 어떤가? 놀랍지 않은가? 마치 70년대의 신문 기사를 읽는 것 같다. 즉, 유해한 작업 환경에서 일하다가 병이 난 노동자, 그 직원을 쫓아낸 회사, 북한의 사주를 받고 노동자들이 파업을 주동한다고 발표하는 검찰의 기사를 같은 날 같은 사회면에 보도하는, 70년대의 신문 기사를 읽는 듯하다. 이쯤 되면 IT 업계에 근무하지 않는 독자라도 내 친구가 현재 IT 업계는 70년대 미싱공장 같다고 말하는 데 동감할 것이다.
소프트웨어 개발과 관련된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은 마치 일종의 옴니버스 형식의 블랙 코미디 영화를 한 편 보는 것 같다. 첫 번째 에피소드가 농협 사태와 폐를 잘라낸 노동자였다면, 두 번째 에피소드는 게임의 유해성을 확인하려고 투철한 기자 정신으로 무장한 기자가 초등학생들이 한참 게임을 즐기고 있던 PC방의 전원을 차단했던 사건에서 시작한다. 사회면을 장식하는 폐륜 범죄의 이면에는 그 주범으로 언제부터인가 ‘게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폭력성이 짙은 게임에 노출된 청소년들이 폭력적으로 변해서 그런 폐륜적인 범죄를 저질렀다는 스토리다.
게임 셧다운제 말고도 대한민국에서 게임을 만든다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다.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애써 만든 좋은 게임이라도 시장에 팔 수 없었다. 이런 게임 업계에 대한 규제는 ‘주차장 지붕’ 사건으로 정점을 찍었다. 게임업체를 등록하려고 구청에 간 신생게임업체가 사무실이 입주한 오피스텔의 주차장 지붕이 불법시설이어서 게임업체로 등록하지 못했다는 사연이 인터넷에 퍼졌다. 결국 게임업체의 발목을 잡는 규제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졌다. 그리고 이런 게임업체에 대한 규제를 줄어보자는 차원에서 논의가 진행됐다.
한마디로 웃긴 상황이 펼쳐진 셈이다. 한쪽에서는 게임업체에 가해지는 다양한 규제를 고쳐보자는 노력이 전개됐지만, 다른 쪽에서는 게임 셧다운제를 들고 나와 게임업체를 제재하는 형국이 됐으니 말이다. 셧다운제를 도입하는 건 신생업체에게 일종의 진입장벽이다. 심야에 청소년의 게임 사용을 제한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역량을 좋은 게임을 만드는 데 쏟아도 성공 여부가 불확실한데 그 역량의 일부를 정부 규제를 맞추는 데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해외에서 사업을 하는 게임업체는 어떻게 할 것인가? 국내법으로 제재하지 못하기 때문에 해외 업체에게는 게임 셧다운제가 아무 소용이 없다.
대한민국 IT 업계의 블랙코미디는 이뿐만이 아니다. 세계는 SNS에서 비즈니스를 창출하고 있는데 국내는 아직도 포탈에 머물고 있고, 자고 나면 해킹으로 털리는 신상정보가 된 탓에 대한민국의 주민등록번호는 더는 개인정보가 아니며, 국내 굴지의 소프트웨어 회사가 오픈소스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토종 기술로 윈도우 호환 운영체제를 만들었다고 거짓말했다가 그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IT계의 황우석 사건. 이것 말고도 정말 다양한 에피소드가 많다. 이런 에피소드를 모아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개발을 주제로 드라마를 만든다면 막장 드라마 시청률에 육박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좋은 소프트웨어를 정의하려면 대상 사용자가 있어야 한다. 투자자나 경영자 입장에서는 적은 돈을 들여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시장점유율을 세계 최고로 만들어 전 세계 사람들이 자사를 인식하게 해 주는, 예를 들자면 구글의 검색엔진이나 iOS, 안드로이드 등이 좋은 소프트웨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백인백색이라 했듯이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 맞는 좋은 소프트웨어란 모두 다른 법이다.
좋은 소프트웨어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이렇다. 우리가 제조업 분야에서 유발된 소프트웨어 위기라는 말은 상당히 허구에 가깝다. 어떻게 보면 언론이나 정부에서 호들갑을 떠는 소프트웨어 위기는 제조업의 붕괴를 걱정한 담론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과거 제조업의 우위는 거의 제조역량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제품에서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더는 제조역량에 의존해 비교우위를 점할 수 없게 됐다. 바로 여기서 소프트웨어 위기론이 등장했다.
좋은 소프트웨어란 무엇인가? 정부나 대기업에서 걱정하는 제조업을 떠받쳐줄 그런 소프트웨어만이 좋은 소프트웨어가 아니다. 전 세계를 호령하고 지배할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과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만이 좋은 소프트웨어가 아니다. 물론 그런 것도 좋은 소프트웨어가 맞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바는 지금 우리가 걱정하는 그런 휘황찬란한 소프트웨어만이 좋은 소프트웨어는 아니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에서 좋은 소프트웨어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뭘까? 문제아를 고치려면, 아니 문제아가 나오지 않게 하려면 문제아를 만드는 환경을 뜯어고쳐야 한다. 좋은 소프트웨어가 나오지 않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좋은 소프트웨어가 나올 만한 환경이 아니라서 정부나 회사에서 그토록 바라는 좋은 소프트웨어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들려면 무엇을 고쳐야 할지 살펴본다. 여기서 다루는 내용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몰라서 안 하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선배들이 그렇게 했기에, 사회가 그렇게 요구했기에, 그렇게 개발하고 만들었기에 대한민국의 소프트웨어는 지금의 상황에 처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회사 혹은 개발팀의 미시적인 차원의 노력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주차장 지붕 사건, 게임 셧다운제와 같은 이슈는 일개 회사가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거시적인 차원의 문제도 더 나은 소프트웨어를 만들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세상은 거시적인 것도 바뀌어야 하지만, 우선 미시적인 변화가 있어야 거시적인 변화도 생긴다고 본다.
인간이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려면 우선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평등해야 하고 부모와 자식이 종속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를 쌓아야 한다. 즉, 가정이라는 미시공간에서의 노력이 현실화되고, 그런 노력이 응축될 때 우리 사회가 평등화되는 거시적인 변화가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폐를 잘라낸 개발자, IT계의 황우석 사건 같은 건 우리가 속한 조직에서도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는 미시적인 문제다. 자, 그렇다면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부터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리스타트를 위해 달려보자.
- 시작하는 글 중에서
기본정보
ISBN | 9788992939973 | ||
---|---|---|---|
발행(출시)일자 | 2012년 01월 03일 | ||
쪽수 | 288쪽 | ||
크기 |
152 * 225
* 20
mm
/ 512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위키북스 IT Leaders 시리즈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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