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인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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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상 추천도서 > 해외문학상 > 나오키상 > 1989년 하반기 선정
도쿄 도심의 그늘에 위치한 작은 사무실, 와타나베 탐정사무소를 운영하는 중년의 탐정 사와자키. 은퇴 경찰이자 동업자인 와타나베는 대량의 마약을 빼돌린 후 도피 중인 상태로, 가끔 소식을 적은 전단지를 종이비행기로 날려 근황을 전한다. 어느 날, 사와자키는 행방불명된 가족에 대한 논의를 하고 싶다는 한 통의 의뢰 전화를 받게 된다.
하지만 사와자키를 만난 의뢰인은 느닷없이 6천만 엔을 안겨주며, 딸을 돌려달라고 하소연한다. 영문도 모른 채 잠복하던 형사들에게 붙잡힌 사와자키는 경찰서에 끌려가고, 겨우 의심을 벗지만 유괴범에게 몸값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그러나 몸값을 전달하던 중 돈은 증발해버리고, 경찰의 곱지 않은 시선이 더해진다. 그 가운데 사와자키는 유괴된 소녀의 외삼촌에게 어떤 의뢰를 받게 되는데….
작가정보
하라 료는 일본 문단에서,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스타일을 지닌 작가로 꼽힌다. 그의 문장은 아름답고 작품의 구성은 견고하며 전개는 힘이 넘친다. 1946년 사가 현 도스 시에서 태어난 하라 료의 본명은 하라 다카시. 규슈 대학 문학부 미학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재즈피아니스트로 활동한 특이한 이력을 가진 작가이다. 서른 살 무렵부터 해외의 미스터리 소설에 깊이 빠져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필립 말로 시리즈’로 잘 알려진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에 깊이 매료됐다. 그는 이후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오로지 집필 활동에만 몰두한다. 신인 작가로서는 다소 늦은 나이인 마흔세 살에, 드디어 첫 작품을 발표한다. 신주쿠에 사무소를 둔 중년 사립탐정 사와자키의 이야기를 그린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는 당시 일본 문단에서 볼 수 없었던 정통 하드보일드의 느낌을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찬사를 받으며 제2회 야마모토 슈고로상 후보에 오른다.
1년 반 만에 발표한 두 번째 작품 《내가 죽인 소녀》는 1989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에 올랐고 일본 대중소설 작가로는 가장 큰 영예인 나오키상(102회)을 수상했다. 또 1990년 출간한 단편집 《천사들의 탐정》으로 일본모험소설협회 최우수 단편상을 수상하는 등 단 세 권의 책으로,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하라 료는 펜이 늦다. 느린 정도가 아니라 자타가 인정하는 독보적인 과작(寡作) 작가이다. 1988년 데뷔 이래 19년 동안, 에세이와 단편집 그리고 네 편의 장편소설을 포함해 단 여섯 권만을 썼을 뿐이다. 사와자키 시리즈 세 번째 작품 《안녕 긴 잠이여》는 전작 이후 6년이 걸렸고, 네 번째 작품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는 9년이 걸렸다. 하지만 독자와 평론가들은 오랜 기다림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 기나긴 시간 전부가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일보사에서 오래 기자로 일을 한 뒤, 몇 해 전부터 번역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옮긴 소설로는 아야츠지 유키토의 《미로관의 살인》,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 등의 신본격 미스터리와 미야베 미유키의 《누군가》, 《이름없는 독》, 《낙원》 같은 사회파 미스터리도 옮겼다. 가이도 다케루의 ‘다구치-시라토리 시리즈’인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나이팅게일의 침묵》, 《제너럴 루주의 개선》과 기리노 나쓰오의 《다크》를 비롯한 ‘미로 시리즈’ 등을 작업했다. 현재, 기리나 나쓰오의 실질적인 데뷔작 《얼굴에 흩날리는 비》(가제, 비채 출간 예정)를 옮기고 있다.
책 속으로
……
‘이게 마지막 기회입니다.’
‘아, 다행이군. 정말 다행이야. 기도하는 심정으로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소. 뭐든 시키는 대로 할 테니 사야카만 무사히--.’
‘그러면 우선 그 입부터 다무세요. 쓸데없는 소리를 할 시간이 없습니다. 오늘밤 11시 정각에 간파치 길에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 ‘킹 타이거’ 다카이도 분점으로 6천만 엔을 가지고 나올 것. 알겠습니까?’
‘잠깐만……다카이도에 있는 킹 타이거?’ 마카베가 메모를 하는 기척이 났다.
‘그리고 이번 건은 절대 경찰이 관여하지 않게 할 것. 만약 조금이라고 그런 기미가 보이면 거래는 바로 취소됩니다. 이번에도 그러면 진짜 우리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말 겁니다.’
‘알았소. 절대 그런 일은 없도록 하겠소. 그 레스토랑에는 반드시 나 혼자 가지.’
‘누가 당신에게 오라고 했나요?’
‘예? 무슨 소리요?’
‘6천만 엔을 운반하는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와타나베 탐정사무소에서 왔던 남자입니다.’
그제야 내가 왜 여기 있는지를 이해했다.
‘뭐라고? 하지만 그 사람은 당신들과 한패가 아니라고 했잖소. 만약 그 사람이 그런 역할을 거절한다면 어쩌지?’
‘설득하세요. 딸의 목숨이 걸려 있어요. 설득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내 전 재산에 빚을 내서 보탠 6천만 엔이나 되는 돈을 누군지도 모를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소.’
‘당신 재산이라고? 그건 이제 우리 돈이지. 안 그래요? 아니면 당신은 그 돈을 넘겨줄 생각은 없고 경찰과 뭔가 계략이라도 꾸미고 있는 건가?’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절대 그렇지 않소.’
‘이게 마지막 통고입니다. 어차피 이 전화는 녹음이 되고 있을 테니 메모할 필요는 없겠죠. 오늘밤 11시, 간파치 길에 있는 킹 타이거 다카이도 분점으로 와타나베 탐정사무소 사람에게 6천만 엔이 든 여행 가방을 가지고 나오게 한다. 차는 그 사람이 모는 블루버드를 사용할 것. 그 다음 지시는 그 사람에게 직접 내릴 겁니다. 우리가 6천만 엔을 건네받고 1시간 뒤에 딸을 풀어줄 겁니다. 만약 경찰이 개입했다면 거래는 바로 끝입니다. 그럼 안녕히 주무십시오.’
‘앗! 여보세요…….’
테이프가 멈추자 방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손가락을 태울 정도로 짧아진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껐다.
오치아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요컨대 이런 사정이오.”
이사카는 롤렉스 손목시계를 흘끗 보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이 범인의 요구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어. 하지만 당신 대답에 따라 달라지겠지.”
“시간 여유가 있나?”
“10시 15분까지라고 했나?” 이사카 경시가 오사코 경부보에게 확인을 했다.
“예. 늦어도 10시 20분까지입니다.” 오사코는 나를 돌아보며 설명했다. “만약을 위해 당신 블루버드는 스기나미 경찰서 관할 간파치 길에서 가까운 곳에 대기시켜 두었어. 거기까지는 언제라도 순찰차로 바로 달려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고. 여기서 10시 20분에 출발하면 11시까지 범인이 지정한 레스토랑에 도착할 수 있네.”
“25분 이내에 결론을 내려야만 해.” 이사카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카베 오사무를 바라보았다. 그는 초점을 잃은 눈으로 네 개의 긴 탁자 한가운데 있는 공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어린 딸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내 시선을 깨닫고 입술을 떼려 했지만 마음만 앞서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해야 할 말이 딱 하나뿐일 때는 그러기 마련이다.
오치아이가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마카베 씨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네. 범인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지. 몸값을 넘겨주는 역할을 당신에게 부탁하기 위해 사정 설명이 끝나기를 이제나저제나 하며 기다린 거야.” 그의 얼굴에 씁쓸한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다만 우리로서는…….”
오치아이는 말을 흐리며 이사카를 돌아보았다. 이사카는 엘리트 경시답지 않게 바로 이어받지 못했다. 담배에 불을 붙이지도 않으면서 론손 라이터로 두세 차례 불을 켰다.
“수사본부의 의향은 다르다는 건가?” 내가 물었다. 누구도 대답을 하지 않아서 옆에 앉은 니시고리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예전부터 그것 외에 본 적이 없는 검은 넥타이를 못마땅하다는 듯이 휙 잡아당겨 느슨하게 했다. 수사과장인 모리 경부는 이 자리에 없는 것으로 하고 싶은 듯이 졸린 눈으로 계속 내 앞에 있는 탁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출판사 서평
일본 하드보일드의 새 지평을 열다
20세기 일본 최고의 하드보일드, 하라 료의 《내가 죽인 소녀》가 비채에서 출간됐다.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에서 처음 모습을 선보인 탐정 사와자키가 다시 등장하는 시리즈 두 번째 작품으로, 야마모토 슈고로상 결선에 올라 아쉽게 탈락했던 전작의 아쉬움을 보상하듯, 당당히 제102회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하드보일드’는 사전적 의미로 계란 완숙(Hard-Boiled)를 뜻한다. 흔히 거칠고 선이 굵은 주인공이 주인공이 등장해 액션이 주가 되는 장르로 여겨지고 있지만, 추리소설 안에서 ‘하드보일드’는 여타 서브 장르와 분명하게 구분되는 하나의 스타일이다. 메마르고 냉담한 문체, 무뚝뚝한 탐정, 사건의 흐름은 등장인물의 행동으로 연결되고 독자는 투덜대는 탐정과 눈높이를 맞춰 타자(他者)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본다. 헤밍웨이 특유의 건조함에서 비롯한 하드보일드 스타일은 대실 해미트, 레이먼드 챈들러, 로스 맥도널드로 이어지며 현대 추리소설의 한 축을 이뤘다.
그 동안 일본 하드보일드 하면 ‘반 영웅적’ 기질을 지닌 주인공이 등장해 기존 체제를 부정하는 다소 과격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하라 료가 등장한 이후 일본추리소설사에서 하드보일드의 의미는 조금 달라졌다. 서른 살 이후 해외 미스터리에 푹 빠져버린 하라 료는 특히 레이먼드 챈들러에 깊이 매료됐다. 세계를 자신의 언어로 바꿔버리는 챈들러의 문장과 그가 탄생시킨, 현대의 기사(騎士) 필립 말로는 중년에 접어든 한 재즈피아니스트에게 깊은 감동과 간절한 동경을 가져다주었다. 하라 료는 이후 모든 일을 정리하고 귀향, 오로지 집필에만 몰두한다. 일본 하드보일드의 걸작으로 자리매김한 첫 작품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는 그렇게 탄생했고, 그로부터 1년 뒤 훗날 ‘나오키상’이라는 대중 소설의 지표를 통해 그 가치를 인정받는, 걸작 《내가 죽인 소녀》가 출간된다.
줄거리: 사와자키 유괴 사건에 휘말리다
중년의 탐정 사와자키는 번화한 도쿄 도심의 그늘에 위치한 작은 사무실, 와타나베 탐정사무소를 운영한다. 처음에는 둘이 시작한 사무소였지만, 은퇴 경찰이자 동업자인 와타나베는 대량의 마약을 폭력조직으로부터 빼돌리고 현재 도피중인 상태로, 잊을만하면 가끔씩 소식을 적은 전단지를 종이비행기로 접어 근황을 전할 뿐이다.
어느 날 사와자키는 행방불명된 가족에 대한 논의를 하고 싶다는 한 통의 의뢰 전화를 받고 의뢰인의 집을 방문한다. 하지만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뜻밖의 상황에 휘말리게 된다. 의뢰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사와자키를 유괴범의 공범이라고 생각하고, 6천만 엔이라는 몸값을 안겨주며 딸을 돌려달라고 하소연한다. 잠복했던 형사들에게 붙잡힌 사와자키는 집요한 취조를 당하게 되고 이 모든 것이 유괴범이 파놓은 이상한 계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겨우 의심을 벗게 된 사와자키는 유괴범의 지목으로 몸값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하지만 몸값을 전달하던 중 불량배에게 폭행을 당하고 몸값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돈은 사라지고 유괴된 천재 소녀 바이올리니스트는 아직도 풀려나지 않은 상황. 경찰의 곱지 않은 시선이 더해지는 가운데, 사와자키는 유괴된 소녀의 외삼촌에게 어떤 의뢰를 받게 되고, 어느 폐공장의 하수구에서 참혹하게 부패한 소녀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는데…….
추리소설의 모든 스타일을 만족시키다
작가 하라 료는 자신의 글과 스타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얘기한 적이 있다.
“나에게 있어 하드보일드는 오직 문체(文體)의 문제입니다. 챈들러나 해미트라도 잘 쓰지 못했다면 그건 하드보일드가 아닙니다.”
19년 동안 단 여섯 권의 작품만 발표할 만큼, 과작 작가로 유명한 하라 료는 글에 공을 들이기로 유명하다. 그 긴 기간 내내 ‘언제나 쓰고 있다’라고 말할 정도이니, 글에 대한 연마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다.
그만큼, 《내가 죽인 소녀》는 단단하고 밀도 높은 문장으로 진행된다. 레이먼드 챈들러에 비교될 만큼 독창적인 비유, 하나의 장면을 설명할 때조차 오감을 모두 이용하는 능수능란함, 등장인물의 뛰어난 조형과 대사의 여운 등 그 어떤 일본 추리소설과 비교할 수 없는 높은 격조를 느낄 수 있다. 스타일의 완성도뿐 아니라 추리소설적인 완성도 또한 흠잡을 곳이 없다. 하드보일드 작품은 리얼리티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추리소설적인 즐거움 즉, 빈약한 반전이 지적되곤 한다. 하지만 《내가 죽인 소녀》의 결말은 충격적이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갑작스럽게 뭔가에 휘감기듯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전개되는 유괴 사건은 사와자키의 단독 수사와 경찰의 미덥지 못한 수사가 교차되면서 서서히 정체를 드러낸다. 긴 기다림 뒤에 사와자키의 마음속에 감춰진 추리가 펼쳐지고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 독자는 그 진상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죽인 소녀》는 추리소설이 갖춰야 할 모든 미덕을 두루 만족하고 있다. 하드보일드라는 장르적 한계를 극복하고 일본 대중소설의 정점을 찍은 걸작. 일본 미스터리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는 결코 과장되지 않은 듯하다.
시리즈의 전작과 같이 《내가 죽은 소녀》 말미에도 에필로그를 대신한 단편 한 편이 덧붙어 있다. <한 남자의 신원 조사>라는 단편을 통해 작가 하라 료와 탐정 사와자키가 어떻게 서로를 알게 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 추천사
“그의 처녀작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부터 이미 팬이 됐다. 정석을 비웃는 반전이 준비돼 있어 미스터리의 씨앗은 끝나지 않았다는 즐거운 감흥을 느꼈다. 하라 료에게 레이먼드 챈들러의 영향이 보이지만 그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인물 조형과 문장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뛰어난 재능에 믿음이 간다.” _제102회 나오키상 심사평(다나베 세이코, 작가)
기본정보
ISBN | 9788992036894 | ||
---|---|---|---|
발행(출시)일자 | 2009년 06월 29일 | ||
쪽수 | 480쪽 | ||
크기 |
153 * 224
mm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블랙 앤 화이트
|
||
원서명/저자명 | 私が殺した少女/原りょう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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