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갑이와 고만녜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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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남한에서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구한말의 북간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없다. 구한말에 그곳에서 실제로 살았던 사람들, 실제로 있었던 일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이 책은 문재린, 김신묵의 삶을 통해 이민사, 독립운동사, 여성생활사, 한국 기독교사 등을 전함으로써, 우리가 북간도의 역사를 이해하도록 이끌어주고 있다. 또한 흑백 사진도 풍부하게 수록했다. [양장본]
작가정보
문재린/호는 승아(勝啞). 1896년 함경북도 종성에서 태어나 네 살에 북간도 명동으로 이주했다. 명동중학교, 평양신학교, 캐나다 임마누엘 신학교를 졸업하면서 오룡천 실학과 민족정신과 기독교의 세례를 받았다. 목사로서 민족 지도자로서 독립운동과 교육과 선교에 힘쓰다가, 일제강점기와 해방 정국에 네 차례 옥고를 치렀다. 1946년 남한으로 내려와서도 한결같은 활동을 펼치다 65세에 은퇴한 후에는 평신도 운동에 전념했다. 70년대와 80년대에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며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고자 끝까지 달리다 1985년 하늘나라로 갔다.
저자 김신묵은 1895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문재린과 같은 날 두만강을 건넜다. 1911년 결혼한 후 명동여학교에 입학한 뒤로 어려운 형편에서도 배신성경학교를 다니는 등, 우주를 대학으로 알고 항상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교회와 야학에서 여성 지도자로 활약하면서 시할머니, 시어머니와 함께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 자녀들을 훌륭한 일꾼으로 키워 냈다. 남한에서는 남편과 함께 한빛교회를 개척하고, 평생을 약한 자들의 편에 서서 밀알 한 알로 살아가다가 1990년 “나 죽거든 박수치며 보내 달라”는 말씀을 남기고 하늘나라로 갔다.
저자(글) 문영금
저자 문영금은 문재린 김신묵 부부의 큰아들인 문익환의 외동딸로 1948년 경북 김천 황금동교회 사택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태어날 때부터 3대가 한집에서 살았기에 할머니 등에서 자랐고, 두 분을 따라 캐나다에 이민 갔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함께 지낸 시간만큼 사랑도 많이 받았다. 이 책에서 할아버지 이야기와 자료, 사진을 정리했다.
목차
- 머리말_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산 듯한 지난 몇 년 | 문영금·문영미
기린갑이 이야기 | 문재린
글을 시작하며
1장 명동 시대
북간도로 간 오룡촌 실학자들/새로운 터전 부걸라재/명동학교와 명동교회/명동의 주역들
2장 세상으로 난 길
북경 유학 /아버님의 부음 /교사에서 기자로 /15만 원 사건/경신년 토벌/교회에도 청년이 필요하다/평양신학교/두 교회를 섬기며
3장 세계를 걷다
캐나다 교회의 진보적인 선교 활동/토기장이와 함께 산 넘고 물 건너/캐나다에서/임마누엘 신학교/영국인 형제 존 할러웨이/에든버러, 그리고 미국인 동생 스코빌/학린의 죽음/지구를 반 바퀴 돌아 고향으로
4장 난세의 목회자
용정 중앙교회/돌로써 아브라함의 자녀가 되게 한 이야기/동만 희년전도회와 평생여전도회/다섯 교파를 하나로―만주 조선기독교회/일제 말기의 탄압/모친의 별세/두 번째 사선을 넘다/해방 정국/소련군 감옥으로/삼팔선 탈출기
5장 남한에서
노동하는 목사/김천 황금동교회/기독교장로교의 탄생과 조선신학교/신암교회 재직 시절에 맞은 전쟁/피난 생활/강원도 순회 전도/한빛교회 설립과 한남신학교/평신도 운동/남신도회 창립과 피셔-문 장학회/한일조약과 나의 유언/회혼
6장 이민자의 꿈
다시 캐나다로/토론토 한인연합교회/캐나다 순회/명예 박사학위를 받다/토론토 한국노인회/토론토 민주사회건설협의회/두 아들, 감옥에 가다/장한 어머니 상/북미주에 번져 가는 민주화 운동/귀국
글을 맺으며
덧말_아버님은 이렇게 가셨습니다 | 문익환
고만녜 이야기 | 김신묵
1장 어린 시절
다섯 살에 두만강을 건너서/나의 친정집 이야기/고만녜의 어린 시절/북간도의 풍속/호박씨 모아 산 쪽복음서/동쪽을 밝히는 빛―명동학교와 명동교회
2장 새 이름 새 자리
명동의 두 번째 신식 결혼식/학교에 들어가서 새 이름을 얻다/잊지 못할 선생님들/문씨 가문을 너에게 맡긴다/부끄러운 줄도 몰랐던 쇠똥 비나리/우주는 대학교다
3장 격동기를 헤치고
몸부림치는 조국/명동 시대는 끝나고/시동생 학린의 사랑과 죽음/임뵈뵈 할머니와 평생여전도회/내 일생의 전성시대/며느리 사랑을 가르쳐 주신 시할머니
4장 전쟁과 전쟁 사이
과부의 심정으로/서울로 오는 길/엘리야의 까마귀/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한겨울에도 파란 섬
5장 밀알이 되다
나의 사랑 한빛교회/어머니의 기도/아들의 단식/민주화의 현장에서: 1978~1979의 일지/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덧말_이 땅 모든 여성의 얼굴에서 | 문익환
병상 일지 | 문호근
산 자의 기억
따그닥따그닥 윷놀이하는 소리 | 문영금
어머니의 삶 읽기 | 문은희
아름다운 죽음, 그리고 부활 | 문동환
검은 양의 그리움 | 문영환
매듭짓는 글
가족사의 지평을 넘어 | 김경재(한신대학교 명예교수)
나의 할머니, 김신묵이 살아온 이야기
―한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여성신학적 시론 | 문영미
사진으로 남은 이야기
원본 자료들
가계도
연표
책 속으로
한국 교회 가운데에는 할 일이 무엇인지를 올바로 아는 교회가 매우 적다. 좋은 목사를 모시고 많은 신도를 모아서 예배를 성대히 드리면 다인 줄 안다. 구원은 행함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만 얻는다는 복음주의의 잘못된 교리 탓이 크다. 또 이 교리에서 생겨나는 것이 “예수 믿고 천당”이라는 강령이다. 그에 따라 많은 한국 기독교도에게, 천당 가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고 예수 믿기만 하면 천당 간다는 것이 신앙의 전부이다. 예수님이 공생활(公生活)에서 하신 그대로 행함이 우리의 책임이요 참신앙이라는 생각은 자리 잡을 데가 없다. 한국의 교직자들과 신자들은 틈만 나면 천당 이야기를 하지만 이것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신 예수의 뜻에서 너무나 먼 것이다.(〈기린갑이 이야기〉 247쪽)
아버지는 백성을 돕는 실용적인 학문을 하셨다. 옷도 언제나 검소해서 늘 베 두루마기를 입고 다녔는데 여기저기 흙이 묻고 구겨져 있는 때가 많았다. 아이들을 가르치시면서도 일손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양반 마르때기들을 그렇게 미워하셨다. 서당에 있으면 양반들이 “김 교감” 하면서 들어와서는 학생들에게서 쌀을 한 말씩 걷어 가곤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어찌나 속상해하셨는지 모른다. 만주에는 그런 벼슬아치들이 없었지만 함경도나 외지에서 나타나서 마구 훑어가곤 했다.(〈고만녜 이야기〉 380~381쪽)
그 쇠똥이 참으로 쓸모가 있어 쇠똥이 아니면 벽에 바름질을 못 했다. 흙만 바르면 벽이 튼다. 그래서 쇠똥을 섞어 가지고 발랐다. 겨울에는 밑에 검부러기를 펴고 위에 쇠똥을 덮어 얼려 가지고 쌓아 놓았다가 봄에 밭에 나가 비료로 삼기도 했다. (〈고만녜 이야기〉 442쪽)
여자 소학교를 졸업할 때 공부를 계속할 형편이 못 되었던 우리에게 박태환 선생은 “우주는 대학교다”라고 격려하셨다. 나는 그 말이 평생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제 힘으로 공부를 계속했다. 책이 있으면 거듭해서 읽었고 1년에 한 번은 용정의 성경학교에 갔다. 그 후에도 나는 뭔가 배울 수 있는 기회만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가서 배웠다.(〈고만녜 이야기〉 447쪽)
이렇게 일할 수 있었던 것도 시어머니와 시할머니가 아이들을 봐주고 도와주신 덕분이었다. 야학생들이 집에 와서 공부를 하고 가면 나는 그때부터 삼을 삼았다. 겨울이니까 야학생들이 문을 열고 들락날락하면 추워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시할머니는 한쪽에 가만히 앉아 계셨다. 내가 하는 일을 그렇게 응원들을 해주신 것이다.(〈고만녜 이야기〉 454쪽)
어머님이 주일 저녁에 말씀을 전하면서 “익환 목사나 동환 목사를 위해 기도 안 해도 돼. 걔들은 유명해서 고문도 받지 않아. 그렇지만 학생 애들이 불쌍해. 고문 받으며 고생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해” 하시고 그 많은 학생들 이름을 하나씩 대면서 가정 형편과 학교에서 뭘 전공하는지까지, 적은 쪽지도 없이 90분간 물 한 모금 마시지도 않고 줄줄 쏟아 놓으시는 걸 보고 감탄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문영환, 〈검은 양의 그리움〉 616쪽)
출판사 서평
기린갑이와 고만녜는 문재린 목사와 김신묵 여사의 어릴 적 이름이다. 두 사람은 자신의 이름보다는 문익환, 문동환의 부모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구한말 함경북도 변방에서 태어나 북간도 명동촌으로 이주, 독립운동과 기독교 운동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치열하게 살았고, 1946년 쉰이 넘은 나이에 남한에 내려와서 1980년대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이 사회에 사랑과 정의를 이룩하고자 평생을 한결같이 살았다.
이번에 출간된 《기린갑이와 고만녜의 꿈》은 문재린과 김신묵의 회고록을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두 분이 생전에 남겨 놓은 회고록 초안을 기초로 하고, 평소 매사를 꼼꼼하게 기록해 둔 문재린의 노트, 일기, 여행기, 편지, 기고문 등과 문재린 김신묵이 아들 문익환, 손자 문호근과 대화하며 남긴 구술테이프, 사진들을 보완해 정리했다. 엮은이 문영금 문영미는 두 분의 일생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바로 오룡촌 실학자들과 북간도 독립운동사, 북방 여성의 삶, 한국 기독교 운동사를 되살리는 일이라는 신념으로 3년 동안 이 일에 매달렸다. 두 분의 삶을 들여다보면, 민주화와 통일 운동의 두 거목인 문익환 문동환의 뒤에 바로 두 분이 있었고, 두 분 뒤에는 북간도 명동촌의 정신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오늘날 남한에서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북간도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 학교에서 김좌진의 청산리 전투니 홍범도가 이끈 봉오동 전투니 배우기는 했지만, 백두산정계비를 사이에 두고 중국과 영토 분쟁이 있어 왔던 곳이라고 말하면 그래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싶긴 하지만, 구한말 그곳에서 실제로 살았던 사람들, 실제로 있었던 일에 대해 우리는 고구려만큼도 알지 못한다. ‘연변조선족자치주’와 ‘간도’라는 이름 사이의 거리를 생각해 보자. 하긴 우리의 역사 인식이 고답적이고 추상적인 해석의 차원에서 벗어난 지도 얼마 되지 않는다. 요즘 들어서야 비로소 우리는 교과서적인 역사서의 일방적인 해석에서 벗어나 미시적이며 구체적인 역사의 결―전기(傳記), 평전, 회고록, 구술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김경재 교수는 ‘매듭짓는 글’에서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의미는 이 회고록을 통하여 문익환·문동환 등 우리에게 다소 귀에 익은 사회 유명 인사들의 가족 이야기를 듣는 데 있지 않다. 그 가족 이야기를 통하여 20세기 한민족이 겪은 ‘도전과 응전’, 빛과 그림자를 파노라마처럼 보게 되는 데 있다. 특히 북간도라고 하는 지정학적 조건 속에서 한민족의 공동체가 어떻게 열린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여 민족 독립, 신앙과 양심의 자유, 인간 평등과 자유정신, 그리고 민족 화해·통일 운동까지 삶의 원동력으로 삼게 되었는가 그 비밀 코드를 읽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런 의미에서 특히 문재린 목사의 회고록은 “그분 자신의 전기적 서술이자, 20세기 초 북간도로 집단 이주, 개척하여 새로운 삶을 펼쳐 나간 문씨 문중의 가족사이기도 하고, 그 개인과 가족의 삶과 얽힌 한민족 민중의 사회사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그런가 하면 김신묵 여사의 회고록은 구술로 복원한 북방 여성의 삶이다. 엮은이 문영미는 ‘매듭짓는 글’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테이프를 들으면서 남성과 여성 언어의 차이점을 발견했다. 남성은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삶의 중요한 사건을 전개하면서 그 의미를 분석하고 설득하려는 듯한 언어를 사용했다. 반면 할머니는 나이가 드신 탓에 자주 옆길로 새기도 했지만, 항상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고 주변의 여러 사람들과 사건들을 나열하는 식으로 이야기하셨다. 언뜻 정돈되지 않고 연관이 없는 이야기 같아도 그 안에는 일상생활의 풍습이나 문화가 세세한 부분까지 묘사되었다. 여성들은 주변 사람들과 맺은 관계를 중심으로 사고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김신묵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여사의 뛰어난 기억력에 혀를 내두르는데, 그 덕분에 우리는 당시 간도의 한인들이 살았던 집의 구조가 어떠한지, 한인 여성들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 알 수 있다. 이들은 쇠똥을 활용해 벽을 바르고 구들을 해마다 손보았으며, 여성들은 1년에 걸쳐 삼을 삼고 베를 짰다.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던 명동학교의 교가도 김신묵 여사의 기억으로 복원되었다.
기본정보
ISBN | 9788991097452 |
---|---|
발행(출시)일자 | 2006년 06월 22일 |
쪽수 | 746쪽 |
크기 |
153 * 224
mm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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