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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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죽음』은 유럽의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여러 분야를 천착하는 연구자들이 모여 ‘중세의 죽음’을 통해 유럽 문명 내면의 핵심 요소를 파악하고자 한 책이다. 문학, 철학, 역사학, 예술, 미술사 연구자 여덟 명이 참혹하면서도 따뜻하고, 신비로우면서도 정치적인 중세의 시공간에서 벌어진 죽음 풍경을 흥미롭고도 아름답게 그려냄으로써 유럽 중세의 죽음에 직면한다.
작가정보
저자(글) 서울대학교중세르네상스연구소
인문대학 서어서문학과 소속이며 스페인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 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장르 이론을 다루다가 3년 전부터 인쇄술 도입 초기의 문학시장에서 최고 베스트셀러였던 기사소설을 시장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시리즈를 발표하고 있다. 교육부 교육과정심의위원과 입학사정관제 정책위원을 역임했으며, 서울대학교 입학본부에서 오랜 동안 입학업무를 담당했다. 대학입학 관련 최근 연구는 「학생부 정보의 재구조화 연구」로서 창의적인 인재 육성을 위해 정부와 고등학교가 시작해야 할 역할을 정리했다. 최근 저술은 『중세의 죽음』(서울: 산처럼, 2015, 공저)이다.
목차
- 책을 내면서
서론
제1부 죽음의 이미지와 담론들
주검은 왜 춤추게 됐을까: 죽음의 무도의 기원을 찾아서
-- 박흥식 서양사학과 교수
연옥의 탄생, 연옥의 죽음, 죽음의 죽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주경철 서양사학과 교수
예수의 죽음: 게르마니아와 이탈리아
― 신준형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죽음에 관한 12세기의 철학적 담론: 아벨라르두스를 중심으로
― 강상진 철학과 교수
제2부 문학 속 죽음
아서왕의 죽음: 신화의 형성과 해체
― 김정희 불어불문학과 교수
사랑의 이름으로?: 귀네비어와 란슬롯의 이별과 죽음
― 김현진 영어영문학과 교수
햄릿의 죽음: 유령이 말한 것
― 이종숙 영어영문학과 교수
돈키호테의 죽음: 죽은 사람은 정말 '돈키호테'일까
― 김경범 서어서문학과 교수
주석
참고문헌
지은이 약력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국내 인문학자 8명이 바라본 중세 죽음에 대한 8가지 풍경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필연적이고도 보편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죽음은 지극히 다양한 양태를 보인다. 동쪽의 예루살렘 방향으로 머리를 두고 누워서 기도를 중얼거리며 죽음을 기다리는 유럽 중세 기사를 보았다면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모든 사회마다 또 모든 사람마다 삶의 방식이 다른 만큼 죽음의 방식도 다르다. 그러므로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려면 결국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피할 수 없고, 죽음이 인문학의 영원한 주제가 되는 이유다.
서울대학교중세르네상스연구소가 첫 번째 공동 연구로 죽음을 주제로 책을 묶었다. 유럽의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여러 분야를 천착하는 문학·철학·역사학·예술·미술사 연구자가 유럽 문명 내면의 핵심 요소를 파악해보고자 ‘중세의 죽음’을 조명한 것이다. ‘중세’는 근대 세계를 배태한 시공간이고, ‘죽음’은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여는 태초와 같다. 문학·철학·역사학·예술·미술사 연구자 여덟 명이 참혹하면서도 따뜻하고, 신비로우면서도 정치적인 중세의 시공간에서 벌어진 죽음 풍경을 흥미롭고도 아름답게 그려냈다.
이 책의 내용과 구성은
제1부 죽음의 이미지와 담론들
<주검은 왜 춤추게 됐는가>(박흥식·서양사학)에서는 중세 죽음의 형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주검들의 춤’을 분석한다. 중세의 설교자들은 죽음의 무도라는 강렬한 이미지를 통해 삶의 무상함을 깨닫게 하고 죽음 이후를 경고하는 하느님의 뜻을 설파했다. 필자는 춤추는 주검의 기원이 「세 명의 산 자와 세 명의 죽은 자」 설화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추론한다. 대개 이 설화는 화려한 옷을 입은 젊은 귀족 세 사람이 사냥을 갔다가 주검과 극적으로 회동하는데, 관에 누워 있거나 뼈가 드러난 해골 모습을 한 주검들이 그들에게 삶을 되돌아보라는 교훈을 준다. Quod fuimus estis, quod sumus eritis(우리도 과거에는 당신들과 같았고, 당신들도 머지않아 우리처럼 될 것이오). 이런 내용의 그림과 텍스트가 유럽 전역에 널리 퍼진 이유와 동인이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연옥의 탄생, 연옥의 죽음, 죽음의 죽음>(주경철·서양사학)에서는 중세부터 르네상스 시기에 걸쳐 일어난 사후 세계의 근본적인 구조 변화를 추적한다. 핵심 사항은 연옥(煉獄. purgatory)이라는 ‘제3의 장소’의 탄생이다. 본래 기독교적 세계관에서는 사후에 영혼이 찾아갈 곳이 천국 아니면 지옥이었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저런 작은 죄를 지으며 살게 마련이어서 천국에 갈 정도로 완벽한 삶을 살지도, 그렇다고 지옥에 갈 정도로 악하지도 않아서 사후에 생전에 지은 작은 죄들을 지우고 천국으로 갈 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연옥의 교리다. 르 고프는 대체로 12세기에 연옥의 개념이 제 모습을 갖춘 후 가톨릭 교리 안에 들어갔다고 추론했다. 그리고 이렇게 ‘탄생’한 연옥이 그 이후에 어떤 변화를 겪는지 추적해본다. 프로테스탄트 지역에서는 연옥의 교리가 부정됐지만 가톨릭 국가들에서는 갈수록 이 교리가 큰 중요성을 띠어서 바로크 시대를 거쳐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최정점을 맞이하여, 이때에는 믿는 자는 누구나 연옥을 거쳐 천국으로 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옥의 교리는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급속히 사라져가고 있다. ‘연옥의 탄생’과 ‘연옥의 죽음’ 현상을 통해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이 시대에 따라 실로 크게 변화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예수의 죽음>(신준형·미술사학)에서는 예수의 죽음이라는 미술의 주제를 다룬다. 비참한 고난과 형벌 끝에 죽어간 시체의 모습을 그처럼 오랜 세월 동안 강박적으로, 또 온갖 정성을 다해 시각화해왔다는 사실부터 놀라운 일이다. 그토록 중요한 이 주제가 중세 말부터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북유럽과 이탈리아라는 두 세계에서 어떻게 ‘다르게’ 그려졌는가를 살핀다. 알프스 이남의 이탈리아에서 예수의 죽음을 나타낸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들 수 있는데, 마리아는 평온해 보이는 얼굴에, 예수 역시 아무런 고통을 겪지 않은 모습이다. 이는 예수의 수난이 고통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는 신의 자기희생이자 사랑의 표현이지만 그럼에도 이는 ‘신의 죽음’이었고 사흘 뒤에 부활할 죽음이었다. 고통 속에서 죽음에 이르기는 했지만 일단 죽음에 이르러 고통이 그치면 그 과정은 깨어남을 기다리는 잠과도 같다. 그와 같은 신학 전통이 디오니소스적 몽환지경과의 비유를 낳은 것이다. 한편 알프스를 넘어 독일 지역으로 가면 예수의 죽음 이미지는 급변한다. 블루텐부르크 시의 성당에 있는 제단화를 보면 아버지 성부의 손에 받쳐 죽은 예수의 몸은 온통 피투성이다. 게르만의 땅에서 예수의 죽음은 고통의 절규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지역적 혹은 민족적 특성을 통해 작품을 살펴보는 것은 죽음에 대한 인식과 시각화의 특징을 예리하게 잡아내는 데 여전히 강력한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죽음에 관한 12세기의 철학적 담론>(강상진·철학)에서는 철학적 죽음의 이해에 관한 글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기초를 확인할 수 있는 기독교적 죽음의 이해가 12세기의 사유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해되고 수용됐는지를 살핀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죽음을 기피하려 한다. 하지만 순교자의 죽음에서처럼 죽음이 참된 생명으로 건너가는 도구, 혹은 의덕의 수단으로 전환될 수 있다. 이러한 사유를 12세기의 아벨라르두스는 자신의 방식으로 소화한다. 아벨라르두스는 예수가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이 지나쳐가기를 원했을 때 “죽음이 예수의 인성을 장악한 것 같았지만, 자신의 죽음 안에서 동의하리라 알고 있었던 우리의 구원에 대한 열망 때문에 고통과 죽음을 감내(tolerare)”했다고 분석한다. 죽음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서의 슬픔의 감정을 한 축에 놓고, 슬픔이 결국 가져올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이성적 파악 혹은 보다 큰 목적을 위해 죽음을 소화해야 한다는 지적 통찰을 다른 한 축에 놓으면서 양자를 매개하는 ‘의도’를 통해 인간적 감정의 딜레마를 돌파하는 것이다. 헬로이사의 시(詩)나 아벨라르두스의 신학적 논의 모두 슬픔의 힘(vis doloris)과 이성의 힘(vis rationis)으로 이 두 축을 개념화하고 있으며, 아벨라르두스의 경우 전자를 인간적 의지에, 후자를 신적 의지(섭리)에 대한 통찰과 연결시키고 있다. 이것이 아벨라르두스가 죽음을 신학적으로 수용하는 고유한 방식이다. 그러나 이런 신학적·철학적 논의에 과연 당대인들이 얼마나 투철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제2부 문학 속 죽음
제1부<아서 왕의 죽음>(김정희·불문학)은 영국과 프랑스 문학에서 아서 왕의 죽음이 변주되는 방식과 그 의미를 비교해 보여준다. 아서 왕 이야기는 영국에서 처음 씌어진 이래 프랑스를 비롯해서 유럽 전역에서 확대 재생산됐고, “각 지역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역사적 현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혹은 그것에 저항하는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면서 계속 변형되어 나갔다. 작품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아서 왕의 이미지는 바로 변화하는 사회문화적 맥락이 요청한 바에 대한 답으로 기능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서 왕의 죽음 이야기다. 그가 어떻게 죽느냐를 파악하는 것은 곧 아서 왕에게 투영된 가치들을 종합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아서 왕의 죽음 이야기는 전장에서 입은 치명상, 죽음의 유예 및 생환에 대한 기대, 그리고 무덤의 발견과 죽음의 확정 등의 요소들을 포함하지만, 각각의 작품들은 이 메뉴 가운데 일부를 선택하여 조합하고 있다. 이는 5세기부터 13세기까지 일어난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 즉, 색슨족의 브리튼 침략과 정복, 이에 대한 브리튼족의 저항과 왕국 재건의 꿈, 노르만족에 의한 잉글랜드 정복과 앵글로노르만 왕조의 위상 강화, 이어서 프랑스의 왕권 강화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의 이름으로?>(김현진·영문학)에서는 아서 왕 이야기의 여러 판본 가운데 토머스 맬러리의 <아서 왕의 죽음>에 집중한다. 자신들의 금지된 사랑 때문에 일어난 분란이 왕의 죽음과 원탁 기사단의 붕괴로 막을 내리자 귀네비어와 란슬롯은 속세를 등지고 수녀와 수사로서 삶을 마감한다. 그러나 두 연인은 끝내 서로에 대한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에 틀림없다. 두 사람 모두 그들의 잘못된 삶을 치유하고 영혼을 치유하겠다며 수도원으로 들어갔지만, 란슬롯은 귀네비어가 죽자 곧바로 삶의 의지를 상실하고 죽음을 재촉하며, 귀네비어 또한 마지막 순간에 차마 란슬롯 경을 보지 않기를 기원하는 걸 보면 죽음의 순간에 이를 때까지도 이들은 사랑의 굴레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토머스 맬러리의 작품은 이처럼 두 연인의 이별과 죽음을 감동적으로 그린다. 그렇다고 토머스 맬러리가 두 사람의 사랑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궁정식 로맨스 전통에 따라 사랑을 기사다운 삶의 요건으로 제시하고는 있지만 동시에 두 연인의 ‘불륜’과 ‘간통’ 관계를 금기시하는 이중적 태도를 취한다.
<햄릿의 죽음>(이종숙·영문학)에서는 셰익스피어의 무대로 우리를 초대하여 햄릿이 직면한 죽음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16세기 말 영국은 종교개혁을 통해 크게 달라진 사후 세계의 양상과 기존 중세 가톨릭교회의 전통이 서로 갈등하며 공존하는 곳이었다. 햄릿이 직면하고 있는 사후 세계는 그만큼 더 불확실하고 위험한 모습을 띠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이제는 사라져버린 연옥에서 유령을 데리고 나와 프로테스탄트 교도들의 세상에 세운 것이다. 이 불확실하고 괴이한 상황에서 유령이 실체인지 아닌지, 유령이 전하는 말이 참인지 아닌지 묻고 해석하는 역할은 극 안과 밖의 목격자들에게 맡겨져 있다. 『햄릿』의 유령은 피 튀기는 복수를 요구하기는커녕 입을 열지도 않고 사람들 옆으로 그냥 걸어 지나가버린다. 주인공은 죽은 아버지의 모습을 한 이 유령이 신의 뜻을 전하는 천사인지 산 자를 유혹하는 악마인지 정체를 분별하는 일에 몰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자신이 행하는 복수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셰익스피어의 복수극은 그때까지의 복수극과는 완전히 성격이 다른 작품이 됐다. 유령의 정체를 의심함으로써 “죽음과 사후 세계의 진실과 불확실성을 동시에 심문하고, 그런 심문을 통해 결국 신적 정의와 질서 또는 섭리에 대한 심문으로 진행하는 그런 종류의 복수극”이 탄생한 것이다.
제4부<돈키호테의 죽음>(김경범·스페인문학)에서는 『돈키호테』의 죽음과 관련된 지극히 섬세하면서도 복잡한 문제를 제기한다. 『돈키호테』는 1부 첫 장에서 스스로 편력 기사를 자임하며 길을 떠난 주인공이 2부 마지막 장에서 마을로 돌아와 자신은 더 이상 돈키호테가 아니고 ‘알론소 키하노’라고 선언하고 나서 죽는다. 누가 그를 죽인 것이 아니고,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은 것도 아니다. 그는 마음의 병을 얻었고, 스스로 자신을 죽게 놔둔다. 그 마음의 병은 왜 생겼을까, 그는 왜 자신을 죽게 놔둘까, 그는 죽기 전에 왜 돈키호테를 부정했을까, 죽은 우리의 주인공은 이름은 무엇일까, 산초와 주변 사람들은 왜 여전히 그를 미친 사람으로 생각할까. 질문은 끝없이 이어진다. 라만차의 어느 시골 양반이 돈키호테로 변신한 것이 하나의 광기라면, 돈키호테였던 사람이 알론소 키하노로 변신한 것도 또 다른 광기다. 돈키호테의 광기가 지루한 시골 양반의 삶을 버리고 기사도의 세계와 둘시네아를 찾아 떠나는 모험이었다면, 알론소 키하노의 광기는 존재의 의미를 영원히 보존하기 위한 것이다. 찬연한 기사도의 세계가 사라지고 존재의 의미가 사라진 뒤의 삶을 감당할 수 없을 때, 주인공은 알론소 키하노로 변하여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는 광기 혹은 영웅적 행위를 수행한다. 그는 죽음으로써 역설적으로 자신의 존재 근거를 긍정하고 영원한 생존에 대한 약속을 얻는다. 산초의 말처럼, 죽음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지독한 광기이면서 알론소 키하노의 마지막 영웅적 행위가 된다. “그가 죽었음에도 죽음은 삶에게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는 그의 묘비명처럼, 한때 돈키호테였으며 한때 알론소 키하노였던 주인공은 죽음으로써 그(들)의 이름(들)을 영원하게 만들었다.
기본정보
ISBN | 9788990062604 |
---|---|
발행(출시)일자 | 2015년 08월 25일 |
쪽수 | 264쪽 |
크기 |
152 * 215
* 18
mm
/ 464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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