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주문/바로드림/제휴사주문/업체배송건의 경우 1+1 증정상품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패키지
북카드
키워드 Pick
키워드 Pick 안내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다른 연관 도서를 다양하게 찾아 볼 수 있는 서비스로, 클릭 시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한 다양한 책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키워드는 최근 많이 찾는 순으로 정렬됩니다.
작가정보
저자(글) 이진희
역사학자. 1962년에 태어나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히토쓰바시대학 대학원 사회학연구과를 졸업했다. 히토쓰바시대학 한국학연구센터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는 전북대학교 고려인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토지 수탈과 궁삼면 토지탈환운동』(2021), 『제국과 식민지 사이』(2018), 『한국과 일본, 상호 인식의 변용과 기억』(2014), 『제국 일본의 한국 인식, 그 왜곡의 역사』(2007), 『식민지 조선과 일본, 일본인』(2007) 등이 있고, 역서로는 『시무時務의 역사학자 강덕상』(2021), 『다이쇼 데모크라시』(2012), 『일본제국의회 시정방침 연설집』(2012),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2006). 『내셔널 히스토리를 넘어서』(2000) 등이 있다.
목차
- 한국어판에 붙여
1
나의 소년 시절
불탑린 미토를 향해
조선학교 폐쇄 명령
메이지대학에 입학
토로 유적에서의 만남
격전의 한국전쟁
갑작스러운 체포, 묵비권 행사
보따리 장사화 학생 생활
청운료의 학우들
졸업 논문
2
록펠러로부터의 권유
야나기 무네요시에의 심취
도쿄 조선고등학교
석사 논문 집필
북한의 연구 성과에 감격
3
한·일간의 국교 정상화
조선문화와 일본의 파기
대학 인가의 전후 시기
이상한 사건의 속출
일본 속의 조선 문화
사상 점검의 폭풍
조선대학을 떠나다
도작 사건
4
광개토왕릉비 연구의 간행
동분서주한 한 해
김대중 납치와 남북 대화의 파탄
김지하와 문세광 사건
계간 삼천리 창간
광개토대왕릉비의 반향
NHK에 조선어 강좌를
조총련의 중상·비방
김달수를 격려하는 모임
5
중·일 국교 회복, 박정희 대통령의 피살
방한과 그 경위
서울에서의 이틀
공주·부여를 지나 순천으로
김달수의 고향에서 경주로
친척과의 재회와 산소 참배
6
비망록
비문 변조설로부터 22년
국경의 대하, 압록강을 가다
후기
연보 및 저작 목록
찾아보기
옮긴이의 말
출판사 서평
일본의 잘못된 광개토왕릉비 연구 풍토를 바로잡아 일본 역사학계를 뒤흔든 ‘재일’ 1세대 사학자 이진희의 회한과 눈물로 쓴 자전 스토리
한국의 역사학계에서 이진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한국의 고대사학자들이 일본의 연구 풍토에 매몰되어 있을 때, 따라서 광개토왕릉비에 대한 일본의 엉터리 연구 결과가 진실인 양 호도되고 있음에도 그 진위에 대해 단 한 번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있던 때, 한국도 아닌 일본에서, 처음으로 풍부한 사료와 날카로운 해석을 앞세워 기정 사실화된 ‘사실’(史實)을 원점으로 되돌린 재일 사학자, 이제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기억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것 말고도 또 다른 기억의 꼬리표가 있다. 좌익 성향의 조총련계 학자로 출발했다가 조총련을 탈퇴하고 이후 남한 정부의 후의 속에 고국을 방문하고 한국 국적까지 취득한 전향 학자. 공간적으로 또 이념적으로 결코 명쾌할 수 없는 지형에 몸을 두고 살 수밖에 없었던, 그러나 인간적으로 학문적으로 오로지 자신의 양심에 충실한다는 원칙에 의거하여 살고자 했던, 그러면서도 고향과 고국,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 깊이 감추며 절절한 세월을 속수무책으로 보내야 했던 그였다.
이 책은 그런 그가 고희의 나이를 넘기면서 “일본에서 자라날 손녀에게 할아버지가 이국땅 일본에서 살아온 고된 반평생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쓴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동기로 집필을 시작한 것이지만, 예의 학자로서의 꼼꼼한 기록과 정확한 기억을 바탕으로 자신의 한 생애, 그 중에서도 일본으로 건너간 뒤로부터 50여 년 동안의 일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담담하고 솔직하게 때론 대범하게 적어나가고 있다. 그의 이 책은 한 인간의 삶에 대한 기록이자, 한 역사학자로서 학문적 기록이기도 하고, 그로서 상징되는 재일교포 1세대가 겪은 공동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며, 20세기 남한과 북한 그리고 일본이 광개토왕릉비라는 고대의 역사적 상징을 둘러싸고 벌였던 쟁투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진희는 1929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지만 사회주의 이론에 관심을 가지면서 공부에 대한 욕구를 실현시키려는 일념으로 1948년 일본으로 건너간다. 보따리 장사 등으로 고학을 하면서 어렵게 메이지대학 문학부 사학과를 졸업(1954년)하고, 좌익계 학교인 도쿄의 조선고등학교 교원(1955년, 이해 5월에 조총련이 결성되었으며, 이후 조선고등학교도 조총련의 휘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조선대학 교원(1961년)을 역임하는 등 1971년 조선대학 사직과 함께 결별을 선언할 때까지 조총련과 관계를 맺는다. 그 사이에 그는 조선 고고학에 대한 북한의 연구 성과에 감격하기도 하고, 1959년 북한으로의 귀국 운동 당시에는 자신의 학생들 몇몇을 직접 ‘귀국선’에 태워보내기도 하며(그러나 이 일은 그에게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겨졌다고 그는 회고한다), 그 자신 직접 북한으로 가서 고고학의 현장에서 활약하고 싶다는 염원을 품기도 한다.
그가 조총련 조직과의 결별이라는 “생애에 있어 가장 커다란 변화”를 도모하게 된 것은, 자신의 첫 저술인 '조선 문화와 일본'에 대한 조총련의 터무니없는 비판과 출간 저지 활동, 한덕수/김병식 등 조총련 관료 조직의 횡포 및 홍위병식 사상 점검의 회오리 등을 거치면서 극심한 회의와 고뇌를 겪은 뒤이다. 그의 술회에 따르면, “북한의 김일성 정권이 사회주의와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까지 갖가지 사건에 직면했고 긴 시간을 소비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더욱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북한과 단호히 결별해야 한다’ ‘아니, 사회주의에 희망을 두어야 하고 북한의 잘못된 실체는 일시적인 것이다’ ‘대학을 떠나는 것은 일본에서의 민족 교육을 부정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등등의 고민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나는 심각한 불면증에 빠져버렸다.” 그것은 이념적으로 획을 달리하게 되는 중요한 사건이기도 했지만, 한 인간으로서 22년 동안 ‘성직’(聖職)으로 여기고 몸담아온 교사 생활을 마감하면서 “과거의 속박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고독한” 여정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건강의 악화로 병마에 시달리는 한편 가지고 있던 중요한 책들을 팔아서 가족의 생활비를 꾸려야 할 정도로 절박한 생활고에 다시 한 번 직면한 때이기도 했다.
그가 광개토왕릉비 연구와 관련하여 일본 학계에서 주목을 받은 것은 1972년 '광개토왕릉비문의 수수께끼'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이 글은 일본 언론으로부터 크게 주목을 받았는데, 그는 이 글에서 ‘임나일본부’설의 근거가 된 광개토왕릉비문의 탁본에 문제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를 알고도 역사적 통설로 몰아간 일본 역사학자들의 저의가 무엇인지를 비판하였다. 이 해 그는 '광개토왕릉비의 연구'라는 책을 간행하기도 하였는데, 그의 이러한 문제 제기는 곧 후루다 타케히코(古田武彦) 등 일본 사학자들과의 대대적인 논쟁으로 이어졌으며, 이러한 사실이 한국의 언론에 의해 보도되면서 국내 역사학자들도 새삼 이 문제에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다.
1972년 계간지 '일본 속의 조선 문화'의 편집에 참여하기 시작한 이후, 그는 근대 100년의 한/일 관계를 주제로 삼은 잡지 '계간 삼천리'의 창간(1975년)에 관여하여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계간 삼천리'가 종간(1987년)된 뒤 1989년 '계간 청구'를 창간할 때에도 역시 편집장으로 취임하는 등, 매체를 중심으로 자신의 연구 활동을 지속하는 한편 김지하 구명 운동에 참여하는 등 한국의 정치 상황에도 민감한 관심을 보인다.
아버지의 부음(1973년)을 듣고도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던 그가 도일 후 처음으로 고향 땅을 밟게 된 것은 1981년 전두환 정권 당시이다. 당시 광주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있던 세 명의 재일조선인의 구명을 위해 한국 정부에 청원서를 넣고자 했던 '계간 삼천리' 관계자들의 바람과 정권의 이미지 제고에 부심하던 전두환 정부의 소망이 일치하면서 가능하게 된 고국 방문이었다. 이후 그는 국적을 한국으로 변경(1984년)하였으며, '계간 청구'의 창간과 동시에 한국문화연구진흥재단을 설립해(1989년)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 한/일 관계사에 관한 연구를 조성”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 이러한 노력과 연구 성과가 평가받은 것인지, 2001년 그는 KBS에서 주는 해외동포상(학술 부문)을 수상하여 그간의 노고와 고단함에 대한 다소간의 위로를 받기도 한다.
기본정보
ISBN | 9788987519937 |
---|---|
발행(출시)일자 | 2003년 09월 20일 |
쪽수 | 356쪽 |
크기 |
160 * 232
mm
|
총권수 | 1권 |
Klover
e교환권은 적립 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리워드는 작성 후 다음 날 제공되며, 발송 전 작성 시 발송 완료 후 익일 제공됩니다.
리워드는 리뷰 종류별로 구매한 아이디당 한 상품에 최초 1회 작성 건들에 대해서만 제공됩니다.
판매가 1,000원 미만 도서의 경우 리워드 지급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일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불편을 끼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래에 해당하는 Klover 리뷰는 별도의 통보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도서나 타인에 대해 근거 없이 비방을 하거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리뷰
- 도서와 무관한 내용의 리뷰
- 인신공격이나 욕설, 비속어, 혐오발언이 개재된 리뷰
- 의성어나 의태어 등 내용의 의미가 없는 리뷰
리뷰는 1인이 중복으로 작성하실 수는 있지만, 평점계산은 가장 최근에 남긴 1건의 리뷰만 반영됩니다.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200원 적립
문장수집
e교환권은 적립 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리워드는 작성 후 다음 날 제공되며, 발송 전 작성 시 발송 완료 후 익일 제공됩니다.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주문취소/반품/절판/품절 시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