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태조 왕건정권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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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대전광역시 출생. 대전고ㆍ공주사범대학 역사교육과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석사ㆍ박사과정 졸업(문학박사)
원광대학교 국사교육과 부교수, 대전대학교 박물관장ㆍ인문예술대학 학장, 호서사학회ㆍ한국중세사학회 회장, 교육부 역사교육심의위원, 중학교 및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검정위원, 전국수학능력시험, 중등교사 임용시험 출제위원 역임
현 대전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중요 저서
?나말려초의 호족과 사회변동 연구?(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1990), ?주제별로 본 한국역사?(서경문화사, 1998), ?태조 왕건?(일빛, 2000), ?옛사람 72인에게 지혜를 구하다?(푸른 역사, 2003), ?고려 전기 정치사?(일지사, 2005), ?중국산책?(서경문화사, 2005), ?라이벌 한국사?(애플북스, 2007), ?고려의 후삼국 통일과 후백제?(서경문화사, 2010), ?충청의 얼을 찾아서?(서경문화사, 2012), ?고려시대사 개론?(혜안, 2013), ?고려의 토속신앙?(혜안, 2017)
목차
- 책머리에
1장 서장
Ⅰ. 이 책의 구성과 내용
Ⅱ. 후삼국의 성립과 왕건의 선대
2장 태조 왕건의 姓名과 중국출신설 검토
Ⅰ. 王建의 姓名과 중국
Ⅱ. 왕건의 중국출신설 검토
3장 태조 왕건대의 통치체제
Ⅰ. 중앙통치체제
Ⅱ. 지방 통치체제
4장 태조 왕건대의 정치세력
Ⅰ. 공신세력
Ⅱ. 외척세력
Ⅲ. 문신세력
5장 태조 왕건의 대내 및 대외정책
Ⅰ. 대내정책
Ⅱ. 대발해ㆍ거란 외교
Ⅲ. 대중국 외교
Ⅳ. 대중국 인질 외교
6장 태조 왕건의 사상정책과 불교
Ⅰ. 사상정책
Ⅱ. 개태사 창건과 그 성격
7장 태조 왕건의 후삼국 통일
Ⅰ. 왕건과 견훤의 대결과 후백제 멸망
Ⅱ. 신라의 멸망과 멸망 요인
8장 고려 건국과 후삼국 통일의 의미
9장 태조 왕건의 리더십
10장 결론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이 책은 후삼국 시대를 종식시키고 통일 왕조를 이룩한 고려 태조 왕건과 그 정권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서이다. 그동안 후삼국 시대의 영웅들 중 궁예나 견훤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서는 이미 출간되어 읽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고려 왕조를 개창하고 통일 왕조의 터전을 닦았던 태조 왕건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저서는 발간되지 않았다. 왕건의 통일 전쟁에 대한 연구서가 몇 권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요인이 이번에 책을 발간하게 된 계기였다.
이 책에서는 총 10장으로 나누어 고려 태조 왕건정권을 탐구하였다. 서장에서는 이 책에서 무엇을 다룰 것인가 하는 내용을 서술하였다. 그리고 신라 말기의 혼란 상황 속에서 후삼국이 성립되는 과정을 간단히 살피고 고려 건국자인 태조 왕건의 선대에 대해 알아보았다.
2장에서는 왕건의 성인 ‘왕(王)’씨가 어떻게 해서 탄생한 것인가 하는 점을 살펴보고 왕건의 중국출신설을 검토하였다. 곧 중국의 동북공정을 반박하는 한 논리적 근거를 탐구한 것이다. 고려 태조 왕건의 성은 ‘王’씨는 중국과의 관련성 속에서 나온 성씨였다. 나아가 왕건은 본인의 선조가 중국의 회하 유역에 산 적이 있다고 자칭함으로써 중국과의 외교 관계에서 우월한 지위를 획득하려 하였다. 증조할아버지가 당 숙종 또는 선종이었다는 설은 그러한 배경 하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중국 출신은 아니었다. 다만 왕건이 자신의 선조와 중국과의 관련성, 그리고 자신의 성인 ‘王’씨를 내세워 자신이 중국 출신이라는 주장을 했을 가능성은 있다. 이를 통해 중국과의 외교를 원활히 하고 중국의 인정을 받고자 함이었다.
3장에서는 왕건의 통치체제를 중앙 통치체제와 지방 통치체제로 나누어서 살펴보았다.
궁예의 뒤를 이어 왕위에 즉위한 왕건은 즉위 후 얼마 되지 않은 태조 원년 6월에 조서를 반포하여 인사를 단행하였다. 대체로 정치, 군사, 경제, 형벌과 왕실관계 부서의 순으로 되어 있어 정치 다음으로 군사문제가 중시되었던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고려의 6부가 당ㆍ송과는 달리 호부보다 병부가 우위에 있었던 연원도 알 수 있었다. 왕건은 또 지방제도의 개편을 후삼국 통일에 이용하였다. 그는 군현의 지명 개정이나 승강(乘降)을 통해 지방세력을 통제하였다. 고려 왕조에 귀부 내지 협조한 지방세력들의 출신지를 향(鄕), 부곡(部曲)에서 현(縣)으로 승격하거나 현에서 군(郡)으로 승격하기도 하였다. 또 군, 현에서 주(州), 부(府)로 승격한 경우도 많았다. 반면 고려 왕조에 대항했거나 비협조적인 지방세력의 근거지는 강등하였다.
4장에서는 태조 왕건대의 정치세력을 몇 개의 부류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즉 공신세력, 외척세력, 문신세력의 순으로 나누어, 그들이 당시의 정치와 후삼국 통일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를 탐구하였다. 공신세력은 개국공신, 삼한공신, 배향공신 등을 말한다. 개국 1등공신으로는 홍유ㆍ배현경ㆍ신숭겸ㆍ복지겸 등이 있었다. 후에 이들 개국 1등공신 4명에 유금필과 최응이 첨가되어 태조의 배향공신이 되었다. 이들이 소위 ‘조대 6공신(祖代 六功臣)’으로 그들의 후예는 음서의 혜택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외척세력은 왕건의 외가를 말하는데 이들이 왕건대에는 가장 세력이 컸다. 이들 가문은 세력 다툼 과정에서 나주 오씨처럼 혜종 이후 후퇴한 집안도 있었고, 정주 유씨나 충주 유씨처럼 후대까지 영달한 가문도 있었다. 한편 문신세력은 주로 유학을 공부한 사람들로 이들은 주로 행정관료에 등용되었는데, 최응, 최언위, 최지몽 등을 들 수 있다.
5장에서는 왕건의 대내 및 대외 정책을 탐구하였다. 왕건은 통일을 위한 여러 정책을 실시하였다. 대내 정책으로는 북방정책, 대호족정책, 대민정책 등이 있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정책은 국호를 ‘고려(高麗)’라 하고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을 제2의 서울인 서경(西京)으로 삼아 북진정책을 실시한 것이었다. 그 덕분에 통일신라의 영토보다 훨씬 북쪽으로 영토가 확장되었다. 왕건의 북진정책은 성종대의 서희의 담판, 공민왕의 북진정책, 조선 세종대의 4군 6진 정책으로 이어져 현재의 대한민국 영토가 확정된 것이었다. 이러한 정책으로 호족들과 백성들의 민심을 얻을 수 있었고 마침내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대외 정책으로는 발해 및 거란과의 관계, 중국과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특히 예나 지금이나 중국과의 외교정책이 중요하였으므로 이를 중국의 내부 상황까지 고려하여 좀 더 심도 있게 살펴보았다. 왕건의 후삼국 통일에는 외교전략도 한 몫 하였는데, 발해의 유민들을 받아들이는 한편 중국과는 때로 자존심을 버리고 인질 외교까지 실행하였다. 다만 아쉬운 점은 거란에 대한 강경 외교가 후진의 멸망 후 3차에 걸친 거란의 침략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6장에서는 왕건의 사상 정책 일반과 불교 정책을 살폈다. 왕건은 사상을 잘 활용하여 정치와 후삼국 통일에 이용하였다. 그리하여 불교 및 유학과 풍수지리, 도교, 산신 신앙과 같은 토속신앙 등을 모두 용인하고 장려하였다. 그러나 그가 특히 신경썼던 것은 불교였다. 개경에 많은 사찰을 세웠고 고승들을 초청하여 정치적 자문을 받았다. 따라서 왕건정권의 불교 정책을 더 깊이 있게 탐구해 보기 위해 후삼국 통일 직후 설립한 논산 개태사의 창건 배경과 그 성격도 고찰해 보았다.
7장에서는 왕건의 후삼국 통일 과정에 대해 살펴보았다. 먼저 왕건과 후백제 건국자인 견훤의 대결과정과 후백제 멸망과정을 탐구하고 다음으로는 신라의 멸망 과정도 살펴보았다. 특히 천년 신라가 멸망하게 된 원인을 심도 있게 탐구하였다. 신라가 멸망하자 경주 세력은 세 갈래의 태도를 보였다. 많은 왕족이나 신라의 관리들은 경순왕을 따라 고려에 감으로써 고려조정에서도 지배세력으로서의 위치를 잃지 않은 부류가 있었다. 한편 경순왕을 따라가지는 않고 경주에 남아 있던 세력도 있었다. 이들은 태조로부터 자신들의 기득권을 나름대로 보장받았다. 이외에 경순왕의 귀부를 끝까지 반대하다 초야에 묻힌 부류도 일부 있었다. 결국 경순왕의 귀부로 신라는 멸망하였지만 대부분의 경주세력은 다시 고려조정에서 세력을 떨치게 되었다.
8장에서는 고려에 의한 후삼국 통일의 의의를 신라와 고려의 연속과 단절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9장에서는 태조 왕건의 리더십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태조 왕건이 어떻게 후삼국을 통일하여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을 조명해 보았다.
10장은 총결론으로 왕건정권의 총체적인 내용과 그 특징을 기술해 보았다.
고려 태조 왕건은 될 수 있으면 무력 대결을 피하려 했다. 끝까지 저항한 후백제와는 무력 대결을 피할 수 없었지만 신라는 끝까지 포용 정책으로 일관하여 통일을 완수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여 고려는 신라보다 훨씬 개방적인 사회가 되었고 신분이 아니고 능력이 중심이 되는 국가가 될 수 있었다.
결국 태조 왕건이 가장 중점을 둔 정책은 민심을 정확히 읽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국가를 운영해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집과 대결 보다는 화해와 용서, 포용의 중시가 있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태조 왕건의 정치와 리더십이 현재의 분단을 통일로 이끌어 가는 데 한 일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84946590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05월 15일 |
쪽수 | 496쪽 |
크기 |
160 * 231
* 31
mm
/ 833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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