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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캐나다의 소설가이자 영화평론가인 저자 데이비드 길모어는 아들과 함께 영화를 보며 영화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에는 영화에 대한 이론이나 기술보다는 보통의 가족이 영화를 보며 나눌 만한 자연스러운 대화들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그 속에는 영화에 안목이 있는 전문가의 식견에서 우러나오는 감상 포인트들이 적절하게 녹아있어 어떤 시각에서 영화를 감상해야 하는지에 대한 팁을 얻을 수 있다.
인생의 낙오자가 되려 했던 문제아 아들이 영화와 함께한 3년이란 시간을 통해 정서적인 안정을 되찾고 자기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과정은 진정한 부모의 힘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바를 시사한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한 영화 이야기가 아닌 훌륭한 가족소설이자 성장소설이며, 자아를 발견하고 정신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다룬 교양소설(Bildungsroman)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정보
캐나다의 소설가이자 영화평론가. 윌리엄 버로스나 노스럽 프라이와 같은 영미 문학계의 거장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뉴욕타임스』에서부터『피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디어의 찬사를 받고 있다. 2005년 소설『중국으로 떠나는 완벽한 하룻밤 A Perfect Night to Go to China』으로 캐나다 총독상 Governor General's Award을 수상했으며,『화요일에 돌아가라 Back on Tuesday』『소년들은 어떻게 소녀들을 만나는가 How Boys See Girls』『달과의 정사 An Affair with Moon』『집들 사이에서 길을 잃다 Lost Between Houses』『참새의 밤 Sparrow Nights』등 여섯 권의 소설을 발표했다. 또한 캐나다 TV 방송 다큐멘터리 <길모어의 예술 순례>를 진행하여 1997년 방송 우수상을 수상했다.
그의 저서들은 12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아들 제시 길모어는 현재 밴드 ‘Corrupted Nostalgia’에서 활동하고 있다.
책 속으로
나는 질문으로 시작했다. 말론 브란도는 역사상 최고의 영화배우였을까? <워터프론트>는 뉴욕 부둣가의 비리를 척결하는 영화처럼 보이지만, 정말 중요한 의미는 미국 영화에서 메소드라는 새로운 연기 기법의 도입을 앞당긴 작품이라는 점을 설명했다. (본문 45쪽)
그러나 무엇보다도 스티븐 킹은 큐브릭이 공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공포가 어떻게 작동하는 건지 전혀 갈피도 못 잡고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킹은 <샤이닝>의 사전 시사회에 갔다가 잔뜩 화가 나서 돌아왔다. 그의 말로는, 영화가 마치 엔진 없는 캐딜락 같다는 것이었다. “차에 탔는데 가죽 냄새만 진동하면 뭐하겠어요. 차를 운전할 수가 없는데.” 그리고 킹은 큐브릭이 사람들에게 “상처주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 점에 어느 정도 동의하긴 하지만, 어쨌든 난 <샤이닝>을 사랑한다. (본문 89쪽)
그렇지만 내가 틀렸다면 어쩌지? 제시가 언젠가 지하실 방에서 뛰쳐나와 ‘세상과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 생기지 않으면 어쩌지? 그냥 게으름에 지나지 않는 것을 똑똑한 척 우쭐대는 멍청이들이 머리 써서 짜낸 잘못된 이론을 따라가다 제시의 전 인생을 송두리째 망치게 하면 어떻게 하지? (본문 113쪽)
수년간 회자되었던 이야기가 있다. 프리드킨 감독이 (실제로 신부였던) 비전문 배우를 신부 역으로 기용해서 장면을 찍는 동안 자신이 원하는 연기가 나오지 않자 신부에게 물었다. “날 믿겠소?” 이에 신부는 “물론이죠” 하고 대답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프리드킨은 한 걸음 물러서서 신부의 얼굴을 찰싹 때렸다. 프리드킨은 마침내 자신이 원했던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다미엔 신부가 층계 맨 아래 칸에서 마지막 의식을 치르는 장면에서 볼 수 있다. 신부가 여전히 손을 덜덜 떨고 있는 장면 말이다. (본문 160쪽)
확실히 우리 관계가 변하고 있었다. 나는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가 결전을 맞이하리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내가 패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도. 통상적으로 모든 아버지들이 그러하듯이. 우리의 다음 영화는 이러한 이유로 선택되었다. (본문 170쪽)
“그건 그렇고, 지금 내가 보여주려는 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야.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연기한 이 사내는 매일 밤 술과 여자에 빠져 인생을 헛되이 날려버리지. 그러다 해가 뜨는 해변에서 한 떼의 파티광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인생을 마감해. (…) 이 장면을 잘 보고 기억해두렴. 파티광인 이 사내의 인생은 이미 절정을 지나 내리막길을 가고 있는 거지. 그 자신도 이를 알고 있고, 해변가의 그 여자도 역시 알고 있어. 하지만 제시, 네 인생은 이제 막 시작하고 있어. 모든 게 네 앞에 놓여 있어. 그걸 날려버린다면, 그건 네 탓이야.” 난 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1960)을 틀고 마지막 장면으로 돌렸다. (본문 195~196쪽)
이 영화의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은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랠프 파인스의 눈에서 나온다. 파인스가 눈으로 어떻게 연기하는지 보라. 그가 롭 모로에게 말할 때, 파인스의 두 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라. 정말 깜짝 놀랄 연기가 나온다. (본문 231쪽)
사람들에게 영화를 골라주는 일은 위험한 모험이다. 어느 면에서 보면 그건 편지를 쓰는 것만큼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건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점이 당신에게 감동을 주었는지, 심지어 때로는 세상이 당신을 어떻게 본다고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 그래서 여기에 남들에게 추천하여 한 번도 욕을 먹은 적이 없는 몇 편의 영화 목록이 있다. <살인 연극>(1977)은 그중 하나다. (본문 237쪽)
그런 다음, 제시는 떠나버렸다. 나는 생각해봤다. 제시 나이가 벌써 열아홉 살이야. 이젠 떠날 때도 됐지. 적어도 제시는 마이클 커티즈가 <카사블랑카>를 찍을 때, 슬픈 결말이 제대로 빛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여 한 개의 결말을 더 찍었다는 걸 알고 있으니 됐지. 제시가 세상일을 배워가는 데 그것이 큰 도움이 될 거야. 이제 내가 아들을 아무런 준비 없이 세상에 내보냈다고 하지는 않겠지. (본문 241쪽)
출판사 서평
* 고전 영화부터 현대의 걸작 영화에 이르기까지, 영화 예술의 진수를 평이하고도 깊이 있고 재미있게 다룬 탁월한 영화 입문서이자 영화 교육서.
* 세계적인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을 즈음하여 출간.
* 전 세계 12개국 번역 출간.
* 인생의 낙오자가 되려 하는 아들에게 영화를 보여주며
삶의 용기와 의욕을 불어넣어, 한 아이를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시킨
진정한 에듀라마 edurama(educational drama).
* 부모力이 우리 교육의 화두가 되고 있는 이때,
진정한 부모力이란 무엇인가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자녀 교육 이야기.
아버지와 아들이 영화를 통해 이룬 ‘기적’에 관한 이야기
열여섯 살짜리 아들이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고 학교 다니기 싫어하는 것을 파악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학교를 중퇴해도 좋다고 허락하는 대신, 딱 한 가지 조건을 내건다. 일주일에 세 편씩 아빠와 함께 영화를 보는 것. 이후 3년간 아들은 아빠가 골라주는 영화를 보고, 아빠가 영화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한다.
이 책에서 영화란 무엇보다 아들과 아버지의 소통 수단이다. 문제아가 되기 시작하는 사춘기 아들을 둔 아버지, 그것도 이혼한 아버지는 아들과의 접점, 교집합, 공통분모를 영화에서 찾아낸다. 영화란 소설가이자 영화평론가인 아버지가 가장 잘 아는 분야였으며, 거의 아무것에도 흥미가 없고 매사에 시들한 사춘기 아들이 유일하게 흥미를 가질 만한 분야였기 때문이다.
이제 이 소설 같은 에세이는 아버지와 아들이 영화를 보며 나누는 대화가 주축이 되어 흘러간다. 영화에 대한 어려운 이론이 나오지도 않고, 고전 예술 영화만 다루는 것도 아니다. 그저 보통의 가족이 영화를 보며 나눌 만한 말들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그렇게 3년을 보내면서 아들은 어른이 되어간다. 아들은 3년간의 ‘수업’으로 영화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되지만, 아들이 영화 쪽으로 진로를 결정하는 식의 상투적인 결말은 없다. 아들은 영화를 보며 아버지와 대화하는 가운데 정서적인 안정을 찾게 되고 자기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뿐이다. 아들이 선택하는 진로는 ‘의외로’ 음악이다. 아들은 힙합 밴드를 결성하고 클럽에서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스스로 원해서’ 대학에도 진학하게 된다.
비록 소설은 아니지만, 『기적의 필름 클럽』은 훌륭한 가족소설이자 성장소설로 읽힌다. 이런저런 문제로 고민하는 아들에게 그저 영화를 보여주고 이야기를 성의껏 들어주는 것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하는 아버지와, 끊임없이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려 하면서도 결국 친구처럼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은 아버지밖에 없는 아들 사이의 이 감동적인 실제 이야기는, 공교육이 사교육화되는 우리 현실에서 자녀의 앞날을 걱정하여 대안교육을 모색하는 우리의 부모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줄 것이다.
과연 부모의 역할은 무엇인가? 부모가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은 무엇인가? 이 책은 이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훌륭한 답안지이다.
영화, 한 아이를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멋진 도구
이 책은 영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여타의 영화책과 다른 점은, 영화를 ‘자녀교육 버전’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영화를 설명하더라도, 일반적인 영화개론서 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아들의 흥미를 끌 목록이 고심 끝에 선정되며, 아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말로 설명된다.
아버지가 아들이 학교를 중퇴한 후 보여주는 첫 영화는 누벨바그의 거장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이다. 이 영화는 역시 학교를 중퇴한 감독이 자신의 어린 시절의 방황을 그린 자전적 영화로, 학교를 그만두고 방황의 시기를 본격적으로 맞이하는 아들에게 뭔가 생각할 거리를 주려는 의도였다. 누벨바그 영화로 아들의 머릿속을 심각하게 한 다음, 아버지는 ‘디저트’로 성적 긴장감이 넘치는 <원초적 본능>을 보여주며 아들의 욕구를 해소해주기도 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영화 보기 모임인 ‘필름 클럽’은 점점 테마를 갖게 된다. 아들이 필름 클럽을 좀 더 즐길 수 있도록 ‘최고의 명장면 뽑기’ ‘재능 발굴’ ‘정중동(靜中動) 연기’ ‘공포영화 특별전’ ‘숨은 보물 찾기’ ‘죄스런 쾌락을 주는 영화’ 같은 테마가 정해진다. 또한 영화는 아들의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선택되기도 한다. 아들이 실연으로 우울해할 때는 신나는 액션 영화 <비정의 거리>(마이클 만 감독)가 선택되고, 부자관계가 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땐 촬영장을 우연히 지나가던 형이 찍힌 영화 <매그넘 포스>를 보여주며 사이가 벌어진 형과의 관계를 아들에게 이야기해주는 계기를 만든다. 아들이 마약을 하며 청춘을 낭비한다는 안타까움이 들 때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을 보여주고, 아들이 음악에 몰두하며 노랫말을 쓸 때는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영화가 무엇일까 생각한다. 이렇게 하여 고전 예술 영화부터 현대 할리우드 액션물까지, 총 114편의 영화가 교육적 가치와 문화예술적 가치를 두루 고려하여 선정된다.
필름 클럽의 리스트는 특별한 순서가 있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정해졌다. 대체로 좋은 영화여야 했고, 가능하면 고전을 택했지만, 매력적인 면이 있어야 했다.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드는 제시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탄탄한 줄거리도 있어야 했다. (본문 61~62쪽)
필름 클럽 분위기가 조금 딱딱해지는 것 같아(누벨바그 류의 영화 다섯 편을 연이어 봐서일까!) 2월 첫째 주 필름 클럽으로 죄스런 쾌락을 소재로 한 영화 목록을 작성했다. 내심 제시가 저질 영화에서 재미를 느낄 수 없다는 통념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도 작용했다. 이런 종류의 영화에 빠지는 법도 알아야 한다. (본문 209쪽)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주는 영화 설명은 일상적인 언어로 쉽게 이야기된다. 기본적인 영화 이론이나 기술적 측면도 언급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어떤 점에서 영화를 감상해야 하는가 하는 포인트를 잡아줌으로써 아들이 주체적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감식안을 갖도록 능력을 길러주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이것은 영화에 대한 안목을 가진 노련한 전문가 아버지가 아들의 의견을 강요하지 않고 솔직하고 자유로운 대화를 나눌 때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아버지는 우디 앨런의 <범죄와 비행>을 보면서 이야기의 효과적 전개에 대해 이야기하고, <워터프론트>에서 감독 엘리아 카잔의 배신행위(매카시즘 당시)를 곁들여 이야기하면서 말론 브란도가 획기적으로 도입했던 메소드 연기에 대해 설명하고, <자이언트>에서는 어떤 장면에서 제임스 딘의 손동작에 주목하게 하며, 히치콕의 <오명>에서 계단 장면이 가지는 의미를 설명한다. 뤽 베송의 <니키타>를 ‘우스꽝스러운 영화’라고 하면서도 총격전 장면의 놀라운 시각적 효과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애니 홀>에서 다이앤 키튼이 노래 부르는 장면, <비열한 거리>(마틴 스콜세지 감독)에서 하비 케이틀이 술집에 들어가는 장면,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첫 장면, <퀴즈 쇼>(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에서 랠프 파인스의 눈 연기, <마지막 지령>(할 애쉬비 감독)에서 잭 니콜슨의 ‘개망나니’ 연기 등에 대해서 아낌없는 찬사를 바치며 아들과의 공감을 끌어낸다.
그리고 제임스 딘이 떠나는 장면. 그는 문 앞에 멈춰 서서, 마치 로데오 묘기를 연습하는 것처럼 긴 밧줄을 휘두른다.
“자, 이 부분을 잘 봐. 그가 방을 나가면서 어떻게 하는지 손동작을 잘 봐. 마치 책상 위의 눈을 쓸어버리는 듯하지? 그건 저 양복쟁이들한테 ‘꺼져’ 하는 것 같지 않아?”
(…)
“와!” 제시가 똑바로 앉으며 감탄했다. “우리 그 장면 다시 봐요.” (본문 58쪽)
나는 영화에서 꼭 봐야 할 훌륭하고도 예술적인 부분을 지적했다. 이 영화가 텅 빈 철도 선로를 표현하는 방식을 보렴. 우린 반복해서 이 장면을 보았다. 대사로 표현하는 것도 아니고 사건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지만 분명 위기감을 만들어낸다. 그 철도 선로를 볼 때마다 이 길을 통해 악당이 들이닥칠 거라는 예감을 갖게 된다. 시계도 마찬가지다. 똑딱, 똑딱, 똑딱, 똑딱. 심지어 정오가 가까워질수록 시계는 더디게 흐른다. (본문 128쪽)
하지만 매 영화마다 아들과 공감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들과의 세대차, 그 격세지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보고 감동에 젖어 있는 아버지와 달리, ‘그저 한 쌍의 창부 이야기일 뿐인데 너무 멋지게 그렸다’고 일갈함으로써 아버지를 어이없게 만드는 아들. 비틀스가 직접 출연한 비틀스 영화 <하드 데이즈 나이트>에 열광한 나머지, 영화에 이어 비틀스 음악까지 틀어놓고 비틀스의 위대함과 감동으로 들뜬 아버지 앞에서 “좋은 목소리네요”라고 시큰둥하게 말함으로써 찬물을 끼얹는 아들, 그리고 TV 시리즈 <월튼네 사람들>을 보고 난 후의 다음 한 장면.
이 드라마는 매 편 마지막 부분에 내레이터(큰아들 존 보이)가 등장하여 성숙한 관점으로 그날 일을 성찰하는 내레이션으로 끝나는데, 나는 제시가 이 내레이션을 주의해서 들어보길 바랐다. 어째서 이런 내레이션은 그토록 감동을 주는 걸까? 난 제시에게 물었다.
“네?”
“어떻게 이런 내레이션은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삶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걸까?”
“아빠, 무슨 얘길 하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본문 213~214쪽)
이처럼 문화적 코드가 영 다른 아들을 이해하고 그의 말을 경청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는 아들의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된다. 영화를 보며 아들은 어른으로 성장하고, 일정한 직업도, 돈도 없는 이혼한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부모力, 부모의 재력도 학력도 정보력도 아니다
최근에 ‘부모力’이라는 말이 우리 교육의 키워드로 등장했다.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아이의 능력을 만든다”라는 웃지 못할 우스개가 떠돌고, 부모의 3대 능력으로 ‘재력, 정보력, 학력’이 무슨 규칙처럼 인정되는 우리의 참담한 교육 현실에서, 이 책의 아버지이자 작가 데이비드 길모어의 삶은 단순한 감동을 넘어서 부모의 역할에 대한 숙연한 반성을 하게 한다.
아들이 공부하기 싫어하고 학교를 혐오하는 것만 보고 덜컥 학교를 그만두게 한 아버지는 때때로 심리적 부담을 느끼고 갈등한다.
나도 모르게, 제시가 불행하게 사는 모습이 언뜻언뜻 눈앞을 스쳐가는 것 같았다. 상상 속의 늙은 제시는 비 오는 날 택시를 몰고 있고, 차에서는 마리화나 냄새가 코를 찌르며, 옆 좌석에는 타블로이드판 신문이 접힌 채 놓여 있다.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한 사람은 바로 나다. 집세 같은 건 신경 쓰지 말고 하루 종일 자거라. 얼마나 멋진 아빠란 말인가! (본문 56쪽)
하지만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십대 아이에게 억지로 뭘 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거나 아들의 고민을 주의 깊게 들으며 아들 곁을 지킨다. 아들의 연애에 카운슬링을 해주고, 아들의 실연에 함께 울고, 아들이 연습하는 음악을 문밖에서 듣다가 아들의 공연에 몰래 가기도 한다. 영화는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아버지의 유일한 능력이었으며, 영화가 준 것은 둘이서 함께할 수 있는 시간, 그 수많은 대화들이었다.
나는 착각하고 있지 않았다. 제시에게 체계적인 영화 교육을 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손쉽게 스쿠버 다이빙이나 우표 수집을 할 수도 있었다. 영화는 그저 우리가 수백 시간을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고, 더불어 레베카, 졸로프트, 치실, 베트남, 발기불능, 담배 등 온갖 종류의 대화의 창을 열어주는 역할을 했다. (본문 136~137쪽)
그렇게 3년이 흐르는 사이, 세상 밖으로 나오길 꺼려 하고 ‘인생 낙오자’ 친구들하고만 어울리던 아들은 음악의 길을 찾아 클럽에서 공연을 하는 어엿한 뮤지션이 되고 대학생이 된다.
제시는 필름 클럽보다 더 성장했고,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더 성장했다. 한 아이가 자신의 아빠보다 더 성장했다. (…) 부모 앞에서 방문을 닫아 걸기 시작하는 사춘기 아이에게 어른이 되어가는 3년이라는 시간은 얼마나 예기치 못한, 기적 같은 선물인지. (본문 293~294쪽)
맨땅에 헤딩하듯 무작정 아이를 중퇴시키고 시작한 ‘영화 감상 홈스쿨링’은 성공했다. 무조건적인 이해와 허심탄회한 대화, 아버지 데이비드 길모어의 진정한 부모力은 여기에 있다고 이 책은 웅변하고 있다.
영화와 교육, 가족과 성장을 이야기하는 책
비록 소설은 아니지만, 그리고 배경이 이혼 가정임에도, 역설적으로 이 책은 이상적인 가족소설로 읽힌다. 그리고 아들 제시 길모어의 입장에서, 이 책은 또한 자아를 발견하고 정신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다룬 교양소설(Bildungsroman)로도 읽힌다. 또한 자녀에게 대안교육이 필요함을 절감하고 길을 모색하고 있는 많은 부모들에게 훌륭한 대안교육 사례로도 읽힌다. 물론, 전형적인 이론에서 벗어나 피부에 와닿는 영화 입문서로도 읽힘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단 한 권의 책이 이렇게 많은 스펙트럼을 가지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이 책은 2009 부산국제영화제를 위해 준비했다. 영화를 다룬 책은 많고 많아도, 영화를 자녀 교육의 한 방법으로 풀어나간 책은 이 책이 유일할 것이다. 어엿하게 세계 영화인의 축제가 된 부산국제영화제를 계기로, 이 책의 감동이 더 많이 전해지기를 바란다.
* 이 책에 나오는 아들 제시 길모어의 밴드 ‘커럽티드 노스탤지어 Corrupted Nostalgia’는 현재 캐나다에서 활동하고 있는 힙합 밴드로, 책에도 나오는 이 밴드의 대표곡 <엔젤스 Angels>의 뮤직비디오는 인터넷 서점 등에서 볼 수 있다. 래퍼 제시 길모어의 모습과, 그를 울린 여인 클로에 매케이브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기본정보
ISBN | 9788981339258 | ||
---|---|---|---|
발행(출시)일자 | 2009년 10월 12일 | ||
쪽수 | 304쪽 | ||
크기 |
148 * 210
mm
|
||
총권수 | 1권 | ||
원서명/저자명 | The Film Club/Gilmour, David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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