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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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목차
- 작가서문
프롤로그
1장 강쳉이 일다
2장 양도새
3장 영등맞이
4장 영주에 오르다
5장 이름을 되찾다
6장 역모의 피바람
책 속으로
김만덕의 생애
김만덕(金萬德, 1739년~1812년)은 조선 시대의 여자 상인이다. 제주도에 대기근이 닥치자 전 재산을 풀어 육지에서 사온 쌀을 모두 진휼미로 기부하여 빈사상태의 제주도 백성들을 구제하였다. 이 때문에 제주에서는 ‘의녀’(義女)로 불린다.
김만덕은 김응열의 딸로 태어났으며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친척 집에서 겨우 목숨을 이어가던 만덕은 나이든 기녀의 집에 의탁하였다. 어른이 된 후, 만덕은 제주목사 신광익에게 탄원하여 양인(良人)으로 환원되었다. 이후 객주(客主)를 차려 제주 특산물인 귤, 미역, 말총, 양태(갓의 재료)를 육지의 옷감, 장신구, 화장품과 교환하여 판매하는 상업에 종사하여 돈을 많이 벌었다.
1793년 제주도에서는 세 고을에서만 6백여 명이나 아사할 정도로 심각한 흉년이 계속되었다. 이때 만덕은 전 재산을 풀어 5백여 석의 쌀을 사왔는데, 이중 450여 석을 모두 구호식량으로 기부하여 굶주림으로 죽어가던 제주도 민중들을 구휼하였다.
전 재산을 풀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의녀(義女) 만덕의 알현을 받은 정조가 “너는 한낱 여자의 몸으로 의기(義氣)를 내어 기아자 천백여 명을 구하였으니 기특하다.”라고 칭찬했다. 이듬해인 1796년 만덕의 선행이 알려지자, 정조는 제주목사 이우현을 통해 만덕의 소원을 물어보는데, 만덕은 한양에서 궁궐을 보고, 금강산을 보고 싶다고 하였다. 답을 들은 정조는 “관의 허락 없이 제주도민은 섬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라는 규칙을 깨고 만덕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또한 내의원 의녀반수 벼슬을 제수하여 그녀의 선행에 대한 보답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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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유교적 통념이 사회를 지배하던 시기에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간 아웃사이더
출륙금지령에 묶인 탐라민이자 기생, 그리고 여성으로서 삼고(三苦)를 멍에처럼 짊어진 채 상하좌우 그 어디로도 옴짝달싹할 수 없이 막막한 인생을 살아야만 했던 조선의 여인 김만덕. 그러나 발은 탐라땅에 묶여 있으되, 그녀의 눈은 조선을 넘어 저 넓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었다. 하여, 그녀는 고난에도 쉬이 자신이 정한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끝끝내 극복하여 조선 최고의 장사꾼으로서, 나아가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서 역사의 한 페이지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그녀가 간직했던, 또 풀어내고자 했던 평생의 화두는 ‘누구의 딸도, 누구의 누이도, 누구의 여인도 아닌 그저 내 이름 석 자, 김만덕으로 사는 것!’이었다.
신분의 굴레에도 좌절하지 않고, 소망하기를 멈추지 않았으며, 마침내 세상의 속박마저 뛰어넘은 인간 승리의 한 전형을 보여준 인물 김만덕. 김만덕이 나고 자랐던 당시의 제주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무색하리만치 조선의 유배지로 악명 높던 곳이었고, 태풍과 해일의 피해가 극심하여 관원들이 발령을 꺼리던 곳이었으며, 동시에 말과 귤, 녹미와 전복 등 수탈에 가까운 공납을 감당해야만 했던 고장이었다. 그 탓에 한 때 탐라를 떠나 뭍으로 도망가는 백성들이 줄을 이었다. 그것을 막고자 조선왕조가 만들어낸 법령이 ‘탐라의 백성은 뭍으로 이주하여 살 수 없다’는 이른바 ‘출륙금지령’이었다. 이 출륙금지령은 여성들에게 특히 가혹하였는데, 공납이나 장사를 위해 잠시라도 뭍으로 나갈 수 있었던 남성들과 달리 여성들은 아예 배조차 탈 수 없었다.
이러한 시대에 김만덕은 탐라민이자, 기생 그리고 여성으로서 삼고(三苦)를 멍에처럼 짊어진 채 상하좌우 그 어디로도 옴짝달싹할 수 없이 막막한 인생을 살아야만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영혼만은 바람처럼 자유로웠다. 발은 탐라땅에 묶여 있으되, 그녀의 눈은 조선을 넘어 저 넓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었다. 하여, 그녀는 고난에도 쉬이 자신이 정한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끝끝내 극복하여 조선 최고의 장사꾼으로서, 나아가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서 역사의 한 페이지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그녀에 대한 기록은 『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에 언급되어 있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
-제주의 기생 만덕이 장사를 통해 모은 재물을 풀어 흉년에 굶주린 백성들을 구제하였는데, 이를 안 임금이 상을 주려 하자 그 또한 마다하고, 다만 상경하여 금강산 유람하길 소원하였다. 이에 임금은 만덕의 소원을 허락해 주고, 연로(聯路)의 고을들로 하여금 양식을 내어주도록 하였다. 『정조실록』 정조 20년 11월 25일
김만덕의 생애
김만덕(金萬德, 1739년~1812년)은 조선 시대의 여자 상인이다. 제주도에 대기근이 닥치자 전 재산을 풀어 육지에서 사온 쌀을 모두 진휼미로 기부하여 빈사상태의 제주도 백성들을 구제하였다. 이 때문에 제주에서는 ‘의녀’(義女)로 불린다.
김만덕은 김응열의 딸로 태어났으며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친척 집에서 겨우 목숨을 이어가던 만덕은 나이든 기녀의 집에 의탁하였다. 어른이 된 후, 만덕은 제주목사 신광익에게 탄원하여 양인(良人)으로 환원되었다. 이후 객주(客主)를 차려 제주 특산물인 귤, 미역, 말총, 양태(갓의 재료)를 육지의 옷감, 장신구, 화장품과 교환하여 판매하는 상업에 종사하여 돈을 많이 벌었다.
1793년 제주도에서는 세 고을에서만 6백여 명이나 아사할 정도로 심각한 흉년이 계속되었다. 이때 만덕은 전 재산을 풀어 5백여 석의 쌀을 사왔는데, 이중 450여 석을 모두 구호식량으로 기부하여 굶주림으로 죽어가던 제주도 민중들을 구휼하였다.
전 재산을 풀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의녀(義女) 만덕의 알현을 받은 정조가 “너는 한낱 여자의 몸으로 의기(義氣)를 내어 기아자 천백여 명을 구하였으니 기특하다.”라고 칭찬했다. 이듬해인 1796년 만덕의 선행이 알려지자, 정조는 제주목사 이우현을 통해 만덕의 소원을 물어보는데, 만덕은 한양에서 궁궐을 보고, 금강산을 보고 싶다고 하였다. 답을 들은 정조는 “관의 허락 없이 제주도민은 섬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라는 규칙을 깨고 만덕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또한 내의원 의녀반수 벼슬을 제수하여 그녀의 선행에 대한 보답을 하였다.
기본정보
ISBN | 9788980972036 |
---|---|
발행(출시)일자 | 2010년 03월 26일 |
쪽수 | 376쪽 |
크기 |
153 * 224
mm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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