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화와 근대:최한기 사상에 대한 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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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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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국문학 연구의 외연을 사상사 연구와 예술사 연구로까지 확장함으로써 통합인문학으로서의 한국학 연구를 꾀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고전인물전연구』, 『한국전기소설의 미학』, 『한국의 생태사상』, 『운화와 근대』, 『연암을 읽는다』, 『21세기 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공저), 『유교와 한국문학의 장르』, 『저항과 아만』, 『연암과 선귤당의 대화』, 『나는 골목길 부처다-이언진 평전』, 『범애와 평등』,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통합인문학을 위하여』 등이 있다.
목차
문제와 방법
왜 최한기인가
기존 연구의 문제점
이 책의 접근법
최한기의 기본 개념어에 대한 예비적 확인
다섯 가지 주제를 통한 최한기 사상의 음미
서양을 보는 눈
세계주의
자연과 인위-최한기의 정치학과 그 생태주의적 음미
평화주의
학문의 통일
논의의 심화와 확대
이욕의 긍정과 그 한계-사적 자율성의 문제
문예의 폄하
사민평등의 문제
공치의 의의와 한계
학문정치
운화의 절대화
경험론/관념론
자족적 체계
성인의 상대화
글쓰기의 특징
근대와 베끼기
최한기와 후쿠자와 유키치
중체서용론/문명개화론/동도서기론
동서도기취사론
최한기와 강유의
최한기와 홍대용
강화도 조약에 대한 최한기의 입장
최한기 사상과 개화사상의 상위점
저항적 주체
개화기 공간과 최한기 사상의 운면
글을 끝내며
출판사 서평
탄신 200주년 맞은 혜강 최한기 -'근대확인적' 시각에서 '근대성찰적' 시각으로
혜강(惠岡) 최한기(崔漢綺, 1803~1877)는 19세기 중후반 동아시아의 전통적 사유틀인 유교의 전통을 단호히 거부하는 한편 서양을 참조하면서 새로운 세계구상을 마련해 갔던 조선의 대표적인 사상가이다. 그는 천지자연과 사회와 개인을 기(氣)의 운행이라는 관점에서 일체적으로 파악하고 유기적으로 이해하려는 독특한 학문체계인 기학(氣學)을 수립, '기'(氣)의 자기운동인 운화(運化)※라는 개념을 거점으로 삼아 동서양을 융합하고 포괄하면서 근대를 모색한, 동아시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사상가였다.
탄신 200주년을 맞아 혜강의 사상과 학문을 동아시아 차원에서 활발하게 재해석 중인 학계는, 최근 발견된 『소모』(素謨), 『향약추인』(鄕約抽人), 『승순사무』(承順事務), 『혜강잡고』(惠岡雜藁), 『최병대난필수록』(崔柄大亂筆隨錄) 등의 신자료를 바탕으로 철학/과학/역사/문학 방면에서 얻은 최한기 사상에 대한 폭넓은 연구 성과를 오는 11월 학술대회를 통해 발표할 예정이다. '惠岡 氣學의 사상: 東西의 학적 만남을 통한 신경지'라는 제목하에 「동서의 학적 만남의 두 길: 정약용의 經學과 최한기의 氣學」(임형택, 대동문화연구원장), 「최한기 사상에 있어서 '이욕'(利欲)의 문제」(박희병, 서울대학교 교수), 「최한기의 역사관과 역사의식」(권오영, 정신문화연구원 교수),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최한기 사상의 위치」(三浦國雄, 日本 大阪市立大 객원교수), 「19세기 求亡精神에서 본 최한기의 과학사상」(張永堂, 臺灣 淸華大 교수) 등의 소주제를 중심으로 혜강의 사상과 업적을 다양한 각도에서 재평가할 이번 학술대회는 최한기의 학문세계를 폭넓게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최한기의 사회사상과 정치학을 중심으로 사상사적 음미를 시도한 이 책은, 최한기 사상에서 근대성을 확인하는 데 급급했던 기존 연구의 시각, 문제의식, 방법에 문제제기를 하면서 역사적 근대(=서구적 근대)라는 기준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최한기 사상의 의미 있는 사상소(思想素)들을 발견하고 그의 사상의 총체적 면모를 파악하기 위해 '근대성찰적' 시각으로 최한기 사상에 접근한 책이다. 근대성찰적 관점은 역사적 근대를 직시하면서도 그 문제점을 동시에 읽고자 하며, 더 나아가 역사적 근대와는 다른 근대기획, 즉 근대구상의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점에서 '근대확인적' 관점과 구별된다.
저자는 이러한 방법론적 고민을 깔고 최한기 사상에 대한 기존 연구의 오류들을 바로잡고 있으며, 동시에 칸트나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4~1901), 강유위(康有爲, 1858~1927) 등 서유럽과 동아시아 사상가들과 나란히 세워 최한기 사상의 독창성을 새로운 각도에서 평가하고 있다. 또 근대성에 입각하여 긍정성만 부각되어 온 최한기 사상의 문제점과 한계를 집요하게 파헤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그의 사상이 21세기 한국의 사상적 모색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를 구상하고 있다. 최한기 연구뿐만 아니라 그간의 한국학이 근대로의 내발적 진입을 확인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음을 상기해 볼 때, 이 책의 접근법은 우리의 의식과 삶을 규제하고 있는 근대와 관련된 각종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적 고찰의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다.
※ 최한기는 모든 현상과 존재의 근거, 세계와 우주의 궁극적 실체가 '기'(氣)라고 생각했으며, 이러한 '기'의 자기운동을 운화(運化)라는 말로 표현했다. 운화라는 단어는 최한기 사상에 있어 가장 중심에 있는 개념이다.
『운화와 근대』 깊이 읽기
1. 기존의 연구 방법론을 전복하다
최한기는 조선의 전통적 학문 방법론인 경학(經學: 유교 경전에 대한 연구)의 치학방법(治學方法)을 전복시킨 파격적인 사상가였다. 유교 사상은 성인(聖人)의 가르침, 성인이 제정한 예법을 따르는 것을 그 종지(宗旨)로 삼는다. 그런데 최한기는 성인의 가르침과 성인의 의의를 일단 승인하면서도 인간이 직접 받들고 따라야 할 최고의 것에 성인 대신 운화기(運化氣)를 위치지음으로써 성인을 상대화시켰다. 그것은 곧 경학이 상징하고 있는 문명의 테두리를 벗어나 새로운 문명을 구상하고 체계화해 갔음을 의미한다.
당대 조선에서 서양 사정에 가장 밝았던 최한기가 자신의 철학체계와 정치학 및 세계구상을 마련해 나가는 데 서양에 대한 각종 정보와 아이디어의 영향을 받았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최한기는 서양을 모본으로 설정하고 그에 맞추어 동아시아와 조선의 미래를 설계한 것은 아니다. 최한기의 문제설정은 기학(氣學)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통해 동서양을 융합하고 포괄하는 데 있었다. 기학의 체계 아래에서 최한기는 화이론(華夷論)적 세계관을 극복했으며, 국가간의 평화와 공존을 중시하여 '나'와 '타자'가 함께 번영하는 길을 사상적으로 모색하였다. 그 점에서도 최한기는 서구근대를 뒤쫓아야 할 전범으로 삼고 타민족에 대한 침략을 정당화한 일본의 대표적인 근대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나, '야만/문명'의 대립항에 따라 사회와 문화를 파악, 사회진화론을 내면화한 강유위와도 뚜렷이 구별된다.
1965년 고 박종홍(서울대 철학과 교수) 교수로부터 시작된 남한에서의 최한기 연구는 서구적 근대에 접근해 가는 한국의 자생적 근대화론을 최한기에게서 강박적으로 찾아내고자 했다. 이는 최한기 사상의 근대성 탐구라는 관점에서 이루어진 이후의 연구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근대주의적 해석틀을 가졌던 그간의 연구는 피상적/부조적(浮彫的)으로 최한기 사상의 근대적 양상을 확인하면서 결과적으로 최한기 사상의 어떤 면모를 과장하거나 확대해석하는 쪽으로 치닫게 되었다. 근대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으로 최한기 사상을 검토한 연구 업적이 극히 일부분(도올 김용옥의 『讀氣學說』과 임형택의 「개항기 유교지식인의 '근대' 대응논리」,『大東文化硏究』)인 점을 감안할 때 그간의 연구가 최한기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얼마나 어렵게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근대주의의 추인과 정당화'에서 이루어진 기존의 연구 방법론을 전복하고 그간 이루어진 최한기 연구의 오류를 바로잡고 있다. 최한기 사상에서 무리하게 근대성을 적출해 내기 위한 시도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관념론적 측면이 많은 최한기를 경험론자로 일방적으로 몰고 간 것(126쪽 참조), 개화사상과 최한기 사상을 동일시한 것(179쪽 참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중 대표적으로 저자는 최한기가 사민평등(四民平等) 사상을 이룩했으며 사민(四民)을 신분 개념이 아니라 직업 개념으로 이해했다는 주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118쪽 참조) '사람에게는 원래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정해진 분한(分限)이 없다. 그러니 조정에서는 오직 인품과 귀천으로 취사(取捨)해야 한다'라고 한 점에서 그가 인재등용에서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최한기 사상 내에서 국가를 운영하는 역할을 맡는 자들은 운화기에 통달한 사람, 즉 사신분(士身分)에 속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보자면 최한기는 사신분의 인물들을 위정자로 등용하는 방식에 있어 여러 가지 개혁안을 내놓았을 따름이지 사민의 평등을 전제한 것이거나 사민의 평등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2. 최한기 사상의 문제점과 한계 검토
이 책은 최한기 사상을 크게 서양을 보는 눈, 세계주의, 자연과 인위, 평화주의, 학문의 통일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나누어 검토하면서 최한기 사상이 갖는 근대성의 면모와 동시에 그 결함 내지 한계까지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고루한 폐쇄성을 벗어나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세계의 추세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한 최한기의 서양에 대한 태도, 그리고 만국은 평등하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국제무역을 전면 긍정한 최한기의 세계주의는 많은 연구자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부분이다. 그러나 최한기의 서양에 대한 인식과 세계주의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저자는 최한기가 서양을 기술하는 태도에는 아편전쟁 이후 동아시아 사상가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심각한 위기의식이 감지되지 않으며, 최한기가 그린 조화롭고 분열이 없는 세계상은 서구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비판이 없는, 다분히 이상주의적이고 공상적인 세계구상이라고 평하고 있다.
최한기 사유의 이런 안이하고도 나이브한 점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저자는 일차적으로 대기운화(大氣運化), 통민운화(統民運化), 일신운화(一身運化)라는 세 가지 운화의 일통적 체계와 원리를 강조하는 기학의 논리구조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기학의 총론과 체계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자부, 그리고 자기정당화는 각론과 디테일에 대한 부실을 초래했고 최한기가 서양에 대해 현실적/비판적 사유를 제대로 펼쳐 나가지 못하게 한 원인이 된 것이다. 이밖에도 이상주의적 경향을 띤 조선 사상계의 영향, 서양에 대한 당대 조선의 오활함, 최한기가 조선의 기존 학문을 송두리째 부정한 점, '무형'에 대한 탐구를 닫아 버림으로써 사상의 본원에 대한 물음을 하지 않았다는 점 등이 또다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3. 혜강 최한기의 대동사상과 평화주의-21세기의 새로운 사상적 모색
최한기는 끊임없이 세계의 대동(大同)에 대해 강조했다. 그러나 '대동'이라는 호혜적이고 평등한 관계로 표상되는 최한기의 세계상은 실제 구현된 근대에서 관철된 적은 없다. 그러나 저자는 역사적 맥락에서는 극히 비현실적이라고 평가될 수밖에 없는 사상내용이라 할지라도 오늘날의 관점에서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보며, 그런 의미에서 최한기의 대동사상과 평화주의에 주목하고 있다.
최한기의 자연관이나 이성 규정에서는 상(上)과 하(下), 안과 밖, 천(天)과 인(人), 자(自)와 타(他), 인(人)과 물(物)이 모두 '통'하며, 조화로운 관계를 연출한다. 그러므로 거기서는 침략이나 타자에 대한 억압이 도출되지 않는다. 이런 최한기의 자연관이나 이성 규정은 역사적 근대의 입장에서 본다면 약점이나 한계로 치부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역사적 근대를 넘어서고자 하는 입장, 가령 생태주의와 같은 견지에서 본다면 중요한 시사와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최한기가 꿈꾼 세계는 지배와 복종의 세계가 아니라 평화와 대동의 세계였다. 동아시아의 역사를 통틀어 아마도 최초로 자각적인 수준에서 제기된 것이 아닐까 여겨지는 최한기의 세계평화 사상은 현재적/미래적 의의를 갖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4. 자유로운 서술, 형식의 파격을 보여준 새로운 학술서
최한기는 『추측록』(推測錄)이나 『인정』(人政)과 같은 저서에서 특정한 표제하에 쓴 하나하나의 글을 무수히 나열해 가는 저술방식을 애용하였다. 고전에 바탕을 둔 경학(經學)의 어휘를 사용하는 동아시아 중세의 글쓰기를 전복하고 또박또박 자신의 생각만을 적어 나간 이러한 글쓰기 방식은 동서고금을 통해서도 유례가 없는 아주 특이하고 예외적인 것이었다. 마치 수상록을 써 나가듯 특정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로운 필치의 단편적인 글에 담아 종횡무진 펼쳐 간 최한기의 사상을 음미하기 위해 저자는, 일반 학술서와는 달리 번쇄한 논증이나 인용을 피하고 103개의 소꼭지 속에 사유의 흐름을 자유롭게 기술하는 최한기식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최한기에 대한 전기적 사실, 최한기의 학문과 서구 자연과학의 관련, 최한기의 인식론 등 기왕에 논의된 사항들, 충분히 밝혀져 있는 사실이나 재론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는 주제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건너뛰는 방식을 택한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기존의 최한기 연구에서 제대로, 혹은 전혀, 다루지 않은 의제들, 즉 서양을 보는 눈의 문제, 주체성의 문제, 특수성과 보편성의 문제, 세계화 내지 세계주의의 문제, 근대와 근대극복(혹은 탈근대)의 문제, 리얼리즘과 아이디얼리즘의 문제, 유기체론과 기계론의 문제, 지배와 평화의 문제, 갈등과 대동(大同)의 문제, 자연과 문명의 문제, 실용주의와 인문적 가치 등 최한기 사상에 내재해 있으며,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물음들을 검토하고 있다.
5. 혜강 최한기에 대하여
▶ 최한기의 가계는 무반으로부터 성장해 올라온 하층양반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그의 세거지(世居地)는 조선왕조 내내 정치적으로 소외된 지역의 하나라 할 개성이었으며, 이런 지역적 연고와 관련하여 최한기 일문(一門)이 상업과도 일정한 연관을 맺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이 있다.
▶ 최한기에게는 특별히 내세울 만한 사승관계(師承關係)가 없다. 그는 사설(師說)의 중압 같은 것에 시달릴 필요가 없었기에 비교적 자유롭게 사유를 모색해 갈 수 있었으며, 서양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공부하며 입장을 세워 나갈 수 있었다. 그가 글쓰기와 문체에서 재래의 틀을 깨트리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열어 갈 수 있었던 것 역시 이 점과 관련된다.
▶ 최한기는, 비록 서울에 살며 저술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당시의 지식인 지형도(地形圖)에서 볼 때 '중심'에 속한 지식인이 아니라 '주변'에 속한 지식인이었다. 도시 공간의 중인서얼들과 함께 당대의 도시중간층에 귀속되는 분자로, 서양에 대한 문호개방과 관련하여 지배층의 수구적 자세를 비판하면서 교역(交易)으로 얻는 이득을 강조하며 진취적/개방적 자세를 취한 것은 도시중간층의 감수성과 관련이 있다.
▶ 최한기는 1851년(49세)에 서울의 송현(松峴) 상동(尙洞: 남대문 부근의 한국은행 일대)으로 이주하여 당호(堂號)를 기화당(氣和堂)이라 하고 문생을 가르치는 긍업재(肯業齋)를 열었다. 책을 구하기 위해 전 재산을 썼다고 할 만큼 책이란 책은 고가(高價)를 불문하고 아끼지 않고 사들였으며 방대한 독서에 바탕하여 자연과학, 사회과학, 철학 등에 걸쳐 천여 권에 이르는 저술을 했지만 현재는 백여 권에 못 미치는 저서가 남아 있다. 그 중 『기학』은 그의 철학사상을 가장 정리된 형태로 보여주는 저작이며 『인정』은 최대의 공력을 쏟은 그의 대표작으로 정치학과 경세론과 철학 등 그의 전 사상이 망라되어 있다. 또 『추측록』(推測錄)과 『신기통』(神氣通)을 합한 『기측체의』(氣測體義)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비견'할 수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식론적 논술저서'(도올 김용옥, 『讀氣學說』)로 평가된 바 있다.
▶ 최한기는 평생 이렇다 할 벼슬살이를 하지 않았다. 1871년(69세) 신미양요(辛未洋擾) 때 강화유수 정기원(鄭岐源)이 자문을 구하며 대원군의 뜻을 전하면서 강화로 와 줄 것을 청하는 서신을 보내왔으나 신병을 이유로 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과의 불평등 강화조약이 체결된 이듬해인 1877년(75세)에 서거하였다.
기본정보
ISBN | 9788971991657 |
---|---|
발행(출시)일자 | 2003년 09월 05일 |
쪽수 | 240쪽 |
크기 |
153 * 224
mm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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