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서문〉
지금까지 교육과정에 대한 전문서가 많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그 전문서들은 대부분 개론서의 형태로 내용을 개관(overview)하는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과정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거나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 이 분야가 지니는 특성이나 학문적 역사와 사상적 전통을 쉽게 알려주는 책은 흔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접한 본 역서는 이러한 관심에 부합하는 좋은 책인 것 같다.

본 역서는 Wesley Null이 2011년에 집필한 「Curriculum: From theory to practice」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Null은 한국의 교육과정 연구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는 현재 Baylor University의 Honors College 교육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면서 교육과정 이론과 교육사를 가르치고 있다. Null은 William A. Reid가 1992년에 집필한 「The Pursuit of Curriculum: Schooling and the Public Interest」를 편집하였고, 서론(introduction)을 작성하였다. 그 당시 서론의 제목은 “Teaching Deliberation: Curriculum workers as public educators”로서 “숙의를 가르치기: 공적 교육자로서 교육과정 연구자”이다. 그 만큼 Null은 Reid의 교육과정 관점과 입장을 공유하고 있는 연구자이다. 이런 점에서 본 역서의 대강의 방향과 성격을 짐작할 수가 있다.

본 저서에서 저자의 관심은 교육과정 이론을 실천으로 전환할 때 좋은 교육과정과 교수를 구성하는 절충점에 있으며, 이론과 실천의 양 극단들 사이에서 중도를 지향하는 교육과정 이론과 실천의 접근에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교육과정과 관련한 이론과 실천, 교육과정에서의 개인과 제도적 관점들, 그리고 교육과정을 구성할 때의 경험과 지식 사이에서의 적절한 균형에 대한 질문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훌륭한 교육과정 개발자, 훌륭한 교사들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항상 이론과 실천의 균형을 이루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교육과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일을 잘 해야 한다. 그러나 이 일은 말보다 실천하기가 어렵다. 본 저서를 통해 우리는 교육과정이 여러 극단들 사이의 중도를 찾기 위한 통로가 되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독자 여러분들이 경청할 만한 저자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교육과정이란 무엇인가? 교육과정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누가 교육과정을 만들어야만 하는가? 어떻게 이러한 교육과정을 결정하였을까? 우리는 좋은 교육과정을 만들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며, 교육과정을 좀 더 잘 만들기 위하여 교육과정 개발이나 숙의를 할 때 전문적인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이러한 사람들은 어떠한 특성과 미덕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교육 제도가 성공적이고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이러한 질문들을 다뤄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저자가 이 책 전체를 통하여 교육과정 분야에 대해서 강조하는 점을 몇 가지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육과정은 도덕철학과 관련이 깊다는 점이다. 교육과정은 단지 학습계획안이나 교과에 대한 리스트 그 이상이다. 교육과정은 연구의 한 분야로서 그리고 도덕적 실천을 위한 하나의 중요한 과목이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교육과정은 철학, 특히 도덕철학과 많은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교육과정은 철학과 아주 유사한데, 이는 두 분야가 모두 지식(knowledge), 현실(reality), 실천(practice)을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둘째, 교육과정은 전문적인 특별한 연구 분야이다. 이해 당사자 집단들이 경쟁하고, 수많은 사회, 정치적 주제들에 대해 갈등에 처해있는 상황에서 교육과정 전문가들은 교육과정 계획과 실행의 다양한 수준을 이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려 깊고 창조적이어야 한다. 특정한 제도적 맥락 안에서 이해 당사자들과 적절하게 공유하는 법을 학습해야 한다. 추상적 문서로서의 교육과정과 살아있는 교실 수업의 핵심으로서 교육과정 사이의 간격을 주시하고 도덕적 실천의 입장에서 신중해야 한다. 교육과정 전문가들이 어떻게, 왜 교육과정을 가르쳐야 하는가 하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셋째, 교육과정은 자유 해방 교육과정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이다.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들을 협소한 시야와 생각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어야 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전통이라는 경계 안에 갇혀있다. 해방 교육과정은 사람의 이성, 성찰, 숙의적 삶을 살도록 해준다. 학생들이 좀 더 인간적이고 열정적이게, 학생들의 모든 재능이나 능력을 이끌어 내기 위한 과정이다. 동시에 사회, 정치적 삶을 이해하기 하기 위해 필요한 기초적인 지식을 제공하는 전통과 학생들을 연결시키고 있다.

넷째, 숙의적 교육과정 전통을 강조하고 있다. 숙의 교육과정 전통과 관련하여 여러 학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Schwab과 Reid의 연구에 근거하여 숙의 교육과정 전통을 강조하고 있다. 교육과정의 본질에 부합하는 숙의의 문제를 고찰하고 역사적인 전통들과의 통합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이 책 전체의 흐름은 세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우리가 좀 더 나은 학교교육를 위해서는 협소한 교육과정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점 둘째, 진정한 해방 교육과정을 창조하기 위해 특정한 교육과정의 개념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는 점 셋째, 실제 교육의 맥락, 즉 학교와 대학에서 학생들을 위한 해방 교육과정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유념해야 할 일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즉, 우리의 기존 교육과정의 아이디어들을 자유롭게 하고 동시대의 교육 제도가 접하는 교육과정 문제들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 I부는 “교육과정 전통”에 대한 내용이며, II부는 “이론에서 실천으로”의 문제를 다루며, 학교에서 교육과정 숙의에 대한 실천의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즉, (1) 특정 교육과정 이론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2) 숙의적 교육과정 이론은 네 개의 다른 교육과정 전통과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고 (3) 숙의적 교육과정이론이 실제로는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사례들을 예시하고 있다.

저자가 강조하는 바, 교육과정이 도덕적 실천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간 교육과정의 담론은 여러 양식들에 의해 다양하게 논의되기는 하였지만, 이해와 개발 담론의 이분법적 사고, 포스트모던적 담론의 모호성, 체제공학적 담론의 위기, 이론의 유용성에 벽을 쌓는 학교현장 담론 방식 등에 비추어 보면 저자의 언급이 희망적이다.

이 책은 교육과정연구실의 공동 작업의 산물이다. 정규 수업과 연구실 세미나에서 공부한 것을 정리하여 출간한 것이다. 참여자들이 가장 관심이 있는 부분을 발표하고 난 후 토론이 이어지는 방식에서 논의된 것들을 반영하여 정리하였다. 애초에 번역서 출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나의 도발적인 제안으로 본 저서를 읽고 발표하면서 그 결과물로 우리말 번역서를 출간하는 것으로 의견이 수렴되었다. 이 역서는 그 성과물이다.

이 책은 여러 독자들에게 유익할 것으로 예상한다. 학부생이나 대학원생, 교육과정 전문 연구자, 그리고 교육이론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특히 요즘처럼 연구방법에만 편중된 관심을 보이는 독자들에게는 한 차원 높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번역하는 일은 여느 때처럼 힘들고 길었다. 여러 사람들이 작업하다 보니 흔히 생기는 실수와 오류가 많았다. 그래서 몇 번이고 모여서 각 장의 내용을 고치고 다시 고치고 하는 일을 반복하였다. 그래도 독자들의 눈에는 많은 허점이 보일 것이다. 그 잘못은 전적으로 책임자인 나의 것이다. 독자들의 질정을 기대한다. 그리고 이 책을 수정하고 교정하는 과정에 수고를 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본 번역 작업에 참여한 모든 대학원생들(경북대교육과정연구회 번역팀: 신경애, 전호재, 정상원, 송경화, 배은미, 김태수, 김단영, 신혜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동시에 이 역서를 멋지게 편집하여 출간해주신 사장님과 편집부에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모쪼록 이 역서가 교육 연구자들과 교육과정 학문 공동체에 조그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대표 역자 강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