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이백은 술 한 말에 시를 백 편 지었다(李白一斗詩百篇)’고 하지만, 실상 그 시들은 지어지기 직전에 가장 아름다웠을 텝니다. 생각은 아직 시가 아니고 시는 이미 생각과 다르지만, 이 의도와 실천 사이의 위태로운 길에 서서 아직 아무도 품어 보지 못한 그 사이이치에 천착하는 일은 오직 인문(人紋)의 공부만이 열어 줄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자 전래의 가치입니다. 김영민, 『김영민의 공부론』(6-7쪽)
시뿐만 아니라 책도 쓰이기 전에 가장 아름다웠을 테다. 생각은 아직 책이 아니고 책은 이미 생각과 다르지만 의도와 실천 사이에서 아직 아무도 품어 보지 못한 그 사이 사이의 이치를 발견하고 기록하게끔 한 그 생각을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에서 어렴풋이 보여준다.
중세를 지배해온 기독교적 가치관의 붕괴를 목격한 르네상스인과 근대를 지배해온 서구적 가치관의 붕괴를 목격하고 있는 나, 르네상스인이 새로운 가치관을 창출하기 위해 우선 돌아간 곳이 고대 로마니까, 나도 그곳으로 돌아가 고대 로마가 무엇이었는가를 냉철하게 아는 것이 선결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은 로마에 대해 쓰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내가 로마인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시오노 나나미,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20쪽)
르네상스인에게 무너져 가는 기독교적 가치관의 대안은 로마적 가치관이었다. 시오노 나나미 역시 근대 서구적 가치관의 붕괴를 보며 새로운 가치관을 모색하던 중 도대체 로마는 무엇이었기에 기독교 세계의 대안이 되었나? 하는 의문을 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결국 『로마인 이야기』를 낳는다.
때때로 질문의 전환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고대 이래로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관념론과 실재론으로 나뉘어 끝나지 않는 논쟁을 벌여온 다른 학자들과 달리 피아제는 그 질문을 ‘지식은 어떻게 형성되는가?’로 바꾸었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헌신했다. 딸이 영유아기부터 성장하면서 어떻게 지식을 습득하는지 관찰하며 기록을 남긴 것이다. 발달 심리학은 이렇게 피아제의 질문 전환으로 탄생한다.
중국사가 이중톈은 중국과 로마에 대해 새로운 의문을 품었다. 그 의문의 생각이 낳은 책이 『두 한나라와 두 로마』다. 이중텐의 질문은 이렇다.
중화 문명은 중단되지는 않았지만 쇠약해지면서 점점 세계성을 잃었다. 반대로 로마 문명은 죽었다 다시 살아나 르네상스 이후에 서구 현대 문명의 기원이 되었다. 그 안에 특별한 비밀이 없을까? 이중톈, 『두 한나라와 두 로마』(219쪽)
이중톈은 그 특별한 비밀을 찾기 위해 거시적 시야로 세계, 역사, 제도, 신앙, 이념의 측면에서 로마와 한나라를 조망한다. 2. 세계
『후한서後漢書』의 「서역전西域傳」에는 기원후 166년(후한 환제 연희 9년), 로마 사절단이 후한의 수도 낙양을 방문한 기록이 있다. 로마와 후한, 두 위대한 문명 최초의 공식적 직접적 접촉이다. 아마도 비단이 방문의 목적이었을 것이다. 중국과 서역을 이어주는 실크로드, 즉 비단길은 한 무제가 개통해 로마와 한의 교류는 기원전 126년부터 기원후 166년까지 약 3세기 동안 이루어졌지만 직접적인 교류는 중국과 로마 사이에 있던 파르티아가 막고 있었다. 중계 무역이 가져다주는 이익을 파르티아가 고수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탓에 중국과 로마는 교류는 하면서도 서로 부딪히지 않고 각자 독립적으로 성장해 제국이 되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로마는 멸망하지만 르네상스 이후 다시 부활해 서구 현대 문명의 기원이 되었다. 중국 문명은 중단 없이 계속되었지만 19세기 아편 전쟁 이후 세계무대에서 좁아진 입지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런 결과를 낳은 비밀을 추적해 감에 있어 이중톈은 로마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아시리아 제국부터 살핀다. 아시리아는 최초의 제국이다. 전쟁에 능했던 아시리아는 105년간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를 하나의 강력한 제국으로 합병했다. 천하를 차지하는 것엔 능했지만 아쉽게도 다스리는 데는 소질이 없었다. 통치 수단이란 것이 폭력 아니면 압제였던 것이다. 아시리아와 신바빌로니아에 이어 등장한 페르시아의 키루스는 정복자가 아니라 해방자로서 신바빌로니아에 입성했다. 키루스는 이전 제국과는 확연히 다르게 인정(仁政)을 펼쳤다. 영토를 여러 속주로 분할, 위임통치를 맡겼던 페르시아 제국은 키루스에서 다리우스에 이르기까지 지방행정과 주민생활에 가능하면 관여하지 않는 입장을 취했다. 또한 통치에는 무력보다 법이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속주로부터 거두어들이는 세입도 상당했다. 다리우스의 무공(武功)과 문치(文治)는 행정관리 체제, 고속도로, 지하수로, 농업기술의 전파와 개량 등 각 분야의 다양한 사회기반시설 구축과 함께 번영의 열매를 낳았다.
이러한 번영가운데 있던 페르시아는 창끝을 그리스로 돌린다. 결과는 참패였다. 아테네 시민으로 구성된 중장보병(重裝步兵)군이 구사하는 밀집대형의 방진 전법에 그 원인이 있다. 밀집대형의 방진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선 시민의식에 기초한 정신무장과 자긍심이 있어야만 했다. 아테네에겐 이러한 정신이 있었다. 다리우스의 법치도 문치도 인정도 국민들에게 이러한 시민정신과 자긍심을 키울 수는 없었다. 그리스인의 승리는 가치관의 승리다. 그 가치는 자유와 민주다. 그러나 아테네가 자유와 민주를 배반하고 그리스의 패권을 장악하려하는 순간 그리스는 내분으로 침몰한다.
침몰한 그리스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손에 들어간다. 알렉산더는 그의 제국을 통해 그리스 문명을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동지중해까지 확산시킨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알렉산더의 미덕은 학자를 존중한 것이다. 이 미덕은 르네상스 이후 서구 문명의 정신으로 자리 잡았다. 이 덕분에 서구는 멀찌감치 선두를 달리게 되었다. 알렉산더의 제국은 그의 수명보다 짧았지만 세계화된 새로운 문명세계를 열었다. 알렉산더 사후 그의 제국은 하나 둘 로마 지배하에 편입된다.
3. 역사와 제도
2장에선 전설상 로마의 역사가 시작되는 기원전 753년부터 476년 서로마 제국 멸망까지 주로 로마의 역사를 다룬다. 기원전 509년 로마는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 체제를 확립한다. 이후 옥타비아누스의 악티움 해전 승리를 기점으로 공화국 로마는 황제가 통치하는 로마 제국이 된다. 공화정 이전의 왕정은 중국의 왕정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로마의 왕은 원로원과 민회의 선거를 통해 뽑았다. 선거를 통해 뽑힌 왕의 임기는 종신이었고 왕이 세상을 떠나면 선거를 통해 새로운 왕을 뽑았다. 로마의 왕은 종신제 대통령에 더 가까웠다. 중국에선 군주의 통치권이 하늘에서 비롯되고 로마에선 통치권이 시민에게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로마인은 아예 왕을 쫓아내고 왕정시대를 끝낸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공화정 체제는 로마에 정착했고 400여 년 동안 아무도 왕이 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카이사르의 등장이 모든 것을 뒤바꾸었다. 카이사르는 두 집정관의 권력을 한 사람에게 모은 종신 독재관이 되었다. 루비콘 강을 건너 종신 독재관이 된 카이사르가 왕이 될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공화제를 지키려면 카이사르가 죽어야 했다. 공화파는 카이사르를 죽였다. 하지만 카이사르와 함께 공화제도 함께 죽고 제정이 탄생한다. 카이사르의 후계자로서 원수의 자리에 오른 옥타비아누스는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는다.
아우구스투스는 사실 황제다. 옥타비아누스는 민주주의 방식으로 독재를 실현했다. 그에게서 시작된 군주제는 근 500년간 지속되었다. 옥타비아누스의 성공은 그가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던 것에 있다. 공화정을 깨면 죽어서 묻힐 것도 없게 될 사람은 바로 자신임을 알았다. 이 때문에 그는 주권이 시민에게 있다는 것과 공화제로의 복귀를 시민들과 원로원 앞에서 인정했다. 원로원과 로마 시민은 안심했다. 하지만 그들이 돌려받은 것은 허울뿐인 것이었다. 민회는 유명무실해진지 오래였고 원로원에 돌려준 권력은 원로원으로부터 되돌아왔다. 이 권력은 원로원이 위임한 것이므로 합법적인 것이었다.
이중톈은 이러한 것을 가능케 한 옥타비아누스의 정치적 재능이 합법적으로 싸우는 것이 일상이 되었던 로마의 전통에 기인한다고 평가한다. 그의 정치적 재능이 그만의 전유물이 아닌 로마 시민의 것이었다는 것이다.
공화제의 정신은 평민과 귀족의 타협에서 발전했다. 기원전 494년, 의무만 있고 정치 참정권은 가지지 못했던 평민으로 구성된 군대 전체가 ‘권리 없이 의무 없다’는 기치 아래 전쟁에 참여하길 거부하며 철수 운동을 벌인다. 귀족은 평민 없이 도시를 지킬 능력이 없었기에 타협이 불가피했다. 타협을 통해 평민들은 자신들의 대변인을 선출할 권리가 생겼다. 이후 점차 계급간 장벽이 허물어지고 로마 도시는 전 시민의 국가가 되었다. 도시국가에서 대공화국으로 변모하고 마침내 대제국이 된 것은 역사상 로마가 유일하다. 이는 로마가 타협하는 법을 배우고 조화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정신 덕분에 로마 문명이 전 인류의 공동재산이 되었다. 우리는 그 정신을 ‘공화(共和)’라고 부른다. 공화라는 것은 다양한 민족, 계급, 이해집단이 조화롭게 공존하면서 함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세계사에서 중국과 로마를 제외한 제국은 하나 또는 몇몇의 위대한 정복자가 건립했지만 중국은 방국에서 로마는 공화국에서 제국이 되었다. 즉 둘 다 스스로 성장했다. 이러한 성장의 토양과 역량은 중국은 예, 로마는 법이었다. 로마의 강력한 법치 관념은 세계에서 첫손가락에 꼽힌다. 기원전 494년의 평민 철수 운동 후 로마는 평민들의 압력으로 성문법을 제정했다. 최초의 법전을 12표법이라 한다. 이는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체제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공화국에서 제국으로 바뀌어도 로마는 여전히 법치국가였다.
기원후 476년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폐위되었다. 동로마 제국은 1453년 오스만 튀르크에게 멸망했다. 하지만 이중톈은 도시국가에서 성장한 로마의 수도가 로마를 떠난 날부터 이미 로마는 멸망한 것과 다름없다고 본다. 콘스탄티누스 1세가 천도한 날부터 로마는 멸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중톈은 로마 멸망의 궁극적 원인이 도(道)의 부재에 있다고 진단한다. 로마엔 로마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가 없었기에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도가 그리스엔 있었다. 독립, 자유, 평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리스엔 공화(共和)가 없었다. 중국에도 도가 있다. 소강(小康), 인정(仁政), 왕도(王道)가 그것이다. 하지만 왕도는 이상에 그쳤고, 인정을 실현하려면 운이 따라야 했다. 이로 인해 중국문명은 중단되지는 않았지만 혼란한 상황이 그치지 않았다.
반면 로마인에게는 나라를 다스리는 도가 없었다. 우월한 제도와 뛰어난 방법들은 모두 기술적인 것이었고 현실의 이익을 위한 것에 불과했다. 종교(종교라 할 수 있다면)마저 유대교와 같은 훌륭한 사상이나 거룩한 사명이 없었다. 콘스탄티누스는 이 점을 인식했던 것 같다. 그래서 기독교가 그의 신민들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고 심신에 평안을 주길 바랐다.
4. 신앙과 신념
유대인은 역사상 영향력의 측면에서 그들을 정복했던 모든 국가와 민족을 뛰어 넘는다. 유일신교를 발명했기 때문이다. 중심이 여러 개라는 것은 중심이 없다는 것이고 신앙이 여러 개라는 것은 신앙이 없다는 뜻이다. 뭐든지 믿는다는 것은 무엇도 믿지 않는 것과 같다. 진짜 제대로 된 신앙을 가지려면 유일신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유대교가 탄생하기 전까지 세계의 민족들은 여러 신을 숭배했다. 유대인이 유일신교를 발명한 것은 기적이다. 하지만 이 유일신교가 훗날 세계적인 흐름이 된다. 세상의 대다수 문명고국(文明古國)이 군주제를 고수할 때 특수한 사례였던 그리스의 민주주의와 로마의 공화주의가 훗날 세계적인 흐름이 되었듯. 하지만 세계적인 유일신교의 자리는 유대교가 아닌 기독교가 차지한다. 유대교는 폐쇄성과 배타성이 지나치게 강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유일신교는 세계적인 로마 문명에서 등장할 수 있었다. 기독교가 바로 그것이다.
유대교에서는 유대인만 하나님이 선민(選民)이다. 기독교에서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죄인’이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니 모두가 형제·자매고 구원이 필요하다. 기독교에선 평등과 박애라는 핵심 가치관이 탄생했다.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중톈은 콘스탄티누스 1세가 로마인의 황제에서 기독교도의 황제가 된 이유를 권한 위임의 주체를 바꾸려는 것에서 찾았다. 로마의 권력은 늘 원로원과 로마시민에게 있었고 집정관과 황제는 대리인에 불과했다. 정권은 타인이 주는 것이므로 타인에게 뺏길 수도 있었다. 이는 황제의 빈번한 교체와 비명횡사의 이유이기도 하다. 안정된 정권유지와 독재를 위해선 ‘사람이 주는 황제권’에서 ‘신이 주는 황제권’으로 바꿔야 했다. 한편 황제권을 위임하는 신은 다신교의 신이 아닌 유일신이어야 했다. 다신교의 신이라면 황제가 여럿 나와도 할 말이 없다. 그럼에도 유대교는 용납될 수 없었다. 그들의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일 뿐이었기에.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다. 기독교만 남은 것이다.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를 승인하고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긴다. 로마 도시는 전통문화의 메카였고 다신 숭배의 세력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그리스와 로마의 다신 숭배는 당시 시의에는 맞지 않았지만 귀한 정신을 갖고 있었다. 바로 관용정신이다. 다신은 곧 다원과 다양을 의미하기에 전쟁을 해도 종교 때문에 전쟁을 하지는 않았다. 기독교만이 유아독존을 추구하고 세계를 정복하려 했다. 기독교가 관용을 배운 것은 르네상스 이후다.
관용은 로마 문명의 정수이며 공화와 법치에 필적할 만한 것이다. 공화와 법치가 없으면 로마가 없었고 관용과 개방이 없으면 로마 문명이 없었다. 기독교는 로마의 구세주가 아니라 로마의 무덤을 판 존재였다. 기독교가 나쁜 것이 아니라 공권력을 동원해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것이 나빴다. 유학이 꼭 그른 것이 아니고 한나라 조정이 유학을 유일한 숭상의 대상으로 정한 것이 그른 일이었듯. 그럼에도 중화제국이 훗날의 로마제국보다는 훨씬 관용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제국은 멸망하고 중화제국은 존속했다. 서양인들은 훗날 이 이치를 깨닫는다. 미국은 입법을 통해 국교를 세우거나 신앙의 자유를 금지할 수 없다고 명확히 규정했다. 이중톈은 신앙의 자유가 신앙보다 훨씬 더 중요하지만 반드시 신앙이 있어야 한다면 그냥 ‘자유’를 믿자고 한다.
중화제국도 신앙은 없었지만 장기간의 분열이나 제도적 붕괴는 일어나지 않았다. 비록 왕조나 정권이 바뀌며 혼란한 국면이 반복되긴 했어도. 신앙은 없어도 이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삼강오상(三綱五常)이다. 한 무제는 조서를 내려 나라를 다스리는 도에 대해 물었고 동중서는 상서를 올려 대책을 제시했다. 동중서는 오상을 이 상서에서 제기했다. 삼강 역시 동중서의 대표작 『춘추번로』에 나오는 개념이다. 삼강은 군위신강(君爲臣綱 신하는 임금을 섬기는 것이 근본), 부위자강(父爲子綱아들은 아버지를 섬기는 것이 근본), 부위부강(夫爲婦綱아내는 지아비를 섬기는 것이 근본)이다. 오상은 인, 의, 예, 지, 신이다. 이를 모두 합쳐 ‘강상’이라하고 강상윤리라고도 한다.
동중서는 삼강오상을 천인합일을 통해 논한다. 동중서는 ‘하늘과 사람은 하나다’라고 했다. 동중서가 보기에 사람과 하늘은 같은 구조였다. 하늘에는 오행이 있고 사람에게는 오장이 있다. 하늘에는 춘하추동이 있고 사람에겐 희로애락이 있다. 하늘에는 음양과 강유(剛柔)가 있고 사람에겐 군신과 남녀가 있다. 구조가 같으면 감응한다. 사회가 조화로우면 때 맞춰 비가 오지만 백성의 원망이 치솟으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진다. 그렇다. 천자의 통치권은 천명에서 비롯되는 것인 만큼 하늘을 노하게 하고 사람들의 원망을 사면 안 된다. 한편 황제를 하늘의 뜻에 복종시키려면 황제에게 하늘의 명의로 지위와 절대 권력을 주어야 했다. 이런 요구에 따라 삼강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삼강오상은 일종의 ‘하늘에서 계시한 도덕’이 되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계시이기에 계시의 종교와 유사하기도 했다.
사실 동중서는 무당이나 도사에 더 가까웠다. 그가 창시한 금문경학파는 유가를 무속으로 바꿨다. 후한의 광무제는 우물쭈물하다 도참(圖讖)을 천하에 공개해 ‘하늘의 뜻에 순응하여’ 광무황제가 되었다. 정치화된 샤머니즘이다. 광무제가 정권을 확고히 하기 위한 도참은 역시 반역을 일으킨 농민들이 왕조를 뒤엎는데 사용됐다. 이러한 무속도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나라 시기 경전해석에 기대어 신비적인 예언을 한 위서(緯書)에는 천문학, 지리학, 수학, 철학 지식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화된 무속이 도참, 위서다. 동시에 무속은 종교화 되었고 종교화된 무속이 바로 도교다. 도교라는 종교는 불교의 형식을 빌려왔다. 정치의 무속화, 불교의 도교화는 무속이 과학화되지 못한 결과다.
5. 맺는말
이상으로 이중톈의 논의를 살펴보았다. 중화문명이 쇠퇴하지 않은 원인은 통치와 궁극의 도(道)로 작용하는 삼강오상이란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로마 문명은 탁월한 법치와 공화, 관용의 정신이 있었음에도 로마가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의 부재로 말미암아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나마 기독교 신앙을 궁극의 가치에 올려놓지만 기독교가 국교가 되는 순간 로마 문명의 근간인 관용을 잃어버리고 로마는 더 이상 로마가 아닌 전혀 다른 모습의 기독교 제국으로 변모해 간다. 한편, 중세를 지배해온 기독교적 가치관의 붕괴를 목격한 르네상스인은 새로운 가치관을 창출하기 위해 고대 로마로 돌아갔다. 이후 로마의 법과 공화정은 오늘날 민주 공화국의 모델이 되며 서구 현대 문명의 기원이 되었다. 르네상스 이후 다시 찾은 관용의 정신은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로 하여금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으며 범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게 했다.
신앙을 논한 3장이 기억에 남는다. 유대교의 유일신 신앙이 내포한 가치와 유일신 신앙이 인류 문명에 끼친 영향력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짚어내는 통찰이 인상적이다. 이 책은 또한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는 무엇인지, 내가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는 무엇인지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닫기
1. 들어가는 말 '이백은 술 한 말에 시를 백 편 지었다(李白一斗詩百篇)’고 하지만, 실상 그 시들은 지어지기 직전에 가장 아름다웠을 텝니다. 생각은 아직 시가 아니고 시는 이미 생각과 다르지만, 이 의도와 실천 사이의 위태로운 길에 서서 아직 아무도 품어 보지 못한 그 사이이치에 천착하는 일은 오직 인문(人紋)의 공부만이 열어 줄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자 전래의 가치입니다. 김영민, 『김영민의 공부론』(6-7쪽) &nb... 더보기
![[허닭]BEST추천 닭가슴살 18팩세트(전자렌지용기증정)](http://image.kyobobook.co.kr/newimages/giftshop_new/goods/400/1537/S1645775954156.jpg)
![[아이리버] 휴대용 선풍기 BF-A9 코랄](http://image.kyobobook.co.kr/newimages/giftshop_new/goods/400/1057/hot1652167624892.jpg)
![[1+1] 푹신푹신 유해물질 걱정없는 무소음 슬리퍼](http://image.kyobobook.co.kr/newimages/giftshop_new/goods/400/1073/hot1651221757378.jpg)
![[1+1] 마비스 치약 85ml 4개세트 (총8개)](http://image.kyobobook.co.kr/newimages/giftshop_new/goods/400/1081/hot1652237198838.jpg)
![[동원] 동원샘물 웨이크업뷰티 500ml*20병](http://image.kyobobook.co.kr/newimages/giftshop_new/goods/400/1764/S1641424942887.jpg)
![4 in 1 충전 케이블 [8핀X2&C타입&마이크로 5핀]](http://image.kyobobook.co.kr/newimages/giftshop_new/goods/400/1341/hot1560825655721.jpg)
